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36화
유 회장은 왠지 모르게 눈에서 땀이 나왔다.
기쁨의 땀!
-제가 좋아하는 산맥은 파르바트 산맥입니다. 판온이 좋은 게, 현실에서는 위험하고 멀어서 가볼 엄두도 못 냈던 산도 확확 오를 수 있다는 거죠. 현실보다 더 멋있고 아름다운 산을 말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었던 소리!
유 회장은 수많은 사람들을 낚시에 끌어들였던 자기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파… 파르바트 산맥은 찾아보니 초보자한테는 꽤 위험해 보이던데.
다행히 유 회장은 이제 꽤 노련한 플레이어였다.
-높이가 높아지면 체력이 떨어지고 각종 디버프가 걸리는데 위험하지 않을까?
온갖 그럴듯한 핑계를 댈 수 있다!
그러나 유 회장은 한 가지 잊고 있었다.
자기 레벨과 장비!
-하하. 어르신. 농담도. 그건 레벨 50도 안 되는 초보자들 이야기고, 어르신 정도면 충분합니다. 엄살도 심하시네요.
이중섭은 유 회장의 장비가 정확히 얼마쯤 되는지는 몰랐다.
각종 아이템을 팔아서 먹고사는 이중섭 같은 생계형 플레이어가 취급하는 장비들은 좀 더 싼 부류들!
그래도 유 회장의 장비가 비싼 건 알 수 있었다. 비싼 장비는 딱 티가 나게 마련이었으니까.
-…크흑. 그렇지.
-게다가 등산용 포션들도 있습니다.
-그런 게 있어?!
아니 뭔 등산에 미친 놈들도 아니고!
-어르신도 낚시용 포션 있잖습니까?
-그건… 좀 더 물고기들이 빨리 모이고 낚싯대를 더 빨리 휘두를 수 있게 하고….
-등산도 더 빨리 오르고 더 숨을 좋게 쉬게 만드는 포션입니다.
-에휴….
-방금 한숨 쉬셨나요?
-아니야! 아니야!
* * *
[높은 곳에 올라왔습니다. 공기가 희박해집니다.]
[이동 속도가…]
[HP가…]
[……]
[……]
[오랫동안 등산을 하며 움직였습니다. 체력 스탯이 오릅니다.]
[지구력 스탯이…]
“어르신. 좋죠? 좋으시죠?”
“아! 좋으니까 그만 좀 하게!”
유 회장은 짜증을 냈다.
그는 다짐했다.
앞으로 유성 그룹에서 등산하겠다고 휴일에 부하들을 불러내는 놈들이 나오면 이 원한을 풀리라!
그런 놈들이 안 혼나고 퇴직하면 저런 등산밖에 모르는 괴물이 되는 것 아닌가!
“잠시 쉬었다 가겠습니다.”
“예. 길마님!”
이중섭과 아저씨들은 절도 있게 둘러앉아 도시락을 깠다. 한두 번 까본 솜씨가 아니었다.
“직접 만든 건가?”
“예. 김밥 하나 드셔보시죠.”
“맛있구만. 근데 자네들은 게임으로 수입을 만드는 게 목적 아니었나? 이렇게 등산을 해도 되나?”
“사람이 일만 하면 됩니까. 이렇게 쉬기도 해야 하죠.”
“하하. 맞는 말이십니다. 길마님.”
“저도 회사 다닐 때 워크샵 장소를 매번 산으로 정했는데, 젊은 친구들이 참 좋아하더라고요.”
“…….”
등산밖에 모르는 길드원들!
그냥 길드 이름을 등산 관련으로 바꿨어도 위화감이 전혀 없었다.
유 회장은 욕을 하려다 말았다.
그리고 다짐했다.
앞으로는 기업 워크샵 장소를 산으로 하는 놈도 같이 조지겠다고!
“아. 어르신. 그리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가?”
“물론 등산은 취미지만, 돈이 안 되는 건 아니거든요.”
“맞습니다. 여기 <파르바트 산맥>은 아주 짭짤한 곳입니다.”
길드원들도 동의했다.
돈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남들이 잘 안 가는 곳에서 나온다!
<파르바트 산맥> 같은 경우는 각종 재료 아이템과 몬스터 소재들이 나왔지만, 정작 여기서 본격적으로 작업하는 플레이어는 적었다.
산을 오르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리고 주변 환경도 힘들었던 것이다.
가상현실게임의 단점은 플레이어가 직접 다 체험하고 버텨야 한다는 것!
다른 편한 사냥터가 있는데 굳이 이런 곳을 바득바득 기어오르는 플레이어는 드물었다.
“어르신도 여기서 한 몫 챙겨 가실 수 있을 겁니다.”
“맞아요. 전 조카들 용돈을 여기서 만듭니다.”
“어르신도 손주 용돈 주셔야죠.”
“그, 그래.”
유 회장은 떨떠름한 얼굴로 길드원들이 준 종이를 받았다.
종이에는 파르바트 산맥에서 나오는 각종 재료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생계형 플레이어들이니만큼 이런 부분에서는 철저했다.
“오… 와이번도 나오나?”
와이번의 근육이 그렇게 낚싯대 줄로 쓰기 좋다던데!
“네. 더 높이 올라가면 나옵니다. 잡을 수는 있지만 안 보이면 굳이 잡으려고 하실 건 없습니다. 놈이 보통 교활하고 사나운 게 아니거든요. 재수 없이 기습이라도 당하면 골치 아파집니다. 서로 모르는 척 지나가는 게 편하죠.”
“맞습니다. 저희는… 산을 즐기러 온 거니까요!”
“으하하핫! 으하하하핫!”
“…….”
좋다고 까르륵 웃어대는 아저씨들을 보며 유 회장은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와이번은….
‘그러고 보니 와이번의 심장을 쓴 미끼가 있었던 것 같은데….’
낚시꾼들에게 미끼란 대장장이들의 망치 같은 거였다.
좋은 미끼 제조법을 알기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다!
‘아. 찾았다. 이거군. <비밀스러운 탐욕의 미끼>… 와이번의 심장이 꽤 많이 필요하군. 그러고 보니 와이번의 심장은 경매장에서 왜 못 본 거 같지?’
“와이번의 심장이 필요한데 잡을 수는 없나?”
“와이번의….”
“…심장?!”
아저씨들이 경악한 표정으로 유 회장을 쳐다보았다. 유 회장은 이제 지친 표정으로 반응했다.
“이번에는 또 뭔가?”
“아뇨. 별건 아니고, 와이번의 심장이 워낙 잘 안 나오는 아이템이라서요.”
“와이번도 보기 힘든데 드랍률이 더 극악해서, 경매장에도 매물이 적을 걸요? 올라오면 바로 팔려나갑니다.”
“그런 물량 달리는 아이템은 차라리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플레이어하고 계약을 맺는 게 편할 수도 있습니다.”
“뭐? 그런 것도 있어?”
산지직송도 아니고 무슨?!
“대형 길드쯤 되면 가만히만 있어도 재료 들어가는 게 많아서 하는 곳 꽤 있습니다. 저희도 몇몇 곳에 재료 납품하는 계약 맺었고요.”
“…!”
이런 계약은 안정적으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유 회장은 이런 게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그러면 와이번의 심장은 누구랑 계약해야 하나?”
“어… 힘들지 않을까요.”
“…….”
유 회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걸 본 아저씨들이 급히 변명했다.
“아니, 그게… 그런 희귀 재료 취급하는 플레이어들은 이미 다 계약 맺었을 겁니다.”
“맞아요. 새로 찾기 힘들 걸요. 그것도 다 인맥이라서.”
“우리가 잡으면 되잖나!”
“아니, 백 마리 잡아도 나올까 말까인데….”
“그걸 어떻게….”
“조직적으로 철저하게 하면 되지!”
“아니, 어르신. 저희 오늘 쉬러 온 건데….”
* * *
태현은 포병대나 기사단은 두고 산맥 앞에 도착했다.
이런 곳에서는 소수정예가 편했다.
괜히 인원만 많아 봤자 챙기기 곤란!
게다가 흡혈성의 방어도 생각을 해야 했다. 대충 정리되었지만 세상일에 만약이란 없는 법.
“좋아. 올라간다.”
“어? 아니. 안 날아가??”
케인은 당황했다.
드래곤을 두 마리나 두고 있는데 산을 걸어 올라간다니. 왜?
“스탯 좀 올려야지.”
“…….”
-주인이여. 난 태우고 날아갈 수 있는데….
“아냐. 이럴 때 안 올리면 언제 올리겠어?”
케인은 산을 올라가며 반성했다.
직장인들이 등산 가기 싫다고 했을 때 비웃었던 게 이렇게 돌아오는구나!
[파르바트 거대 박쥐가 나타났습니다!]
한참을 올라가자 슬슬 몬스터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케인은 한참 산만 오르던 찰나에 몬스터들이 나타나자 신이 났다.
와! 이제 사냥이라도 좀…!
[파르바트 거대 박쥐가 도망칩니다!]
“…….”
“…….”
태현 일행을 보고 도망치는 몬스터들!
허접한 몬스터들이 덤비기에는 태현 일행의 전력이 너무 무시무시했던 것이다.
[높은 곳에 올라왔습니다. 공기가 희박해집니다.]
“음. 대비를 해야겠군.”
태현은 포션 대신 괴식 요리를 꺼냈다.
몸에 좋고 맛은 안 좋은 괴식 요리!
“자. 먹어라.”
“나, 나는 HP랑 상태 이상 높아서 그냥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냐. 싸우게 될 상황 오면 스탯 조금이 아까울 수 있어. 먹어!”
“구아악!”
케인한테 음식을 쓸어 넣은 태현은 토왕이를 쳐다보았다.
-카르릉!
[먹기 싫다고 카르바노그가 전해줍니다.]
“넌 레벨도 1이잖아. 안 먹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카르릉.
[자기는 선택받은 존재라 이런 상태 이상에 걸리지 않는다고 카르바노그가 전해줍니다.]
레벨 대신 이런 상태 이상 관련으로 버프를 잔뜩 받은 토왕이!
‘그냥 레벨을 주지….’
물론 태현 입장에서는 뭐하러 저렇게 비효율적인 방식을 택했는지 이해가 안 갈 뿐이었다.
각종 패시브 스킬보다는 레벨이 낫지 않나?
[토왕이가 옆에 있습니다. <고대 뱀파이어 토끼의 가호>를 같이 받습니다.]
[<고지대의 저주>를 받지 않습니다.]
[<산소 부족의 저주>를…]
[……]
“오?”
태현은 신기해했다. 이런 효과가?
태현은 토왕이를 들어 케인한테 건넸다. 케인은 의아해하면서 받았다.
“왜? 헉. 버프잖아?”
-카르릉!
[의기양양해한다고 카르바노그가 전해줍니다.]
‘좋긴 한데… 좀 애매한데….’
특히 범위!
보통 파티 정도는 적용이 되어야 하는데, 토왕이는 한 사람 정도가 전부였다.
게다가 이 정도 저주는 태현 같은 경우에 직업 스킬만으로도 저항이 가능했던 것이다.
‘뭐, 좋아하니까 내버려 두자.’
뭐든 간에 기뻐하는데 나쁠 건 없으니까!
그렇게 올라가는데 앞에서 먼저 올라가는 파티가 보였다. 그 파티도 태현 일행을 발견한 것 같았다.
“훗. 애송이들이군.”
“등산 장비도 제대로 안 입고 오다니….”
가끔 있었다.
레벨만 믿고 대충 산에 오르는 플레이어들이!
그런 플레이어들은 언제나 따끔한 맛을 보게 되어 있었다.
지금은 견딜 만한 디버프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디버프가 점점 심해지게 될 것이다.
그때쯤 되면 돌아가기도 힘들어질 것!
“요리 먹었으니 지금부터는 속도 좀 올려야겠군. 용용아!”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이여!
용용이는 신이 나서 날개를 폈다. 아까부터 이 산을 걸어 올라간다는 것에 답답해하던 참이었다.
슈우웅!
용용이 위에 탄 태현 일행은 그대로 산 위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
“…….”
나름 전문 등산가 파티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 저렇게 비행 탈것 타고 다니면 위험하지.”
“맞아. 비행 몬스터들이 얼마나 사나운데….”
끼에에엑!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대 육식새와 각종 비행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파지지지직!
그리고 접근하기도 전에 용용이가 사용한 각종 마법에 쓸려나갔다.
태현 일행은 공격할 필요도 없을 정도의 위력!
“…….”
“…….”
* * *
“그런데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군?”
“좋은 산이니까요.”
‘그건 아닌 것 같지만….’
이렇게 높고 힘든 산인데도 종종 파티 하나씩 만나게 되는 게 신기했다.
“엇. 저기 또 있군. 손을 흔드는데?”
“무시하십시오.”
“어?”
“무시하십시오.”
“??”
“저놈들은 아주 싸가지 없는 놈들입니다. 지들 장비 좀 좋다고 사람 무시하는….”
“아. 낚시터에도 그런 놈들 있지.”
어디에서나 저런 사람들은 있었다. 자기 장비를 자랑하며 초보자를 무시하는 이들!
아저씨들은 저 파티를 종종 만났는지 자근자근 씹어댔다.
“흥. 와이번한테나 물려가라.”
“탈모나 걸려라.”
“40대 되어서 대출 받아서 집 샀는데 직장에서 잘려라.”
점점 무시무시해지는 저주!
그렇지만 유 회장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취미는 자기 좋으라고 하는 거지 남 무시하라고 하는 게 아니었으니까.
‘이번에도 그러면 내가 따끔하게 훈계를 해줘야겠군.’
유 회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