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47화
거인족 전사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멍청하게 쳐다보았다.
-사제는 혹시 스스로의 몸을 잘라서 요리하는 건가?
“세상에 그런 요리를 하는 놈이 어디 있어!”
-아니었구나! 그럼 빨리 요리를 해줘라.
‘혹시 이놈들은 요리사를 사제라고 하나?’
태현은 문득 의심을 품었다.
진짜 요리사를 사제라고 하는 거 아냐?
그러면 아까 뜬 메시지창도 설명이 갔다.
태현만큼 거인족들이 좋아하는 요리를 할 수 있는 요리사도 드물었으니까!
“후. 좋아. 내가 뭔가 보여주지!”
태현은 예전에 만났던 거인족 NPC들을 떠올렸다.
다들 달랐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괴식 요리를 매우 좋아한다는 것!
“저, 저거…!”
“말려야 하는 거 아니냐?”
케인과 최상윤은 두려워서 떨었다.
태현이 팔을 걷어붙이면서 의욕적으로 요리를 하겠다고 나서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사실 태현이 현실에서 요리를 못하진 않았다.
오히려 잘하는 편이었다.
숙소에서 재료 사다 놓고 요리해 팀원들을 먹이는 게 바로 태현!
밖에 알려진다면 ‘충격! 사장이 밥 해주는 게임단이 있다?!’라고 화제가 될 정도!
그러나 게임에서만 요리를 하면 태현은 달라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괴식 요리’ 스킬을 얻고 나서 사람이 달라졌다.
원래는 정상적이고 멀쩡한 요리를 하던 사람이 미쳐 버리기 시작한 것!
-효과가 짱이지! 맛? 그런 게 뭐가 중요해! 밖에서 먹어! 게임은 효과야!
괴식 요리의 압도적인 효율에 반해버린 태현은 주야장천 괴식 요리를 해서 일행에게 먹였다.
혀에는 더럽게 쓰지만 몸에는 좋은 괴식 요리!
덕분에 일행들은 거절할 수도 없었다. 확실히 효과 하나는 대단했던 것이다.
그런 태현이 척척 재료를 꺼내면서 의욕적으로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 하고 나서자, 일행들은 벌벌 떨었다.
저거… 설마 우리도 먹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츄르릅. 맛있겠다.
-사제, 군침 돈다.
그러나 거인들은 꺼내놓은 흉흉한 음식 재료들을 보며 군침을 흘렸다.
“저… 저기 철광석은 왜 넣냐?”
“요리에 묵직한 맛을 더해주거든.”
“…….”
-과연!
-사제 대단하다! 많은 것을 안다!
일행들은 침묵했고 거인들은 감탄했다.
사제라고 생각해서 데려왔지만, 거인들이 태현을 완전히 인정한 건 아니었다.
제대로 된 능력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널 사제라고 완전히 인정할 수 없다!
<사막의 꽃 거인 부족들의 인정–허기진 거인들의 사제 전직 퀘스트>
거인 종족은 신을 잊은 종족들 중 하나다. 다른 종족들은 대륙에서 신들이 사라질 때 그들을 기록하고 기억했지만, 거인 종족은 자신들의 신을 잊어버렸다.
자기들의 신을 잊어버린 거인들은 나름대로 신 비슷한 걸 믿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요리사!
요리를 할 줄 모르는 거인들에게 가끔 나오는 거인 요리사는 신의 선택을 받은 존재로 보인다.
원래 다른 종족은 거인의 요리를 할 줄 모르지만, 가끔 거인의 요리를 할 줄 아는 선택 받은 요리사가 나오곤 한다.
거인들의 시험을 통과해 그들의 인정을 받아라!
보상: ?, ???, ????, <허기진 거인들의 사제>로 전직.
[<허기진 거인들의 사제>로 전직할 수 없습니다.]
[……]
‘뭐. 이 정도는 예상했지.’
전직 안 되는 게 한두 번이냐!
태현은 담담하게 요리에 집중했다. 전직은 안 되어도 상관이 없었다.
중요한 건 거인들과 친해지는 것!
그것 하나면 이 요리를 할 가치가 충분했다.
‘기다리고 있어라. 거인들아. 내가 뭔가 보여주마!’
태현은 질 좋은 철광석을 넣고, 매콤한 맛을 내기 위해 어디선가 구했던 악마들의 피를 뿌렸다.
그러자 가마솥 안에서 끓던 수프가 걸쭉해지며 탁탁 불꽃을 튀기기 시작했다.
“괜찮군!”
“…….”
살라비안 교단 괴수들의 살코기도 좋은 재료였다. 괴수들의 살코기는 언제나 괴식 요리에 잘 어울렸다.
돼지고기나 닭고기가 전 세계 모든 요리에서 쓰이듯이, 괴수고기는 모든 괴식 요리에 잘 쓰인다!
풍덩, 풍덩!
“흠. 균형이 좀 부족한가?”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해 보니 너무 고기만 넣은 것 같았다.
“야채도 좀 넣어야겠군.”
일행들은 안도했다.
그래도 좀 멀쩡한 게 들어가는….
“어. 야채가 없네.”
“제가 빌려드릴까요?”
“아냐. 괜찮아. 찾았어.”
“???”
태현은 땅바닥에서 모래를 대충 한 국자 펐다.
“야채 역할을 해주겠지.”
“???”
촤아악!
자기가 먹을 거 아니라고 대충 넣는 태현!
“다 됐다! 와서 한번 먹어봐라!”
-우어어! 사제 대단하다!
거인들은 신이 나서 줄을 섰다. 태현이 크게 한 국자를 퍼줄 때마다 거인들은 신이 나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맛있다…!
-역시 사제가 맞다! 신이 보내준 사제다!
-신이… 근데 우리 신이 누구였지?
-기억 안 난다. 기억 안 난다.
“혹시 아키서스 아니니?”
-그건 아니다. 그건 아니다.
단호한 거인들!
태현은 혀를 찼다. 은근슬쩍 넣으려고 했는데….
[카르바노그가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맞는 말이야.’
태현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말을 걸었다.
“나는 아키서스가 보낸 화신이다!”
-아키서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신인 것 같다.
-우리는 언제나 배고프다. 배부르게 만들어주면 좋은 신이다!
-배부르게 만들어주는 아키서스!
-배부르게 만들어주는 아키서스!
“…그런 호칭은 없지만 뭐 어쨌든 아키서스가 그렇게 좋다는 거지. 믿어라!”
생각해 보니 이렇게 전도하기 쉬운 종족도 없었다.
다른 종족 NPC들은 각자 믿고 있는 신들이 기본적으로 있어서, ‘아키서스 믿으세요!’ 하면 ‘아 안 사요, 저리 가요’란 반응이 돌아오기 마련.
그러나 거인들은 ‘우리가 누구 믿고 있었지? 에이, 모르겠다. 대충 믿자’ 하는 놈들이라 전도가 쉬웠다.
-신이 보낸 사제가 말한다면 믿겠다.
-저렇게 말하니까 아키서스를 믿었던 것 같기도 하다.
거인들은 눈을 끔뻑거리며 태현의 말에 넘어가려 했다.
그러나 모든 거인들이 멍청한 건 아니었다.
-아직 안 된다!
늙은 거인 중 하나가 꼬장꼬장한 목소리로 바닥을 발로 굴렀다. 쿵하는 굉음이 났다.
-장로다. 장로다.
-언제나 화나 있는 장로다!
[거인족 장로 전사, 네덴멘이 당신의 요리에 불만을 표합니다!]
-이 요리는 훌륭하지만 한 가지가 부족하다!
-…?
-장로. 이 요리가 뭐가 부족한가?
-늙어지면 욕심만 많아진다.
-슬슬 장로를 내다 버려야 한다! 버려야 한다!
순식간에 쏟아지는 젊은 거인족 전사들의 야유!
그러나 거인족 장로는 저런 야유에 흔들리지 않았다.
-이 요리에는 매운맛이 부족하다. 진정 신이 보낸 사제라면 이것보다 더 대단한 요리를 만들어야 한다!
-장로. 장로. 침 흘리고 있다.
-더 먹고 싶어서 저러는 거 아닌가?
-헉. 장로 똑똑하다. 저렇게 트집 잡으면 사제 요리 한 그릇 더 먹을 수 있다.
거인족들은 감탄했다.
과연 장로는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
-그렇지만 사제가 화나서 떠나버리면 우리는 굶는다.
-한 번은 괜찮다! 한 번은 괜찮다!
거인족들은 알아서 괜찮을 거라고 떠들어댔다.
물론 옆에 있는 태현에게 다 들리도록!
태현은 어이가 없었지만 참았다. 일단은 참고 달래야 할 상황이었으니까.
“좋다! 내가 매운맛을 보여주마!”
-오오! 츄르릅!
-꿀꺽!
거인족들이 침을 흘리고 삼키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그나저나 매운맛을 뭘로 낸다?’
괴식 요리는 워낙 맛이 괴팍한 요리라, 일반적인 향신료로는 매운맛을 낼 수 없었다.
태현이 일반적인 향신료를 갖고 다니는 사람도 아니었고….
“이다비. 혹시 뭐 갖고 있는 거 없니?”
“매운맛을 내는 재료들이라면 가지고 있는데, 이걸로 도움이 될까요?”
“아냐. 더 강력한 게 필요해.”
-카르르릉!
둘이 토왕이의 입에 손을 넣고 휘젓자 토왕이가 비명을 질러댔다.
“앗. 이건…!”
태현은 아이템 하나를 발견하고 경악했다.
해골 광산의 용암:
광산의 깊은 곳에서 끓는 용암을 용케 퍼서 담았습니다! 닿는 순간 화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이걸 챙겨놨었구나!”
“어딘가에 쓸지도 몰라서요!”
모범적인 상인!
태현은 감사히 용암을 챙겼다. 이거라면 매운맛을 낼 수 있다!
“후. 거인들. 정말 매운맛을 원하느냐!”
“저, 저거 말려야 하지 않냐?”
“야! 그건 좀 아니야!”
둘의 대화를 멍하니 듣고 있던 남은 일행들은 기겁해서 말리려고 나섰다.
아무리 괴식 요리라지만, 독을 넣으면 그건 요리가 아니라 독이 됐다.
용암도 비슷했다.
요리에 용암을 넣으면 그게 용암이지 요리냐!
그러나 태현은 말릴 틈도 없이 용암을 대뜸 부어버렸다.
화아악!
[<지옥에서 끓어오르는 용암>이 완성되었습니다!]
[괴식 요리 스킬이 오릅니다!]
[요리 스킬이…]
[……]
[……]
[<악마 요리>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리의 각 맛이 더욱더 강렬해집니다!]
[사디크의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용암의 효과가 더욱더 강해집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무섭다!
일행들은 완성된 요리를 보고 침을 삼켰다.
저건 그냥….
용암 아냐?
색도 용암이고 향기도 용암이고 끓는 것도 용암이고….
심지어 이름에서 <수프>도 사라졌어!
“저, 저거 가마솥 녹고 있는 거 아냐?”
-가마솥이 녹는다! 가마솥이 녹는다!
거인들도 눈치챈 것 같았다. 일행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리 그래도 가마솥을 녹이는 요리를 참아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녹기 전에 먹어야 한다!
-맞다! 내가 먼저다!
-아니다! 내가 먼저다!
퍽! 퍼퍼퍽!
거인들은 서로 두들겨 패며 줄 앞에 서려고 애썼다.
-우어어어어! 먹는다! 먹는다!
꿀꺽!
가장 앞에 선 거인족 전사가 가마솥을 들고 들이켰다.
그리고 잠시 후.
-으어어어어어어어! 화끈하다! 너무 화끈하다!
입에서 진짜 화염을 내뿜는 거인족 전사!
계속 화염을 내뿜더니….
쿵!
[<괴식 요리>로 거인족 전사를 쓰러뜨렸습니다!]
[괴식 요리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요리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칭호: 먹다 죽어도 모르는 요리사를 얻었습니다!]
[서버에서 처음으로 칭호를…]
[……]
“…….”
“쓰, 쓰러졌어!”
태현 일행은 경악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괴식 요리로 사람을 하나 보내는구나!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태현 일행은 재빨리 무기를 잡았다. 이제 분노한 거인족 전사들이 덤벼들….
-애송이! 애송이다!
-저 요리는 진짜 전사만 먹을 수 있는 요리다! 저리 꺼져라!
쾅!
거인족 전사들은 쓰러진 전사를 발로 차서 치웠다.
-이건 신이 보내준 사제가 낸 시련이다!
-맞다! 이 요리를 먹을 자신이 없는 자는 저리 꺼져라!
거인족들은 서로 다투며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신이 없어진 거인족 전사들은 울먹이며 어깨를 늘어뜨리고 물러섰다.
-으흑흑. 나는 자신이 없다.
-나는 쓰레기다. 나는 쓰레기다.
케인은 그걸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왜 이렇게 동정심이 갈까?
남은 건 몇 안 되는 거인족 전사들!
-내가 사제의 시련을 통과한다! 으어어어어! 너무 맵다! 너무 뜨겁다! 목구멍을 지진다!!
콰당탕! 콰당탕탕!
[<괴식 요리>로 거인족 전사를 쓰러뜨렸습니다!]
[괴식 요리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요리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잠깐만. 나 요리 스킬이 몇이지?’
고급 요리 스킬 레벨이 무려 6!
여기서만 1을 올린 셈이었다.
거인족들을 상대하면서 요리 스킬 레벨이 이렇게 오를 줄이야. 태현은 생각지도 못한 횡재에 감탄했다.
이 요리로 거인족 전사들을 더 쓰러뜨리겠다!
쿵!
쿵!
두 거인족 전사가 더 쓰러졌다. 그러자 장로가 나섰다.
-장로! 늙었는데 무리하지 마라!
-맞다! 집에서 손자 볼 나이다!
-시끄럽다 이놈들!
네덴멘은 가마솥을 들더니 쭉 들이켰다.
-끄아아아아!
-장로, 장로의 몸이 타오른다!
활활 타오르는 네덴멘의 몸!
그러나 네덴멘은 버텼다.
-장, 장로가 시련을 통과했다!
네덴멘은 비틀거리며 외쳤다.
-신이… 신이 나를 부른다! 나는 신의 모습을 보았다!
“!”
태현은 기대했다. 아키서스 전도한 효과가 벌써…!
-사디크… 사디크! 잊고 있었던 이름은 바로 사디크였다!
-오오! 사디크! 사디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