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840화 (840/1,826)

§ 나는 될놈이다 840화

비슷한 대화가 안달토 백작 쪽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내가 정식으로 아탈리 국왕의 봉신이 된다면, 아탈리 국왕이 누구를 믿겠나! 사악하고 교활하고 비열하고 더럽고 추잡하고 쓰레기 같은 블라디 놈? 아니면 당당한 전사인 이 몸?”

“물론 백작님이십니다!”

안달토 백작의 호위들은 안달토 백작의 이름을 연달아 외치며 환호했다.

“블라디 그놈은 후회하게 될 것이다!”

* * *

“아니. 미치겠네.”

블라디는 왔다 갔다 하면서 초조해했다. 이놈의 뱀파이어 백작들은 도저히 말을 안 들어!

그가 지금 이러는 건 정말 순수한 이타심 때문이었다.

뱀파이어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타인을 위하는 마음!

다른 거였다면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라!’ 했겠지만, 아키서스는 좀 달랐다.

‘아무리 뱀파이어라도 아키서스는 좀….’ 같은 마음!

직접 당해본 블라디는 살면서 처음으로 착한 짓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안 하던 짓을 하면 역효과가 나는 법!

블라디의 접근을 백작들은 더욱더 수상하게 여길 뿐이었다.

“저놈이 대체 뭘 꾸미는….”

“안 되겠다! 국왕에게 서신을 보내라! 봉신이 되겠다고!”

초조해진 백작들은 블라디가 사악하고 교활한 수작을 부리기 전에 선수를 치기로 결정했다.

* * *

파닥파닥-

“?”

“박쥐인가? 잡아?”

“아니, 저건 그냥 박쥐가 아닌데. 뱀파이어들이 보낸 것 같다.”

태현은 다가오는 박쥐가 몬스터가 아니라는 걸 알아보았다.

‘저게 보이냐?’

물론 옆에 있던 케인은 황당할 뿐!

저 먼 거리에서 날아오는 박쥐가 몬스터인지 뱀파이어가 변신한 건지 대체 어떻게 알아보는 거야?

“무슨 일이지?”

“폐하! 저희 주인님의 충성을 받아주십시오!”

“??”

[핏빛 군도의 뱀파이어 귀족, 스카비오 백작이 당신의 봉신이 되기를 청합니다!]

[귀족이 봉신으로 들어올 경우, 그 귀족은 영지에서 나오는 수입의 일정량을 세금으로 바칩니다.]

[귀족의 군대를 동원할 수 있습니다.]

[……]

진짜 왕은 왕관을 썼다고 뚝딱 되는 게 아니었다. 이상한 여자가 연못에서 나와서 성검을 준다고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 밑에서 충성을 바치는 영주 귀족들이 있어야 진짜 왕의 힘이 나오는 것!

그런 면에서 태현은 아직 반쪽 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왕위를 갖고 수도는 가졌지만, 지방에 있는 영주들은 태현을 무시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저렇게 제대로 충성 맹세를 해오는 귀족 NPC라니!

혜택도 어마어마했다.

세금과 군대라니!

‘뭐지? 함정인가?’

조건이 너무 좋아서 태현은 순간 의심이 들 정도였다.

스카비오 백작이 아무리 포로로 잡히고, 태현한테 호감을 보여도 그렇지 이렇게 냉큼 봉신 신청을 한다고?

물론 좋은 조건만 있는 건 아니었다.

[귀족을 봉신으로 받아들일 경우, 그 귀족이 공격받으면 왕의 이름으로 보호해 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지키지 않을 경우 페널티가…]

[……]

[스카비오 백작은 대륙의 백작이 아닌 핏빛 군도의 뱀파이어 귀족입니다. 이를 받아들일 경우 아탈리 왕국 내 귀족들이 불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대륙 내 명성이…]

[……]

‘가지던가.’

태현은 쿨하게 무시했다.

이미 내 말 안 듣는 놈들인데 뭘!

이미 귀족들 도움 안 받고 알아서 잘 살고 있는 태현이었다. 이제 와서 새삼 아쉬울 것도 없었다.

‘스카비오 백작을 봉신으로 받아들이면 세금과 군대가 생기지만, 명성이 떨어지고 악명이 올라간다….’

[카르바노그가 생각해 볼 필요도 없는 제안이라고 합니다.]

‘맞는 말이야.’

명성이나 악명은 태현에게 넘쳐나는 스탯!

그보다는 골드와 군대가 짱이다!

“받아들이겠다! 스카비오 백작을 내 봉신으로 받아들이겠다!”

“감… 감사합니다!”

뱀파이어 사신은 급히 고개를 숙이고 다시 날아갔다.

그리고 또 하나가 날아왔다.

“폐하! 저희 주인님의 충성을 받아주십시오!”

“…….”

안달토 백작까지!

태현은 진지하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아니… 와이번 잡으려고 비운 시간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그 사이 흡혈성에서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

그렇지 않으면 설명이 되지 않는 이 현상!

* * *

무엇을 숨기랴.

경매장에 올라온 카투가 요새를 구매한 건 김태산이었다.

심심해서 경매장을 보고 있다가 카투가 요새가 올라온 걸 보고 바로 눌러버린 것이다.

일단 지르고 보자! 뒷감당은 나중에 생각하고!

이제 그 뒷감당을 고민해야 했다.

오스턴 왕국 안에, 그것도 길드 동맹의 핵심 영역 입구에 위치한 카투가 요새!

원래라면 절대 유지할 수 없는 영지였지만….

김태산에게도 유리한 점이 몇 가지가 있었다.

일단 길드 내에 공성전에 이골이 난 길드원들이 수두룩하다는 점!

게다가 이제 김태산은 대족장 전직 퀘스트를 끝낸 상태였다.

전설 직업, 우르크 오크 대족장은 대규모 지휘에 특화된 지휘관형 직업!

예전과는 비교도 될 수 없는 효율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이번 퀘스트로 인해 수많은 길드원들이 들어왔으니….

저번과는 전력부터가 달랐다.

‘그뿐만이 아니지.’

엄청나게 많은 오크 전사들이 갈려 나갔지만, 그만큼 많은 전사들이 경험치를 얻고 정예로 자라났다.

“제대로 알을 박는다! 길드원들을 총동원해! 카투가 요새를 놈들의 무덤으로 만들어준다!”

“형님 태현이가 우승했는데….”

“지금 그게 중요하냐!”

“축하드린….”

“필요 없어 인마!”

김태산은 눈에 불을 켜고 명령을 내렸다.

1초가 아까운 상황!

언제라도 길드 동맹이 정신을 차리고 역습을 해올지 몰랐다. 최대한 요새를 강화시켜야 했다.

“태현이 영지에 있는 대장장이들한테 도움을 요청해 볼까요?”

“…그, 그건… 크윽… 그래라.”

김태산은 망설이다가 수락했다. 솔직히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은 공성전에는 정말 필요한 인재들이었다.

좀 미친놈들이라 그렇지!

-일당 5골드! 너만 오면 고!

-길드 동맹의 시대는 끝났다! 카투가 요새를 점령하자!

김태산과 아저씨들은 정말 온갖 방법을 동원해 카투가 요새를 짧은 시간 사이에 난공불락으로 만들었다.

안 그래도 튼튼한 요새였는데, 거기에 추가로 몇 겹의 요새벽이 세워지고, 땅 아래로는 파고들지 못하도록 각종 함정이 설치되고, 성문 앞쪽에는 독이 끓어오르는 해자가, 성벽 위에는 각종 비행 몬스터들을 견제할 수 있는 공성 병기들이….

거기에 성 안에는 길드원들과 오크 정예 전사들까지!

“올 테면 와라!”

김태산은 그렇게 외쳤다.

그리고 길드 동맹은 오지 않았다.

“…??”

코앞에 생긴 카투가 요새를 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 * *

결국 길드 동맹은 반으로 쪼개졌다. 어떻게 보면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수많은 대형 길드들을 묶어서 한 곳으로 만들었는데, 불만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잘나갈 때는 불만이 나오더라도 덮을 수 있었지만, 문제가 생기자 그동안 막아놨던 불만들이 터져 나왔다.

-중국 쪽 길드원한테만 너무 혜택이 좋은 거 아니냐?

-쑤닝 놈이 자기와 친한 길드만 챙겨준다!

평소에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던 비중국계 길드들이 대거 이탈을 시도한 것이다.

쑤닝이 그렇게 길마들을 달래고 어르고 꼬드겨서 하나로 뭉쳤지만, 그래도 남은 길마들이 꽤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들은 길드원들을 데리고 길드 동맹을 나갔다.

-멍청한 놈들! 자기들끼리 나가서 뭘 하려고!

쑤닝은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에 기가 막혔다.

길드 동맹이 지금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그래도 오스턴 왕국과 국왕 자리를 갖고 있는 판온 내 최대 길드였다.

여기서 쪼개져 나가서 뭘 하겠다고?

용의 꼬리보다는 닭의 머리가 낫다지만, 그것도 옛날 말이었다.

요즘은 용의 꼬리가 낫다!

-지금 당장 탈퇴 선언을 취소하고 돌아와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 길드에게 준 영지를 공격하겠다!

오스턴 왕국 안의 도시, 성, 마을, 요새 등의 영지들은 각 길마 출신 플레이어들한테 나눠져 있는 상태.

지금은 산적들한테 매번 털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영지는 영지였다.

‘너희들이 그걸 지킬 수 있을 거 같으냐? 너희들은 김태현이 아냐!’

쑤닝 입장에서 저 정도 영지는 충분히 다시 뺏어올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길드 동맹에서 나간 길마들이 아무 생각 없이 나간 건 아니었다.

-바이에른 길드, 모베송 길드와 연합!

-바이에른 길드, 글로리어스 파이터즈 길드와 연합!

그들은 재빨리 에랑스 왕국의 대형 길드들과 연합을 맺은 것이다.

에랑스 왕국의 대형 길드 입장에서는 떡이 굴러들어온 셈!

영지가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는데, 얄미운 길드 동맹에서 영지를 떼어서 갖고 오다니.

에랑스 왕국 대형 길드들은 재빨리 지원과 연합을 외치고 길드원들과 랭커를 보내 영지에 박기 시작했다.

오스턴 왕국 서쪽 영지들이 그렇게 넘어가자 쑤닝은 뒷목을 잡았다.

-이 자식들을 정말…!

-길마님. 제카스 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탐험가 제카스!

태현에게 1부터 당한 악연으로, 쑤닝과는 <김태현을 매우 싫어하는 모임>으로 친해진 사이였다.

-소식 듣고 왔다.

-지금 놀리러 왔냐?!

-아냐. 너한테 조언을 해주러 온 거다.

-?

-지금 길드 동맹 상황이 안 좋지?

-…그런데.

아니라고 허세를 부릴 생각도 안 들었다.

그나마 오스턴 왕국 중앙은 멀쩡했지만, 기껏 키운 군대가 날아가고 치안이 대폭 하락했다.

거기에 길드원들이 대거 이탈해서 서쪽 지역이 날아갔다. 얼마나 더 이탈할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이 피해를 회복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또 그때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길드 안에 문제가 있으면 밖으로 시선을 돌려야지.

안의 문제는 밖으로 돌려서 해결한다!

-그걸 누가 모르냐? 그럴 여유가 없으니까 그렇지! 한 번만 더 실패하면 진짜 있는 놈들도 다 나가겠다!

이제 쑤닝이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은 확 줄었다.

왕국군 NPC들은 중앙 치안 유지 때문에 다 박아놔야 했고, 그나마 쑤닝을 지지하는 랭커들과 길드원들 정도?

-그렇다면 패할 리 없는 일을 해야지.

-…?

쑤닝은 뭔 소리를 하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실패할 리 없는 일이라니.

그런 거라면 너무 사소해서 시선도 돌리기 힘들 텐데?

-쑤닝. 김태현을 벤치마킹해라. 김태현이 뭘 했냐?

-한 게 너무 많아서….

-…남의 영지를 털고 다니잖아. 하지만 판온 1 때와 달리, 이제 그놈도 털릴 곳이 많지!

판온 1 때 태현은 길드도, 영지도 없는 고독한 솔로 플레어였다.

덕분에 길드들은 더욱 억울했다.

우리는 털릴 게 많은데 저놈은 어디 잡을 수도 없고…!

-김태현 놈의 영지를 치는 거다.

-그… 그 골짜기를?

쑤닝은 지레 겁부터 났다. 거길 어떻게 뚫지?

-멍청하기는! 꼭 거기를 칠 필요가 있나! 아탈리 왕국은 넓잖아. 아무 영지나 털어도 된다고. 오스턴 왕국과 붙은 영지부터 털어도 되고!

-!

그랬다.

꼭 태현의 직속 영지를 쳐야 할 필요가 없었다. 적당히 포장하면 되니까.

쑤닝은 머릿속에 생각이 번뜩이는 걸 느꼈다.

‘정말 괜찮은데?’

일단 난이도가 훨씬 낮았다.

게다가 밖으로는 김태현에 대한 복수를 한다고 홍보도 됐다.

맨날 태현한테 털리기만 한다고 나오는 불만도, 이렇게 보복하는 시늉을 한다면 사라지리라!

영지를 약탈하면 골드부터 시작해서 각종 아이템이 쏟아질 것이고….

현재 길드 동맹의 여러 문제점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무엇보다 태현을 엿 먹일 수 있다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김태현 이놈! 이제 네가 당할 차례다!’

* * *

“아. 아무 놈이나 귀족 놈들 좀 공격해 주면 안 되나? 주는 거 없이 되게 얄밉네.”

태현은 투덜거렸다.

안달토 백작이나 스카비오 백작 메시지창을 보니 더욱더 비교가 됐다.

주는 거 없이 불평만 하는 얄미운 놈들 같으니!

어디 한번 아쉬운 상황 오기만 해봐라!

[…….]

카르바노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뜨뜻미지근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자기 왕국 귀족들이 공격당하기를 바라는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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