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37화
위에서 먼저 올라가던 플레이어, 하브는 아저씨 파티를 보고 씩 웃었다.
이 산맥에서 자주 만나는 저들은 언제나 좋은 먹잇감이었다.
“아저씨들! 또 보네요!”
“…….”
“…….”
“정상까지 시합이라도 하실래요?”
“아오. 저 새끼.”
“한 대 치고 싶다.”
아저씨들은 투덜거렸다.
그래도 주먹부터 나가지 않는 건 아저씨들이 착해서였다.
짜증 난다고 무기부터 휘두를 수는 없지!
게다가 아저씨들에게는 신념이 있었다.
-돈 안 되는 싸움은 하지 않는다!
플레이어 한 명 잡으면 악명 올라가고, 마을에서 NPC 대응 안 좋아지고, 여러모로 손해였다.
대놓고 약탈자로 플레이할 게 아니면 싸워서 좋을 게 없는 것!
하브는 그걸 알았기에 계속 깐족댔다.
유 회장은 하브를 따끔하게 훈계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이봐. 왜 자꾸 귀찮게 그러나?”
“예? 제가 뭘요?”
“각자 알아서 산을 오르면 되지 왜 싫다는 사람한테 자꾸 시합을 하자고 해?”
“에이~ 그 정도는 할 수 있죠. 말도 못 합니까?”
“싫다고 했는데 계속 말을 걸고 있지 않나.”
“싫다고 했대. 푸하하.”
하브는 유 회장의 말을 따라했다. 뒤에 있는 친구들은 따라서 웃었다.
유 회장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참아야 하느니….’
방금 1초 동안 머릿속에서 저놈들 뒷조사부터 시작해서 온갖 상상이 지나갔지만, 유 회장은 차마 그렇게까지 할 수는 없었다.
어른으로서의 체면과 양심이 있지!
“아저씨들. 그러니까 맨날 그런 것만 입고 다니지 말고 좋은 장비 좀 챙겨 입으세요.”
아저씨들의 장비는 대부분 후줄근하거나 겉모습이 이상했다.
가성비를 우선시하기에 어쩔 수 없이 희생된 겉모습!
옵션이 좋기만 하면 치마도 입고 다니는 것이 그들이었다.
슈우웅-
“…?”
그때 산 밑에서 황금빛의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올라왔다.
파르바트 산맥에서 저런 속도로 날아다니는 건 목숨 거는 짓이었다.
온갖 자연현상부터 시작해서 몬스터까지 덤벼드는 것이다.
“뭐야 저 미친놈들은?”
“아니 저런 짓을….”
그 속도에 자극받았는지 주변에서 몬스터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크롸롸롸!
“와이번이다!”
아저씨들은 울음소리를 듣고 바로 알아챘다.
“소리 보니까 큰 놈 같은데?”
“어르신! 이리 오십쇼! 자세 낮춰야 합니다!”
그들도 와이번을 상대할 때에는 방심할 수 없었다.
하브 파티도 와이번이 온다는 걸 깨달았는지 재빨리 흩어져서 대비했다.
바위 같은 지형물을 끼고 자세를 낮춘다!
와이번은 쏜살같이 날아와 먹잇감을 낚아채 날아오르는 몬스터였다.
이 산에서 잘못 잡히면 훅 갈 수 있었다.
“아, 어떤 미친놈이 이 속도로 날아다니는 거야? 여기 산 처음 와보나?”
하브는 짜증 난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웬 미친놈 하나 때문에 그들까지 위험해지지 않았는가.
“와이번 잡으면 좋지 뭐.”
“잡히지나 마라. 멍청하기는.”
모인 플레이어들은 걱정과 기대가 반반씩 섞인 얼굴로 기다렸다.
대체 어떤 놈들이….
* * *
“오. 몬스터들의 레벨이 올라갔나? 안 도망치네.”
태현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용용이를 타고 돌아다니는 건, 그것 자체로 도발이라는 것!
더 빨리 날아다닐수록 비행 몬스터들이 더 많이 덤벼들었다.
그렇다면 와이번을 부르려면 굳이 둥지까지 안 가도, 이렇게 날아다니기만 하면 된다!
‘하긴. 영역 표시 같은 거겠지.’
자기 영역 앞에서 저렇게 날아다니는 걸 누가 좋아하겠는가.
[빠르게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비행 몬스터들이 자극을 받습니다!]
[<분노한 회색 소형 와이번>이 나타납니다!]
[비행 몬스터들은 자기들의 영역에서 날아다니는 상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크오오오!
용용이는 신이 나서 오랜만에 울부짖었다.
[드래곤의 울부짖음에 <회색 소형 와이번>이 도망칩니다!]
“…….”
“…….”
“용용아. 그냥 얌전히 날자.”
-알겠다….
용용이는 시무룩해져서 입을 다물고 날았다.
다행히 시간이 좀 지나자 와이번들은 다시 나타났다.
“어. 근데 어떻게 잡냐?”
케인은 문득 깨달았다.
땅에 있으면 덤벼드는 와이번을 공격하면 되지만, 여기 위에서 같이 빠르게 날아다니는 상황에서는 와이번을 어떻게 잡지?
유지수, 이다비, 태현은 각자 원거리 무기를 꺼냈다. 활과 머스킷!
거기에 정수혁은 지팡이를 들고 와이번을 조준했다.
케인은 무심코 최상윤을 쳐다보았다. 너만은…!
그러나 최상윤은 시선을 피하며 소형 석궁을 꺼냈다.
“야!!”
“아니. 이거 원래 솔플할 때 원거리 상대 견제해야 해서 갖고 다니는 거라고!”
검사지만 가끔 멀리 있는 상대를 견제할 때 필요했기에 들고 다니는 장비!
결국 케인은 혼자 남았다.
“쇠사슬이나 맞춰라.”
“맞아. 쇠사슬 맞춰서 끌고 와.”
“쇠사슬 맞추시면 되잖습니까.”
“…….”
이것들이!
노예의 쇠사슬을 맞추면 한 방에 끌고 올 수 있었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었다.
서로 빠르게 날아다니는데 조준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그러는 와중에 싸움은 시작되었다.
파지지직!
용용이는 놀라운 활약을 보여주었다. 괜히 드래곤이 아니었던 것이다.
차원이 다른 능숙한 공중전!
허공에 닥치는 대로 마법을 깔아 와이번들이 회피할 수 없이 유도한 다음 정면으로 부딪혀 와이번의 날개를 꺾으려 들었다.
아무리 와이번이 강하다 하더라도 용용이와 일대일 정면승부에서 이길 순 없었다.
게다가 용용이 등 위에는 더 살벌한 사냥꾼들이 타고 있었다.
탕! 타타탕!
와이번들이 멈추는 순간 날아오는 원거리 공격들!
태현과 이다비의 공격은 단순히 데미지만 높았지만, 유지수의 공격은 그걸 넘어 급소를 노리고 각종 디버프를 넣었다.
푹!
-크에에엑!
눈을 공격당한 와이번이 비명을 질렀다. 유지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연사를 넣었다.
이런 원거리 공격에서의 딜링이야말로 궁수가 가장 활약할 수 있는 상황!
“나… 나도 쇠사슬!”
“아냐. 다 잡았네.”
“…….”
와이번이 멈추자 쇠사슬을 쓰려던 케인은 시무룩해졌다.
“용용아! 아이템 떨어진다! 아래로 기동해서 받아!”
-주, 주인이여. 그게 지금….
용용이는 기가 막혔다. 지금 싸우는 와중에 그걸 또 챙겨야 하나?
그러나 어쩌겠는가. 주인이 하라면 해야지!
용용이는 아래로 뛰어들듯이 기동했다.
파아아악!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운 좋게 와이번의 심장이 나오긴 나왔는데….
와이번의 심장x2
기형 와이번인가?
아니, 한 마리 잡았는데 왜 심장이 2개 나오지?
“왜 그래?”
“어… 와이번 심장이 원래 두 개였었나요?”
“무슨 소리를… 아. 그거 드랍률 때문이야. 내가 행운 높아서 그래.”
“…!”
오크 목도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나오게 만드는 마법 같은 행운 스탯!
사실 일반 플레이어들이 행운 스탯 올리는 건 이런 걸 기대해서였다.
그게 아니라면 이딴 스탯 올리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플레이어들 중에서 태현만큼 드랍률이 높은 플레이어는 없었다.
-아키서스의 기도!
태현은 <아키서스의 기도>까지 사용했다.
행운 스탯을 일시적으로 크게 증가시키는, 평소라면 ‘이미 행운 스탯 높은데 굳이….’ 하고 잘 안 썼을 스킬이었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달랐다.
[아키서스의 화신이 <아키서스의 기도>를 사용했습니다!]
[<노예의 쇠사슬>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노예의 근성>에…]
[<노예…]
“??”
케인은 메시지창에 의아해했다.
아니 왜 쟤가 썼는데 내가?
‘잘 모르겠지만 일단 기회가 온 거 같다!’
케인은 신이 나서 쇠사슬을 쏠 준비를 했다. 드디어 뭔가 하는구나!
아까부터 팝콘이나 가져와야 하나 하고 계속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태현이 공중으로 뛰어내렸다.
-행운의 일격!
-쿠에에엑!
태현은 용용이 위에서 뛰어내린 다음 밑에서 날아오는 와이번의 목을 노리고 정확히 검을 찔러넣었다.
두 눈을 뜨고 봐도 믿을 수 없는 곡예!
케인의 입이 떡 벌어졌다.
‘미친놈!’
저걸 제정신으로 할 수 있나? 다시 봐도 못하겠다!
와이번은 한 번에 죽지 않았다. 당연히 태현을 매달고 미친 듯이 날뛰었다.
푹! 푹! 푹!
태현은 그러거나 말거나 한 손으로 와이번을 잡고 균형을 유지한 채로 계속해서 검을 찔러댔다.
탁!
“떨어졌다!”
“기다려! 내가 노예의 쇠사슬로!”
“너 왠지 기뻐 보인다?”
“아, 아니야.”
그러나 태현은 와이번에게서 떨어지는 즉시 바로 <아키서스의 돌격>을 사용했다.
촤아악!
추락과 동시에 위로 빠르게 돌진하며 와이번의 숨통을 끊는 태현!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
[<아키서스의 돌격>의 쿨타임이 초기화되었습니다.]
-아키서스의 돌격!
그리고 태현은 쿨타임이 돌아온 <아키서스의 돌격>을 사용해 다시 용용이 위로 돌진했다.
퍽!
떨어진 것도 <아키서스의 돌격>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한 포석이었던 것이다.
“이야. 아슬아슬하네.”
“선배님! 대단했습니다!”
“진짜 굉장했어요!”
“뭘 이런 걸 가지고. 그보다 케인. 왜 손을 앞으로 뻗고 있냐?”
“아… 아무것도 아니야.”
* * *
태현 일행은 계속해서 와이번을 사냥해 나갔다.
순식간에 쌓여 나가는 와이번의 심장!
“앗! 한 놈 도망친다!”
“쫓아!”
덤비던 와이번이 공격에 못 이기겠는지 꼬리를 내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쿵!
날아가던 와이번은 산 위에 그대로 착지했다.
…유 회장과 플레이어들이 대기하고 있던 곳으로!
“으아악!”
“와이번이다!”
굉음과 함께 얼음과 눈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평소와 너무 다르게 적극적으로 덤벼드는 와이번의 모습에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조, 조심… 어?”
“다 죽어가는데?”
“막타! 막타 쳐야…!”
그 순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용용이도 착지했다.
정확히 와이번의 모가지를 꺾으면서!
“잘했다, 용용아.”
태현은 용용이를 칭찬했다.
평소에는 태현이나 태현 밑의 NPC들이 워낙 화력이 좋아 용용이나 흑흑이까지 나설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이렇게 타고 다니니 확실히 활약이 달랐다.
사실 이게 드래곤의 올바른 활용법!
드래곤 나이트가 괜히 드래곤 나이트가 아니었던 것이다.
태현 일행이 와이번을 쓰러뜨리자, 정신이 든 하브와 친구들이 따지기 시작했다.
“아니 운전 똑바로 못해!?”
“여기서 날아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남한테 민폐잖아!”
“…?”
태현은 의아해했다. 뭔 민폐?
케인은 의아해했다. 자살 지망자인가?
“쟤네 뭔 소리하는 거냐?”
“미친놈들인가봐요. 무시하죠!”
유지수는 단칼에 말했다. 딱히 하브한테 하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하브한테는 아주 잘 들렸다.
“심장 몇 개 나왔지?”
“3개요.”
“평범하군.”
“?????”
귀를 의심하게 하는 대화가 오갔지만, 하브는 일단 그건 넘어갔다. 지금 따져야 할 건 다른 거였으니까.
“너희가 빠르게 날아다니는 탓에 몬스터들이 나왔잖아!”
“여기가 산인데 몬스터가 나오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혹시 너희….”
케인은 플레이어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저렇게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다니.
설마?
“…길드 동맹 소속 아니냐?”
“!”
“!!!”
무시하고 떠들던 태현 일행의 고개가 돌아갔다.
뭐? 누가 길드 동맹?
하브는 당황해서 말했다.
“길드 동맹이라니 뭔 헛소리야?”
“당황하니까 더 수상해!”
케인은 하브를 가리키며 외쳤다.
“그랬군! 길드 동맹 입장에서 김태현이 우승까지 하자 미친 듯이 배가 아팠을 거야. 그래서 우리를 노리고 먼저 여기서 대기하고 있었던 거겠지! 하는 짓이 비열하구나!”
“…….”
“…….”
하브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거는 건 나름 자신이 있었던 그였다.
그러나 세상에는 언제나 더 위가 있는 법이었다.
“잠깐만. 누구라고? 김태현?”
“모르는 척까지!”
케인은 무기를 들어올렸다.
길드 동맹을 잡고 오늘 못했던 밥값을 하고 말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