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44화
“쓸데없이 보물은 왜 떨어뜨려?”
“죄송합니다.”
에드안은 보물을 챙겨서 다시 닦았다. 보물을 잘 챙기는 건 도둑의 기본!
“제가 한때 <어둠의 방랑자> 소속이었습니다.”
“오. 그래? 그러면 사이가 나쁘지 않겠는데?”
태현은 솔깃했다.
이거 잘하면 공짜로 도둑놈들을 부려먹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도둑놈, 도둑놈 하지만 실력 있는 도둑들은 판온에서 꼭 필요한 인재였다.
언제 어디서든 써먹을 수 있는 다용도 인재들!
그러나 에드안은 대답 대신 진땀을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너 뭐냐?”
“예, 예?”
“사이가 나쁘구나?”
“후후… 원래 도둑들끼리는 사이가 좋다가도 나쁜… 컥! 죄송합니다! 사이 나쁩니다!”
“왜 사이가 나쁜데? 혹시 그놈들 돈이라도 훔쳐서 나왔… 설마 진짜냐?!”
“…….”
에드안은 고개를 푹 숙였다. 태현은 경악했다.
아니, 이 도적놈은 같은 동료들 물건도 훔쳐?
대도적이라는 칭호가 그래서 붙은 거였나?!
“아닙니다! 폐하!”
태현의 경멸 어린 시선을 느꼈는지 에드안이 급하게 변명을 시작했다.
“그래. 근데 좀 떨어져 줄래? 구체적으로 내 보물에게서 거리를 좀 둬라.”
-카르릉!
토왕이마저 에드안을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닙니다! 폐하! 아니란 말입니다!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아. 들어주고 있잖아. 인마. 거리 좀 두고 말해.”
“흑흑….”
에드안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어둠의 방랑자>는 실력 있는 도둑들이 모인 길드지만 서로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뭐, 도적놈들이 그렇지.”
판온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다.
힐러나 탱커 전문 길드는 오래 간다.
그에 비해 딜러들 길드는 오래 못 간다!
도적 직업을 하는 플레이어들은 기본적으로 양보가 없는 성격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시비가 붙었는데, 저보고 그렇게 뛰어난 도적이면 어디 한번 대단한 걸 훔쳐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설마….”
“그놈들 걸 다 털어서 나왔….”
“…….”
“…….”
태현과 토왕이는 미묘한 눈빛으로 에드안을 쳐다보았다.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됐는데?”
“모릅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거든요.”
“잘했다. 잘해.”
잡혔다면 두 팔이 아니라 목이 날아갔을 것!
“뭐, 그동안 안 만났으니 별문제는 없겠지.”
“후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 *
[아탈리 왕가의 보물들을 회수했습니다!]
[아탈리 왕가의 창고에 보물들이 들어왔습니다.]
[왕국의 치안이…]
[왕국의 발전도가…]
[왕국의 문화력이…]
[레벨 업 하셨습니다!]
사라졌던 보물들을 다시 다 채워 넣자, 왕국의 스탯들이 크게 오르고 보상까지 들어왔다.
태현의 어마어마한 레벨 업 경험치 양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대단한 보상!
“아니, 근데 진짜 털었어?”
“대체 어떻게 턴 거야?”
케인과 최상윤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먼저 아키서스 포병대와 기사단을 데리고 떠나긴 했지만, 솔직히 될지 안 될지는 반신반의했던 것!
그래서 게시판을 보면서 ‘에랑스 왕국 은행 폭파됨!’ 같은 글들이 안 올라오나 찾아봤는데….
물론 그런 글들은 올라오지 않았다.
기껏해야 올라오는 건 ‘어떤 미친놈이 은행에서 골드 뿌렸다!’ 같은 흔한 글 정도!
태현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자, 이다비가 눈을 반짝이며 토왕이를 쳐다보았다.
저건 걸어 다니는 창고였어!
상인 직업에게 가장 중요한 아이템은 무엇일까?
정답은 바로 가방이었다.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 가방을 갖고 있느냐가 상인 플레이어의 능력!
그런데 설명을 들어보니 토왕이는거의 사기적인 가방이었다.
어마어마한 양을 삼키고 다니면서, 동시에 무게 제한도 걸리지 않다니.
상인들이 꿈꿔오던 전설의 가방 그 자체 아닌가!
-카르릉!
토왕이는 겁먹은 눈빛으로 태현의 뒤로 피했다. 이다비의 눈빛이 뭔가 무서웠던 것이다.
“어, 어째서?!”
“쟤가 뭘 했다고 그래? 쟤 안 무서운 애야.”
-카르릉! 카릉!
태현은 토왕이를 잡아 이다비에게 건네주려고 했지만, 토왕이는 발버둥을 쳤다.
나 쟤 싫어!
[이다비가 무섭다고 카르바노그가 전해줍니다.]
“아냐. 친해져 봐.”
-카르르르르릉!
토왕이가 발버둥을 쳤지만 레벨 1의 힘으로는 뭘 할 수 없었다. 토왕이는 얌전히 잡혀서 이다비한테 안겼다.
-카르릉….
토왕이는 겁에 질려서 눈만 동그랗게 떴다.
‘어차피 정면에서 싸울 것도 아니고, 상태 이상 막아주는 효과가 있으니 이다비가 갖고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다른 토끼들은 아키서스 포병대에 배치되어 있었지만, 토왕이는 이다비가 데리고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일행 중 가장 전투력이 낮았으니까!
거기에 어마어마한 창고 능력까지 있었으니….
“자. 이것도 좀 넣고, 이것도 좀 넣고… 아. 이것도 좀 넣어주라.”
-카르륵!
토왕이는 발버둥을 쳤지만 이다비는 가차 없이 갖고 있던 잡템들을 토왕이한테 채워 넣었다.
대충 정리가 되자, 케인이 다가와서 물었다.
“우리 이제 다음은 어디로 갈 거야?”
“아스비안 제국 가서 권능 퀘스트 마무리할 거야.”
황제와 용을 만나서 공짜 보상도 좀 받고, 아키서스 권능도 찾아올 생각이었다.
[드디어 찾는다고 카르바노그가 안심합니다. 잊어버린 줄 알았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하하. 내 직업 스킬인데 잊었을 리가 있겠어?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지.’
[입에 침이나 바르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자! 그러면 아스비안 제국으로 출발….”
“폐하! 큰일 났습니다!”
펠마스가 문을 박차고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
“왕국 국경 근처에 정체불명의 도적 집단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영주들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아탈리 왕국 내에 습격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습격을 막지 않으면 아탈리 왕국 내 귀족들의 불만이 올라갑니다.]
[습격을 막지 않으면 아탈리 왕국 내 귀족들의 영지의 상태가 내려갑니다.]
“흠. 그렇군.”
“혹시 새로 데리고 온 기사단은 저걸 위해서…?”
펠마스가 감탄 섞인 눈빛을 보냈다.
태현이 어디서 기사단을 또 데리고 왔길래 ‘정말 남의 병력 혓바닥으로 훔쳐오는 솜씨 하나만큼은 대륙 제일이다!’ 하고 감탄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 이걸 위해서였나!
“응? 아닌데. 쟤네들은 그냥 따라온 거야.”
“아… 그, 그렇군요.”
“어쨌든 출발하자!”
“어느 영지부터 가실 겁니까?”
“아스비안 제국으로!”
“…??!!”
펠마스는 귀를 의심했다.
아니, 지금 영주들이 습격을 당하고 있다니까?!
* * *
“들어라! 우리가 김태현한테 당한 게 얼마나 많았나. 그걸 생각하면 김태현을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다!”
“와아아아아!”
쑤닝이 내놓은 방법은 오랜만에 길드원들을 만족시켰다.
맨날 오스턴 왕국에 틀어박혀서 버티고 버티기만 했는데 이제는 반격을 할 차례가 온 것이다!
서부가 떨어져 나가고 길드원들이 대거 이탈한 길드 동맹 안이었지만 오랜만에 활기가 돌았다.
악명 스탯이 올라가고 각종 페널티를 받는 일이었지만 수많은 자원자들이 나왔다.
“그런데 김태현을 상대하는 일이잖아. 괜찮을까?”
“그러게….”
물론 이런 걱정들도 당연히 나왔다. 쑤닝은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김태현은 혼자다. 우리는 파티별로 흩어져서 약탈할 거다. 이렇게 하면 아무리 김태현이라도 다 막을 수는 없다.”
“오…!”
“그럴듯해!”
“쑤닝답지 않게!”
“어떤 새끼야?!”
“…….”
다들 조용해졌다.
사실 쑤닝이 말한 전략은, 태현이 오스턴 왕국을 털어먹을 때 산적들한테 퍼뜨린 전략이었다.
상대방의 랭커들과 맞부딪히지 말고 철저하게 흩어져서 싸우기!
그걸 그대로 배운 쑤닝이었다.
“근데 저거 김태현이 우리 상대로 썼던 전략 아냐?”
“그러게. 우리가 당한 걸 그대로 쓰다니 길마도 자존심이… 읍읍! 당신들 누구야!”
몇몇 불만종자들은 밖으로 끌려 나갔다.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쑤닝은 헛기침을 했다.
약간 민망하기는 했어도 이 전략은 정말 좋은 전략이었다.
길드의 체면을 세우고, 길드의 수입을 벌어오고, 김태현도 엿 먹이고….
쑤닝은 길드원들을 좀 더 분발하게 만들기 위해 입을 열었다.
“설사 김태현이 나온다 하더라도 걱정하지 마라! 우리 랭커들이 있으니까!”
“에이….”
“랭커들이 김태현을 퍽이나 이기겠다.”
“김태현 상대로 진짜 싸운다고? 안 싸울 것 같은데.”
“?!”
역효과로 사기가 내려가다니!
그만큼 랭커들에 대한 불신이 높았던 것이다.
지들밖에 모르는 놈!
쑤닝은 급히 말을 바꿨다.
“랭커들이 김태현 상대로 시간을 끌어줄 거다!”
“흠… 그 정도라면….”
“그 정도는 해줄 거 같기도 하고?”
“…….”
어떻게 된 게 기대를 낮춰야 믿는 거지?
쑤닝은 새삼 길드의 문제점을 깨달았다.
랭커와 일반 길드원들 사이에 차이가 너무 크다!
서로 간의 신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상황!
‘상관없다. 이번 습격은 서로 안 믿어도 되니까!’
서로 안 믿어도 된다!
서로의 욕심이 일을 진행시켜 줄 것이다!
<아탈리 왕국을 약탈하라!-오스턴 왕국 퀘스트>
믿기 힘들지만, 가끔은 한 나라의 왕도 산적들을 부릴 때가 있는 법입니다!
오스턴 왕국 국왕은 모험가들을 불러 모아 아탈리 왕국을 약탈할 것을 명령했습니다.
아탈리 왕국은 강하지만 귀족들끼리 분열되어 있는 나라. 약탈하기 만만한 상대입니다!
최대한 많이 약탈하십시오. 그럴수록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보상: ?, ???
[악명이 크게 오릅니다!]
[대륙에 있는 다른 나라의 귀족들이 당신의 선택을 경멸합니다!]
[……]
[……]
각종 페널티 메시지창이 떴지만 쑤닝은 무시했다.
이 정도는 이미 각오한 바!
지금 중요한 건 길드를 뭉치게 만들고 골드를 벌어오는 것이었다.
-길드 동맹이 길드원들 뽑아서 약탈 돌린다던데?
-와. 진짜 갈 데까지 가는구나.
-잘난 척할 때는 언제고 진짜….
나름 길드원들 중에서 뽑아서 준비했지만, 이런 대규모 습격 소문은 새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은 비웃었지만 몇몇 플레이어들은 솔깃해서 끼어들었다.
그렇게 결성된 대규모 약탈 파티!
그들은 나뉘어서 아탈리 왕국 국경으로 들어갔다.
* * *
“저기. 김태현.”
“?”
“혹시… 네가 시킨 건 아니지?”
“…….”
태현은 케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케인은 민망해서 시선을 피했다.
“아, 아니. 의심하는 게 아니라….”
태현은 이미 플레이어들을 선동해서 산적질을 시키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산적들을 동원해서 자기와 반대편에 서 있는 귀족들을 털어먹는다?
너무나도 태현이 할 법한 짓!
게다가 태현은 메시지창도 무시하고 아스비안 제국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내가 한 거 아니거든?”
“그, 그렇군!”
“나도 그럴 줄 알았어!”
“맞아요! 저도 믿고 있었어요!”
태현은 일행의 반응을 보고 깨달았다.
이 자식들 전부 다 내가 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구나!
“보니까 길드 동맹 쪽에서 지시 내린 것 같던데요.”
“아…!”
“하긴! 길드 동맹이라면 하고도 남지!”
“맞아! 왜 그 생각을 먼저 못 했지?!”
“…….”
태현은 일행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 자식들….
“그런데 길드 동맹이면 위험한 거 아냐?”
“응? 아… 뭐 좀 약탈하라고 하지. 걔네도 먹고 살아야 할 거 아냐.”
느긋한 태현!
그 반응에 케인과 최상윤은 깜짝 놀랐다.
당장 가서 거꾸로 매단 다음 골드가 나올 때까지 탈탈 털 줄 알았는데!
“그나저나 진짜 상황 안 좋은가보다? 체면도 다 내려놓고 이런 전략이라니.”
태현도 자기 이름을 걸고 하진 않았는데, 쑤닝은 아예 자기 이름을 걸고 도적질을 하고 있었다.
‘국왕 작위 들고서 저런 짓 하면 페널티가 꽤 심할 텐데?’
“이탈 때문에 길드 안이 많이 흔들리나 봐요. 게다가 골드 부족이 심각하다고….”
태현과 이다비는 길드 동맹 내부 상황을 꽤 정확히 알고 있었다.
동맹에 가입한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첩자로 왔다가 반대로 첩자가 된 길드 동맹 길드원들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