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49화
화염 구울 자체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문제는 무기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쭉쭉 소화되는 던전의 페널티!
[허기가 차오릅니다!]
[배가 고파집니다!]
“미친!”
케인은 경악했다.
빠르게 허기가 진다고 했지만 설마 몬스터 한 마리 잡는데 배가 고파질 줄은 몰랐다.
이 정도 속도라면 대체 배낭에 음식을 얼마나 갖고 와야….
콰직!
-크아아아! 살점을 내놔! 살점을 내놔!
“헉!”
방패로 상대를 후려치고 안심하고 있던 케인은 기겁했다.
몬스터가 예상 밖의 움직임을 보여주며 방패를 물어뜯고 파고들었던 것이다.
“케인. 정신 차려라! 몬스터 패턴이 좀 다르다!”
태현은 다가오는 구울의 다리를 향해 공격을 퍼부어 동작을 멈추게 만든 다음 그대로 약점을 향해 치명타를 퍼부었다.
케인한테는 사납게 덤비던 구울이 태현 앞에서는 정신을 못 차리고 두들겨 맞았다.
둘의 반응 속도가 너무 차이 났던 것!
케인은 기본적으로 방패를 들고서 버티다가 상대가 멈추면 반격하는, 평범한 수준의 플레이어였다.
그러나 태현은 방어 따위는 하지 않았다.
상대의 공격을 전부 읽고 피하면서 카운터를 때려 넣는 공방일체의 고난이도 스타일!
안다고 해서 따라 할 수도 없는, 판온에서도 극히 희귀한 전투 방식이었다.
딜러 중에서도 몇몇만 저런 방식을 택했다.
컨트롤 실수하거나 재수 없게 한 대 맞으면 훅 갈 수도 있는 위험한 스타일!
그러나 숙달만 되면 가장 무시무시한 스타일이었다.
내 공격은 안 맞는데 상대 공격은 계속 들어오는, 가장 짜증 나는 상황!
거기에 태현의 폭딜은 판온에서도 손꼽혔다.
-크아아악!
순식간에 구울 떼들이 정리되었다. 태현은 빠르게 감소되는 포만감에 혀를 찼다.
‘나름 빠르게 끝냈는데 이 정도면… 일단 한 번 싸우고 무조건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거군.’
정말 악독한 던전이다!
하지만 불평할 수는 없었다. 최선을 다해 해결할 뿐.
‘일행 다 안 데려오길 잘했군. 음식 나눠 먹었으면 소모가 더 빨랐겠어. 케인 대신 이다비를 데려왔으면 더 편했을 테지만….’
케인과 달리 이다비는 상인 직업이라 정말 별의별 아이템들을 다 갖고 다녔다.
요리 재료도 그중 하나였다.
“와. 진짜 배고파.”
케인은 신음했다.
판온에서 맞는다고 실제로 똑같이 아프진 않았다. 그렇지만 더위나 추위, 배고픔은 꽤나 생생하게 느껴졌다.
진짜 배가 고프다!
먹을 음식이 넉넉한 판온이고, 케인도 나름 랭커다 보니 게임에서 허기를 느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빵… 빵 넣어둔 거… 상했나?! 크흑!”
케인은 반성했다.
나는 평소에 빵 하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구나!
“옛다. 고기.”
“헉!”
케인은 태현이 내미는 고기구이를 냉큼 받아서 삼켰다.
약간 뻣뻣하고 냄새가 나고 혀가 아려왔지만 고기는 고기였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더 맛있다!
“이것도 괴식 요리야?”
케인은 우적우적 씹으면서 물었다. 태현이 요즘 괴식 요리 말고 다른 요리를 한 걸 본 적이 없는 기분이었다.
“그렇지.”
“평소라면 못 먹었겠지만 지금은 맛있게 느껴진다.”
“그렇게 말하니 기특하군.”
“무슨 고기야? 돼지?”
“아니. 구울.”
“아. 굴…. 해산물이었어?”
“아니. 구울이라고.”
“…???”
케인은 자기가 먹고 있던 고기구이를 한 번 쳐다보고, 입에서 씹던 걸 멈췄다.
“설, 설마…”
“뭐가 설마야?”
“아니지? 아니라고 해줘…! 방금 잡은….”
“맞는데.”
<오염된 사막의 화염 구울>!
구울 고기를 즉석에서 괴식 요리로 조리한 다음 내민 것이었다.
‘어쩐지 메시지창에 뭐 중독이나 그런 게 뜨더라!’
아무리 괴식 요리로 먹을 만하게 만들었어도, 오염된 구울 고기가 멀쩡하지는 않았다.
케인의 레벨과 스킬 때문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을 뿐!
“야! 이건 좀 아니다!!”
케인은 울컥해서 외쳤다.
이제까지 괴식 요리는 그래도 다 몸에 좋은 요리였다.
케인도 그래서 ‘이건 한약이다, 이건 한약이다.’ 라고 스스로를 속이며 먹어왔던 것이었고!
그런데 이건 그냥….
못 먹을 재료를 못 먹을 요리로 만들어서 먹인 거잖아!
“아무리 그래도 요리 스킬 올리려고 이런 것까지 먹이냐!?”
“뭔 소리야?”
태현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케인을 쳐다보았다.
“요리 스킬 올리려고 먹이는 거… 아냐?”
“…넌 내가 그런 놈으로 보이냐?”
‘어’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케인은 움찔했다.
왠지 ‘어’라고 말했다가는 일주일 정도 갈굼받을 것 같다!
“아, 아니.”
“당연히 던전 깨려고 먹이는 거지.”
태현은 구울과 한 번 싸우고 나서 견적을 냈다.
이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돌파가 힘들다!
처음에는 ‘배낭에 음식 엄청나게 갖고 온 다음 꾸역꾸역 버티면서 공략하는 던전인가?’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몬스터 무리를 최대한 빠르게 잡아도 공복도가 0이 된다면….
‘아무리 음식 많이 갖고 왔어도 무리야.’
이 던전은 정말 사악한 던전이었다.
다른 던전이라면 먹을 수 있는 몬스터들이 나오겠지만 이 던전은 오염된 언데드만 나왔다.
보통 플레이어라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절대 먹을 엄두를 내지 못할 재료!
요리 자체가 불가능했고 씹었다가는 온갖 페널티를 입을 것이다.
그나마 태현이니까 괴식 요리로 어떻게든 최대한 커버를 한 것이지….
‘와. 근데 이 던전 정말 악의적이군.’
나름 판온에서 오래 구른 태현도 감탄이 나올 정도의 설계!
‘평소에 미웠던 놈들을 여기로 끌고 오고 싶은데?’
잡을 엄두 안 나는 고레벨 NPC들도 여기로 끌어들이면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끌어들인 다음 도망치면서 한 5일쯤 후에 나타나면….
“으으윽, 흑흑.”
케인은 서럽게 울면서 구울 고기를 먹었다.
아무리 퀘스트가 좋고 보상이 좋다지만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케인. 그래도 구울은 다행인 편이야.”
“?”
케인은 뭔 개소리를 하냐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앞으로 무슨 몬스터가 나올지 모르잖아.”
“…!!”
그랬다.
구울은 그나마 고기를 씹으면 먹을 수 있는 몬스터!
만약 앞으로 골렘이나 나무괴물이나 그런 놈들이 나온다면?
“걱정 마라.”
“그, 그렇지? 그런 거까지 먹진 않을 거지?”
케인은 살짝 기대한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 언제나 태현은 기대를 벗어났다.
“아니. 내가 최선을 다해서 요리해주마.”
“…평, 평소 요리 남은 거 없냐?!”
케인은 어찌나 절박했는지 평소에는 줘도 안 먹는 괴식 요리들을 찾았다.
지금 보니 선녀 같다!
* * *
오염된 고기!
일단 먹을 수 있다.
썩은 슬라임!
…일단 먹을 수 있다!
냄새나는 가죽 신발!
…이것도 어떻게든 가죽을 무두질해서 잘 먹으면…!
골렘의 돌!
케인은 결국 폭발했다. 진짜 설마 설마 했는데 골렘이 나오는구나!
이런 개 같은 던전 같으니!
“이건 못 먹어!!”
“음. 아쉽군.”
[괴식 요리 스킬이 고급입니다. 페널티를 받습니다.]
[골렘의 돌을 요리하는데 실패합니다!]
‘쯧.’
최고급 괴식 요리 스킬을 갖고 있었다면 골렘의 돌도 요리했을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태현의 요리 스킬은 아직 고급!
요리 스킬도 고급, 괴식 요리 스킬도 고급이었다. 태현은 스스로 반성했다.
아, 내가 요리를 조금 더 잘했으면 굶주린 케인을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평소에 좀 더 열심히 할 걸!
‘저 자식 뭔가 되게 무서운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기분인데.’
케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배가 고팠지만 그보다 태현이 더 무서웠다.
“우리 제대로 가고 있는 건 맞아?”
케인은 태현에게 길을 물었다.
던전 공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지도 작성!
그리고 태현은 이런 길을 찾는 부분에서는 사기적인 수준이었다.
본인부터가 예리한 직감을 갖고 있는 데다가 <신의 예지>까지 있으니 어지간한 구간에서는 길을 잃을 수가 없는 것!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
그렇지만 이번 던전에서 <신의 예지>는 별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길이….
일직선이었으니까!
‘이 자식은 갈림길이 한 번도 안 나온 걸 눈치를 못 챘나?’
태현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빛으로 케인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감이 없어도 그렇지 이쯤 반복됐으면 눈치를 챘겠다!
이번 던전은 길을 최대한 길게 만들려는 게 목적인지 갈림길 하나 없이 계속 앞으로만 가는 형식이었다.
‘나선형이군.’
원뿔을 뒤집은 형태의 던전!
뒤집은 원뿔을 따라 빙글빙글 돌아 내려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계속 걷게 만들어 포만감을 없애려는 속셈이 느껴졌다.
악의 그 자체!
‘요즘 아키서스가 점점 본색을 드러내는 느낌이야.’
예전에는 그래도 좀 선한 신인 척하는 느낌이었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없는 기분!
[카르바노그가 무슨 소리를 하냐며, 아키서스는 원래 그랬다고 말합니다.]
‘…….’
[카르바노그가 고마워 할 필요는 없다고 수줍어합니다.]
‘고마워하는 거 아니거든?’
* * *
[골드를 얻었습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악명이 크게 오릅니다!]
[대륙의 다른 왕국들에서 당신을 경멸할….]
“크하하! 크하하하! 크하하하핫!”
쑤닝은 신이 나서 웃어댔다.
이건가!
이래서 김태현이 그렇게 산적질을 해댔구나!
쑤닝은 이제까지 돈을 쉽게 버는 방법이 세금이라고 생각했다.
영지 세금을 올리면 정말 우스울 정도로 골드가 빠르게 쌓였으니까.
그렇지만 세상에는 그것보다 더 빠른 방법이 있었다.
물 좋고 길 좋은 곳에 가서 ‘돈 내놔!’ 라며 약탈을 하는 것!
“우리 길드 괜찮은 거 맞냐?”
“김태현한테 당하기만 하더니 슬슬 맛이 가는 것 같….”
길드원들은 수군거렸다.
쑤닝이 요즘 점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던 것이다.
안 그래도 길드 동맹 내 몇몇 길드들이 이탈하고, 길드 동맹 투자들이 끊겨서 소문이 흉흉했는데 길마까지 저런다니….
튀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도 보상은 받아야지.”
“맞아!”
길드원들은 두근거리는 눈빛으로 기다렸다.
왜 산적질을 하고 약탈을 하겠는가?
짭짤한 보상 때문에!
“쑤닝 님. 보상 나눠주셔야죠.”
“뭐? 아… 꼭 줘야 하나?”
쑤닝은 산더미처럼 쌓인 골드를 보고 아쉬워했다. 이거 가져가서 길드 발전 기금으로 쓰면 안 되나?
안 그래도 골드 부족으로 허덕이는데….
“쑤닝 님. 김태현도 약탈하면 나눠줬습니다.”
간부 중 그나마 눈치 빠르고 머리 좋은 간부가 입을 열었다.
태현도 약탈하면 대부분을 나눠줬다!
태현이 착하고 바보 같아서 그런 게 아니었다. 원래 이런 건 혼자 먹으면 탈이 나는 법이었다.
날 공격한 놈은 잊어도, 내 골드 혼자 먹은 놈은 잊을 수 없다!
“…알겠어! 알겠다고.”
원래라면 쑤닝은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쑤닝도 성장이란 걸 했다. 김태현이 A를 했으면 A를 한 이유가 있다는 걸 배운 것이다.
따라 하기!
태현이 했던 걸 따라 하며 쑤닝은 성장하고 있었다.
촤르르륵-
“고마워 할 필요는 없다!”
[골드를….]
“??”
“이건…”
“절반이잖아…?”
길드원들 사이에 수군거림이 돌았다. 쑤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디 가서 너무 소문내지 마라. 50%라니. 후. 나도 참 너무 관대해서….”
쑤닝은 코밑을 쓱 훔쳤다. 길드원들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들이 직접 마을 가서 아이템 챙기고 골드 뺏어서 가져 왔는데 거기서 50%를 떼어 간다고?
진짜 강도 놈은 여기 있었네!
“쑤, 쑤닝 님. 너무 많이….”
“돌려주는 거 아니냐고?”
“떼어 가는 거 아닙니까?”
“뭐? 이 정도면 많이 돌려주는 거 아냐?”
‘이 인간, 진심이야!’
간부는 경악했다. 쑤닝의 눈빛이 100% 진심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쑤닝도 할 말은 있었다.
“김태현은 지 부하들 공짜로 부려먹잖아!”
“길마님은….”
‘…김태현만큼 인기가 없잖아요, 이 새끼야’라고 말하려다가 간부는 참았다.
간부 자리는 소중했으니까!
“길마님은?”
“…김태현만큼 사악하신 분이 아니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