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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846화 (846/1,826)

§ 나는 될놈이다 846화

알렉세오스 입장에서는 상상도 못 할 황당한 일이었다.

대륙을 구한 영웅 놈이 설마 버프 뺏기기 싫어서 찾아오는 걸 피할 줄이야!

“알렉세오스가 사자를 보내지 않을까요?”

“피하면 되지. 알렉세오스가 보낸 것 같은 놈 보이면 무조건 피하자.”

죽은 용 알렉세오스는 부릴 수 있는 부하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죽은 상태다 보니 부하도 일단 언데드일 가능성이 컸으니, 찾아오면 알아보기 쉬웠다.

“…….”

“…….”

상상을 뛰어넘은 쪼잔함!

케인은 경악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너무 쪼잔한 거 아냐?”

“쪼잔하기는 무슨. 땅 파봐라. 버프 하나 나오냐? 네가 그러니까 버프가 없는 거야!”

괜히 한마디 했다가 구박만 듣는 케인!

* * *

-아키서스의 화신이 오는군.

알렉세오스는 자신의 거처에서 중얼거렸다.

알렉세오스의 축복과 권능을 받은 상태다 보니, 가까이 오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학카리아스를 쓰러뜨렸다니 대단하군….

인간으로서 학카리아스를 쓰러뜨리다니!

아무리 영웅이라지만 하기 힘든 업적이었다.

과연 아키서스의 화신….

‘안 엮이는 게 좋지 않았을까?’

알렉세오스는 문득 자기가 함정에 빠진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원래 아키서스의 화신과 엮이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살았는데, 눈치채고 보니 엮여 있는 것이다.

‘아… 아니. 나는 골드 드래곤 같은 놈들과 다르다. 아키서스의 화신에게 속지 않고 잘 다룰 수 있다.’

드래곤은 기본적으로 오만한 종족!

남들이 ‘아키서스의 화신한테 당했어! 놀지 마!’라고 해도 ‘그래? 하지만 난 드래곤인데?’라고 받아들였다.

자기를 속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걸 납득하지 못하는 오만함!

그 오만함 때문에 드래곤들이 아키서스에게 탈탈 털렸다는 걸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래. 어서 오거… 아니. 어디 가는 거냐!

알렉세오스는 당황했다.

점점 멀어지는 기운!

그가 있는 쪽이 아닌 다른 쪽으로 가고 있었다.

* * *

[사막의 열기가 더욱더 강해집니다!]

[지구력이 빠르게 소모됩니다.]

[이동 속도가…]

[금속제 장비를 착용하고 있을 경우…]

“으아아!”

“더워…!”

아스비안 제국의 영토 대부분은 모래사막이었다.

태현 일행이 전에 돌아다녔던 곳들은 도시나 부족들이 머무는, 길이 잘 나 있는 곳들.

강이 있거나 오아시스가 있는 사막에서도 비교적 살기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그런 곳을 떠나 길 없는 사막으로 깊숙이 들어오자 페널티가 닥쳐오기 시작했다.

“일단 장비 벗는다?”

“나도 일단 벗고 있어야겠어.”

케인이나 최상윤처럼 금속 장비를 차고 있는 플레이어는 더더욱 힘들어했다.

유지수나 정수혁 같은 경우는 가벼운 장비들이라 괜찮았지만….

[사디크의 화염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막의 열기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사디크…!’

태현은 감동했다.

사디크 이 녀석! 이런 부분에서는 참 쓸모가 있구나!

[카르바노그가 사디크가 들으면 감동할 거라고 말합니다.]

‘하긴. 이렇게 잘 써주는데 감동하겠지?’

사디크가 들으면 뒷목 잡을 이야기!

“흠. 지도를 보면….”

이번 아키서스 권능은 사실 정말 쉬운 편이었다.

알렉세오스와 드라켄 비밀결사가 지도 정보까지 제공한 것이다.

마음만 먹었으면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도 하지 않았던 건 그 외의 일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

오스턴 왕국 가서 약탈하랴, 아다만티움 골렘 달래랴, 흡혈귀 섬 가서 봉신 만드랴….

‘점점 아키서스의 화신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은데.’

원래 신의 화신은 독실하게 신을 믿으면서 교단을 퍼뜨리는, 평화로운 플레이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도 확인.

[<끝없는 열기의 사막>에 알려져 있는 던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오는 몬스터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현재 공포가 매우 높습니다. 도적 계열 NPC들이 습격하지 않습니다.]

[현재 악명이 매우 높습니다. 도적 계열 몬스터들을 섭외할 수 있습니다.]

‘이건 넘기고.’

쓸데없는 메시지는 무시하고, 태현은 중요한 것만 확인했다.

위협적인 몬스터와 아키서스의 권능이 있는 유적의 위치!

[아키서스의 권능은 <모래의 심장> 던전에 있습니다.]

[<모래의 심장> 근처를 지키고 있는 건 <사막의 꽃> 부족입니다.]

“사막의 꽃?”

“오. 평화로워 보여.”

“혹시 엘프인가?”

태현 일행은 <사막의 꽃>이란 이름에 기뻐했다.

원래 이름이란 건 상대가 어떤 건지 대충 알게 해줬다.

<폭풍의 인도자> 같은 이름이면 무시무시할 것 같았고, <케인> 같은 이름이면 왠지 호구 같았고….

<사막의 꽃>이면 왠지 되게 평화로울 것 같다!

-덥다. 덥다.

“…??”

이 두 번 반복하는 익숙한 말투는…?

태현 일행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저 멀리서 거인족 전사 하나가 헥헥대며 걸어오고 있었다.

“여기 거인족도 나오나 보네요.”

“거인족은 원래 황량한 곳이면 다 나오니까.”

“음. 그래도 <모래의 심장> 근처에는 없었으면 좋겠네!”

일행은 그렇게 말했다.

-주인이여.

“왜 그러니. 용용아.”

-…저 거인, 머리에 꽃을 매달고 있는데….

“…아니. 꽃을 좋아할 수도 있지. 아니면 약간 맛이 갔던가.”

-…사막의 꽃 부족이 거인 부족 아닌가? 애초에 거인족 전사가 있다는 건 거인 부족이 있다는 거고… 다른 종족은 거인 부족이 있으면 접근을 안 할 텐데….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태현은 강하게 부정했다.

5일 안에 끝장을 봐야 하는데 거인족이 있다면 매우 귀찮아졌다.

일단 종족 전투력부터 판온에서 손꼽히는 수준!

-꽃에 물 준다. 꽃에 물 준다.

“…….”

“…….”

콰직!

거인족 전사는 사람만 한 거대한 몽둥이를 휘두르더니 지나가던 몬스터를 하나 짓뭉갰다.

그리고 피를 쫙 짜내더니 머리에 단 꽃에 물을 줬다.

“…젠장.”

태현은 직감했다. 모래의 심장 근처를 지키고 있는 건 저놈들이 확실했다.

어쩐지 쉽게 간다 했지!

“애들아. 장비 입어라.”

태현은 말과 함께 거인에게 접근했다.

‘아… 5일 안에 해결 봐야 하는데….’

태현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5일이 지났을 경우 페널티가 해결이 될까?

설마 황제가 항구에 있는 배에 가서 난리 치지는 않겠지?

황제가 워낙 성격 개 같은 NPC라 조금의 실수도 걱정이 됐다.

‘거인족과 싸우게 되면, 거인족 전사들 동네에서 싸우면서 유적지까지 5일 안에 뚫어야 한다.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판온의 던전은 들어가 보기 전까지는 얼마나 어려울지 알 수 없었다.

그걸 알기에 태현의 머리는 복잡했다.

‘일단 최대한 평화롭게 설득해 보자. 얼마나 통할지는 모르지만….’

최선의 방법은 싸우지 않는 것!

태현에게는 막강한 화술 스킬이 있었다.

문제는….

거인족이 화술 잘 안 통하기로는 손에 꼽히는 종족!

멍청한 놈들이 많다 보니 화술을 걸어도 ‘난 잘 모르겠다!’ 하거나 ‘우어어! 쪼그만 놈이다! 쪼그만 놈 말 안 듣는다! 죽어!’ 하면서 무기부터 휘두르는 놈들이 수두룩한 것이다.

저번에 자이언 산맥에서 외눈 거인 부족들을 데리고 온 건 정말 운이 좋았던 경우!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디크 성기사단장이 거인들과 친해지기 위해 했던 노력을, 태현이 사칭해서 날름 잡아먹은 것이었다.

[카르바노그가 어쩔 수 없었다고 위로해 줍니다.]

‘하긴. 어쩔 수 없었지? 그치?’

하지만 이번에도 그런 행운을 기대할 수는 없으리라.

살라비안 교단이나 사디크 교단이나 카르바노그 교단이나 시이바 교단이나 아키서스 교단에서 나온 놈들이 미리 거인들과 친해졌을 리는….

‘어라. 이렇게 나열하니까 의외로 확률이 높아 보이는데?’

“장비 다 입었지? 상대가 공격하면 바로 반격한다.”

태현은 일행에게 지시를 내렸다.

거인족 전사가 무기를 휘두르면 바로 반격에 들어가야 했다.

“자… 간다! 어이!”

태현은 꽃에 피, 아니 물을 주고 있는 거인족 전사를 불렀다. 거인족 전사는 멍청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으어?

“대화하자!”

쉭!

‘빠르다!’

케인, 최상윤은 당황했다.

상대 거인족 전사가 생각보다 레벨이 높은 게 분명했다. 팔을 휘두르는 속도가 장난 아니었다.

‘막아야…!’

‘아냐! 태현이를 노리고 있어!’

‘어? 그러면 괜찮지 않나?’

‘어라? 그러게?’

탁!

거인은 태현을 붙잡고 양손으로 들어 올렸다. 태현은 어이가 없어서 뒤의 둘을 보며 물었다.

“…너희 왜 안 움직이냐?”

“미, 미안.”

“널 노리길래 네가 알아서 잘할 줄 알았어.”

무한 신뢰!

태현이 그냥 가만히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상대 거인이 딱히 공격하려는 것 같지 않았던 것이다.

근데 그건 그거고, 뒤에 있던 둘이 가만히 있던 건….

‘이 자식들이 진짜….’

저런 신뢰 필요 없어!

-사제다! 너 사제다!

“…?”

-…?

[…?]

태현, 용용이, 카르바노그 모두 의아한 말?

사제?

‘화신인데? 사제는… 사제인가?’

“혹시 아키서스를 믿나?”

-아키서스? 먹는 건가?

“음… 아무것도 아니야.”

괜히 민망해지는 질문을 했다 싶었다.

-넌 사제다! 확실하다!

“…그래! 난 사제다!”

태현은 일단 OK하고 봤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거인족하고 싸우지 않고 지나갈 수 있다면 대충 사제인 척하지 뭐!

[괴식 요리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성 요리 스킬을…]

[몬스터들의 마음을 아는 요리사 스킬을…]

[……]

[<사막의 꽃> 거인 부족이 당신을 신이 보낸 사제로 여깁니다!]

“…????”

태현은 당황했다.

사제잖아?

그런데 왜 신성 스탯이 아니라 요리 스킬 관련 메시지창이 뜨지?

-우어어! 사제다! 신난다!

“그, 그래. 알겠으니까 마을로 안내 좀 해줄래?”

-사제 안내한다! 내 위에 타도 된다!

“꽃이 위험하지 않나?”

-그 꽃 먹으려고 키우는 거다. 별미다.

“…그, 그래.”

* * *

[<사막의 꽃> 거인 부족의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경험치가…]

[이 사실을 알려줄 경우 탐험가 NPC들이 매우 놀라워 할 것입니다!]

[<사막의 꽃> 거인 부족은 흉폭하고 난폭한 전사들로, 외부인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오싹-

태현은 정말 운이 좋았다는 걸 새삼 느꼈다. 사제 대우를 못 받았으면 여기 있는 거인족 전사들과 목숨 걸고 싸워야 했겠구나!

‘레벨이… 설마 평균이 300대인가?’

최상위권 랭커들이 레벨 300을 노린다고 말은 많았지만 아직 300을 찍은 플레이어들은 없었다.

레벨 300의 몬스터면 다른 일반 필드에서는 보스 몬스터 수준!

-사제가 나타났다! 사제!

“선배… 혹시 사제가 먹이를 말하는 거 아니죠?”

유지수가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예전이었다면 이런 발상을 절대 하지 못했을 유지수였지만, 이제 유지수도 어엿한 판온 플레이어였다.

태현과 같이 다니면서 훨씬 더 혹독하게 적응한 것!

“아, 아닐걸.”

[카르바노그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손뼉을 칩니다.]

태현은 부정했지만 유지수의 말이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뒤의 일행들은 벌써 수군거리고 있었다.

“진짜 태현이를 요리하려고 하는 건가?”

“요리하면 독 나오지 않을까?”

“그보다 지금 여기 싸우기 너무 안 좋지 않아? 사방에서 다굴 맞을 것 같은데….”

-사제! 사제! 데려왔다!

부글부글-

거인족 전사가 태현 일행을 데리고 온 곳은, 마을 한가운데의 넓은 공터였다.

그리고 공터 한가운데에 있는 건….

팔팔 끓는 거대한 가마솥!

“먹이 맞잖아?!”

“선배! 쏴버릴게요!”

일행들은 기겁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그러나 거인족 전사는 불쑥 국자를 내밀며 말했다.

-사제! 요리해 줘라!

“나, 나를?”

-무슨 소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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