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41화
하지만 이제 와서 놀라기에는, 카르바노그는 태현과 같이 보낸 시간이 길었다.
이 정도는 별로 놀랄 것도 아니지!
“흠. 그냥 내가 산적으로 위장하고 털어버리면….”
[…….]
이건 좀 놀랍다!
“에이, 그럴 시간도 아깝다.”
얄미웠지만 거기에 들일 시간도 생각을 해야 했다. 안 들키게, 효과를 볼 수준으로 하려면 얼마나 많이 해야 하겠는가.
[스카비오 백작이 봉신으로…]
[안달토 백작이 봉신으로…]
[명성이 오릅니다!]
[왕국의 힘이…]
[악명이 오릅니다!]
[대륙에 당신의 안 좋은 소문이…]
[……]
두 명을 받아들이자 각종 메시지창이 떴다. 이미 각오한 것들이었기에 태현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봉신이 된 백작들이 자신들의 영지로 돌아갑니다.]
“…응?”
태현은 멈칫했다.
잠깐만, 몸값은???
‘아차…!’
귀족들을 포로로 잡았을 때 받을 수 있는 몸값!
백작들을 봉신으로 받아들이면 자연스럽게 몸값은 사라진다!
태현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 당연한 걸 놓치다니!
‘그렇다고 이제 와서 몸값 내놓으라고 할 수도 없고, 봉신 취소할 수도 없고….’
둘 다 지금 선택하면 페널티만 큰 바보 같은 선택!
태현은 한숨을 쉬었다.
뭐… 그래도 봉신은 생겼으니까….
‘세금하고 군대만 해도 남는 장사긴 하지.’
안 그래도 싸울 일이 많은 태현에게 저런 귀족들은 든든한 부하들이 되어 줄 것이다.
“돌아가자.”
“김태현 선수!”
“응?”
“우리도 아키서스 교단에 가입하기로 했습니다!”
“…대체 어째서입니까?”
태현은 ‘뭘 잘못 먹었기에?’ 하는 눈빛으로 아저씨들을 쳐다보았다.
대체 왜 그런 잘못된 선택을?
“저 어르신 말을 듣고 마음을 굳혔죠.”
“우리랑 아주 잘 어울리는 교단 같아서!”
“…….”
태현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을 보는 눈빛으로 유 회장을 쳐다보았다.
와, 사람이 어떻게 저러냐?
물론 유 회장 입장에서는 억울해서 숨이 넘어갈 일이었다.
‘내가… 얼마나 말렸는데…!’
“아, 예. 들어오신다니 감사하네요… 제 잘못 아닙니다?”
“?!”
아저씨들은 당황했다. 태현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보다 김태현 선수. 내가 아주 좋은 사업 아이템이 있는데… 팬과 함께하는 사냥 어떻습니까?”
“앗. 좀 더 자세히 말해보세요.”
“?!”
옆에서 듣던 이다비가 솔깃한 얼굴로 물었다.
“그게 기존 선수들이 하는 팬미팅과 뭐가 다르죠?”
유명한 랭커들이나 판온 선수들은 판온 내에서 팬미팅을 꽤 많이 했다.
랭커와 같이 사냥을 하는 것만으로도 영광!
사실 그렇지만 실속은 별로 없었다.
레벨 차이, 장비 차이도 심한 플레이어들끼리 처음 만나서 파티 플레이가 잘될 리가 있겠는가.
어디까지나 화기애애한 친목 행사!
“다릅니다! 김태현 선수와 함께 하는 팬미팅은 그냥 팬미팅이 아닌, 희귀 아이템들이 잔뜩 나오는 팬미팅입니다.”
이중섭과 아저씨들은 태현의 경이로운 드랍률에 흠뻑 빠진 상태였다.
저런 드랍률을 가질 수 있다면 머리카락이라도 내놓겠다!
“게다가 이 팬미팅의 장점은 태현 선수한테도 이득이라는 겁니다.”
“?”
“팬미팅을 열려고 따로 장소, 시간을 잡는 게 아니라 태현 선수가 재료를 모으려고 할 때 즉석에서 모으는 겁니다. 태현 선수는 시간 낭비할 필요 없이 재료를 모으고 도움을 받을 수 있고, 팬들은 태현 선수를 만나서 좋고!”
“…!”
태현과 이다비는 놀란 눈으로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잖아!?
사실 태현이 팬미팅을 하면 영지 밖까지 줄이 설 거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대박 장사!
그러나 그걸 하지 않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럴 시간에 태현이 퀘스트 하나라도 더 깨야 했으니까!
그렇지만 저 아이디어는 그런 단점이 없었다.
‘파워 워리어 길드에 어울리는 사람이군.’
‘파워 워리어 길드에 어울리는 사람이네요.’
태현과 이다비는 이중섭에게서 파워 워리어의 분위기를 읽었다.
* * *
“와! 해냈다! 토끼가… 무려 20마리!”
“…….”
“…….”
흡혈성에 돌아온 태현 일행.
돌아온 일행이 가장 먼저 한 건 모으고 모아 온 재료를 토왕이한테 먹이는 것이었다.
에반젤린과 흑흑이는 왠지 모르게 창백해지고 피곤한 얼굴!
“…이, 이거 하려고 피를 그만큼이나… 더 뽑아야 하는 건 아니지?”
에반젤린은 평소와 달리 약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람의 마음을 약하게 만드는 애절한 목소리!
태현도 차마 ‘더 뽑아야지!’라고 할 수는 없었다.
“20마리…로 만족하자. 아키서스 포병대에 배치해서 써봐야지.”
-카르릉!
토왕이는 배가 불러서 만족했다는 듯이 통통거렸다.
태현은 입맛이 썼다.
과연 이런 고생을 할 만한 가치가 있었을까?
“블라디. 알다시피….”
“??”
“스카비오 백작과 안달토 백작이 내 봉신이 되었다.”
“언제 말입니까?!?!!?”
블라디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대체 언제?!
태현은 지금 막 돌아왔는데?!
“나한테 부하를 보내서 신청하던데?”
‘이 백작들이 미친 건가?’
아무리 급하고 절박해도 그렇지, 자존심 높은 뱀파이어 귀족들이 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건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잠깐만. 블라디. 넌 같이 있었을 텐데 그것도 몰랐냐?”
두 백작은 블라디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철저하게 숨겼다.
덕분에 두 백작이 봉신 허락을 받고 영지를 떠나 돌아갈 때도 블라디만 소식을 전해 듣지 못했다.
“전 알고 있었습니다. 폐하.”
“저도요.”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화신님.”
“?!”
심지어 기사단과 포병대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던 사실!
블라디는 충격을 받아 비틀거렸다.
“어쨌든 블라디, 원래 흡혈성을 유지하려면 꽤 많이 싸워야 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이 쉽게 풀렸어.”
두 백작과 계속 치고받고 해야 할 줄 알았는데, 두 백작이 밑으로 들어온 이상 여기 크네마 섬을 건드릴 사람은 없게 되었다.
“네가 맡아서 관리하도록. 크네마 백작 자리를 주마.”
“!!!”
블라디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 보니 그런 약속을 했었지!
여기를 장악하게 되면 그한테 관리하도록 맡기겠다는 약속!
그때는 ‘뭔 개소리야 미친놈이’라고 생각했고, 그 다음에는 ‘제발 좀 날 좀 풀어줘라 미친놈아’라고 생각했었지만….
정말 이렇게 기회가 올 줄이야!
“목… 목… 목숨을 바쳐서 충성하겠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세금 잘 바치고 병사들 잘 키워서 보내라.”
“…병사들이요?”
“…뭐 알아서 잘 만들어 봐.”
“잠, 잠시만요. 폐하. 혹시 지원은….”
“네가 알아서 잘해야지.”
생각해 보니 크네마 섬은 똥땅 중의 똥땅이었다.
두 백작들이 탐낸 것도 토끼들이었지 딱히 땅을 탐낸 건 아닌 것!
대부분의 영지 스탯이 바닥 상태였고, 세금부터 병사까지 고쳐야 할 게 한둘이 아니었다.
탁!
블라디는 재빨리 몸을 앞으로 던지며 태현의 발목을 붙잡으려 들었다.
재빠른 뱀파이어 태클!
그러나 태현은 한 번 당한 기술에 다시 당해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재빨리 발을 들어 블라디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퍽!
멋진 태클 방어였다.
“커헉!”
“자. 열심히 해라. 블라디. 나는 할 일이 많아서 이만! 세금 내는 거 잊지 마라!”
“폐하! 폐하!!! 폐하!!!!!”
블라디는 목에 핏발이 서서 외쳐댔지만 태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다비가 걱정된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데 진짜 위험하지 않나요? 블라디 혼자서 관리할 만한 땅이 아닌 것 같은데.”
영지의 치안이 내려가고 불만이 올라가면 반란이 일어났다.
애써 얻은 크네마 섬이 다른 이들의 손에 들어갈 수도 있는 것!
“응. 근데 잃어도 별로 아쉬운 곳이 아니잖아.”
“…그렇긴 하네요!”
이미 챙길 건 다 챙겼다!
태현 일행은 훈훈하게 섬을 떠날 준비를 마쳤다.
‘에랑스 왕국 은행 들려야겠군. 보물 내놓으라고 해야지.’
살라비안 교단을 쫓아 아탈리 왕국의 보물을 회수하려는 퀘스트가 참 멀리도 왔다!
* * *
블라디는 흡혈성 위에 서서 섬을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일단 땅이었다.
평생 가질 수 없는 땅!
‘…이대로 도망칠 수는 없다!’
원래는 그냥 도망칠까 했지만 도저히 도망칠 수가 없었다.
살면서 이런 기회가 언제 오겠는가. 아무리 뱀파이어가 오래 산다 하더라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블라디한테는 아무것도 없었다. 부하들도 없었고, 골드도 없었고, 그렇다고 본인이 뛰어난 전사거나 마법사도 아니었다.
솔직히 지금 찾아올 암살자부터 걱정해야 할 판!
“…!”
그때 블라디의 눈에 들어온 건 사람들이었다.
흡혈성에 수도 없이 많이 몰려온 플레이어들!
태현은 떠났지만 한 번 몰려온 플레이어들은 바로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블라디는 붉어진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래!’
지금 블라디에게 남은 건 저들밖에 없었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붙잡아야 한다!
“모험가들이여! 여기를 봐라!”
블라디는 최대한 근엄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성벽 위에 섰다.
흡혈성에서 뭐 주워 먹을 거 없나 돌아다니던 플레이어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나 블라디 백작! 여기까지 찾아온 그대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쟤 누구냐?”
“김태현 어디 감?”
“김태현하고 같이 다니던 뱀파이어 귀족 같은데… 들어보니 엄청 사악하고 교활하다는데.”
“그래? 그렇게 생기긴 했다.”
수군거리긴 하지만 일단 들어주는 플레이어들!
“내가 어떻게 혼자서 이 흡혈성을 되찾을 수 있었겠는가! 그대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 뭘 좀 아는데?”
“그러게? 귀족인데 별로 거만하지가 않네.”
플레이어들은 신기해했다.
보통 귀족 NPC들은 거만, 오만, 싸가지 없음 이 3종 세트를 탑재하고 나오게 마련이었다.
뭘 해줘도 ‘그래? 하찮은 평민인 주제에 제법 잘했다’ 같은 반응을 보여주는 놈들도 있는 것!
오죽하면 ‘귀족 죽빵 때리고 튀어도 되요?’ 같은 질문글이 올라올까!
Q: 테란드 남작이라는 미식가 귀족이 너무 짜증 나는데 한 대 치면 안 돼요?
A: 네가 랭커 아니면 안 돼요.
그런 와중에 블라디 같은 겸손한 태도는 신선한 일이었다.
“나 블라디! 이 성의 모든 것을 그대들에게 열어주겠다!”
“오…?”
“진짜?”
성의 영주실, 보물 창고, 비밀 던전 등 영주에게만 허락된 공간들!
그런 공간들에 한 번 들어가려면 어마어마한 공적치 포인트를 쌓아야 했다.
그런데 그걸 그냥 오픈한다고?
“이 섬에서 나는 모든 것들! 그대들이 가져가도 된다! 아주 약간의 세금만 내면!”
“와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
뒷말은 제대로 못 들은 플레이어들이 일단 신나 했다.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좋은 거 같다!
“이 영지에 정착하라! 이 영지에 정착하는 이들에게 혜택을 주겠다! 이 놀라운 혜택이 무려 이번 주까지! 그 기회를 놓치면 오지 않는다!”
점점 말이 귀족보다는 싸구려 잡상인에 가까워지기 시작했지만 솔깃한 플레이어들은 우르르 거점을 바꾸기 시작했다.
해서 손해 볼 것도 없는데 한 번 해보자!
‘살았다!’
블라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플레이어들이 많다면 기본적으로 암살자들한테서 안전했다.
사이에 꼭 붙어 다녀야지!
보물 창고? 영주실? 상관없었다. 어차피 안에 든 것도 없는데.
비밀 던전? 성에 연결된 지하 던전이야 있었지만 그게 별로 쓸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만약 괜찮은 던전이었다면 다른 귀족들이 노렸겠지!
[크네마 섬을 거점으로 삼은 뱀파이어들이 늘어납니다.]
[숨겨진 지하 던전의 문이 열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