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43화
많은 사람들이 태현을 오해하곤 했다. 특히 판온 1 때에는 더더욱.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또라이!
-수틀리면 터뜨리고 함정 까는 미친놈!
-사람의 마음이 없는 놈!
그러나 태현은 여기에 대해서는 억울했다.
앞뒤 안 가리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태현은 언제나 치밀하게 계산하고 행동했다.
던전에 온갖 함정을 깔고 자폭하듯이 싸워도 그건 다 계산을 하고 한 것!
앞뒤 안 가리는 놈은 가브리엘 같은 놈이었지, 태현은 아니었다.
그런 면에서 왕국 수도 한복판에 있는 에랑스 왕국 은행은 원래라면 절대 건드리면 안 될 곳!
‘1분 내에 기사들부터 시작해서 마탑 마법사들까지 오겠지.’
걸리면?
그 페널티가 상상하기도 싫었다.
태현이 잃을 게 없는 일개 플레이어면 그냥 현상금 붙고, 가는 마을마다 ‘아니! 범죄자 김태현이다!’ 하고 쫓아내는 정도겠지만….
국왕인 지금에는 나라 대 나라 문제로 이어질 수 있었다.
원래라면 절대 해서는 안 될 짓이었지만….
‘승산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대도적(자칭) 에드안.
그리고 살라비안 교단 대주교를 흉내 낼 수 있는 태현.
-카르릉!
거기에 토왕이까지… 응?
“응?”
태현은 토왕이의 울음소리에 당황했다. 넌 왜?
[자기가 활약할 때가 왔다고 카르바노그가 전해줍니다.]
“…아니….”
에랑스 왕국 은행 금고는 레벨 1짜리 토끼가 들어갈 곳이 아니었다.
함정 하나만 밟아도 죽겠다!
“네가 죽으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은데….”
-카르릉!
태현의 말에 감동받은 토왕이!
물론 태현은 들인 골드와 재료를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주인이여. 어째서 저 토끼한테만….
-잘 생각해라. 골드 드래곤. 저 말에 담긴 뜻을.
흑흑이가 옆에서 용용이를 정신 차리게 만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건 좋은 뜻으로 한 말이 아니야!
[그렇지만 토끼만큼 이런 일에 활약할 수 있는 생물은 드물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해줍니다.]
‘하긴 그것도 그래.’
확실히 토끼만큼 이런 일에 잘 맞는 생물도 없었다.
[원래 예전부터 쥐와 토끼가 도둑질에는 최고였다고 카르바노그가 전해줍니다.]
‘…너 토끼 신 맞지?’
태현은 일단 다시 한번 가진 것들을 점검해 보았다.
일단 <마르덴 후작의 살아 움직이는 가면>이 있었다.
태현이 게임 초반에 얻어 아직까지도 쓰고 있는, 정말 효자 같은 아이템!
그 능력에 비하면 <오래 착용 시 악명 증가> 같은 페널티는 페널티도 아니었다.
솔직히 가면으로 오르는 악명은 태현이 불태우고 폭파시키고 깽판 쳐서 오르는 악명에 비하면 새 발의 피!
그리고 살라비안 교단의 권능이 있었다. 일단 권능 흉내는 가능했다.
문제는 은행의 보안이 얼마나 철저한지였다.
‘소문에는 안에 드래곤 기르고 있다던 말도 있었지. 무슨 해X포터도 아니고….’
가장 문제는 정보가 전혀 없다는 것!
가끔가다가 잃을 거 없는 도적 플레이어들이 미친 짓을 시도해 보긴 했지만 정문에서 잡히는 게 대부분이었다.
‘안에 마법이 엄청 걸려 있을 텐데, 가면이 풀릴까? 화술로 어디까지 커버 가능하지?’
화술 스킬이 꽤 많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만 그렇다고 만능은 아니었다.
눈앞에서 가면이 풀리면 화술 스킬로도 커버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나마 안전한 방법은 태현이 앞에서 간을 보고, 에드안이 들어가서 훔쳐오는 것이겠지만….
‘진짜 토왕이가 나으려나?’
한다면 에드안보다 토왕이가 더 유리하지 않을까?
“에드안. 어떻게 생각하나?”
“아니, 잠시만요 폐하. 원래 저 혼자 들어가는 거였습니까?!”
태현의 설명을 들은 에드안은 기겁했다.
같이 들어가는 게 아니었어!?
“난 들어갈 수 있는 곳까지만 같이 가고 그 이후부터는 너한테 시키려고 했지.”
“아니 왜….”
“대도적이잖아.”
“…폐하도 저 못지않으신….”
“대도적이잖아.”
“옙.”
“어쨌든 토왕이…를 써볼까 고민인데.”
“…아주 좋은 생각 같습니다.”
“너 지금 너 들어가는 것보단 나아서 이러는 거지?”
“아, 아닙니다. 폐하.”
* * *
그러나 결국 토왕이로 정해졌다.
에드안으로만 뚫는 건 너무 위험 부담이 높았던 것!
[살라비안 교단의 대주교로 변장했습니다!]
[살라비안 교단의 권능을 갖고 있습니다.]
[화술 스킬이 매우 높습니다.]
[……]
[보너스를 받습니다!]
거의 완벽에 가까운 변장!
에드안은 옆에서 대주교의 시늉을 드는 시종으로 변장했다.
“폐하. 그런데 반지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에랑스 왕국 은행은 맡긴 걸 찾아가려면 반지가 필요했다.
고객한테 하나씩 새로 만들어 주는 반지!
위조가 불가능하고 강력한 마법이 걸려 있는 징표였다. 이 반지가 없다면 아무리 본인이 왔다고 하더라도 들여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혹시 찾으신 겁니까?!”
“그 불 속에서 어떻게 찾아? 다 탔지.”
“…….”
“일단 화술로 최대한 뻐겨 볼 생각이다. 그사이 토왕이를 들여 보내보자.”
“과연 될까요?”
“안 되면 너도 들어가야지 뭐.”
“…….”
에드안은 진지하게 두려워졌다.
제발 토왕아! 힘을 내다오!
도둑질에 자신이 있는 에드안이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철저한 계획을 등에 업고서였다.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곳에 목숨 걸고 들어가는 건 미친 짓!
[에랑스 왕국 은행 지하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강력한 고대 마법 결계를 발견했습니다! 마법 스킬이 오릅니다!]
[위대한 예술품을 발견했습니다! 명성이…]
[……]
‘와. 쏠쏠하군.’
에랑스 왕국 은행의 지하로 내려가는 길은 화려했다.
각종 예술품과 공예품으로 장식!
거기에 벌써부터 고대 마법 결계가 걸려 있었다.
에드안은 의수를 꿈틀거렸다. 마음만 같아서는 훔치고 싶다!
태현과 에드안의 안내를 맡은 은행의 직원은 고블린이었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대주교님의 모습이 한층 더 풍채가 좋아 보이십니다. 크헬헬.”
기계공학 스킬로 인한 친밀도 보정!
고블린 직원은 왠지 모르게 태현이 매우 마음에 드는 걸 느꼈다.
“자. 대주교님. 반지를 주십시오.”
“아… 잠시만 기다리게.”
태현은 옷 속을 뒤지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연기가 중요했다.
“?”
“없잖아? 잠깐. 이놈. 반지를 챙긴 거 맞느냐?”
“예? 저는 챙겼습니다!”
“그런데 멀쩡한 반지가 어디 갔단 말이냐! 에잇! 이놈!”
철썩!
“으악!”
“이 간단한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쓸모없는 뱀파이어 놈 같으니!”
“너, 너무하십니다!”
“너희랑 만나고 나서 되는 일이 없어!”
“…….”
에드안은 움찔했다.
방금 말은 진심 같았는데?
고블린은 당황해서 손을 내저었다.
“켁켁. 대주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놈이 시종 주제에 제대로 일을 못 하잖나!”
“반지가 없으시면 다음에 다시 오십시오.”
그러는 사이 토왕이는 슬쩍 빠져나와 안으로 들어갔다.
태현은 긴장했다.
과연 여기 설치된 고대 마법 결계를 뚫고 들어갈 수 있을까?
슉-
‘된다!’
결계를 무시하고 들어가 버리는 토왕이!
그 모습에 태현은 감동했다.
녀석!
너한테 먹힌 재료들이 아깝지 않구나!
* * *
“그런데 폐하.”
“?”
밖에 끌려 나온 에드안은 태현을 보며 물었다.
“그 토끼 말입니다… 얼마나 가지고 나올 수 있습니까?”
“음?”
“아니, 덩치가 작잖습니까. 게다가 몰래 갖고 나와야 할 텐데….”
“…….”
그러네?
태현은 계획의 맹점을 깨달았다.
토왕이가 갖고 나오더라도 사이즈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안 되면 몇 번 더 해보자.”
“꼬리가 길면 잡히는데….”
“…….”
둘은 의자에 앉은 채 침묵했다. 은행이라 그런지 수없이 많은 플레이어들이 왔다 갔다 했다.
그들 중 아무도 여기 초라하게 앉아 있는 사람이 태현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설마 김태현이 여기 이러고 있을까!
토도도도-
“!”
얼마나 지났을까. 태현의 귀에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토왕이가 빠져나온 것이었다.
“토왕아!”
-카르릉.
“여기 토끼 데리고 다니는 사람도 있나?”
“신기한 펫이네.”
지나가던 플레이어들이 신기해서 한 번씩 쳐다볼 정도!
태현은 걱정과 기대가 반반 섞인 시선으로 토왕이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얼마나 가져왔어?”
-카르릉… 카아악.
토왕이가 걸쭉하게 기침을 하더니….
촤르르르르르르륵!
“!!!!!”
“!!!!!!!!”
태현과 에드안은 경악했다.
토왕이가 금화와 보물들을 미친 듯이 토해내기 시작한 것!
저 막대한 양을 몸속에 집어넣은 게 놀랍기도 했지만….
여기는 지금 은행 한복판!
“야! 야! 챙겨!”
“다시 집어넣어!”
에드안은 미친 듯이 손을 놀려 보물들을 챙겼고, 토왕이는 놀라서 다시 보물들을 먹었다.
“골… 골드잖아?!”
“누가 골드 뿌렸어!”
와아아아!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오가던 은행이었다.
바닥에 골드가 뿌려진 걸 본 플레이어들은 눈이 돌아가서 달려들었다.
“주워야 해!”
“이 자식! 내가 먼저야! 비켜!”
퍼퍼퍽!
졸지에 싸움까지!
[골드를 뿌려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화술이 오릅니다!]
[혼란 관련 스킬에 보너스를…]
“…튀자!”
금화 몇 개 잃긴 했지만 그건 손해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다 챙겼으니까!
은행 쪽에서 수상하게 여겨도 이미 일은 다 끝낸 상황!
안 잡히면 그만이다!
“토왕이 만세!”
“앞으로 저한테도 빌려주십시오, 폐하! 후후후!”
“미쳤냐!”
두 사람과 토끼 하나는 신이 나서 에랑스 왕국 대로를 질주했다.
플레이어들은 그들을 보며 머리에 대고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미친 사람들인가 봐!
* * *
“사람이란 게 욕심이 끝이 없어. 이렇게 갖고 나오니까, 또 다른 것도 갖고 나와도 되지 않았을까 싶네.”
“후후. 폐하. 그 마음이 바로 도적의 마음입니다.”
“시꺼.”
“넵.”
“뭐… 과욕은 금물이지.”
태현은 욕심을 과하게 부리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대주교가 맡긴 보물들을 훔쳐온 건, 원래 이 보물들이 아탈리 왕국의 보물이었고 대주교가 죽었기 때문이었다.
즉 훔쳐가도 이 보물을 찾으러 은행에 올 사람이 없다는 것!
들킬 리 없는 완전범죄나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은행에 있는 다른 보물들은?
다 주인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보물들이었다. 그런 보물들을 훔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뒷감당이 너무 위험했다. 언제 들킬지 몰랐으니까.
‘마법은 너무 사기야.’
판온에서는 완전 범죄가 거의 없었다.
나름 안 들키고 잘했다고 생각해도, 어느 날 메시지창으로 [추적이 시작됐습니다!]라고 떴으니까.
일단 안 걸리는 게 최선이었다.
[에랑스 왕국 은행에 들어가 도둑질을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은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도적 계열 스킬이 전체적으로 크게 오릅니다!]
[영웅 직업 <에랑스 왕국의 의적>으로 전직…]
[전직이 불가능합니다.]
[……]
[명성이 오릅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에랑스 왕국 은행에 알려질 경우 끔찍한 보복을 당할 것입니다!]
[에랑스 왕국의 비밀 도둑 길드, <어둠의 방랑자>가 당신을 찾아올 수 있습니다.]
‘고급 은신이 벌써 레벨 8이네.’
2만 더 올리면 최고급 은신!
도적 직업도 아니고, 기계공학이나 검술처럼 주력으로 올린 스킬도 아닌데 벌써 고급 8이라니.
믿을 수 없이 빠른 속도였다. 태현이 그만큼 위험한 퀘스트들을 깨왔다는 증거기도 했다.
도적은 난이도 높은 일을 할수록 성장한다!
“에드안.”
“후후. 왜 그러십니까?”
에드안은 보물들을 만지작거리며 흐뭇하게 웃었다.
“<어둠의 방랑자>라는 도둑 길드 아냐?”
쨍그랑!
에드안은 들고 있던 보물을 떨어뜨렸다.
“아니. 거기를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