§ 나는 될놈이다 854화
‘아키서스의 가마솥을 얻은 건 이런 때를 위해서였나.’
신은 한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 문을 열어주신다는 말이 있었다.
아키서스는 용암을 주면 그 용암의 양을 늘릴 가마솥을 준다!
[그거 아닌 것 같다고 카르바노그가…]
쿵-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광장 앞에 <아키서스의 가마솥>을 설치했다.
[<아키서스의 가마솥>을 중앙 광장에 설치했습니다!]
[영지의 식량이 급격하게 증가합니다!]
[영지에서 일어나는 모든 요리의 양이 증가합니다!]
[……]
그 고생을 하면서 얻어온 보람이 있다!
아키서스의 가마솥은 효과가 화끈했다.
<에랑스 왕가의 구리 솥>도 골짜기에 설치하고 나서 어마어마한 효과를 봤었는데, <아키서스의 가마솥>은 그보다 한 수 위!
[카르바노그가 괜히 신이 아니라며 좋아합니다.]
‘하하. 나도 그렇게 생각해.’
화기애애한 태현과 카르바노그!
물론 펠마스는 웃지 못했다.
태현이 가마솥에 이상한 걸 붓고 있었으니까!
“폐… 폐하. 저게 뭡니까?”
저거 용암인 것 같은데?
그렇지만 내가 잘못 본 거겠지?
“용암이지.”
“???”
“흠. 다 된 거 같군.”
“?????”
하다못해 용암에 뭐라도 넣어야 하는데, 태현은 쿨하게 용암을 붓더니 국자로 몇 번 휘젓고 끝내버렸다.
-킁킁. 맛있는 냄새가 난다.
-인간들 부럽다.
성 밖에 서 있던 거인 부족들이 코를 킁킁거리며 용암의 냄새를 맡았다.
이런 별식을 자기들끼리만 먹다니!
부럽다!
-우리도 공을 세우면 먹을 수 있을 거다.
-맞다! 맞다! 화신이 곧 공을 세울 기회를 줄 거다.
[거인 부족들의 사기가 올라갑니다.]
“…?”
준비하던 태현은 메시지창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성문 밖에서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사기가 올라가면 좋은 거지 뭐.’
“자! 와라! 용암의 의식을 시작한다!”
태현의 말에 줄 앞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 밀치며 달려들….
지 않았다.
웅성웅성!
“저게 뭐지?”
“그냥… 가마솥에 용암 넣은 건데….”
“설마 저걸 끼얹나?”
“헉. 화염 속성 방어구 끼고 올 걸.”
누군가 한두 명 정도 먼저 해봤으면 좋겠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모인 만큼, 역시 용감한 사람들도 있었다.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설마 죽기야 하겠어!
나선 플레이어는 일단 자기한테 각종 화염 방어 마법을 걸고 화염 속성 방어구를 꼈다.
이 정도면 용암을 머리에 부어도 버틸 수 있다!
“준비됐나?”
“예!”
“마셔라!”
“예?”
뭔가 다른 ‘예’!
“시간 없다. 마셔!”
“아, 아니. 잠깐… 뭔가 오해가 있었던 같…!”
태현은 플레이어를 붙잡고 그릇을 입에 가까이 가져다 댔다. 사람이 많이 모여서 최대한 빨리 끝낼 생각이었다.
“웁웁웁!”
태현의 팬이었던 플레이어는 태현의 손을 쳐내지도 못하고 용암을 원샷해야 했다.
뜨겁다!
화끈하다!
[<아키서스 시련의 용암>을 마셨습니다!]
[지혜가 내려갑니다!]
[화상 상태에 빠집니다!]
[HP가 빠르게 감소합니다!]
[이동 속도가…]
[……]
[……]
“구아악! 구아아악!”
“????”
“내가 지금 잘못 본 건가?”
“아니, 용암 마신 것 같은데….”
“설마 그럴 리가….”
줄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은 아직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다음 사람!”
“아, 아니! 잠깐만! 다시 생각 좀….”
뒤로 빠지려고 해도 광장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가만히만 있어도 계속 앞으로 밀리는 몸!
“빨리 해요!”
“맞아!”
“지금 기다리는 사람 많으니까 빨리 합시다!”
뒤에서 아직 상황 파악 못한 사람들의 외침!
“이제야 좀 빨리 나오네. 자!”
“우어억!”
“다음!”
“크어어어억!”
원 샷 원 킬.
태현은 가차 없이 사람들을 쓰러뜨렸다.
[아키서스의 권능 요리 스킬이 오릅니다.]
[신성 스탯이 오릅니다.]
[공포 스탯이 오릅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불태웠습니다. 화염 관련 스킬 데미지가 오릅니다.]
[……]
‘오. 이런 보너스까지.’
[착한 짓을 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후. 안 어울리는 짓을 해버렸군.’
이런 착한 짓은 스스로와 어울리지 않는데!
태현은 코밑을 쓱 훔치며 멋쩍어했다.
“끄어어… 끄어어어….”
“으아아아아….”
쓰러진 플레이어들은 버티다가 결국 포션을 꺼내 목구멍으로 들이부었다.
[<용암의 의식> 시련에 실패했습니다!]
[체력 스탯이 오릅니다.]
[신성 스탯이 오릅니다.]
[……]
“이걸 어떻게 깨라고!!”
“살다 살다 이런 의식은 처음 본다!”
경험 많은 플레이어도 처음 겪는 퀘스트!
그러나 언제나 별종은 있었다.
화염 저항과 HP가 엄청나게 높아서 간신히 버텨낸 플레이어 한 명이 나타난 것이다.
“됐다! 됐다…! 됐다고!”
“헉! 누가 통과했나 봐!”
“저 사람인가?”
“그런데 왜 저렇게 땀투성이지?”
뒤에 있던 사람들은 상황 파악을 아직 다 못한 상태였다.
의식이 진행되고 있다는 건 아는데 어떤 의식인지는 정확히 모르는 상태!
[<용암의 의식>을 통과했습니다.]
[<아키서스 교단 영웅 투사>로 전직합니다!!]
파아앗!
“내가…! 내가 드디어 <아키서스 교단 영웅 투사>로 전직했어!”
“!!!!!”
“성능 봐! 진짜 대단해! 스킬들도!”
“헉. 진짜?”
케인은 그 말을 듣고 솔깃했다. 최상윤이나 정수혁은 어이없어했다.
“아니, 네 직업 갖고 저 직업을 부러워하냐?”
“맞습니다. 얼마나 좋은 직업인데요.”
“…이름이 구리잖아….”
노예vs영웅 투사.
아무리 봐도 후자가 압도적!
“내가 바로! <아키서스 교단 영웅 투사>다!!”
“와아아아아!”
“나도…! 나도 마실 거야!”
사람들의 눈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뒤에 수십 명이 쓰러져 있어도 상관없었다. 사람들은 멈추지 않고 전진했다.
세 시간 후.
의식을 통과하고 <아키서스 교단 영웅 투사>로 전직하는 데 성공한 플레이어는 단 여섯 명이었다.
수천 명 중 여섯 명!
“다 됐나? 다 된 거 같네. 다행이다. 용암 양 부족할까 봐 걱정했네.”
“…….”
태현도 만족스러웠다. 경험치부터 각종 스킬 보너스까지 받을 수 있었던 것!
“다음에도 기회 되면 할 테니 많이들 찾아와줬으면 좋겠다!”
“…….”
“네….”
쓰러진 플레이어들은 꿈틀거리며 대답했다.
다음에 의식이 열리면 과연 참석할 수 있을까?
* * *
“김태현이 수도에 돌아왔답니다!!!”
“아,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헛소문이야! 분신일 거야!”
“위장일 수도 있어!”
단체 패닉!
간부들과 랭커들은 현실을 부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부정은 곧 사라졌다.
광장에 서서 용암을 나눠주는 태현의 모습!
그건 가짜나 분신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자연스러웠다.
“어…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후퇴하죠! 챙긴 게 이렇게 많은데!”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뒤에 끌고 다니는 수레를 가리켰다. 마을에서 뜯어낸 동상과 부피 큰 보물들이 가득 실려 있었다.
처음에는 가방에 넣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건 금세 한계에 도착했다.
무게 제한부터 이동 속도 저하 페널티!
길드 동맹은 결국 가방에 넣는 걸 포기하고 탈것이란 탈것은 모조리 동원해서 약탈물을 자기네 영지로 옮겨댔다.
그런데도 양이 너무 많아서 옮긴 양은 얼마 되지 않았다.
원래 약탈이란 건 챙긴 물건을 안전하게 갖고 돌아가는 게 가장 힘든 법!
결국 길드 동맹 약탈대는 각각 마차나 수레를 직접 모아서 저렇게 끌고 다니고 있었다.
한 번에 갖고 돌아가면 되니까.
“모두 침착해라!”
‘자기가 가장 당황해놓고…’
‘그러게. 지금 손 떨고 있는 거 맞지?’
“김태현은 혼자다! 아무리 날고 뛰어봤자 우리를 전부 막지 못해!”
“확실히… 그건….”
“김태현 부하 놈들은 강해봤자 그렇게까지 무섭지 않다!”
“케인은 좀 무섭던데.”
“맞아. 요즘 물올랐더라.”
“여차하면 자폭도 하고.”
던전 공략 대회 때문에 이상한 이미지가 생긴 케인!
쑤닝의 말에 길드원들은 침착을 되찾았다. 확실히 김태현 말고 나머지 놈들은 그렇게까지 무섭지 않았다.
랭커들도 이렇게 많은데!
길드원 중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저… 길마님.”
“왜?”
“그런데 김태현이 혼자라는 건, 적어도 한 곳은 털린다는 거잖습니까…?”
“…….”
“그러게?”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니까….”
길드원들은 수군거렸다.
“그게 뭐 어때서? 김태현이 나타나면 바로 합공을 가할 수도 있고 우리가 피할 수도 있다. 김태현 놈이 엿먹는 거라고! 우리가 탈탈 털어가는 걸 구경만 해야 할 거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일이 어떻게든 간에… 한 팀은 공격을 당할 거 아닙니까.”
뭘 하든 간에 미끼가 된 한 팀은 분노한 태현에게 확실하게 아작이 날 것이 분명했다.
평소보다 더 심하고 강하게 아작이 나겠지!
“근데… 김태현이 노린다면 무조건 길마님이 있는 우리를 노리는 거 아닙니까?”
“…….”
“…….”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졌다. 모두가 깨달은 것이다.
그러게??
별생각 없이 길마가 있고 랭커들이 많은, 가장 안전한 약탈 팀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김태현을 놓고 생각하니 가장 위험한 팀이었다.
김태현이 노린다면 가장 먼저 노릴 곳!
“아, 아니. 여긴 랭커도 많고 하니까….”
쑤닝은 살짝 말을 더듬었다.
약탈대를 꾸릴 때, 자기가 있는 파티에 랭커들을 가장 많이 배치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안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잘 생각해 보니 김태현이 그런 걸 따질 놈은 아니었다.
가장 약한 상대가 아니라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상대를 노리는 게 태현!
“길… 길마님. 배가 아파서 그런데 혹시 볼로네 영지 쪽 팀으로 가도 될까요?”
“길마님. 아세프 팀에 탱커가 부족하다고 들었는데 제가 가서 헌신하고 싶습니다!”
“닥쳐! 아무도 이 파티를 벗어나지 못한다! 벗어나는 놈이 있으면 길드 명령으로 척살하겠다!”
쑤닝은 분노해서 외쳤다. 만약 풀어준다면 정말 그와 랭커들 빼고는 싹 사라질지도 몰랐다.
“저… 쑤닝.”
“?”
그러는 사이 랭커 한 명이 쑤닝을 툭툭 치며 속삭였다.
“왜? 뭔 일이라도 있냐?”
“지금 할아버지가 위급하시다는데….”
“…….”
쑤닝은 자기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풀어준다면 쑤닝 빼고는 다 사라질 놈들!
“김태현하고 싸운다! 걱정 마라. 김태현이 나타나는 순간 랭커들을 전부 불러 김태현을 공격할 테니까! 김태현이 어디 랭커 수십 명을 상대로 이길 수 있나 보자!!”
원래는 김태현 나타나면 미끼 던져주고 빠르게 후퇴할 생각이었지만, 계획이 확 바뀌었다.
미끼가 자기면 그럴 수 없는 법!
태현이 얼굴을 내밀기만 한다면 랭커들을 전부 불러 김태현을 칠 생각이었다.
* * *
“니네 백작 와서 충성 맹세하고, 안 냈던 세금 내고, 앞으로 3년간 세율은 2배로. 그리고 무슨 일 생기면 기사단 소집해서 달려오고… 또 뭐가 있지?”
“아키서스 신전 자기네들 돈으로 건설한 다음 기부금 바치게 합시다.”
“그것도 좋은 아이디어군. 펠마스.”
태현과 펠마스는 왕과 간신 듀오 역할을 맡아 열연하고 있었다.
“…….”
“…….”
계속 기다리다가 <용암의 의식>이 끝나고 나서야 간신히 입장을 허락받은 귀족 사신들의 얼굴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저런 간신 놈이…!’
원래 때리는 시어머니보다는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미운 법.
사신들은 불타는 눈빛으로 펠마스를 쳐다보았다.
태현은 영웅이기라도 했지, 펠마스는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 운 좋게 출세해서는 옆에서 입을 털고 있었던 것이다.
‘저놈 암살해버린다!’
‘암살자를 보내야…!’
‘후. 존경하는 눈빛이 뜨겁군.’
펠마스는 스스로에게 취했다.
국왕에게 올바른 조언을 올리는 나란 신하!
나 없이는 왕국이 안 돌아갈지도 몰라!
‘펠마스 저놈은 겁이 없어졌나?’
태현은 신기해했다.
예전에는 바람만 불어도 떨던 놈이 이제는 귀족 사신들이 노려봐도 꿈쩍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성장한 걸지도…’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펠마스도 성장한 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