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33화
케인은 쓸쓸히 돌아서서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케인을 모르는 팬만 있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대회 직전 방송에 그렇게 나왔는데 알아보는 팬들이 없을 리가 있나!
“앗! 케인이잖아?!”
“그래. 케인 많네.”
“아니, 케인으로 분장한 사람들 말고! 저기 진짜 케인!”
“응?”
케인을 알아본 팬 하나가 케인을 가리키며 놀라자, 다른 사람들도 시선을 돌렸다.
어? 진짜 케인인가?
“분장한 거 아냐?”
“분장치고는 너무 리얼한데….”
“그보다 저걸 어떻게 분장해?”
“하긴, 굳이 게임 캐릭터 말고 실제로 분장할 이유가 없긴 하지.”
‘어떤 놈이야!?’
케인은 울컥했다. 뭐가 어째고 저째?
“혹… 혹시 케인 선수 맞습니까?”
“…맞는데요.”
“케인 선수래!”
“와아아아악! 크아아아악!”
“꺄아아악!”
“힉.”
열광하다 못해 잡아먹을 것처럼 비명을 지르는 팬들!
케인은 자기가 이렇게 인기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더더욱 당황했다.
“케인 선수! 사인 좀!”
“비켜, 이 자식아! 내가 먼저야!”
“아냐! 내가 먼저라고!”
“난 김태현 선수로 분장했어! 같이 사진 찍을 거야!”
‘…저 사람은 피해야지.’
케인은 슬슬 뒷걸음질했다. 하필 왜 김태현으로 분장한 놈과 사진을!
“케인 선수! 인터뷰를….”
* * *
“드디어 생각났어!”
“뭐가요?”
“헉! 혹시 새로운 돈벌이 수단?”
“길마님께서 골드를 긁어낼 수단을 떠올리신 모양이다! 이것들아! 모두 와서 무릎 꿇고 경청해라!”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이다비는 고개를 저었다.
“그거 말고 태현 님한테 줄 선물.”
“아… 폭탄인가요?”
“폭탄인가 봐.”
“폭탄인가?”
빠르게 납득하는 길드원들!
“폭탄 아니거든?”
“그러면 더 큰 폭탄?”
“…게임 아이템 안 줄 거야….”
이다비는 한심하다는 듯이 길드원들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길드원들은 매우 억울해했다.
“아니! 게임 아이템에 목숨 걸던 길마님께서 이러시면…!”
“맞아! 쉬려고 하면 현실은 게임 밖에 있다고 하셨으면서!”
“우우! 게임 아이템도 좋은 선물이다! 게임 아이템도 좋은 선물이다!”
길드원들은 무시하고 이다비는 자신의 생각을 다시 돌이켜봤다.
‘정장. 역시 정장이 좋은 것 같아.’
사실 팀원들 중 태현이 공식 활동을 가장 많이 하는 편이었다.
게임단 운영하면서 광고 따오고, 후원해 주는 기업 담당자 나가서 만나고, 방송도 가고, 스카우트 같은 제안 오면 따로 만나고….
그런데 태현은 정말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면 편하게, 손에 잡히는 걸 입고 다녔다.
오죽하면 팀 KL을 후원하는 패션 브랜드 프로스다스에서 태현 액자를 이사실에 걸어놨다는 소문이 돌까.
매번 자사 제품을 보내주면 알아서 그것만 입고 다니는데 이렇게 예쁜 모델이 어디 있겠는가!
덕분에 프로스다스와 팀 KL의 사례는 패션계에서 손에 꼽히는 성공 사례로 뽑히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광고 효과!
다른 사람들이 망설이거나 ‘프로게이머? 다른 분야 많은데 하필 왜 그런 알지도 못하는 걸 해?’라고 트집을 잡을 때 자기 이름을 걸고 팀 KL과의 계약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김 팀장은 이사로 승진했다.
태현이 팀 KL을 막 차렸을 때 ‘에이… 명문 게임단 많은데 아무리 김태현이 스타여도 중소 게임단을 후원할 필요가 있나? 얼마 못 가고 금세 망할 것 같은데. 다른 게임단이나 알아봐’라고 했던 수많은 기업들도 땅을 치고 후회했다.
지금 국제 대회에서 우승한 팀 KL의 위상은 막 창단되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이제는 후원하려고 해도 줄을 서서 면접을 봐야 할 수준!
하지만 그건 그거였고, 이다비는 태현에게 정장을 맞춰주고 싶었다.
“너희들 중에 미국에서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 아는 사람 있니?”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 중 미국인들도 꽤 있었다.
물론 그게 저런 인맥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었다.
“길마님. 차라리 저희들이 대기업 회장을 아냐고 물어 보세요.”
“맞아. 그게 그거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길드원들! 이다비는 한숨을 쉬었다.
‘아는 사람이….’
* * *
최명성 팀장은 팀 KL 선수의 호출에 윤주환을 데리고 나왔다.
사실 이건 그 말고 다른 직원들이 해도 될 일이었지만 최명성은 ‘저리 꺼져 내가 한다!’라고 일을 뺏었다.
나는 말단 직원의 일도 대신 해주는 착한 상사!
“근데 팀장님.”
“…?”
“어… 지금 부른 게 꼭 김태현이리란 법은 없지 않습니까?”
“멍청한 녀석 같으니. 팀 KL 선수들이 따로 불렀겠냐. 분명 뭔가 같이 하려는 게 있어서 부른 거겠지.”
“…?”
윤주환은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방송들을 확인했다. ‘진짜 케인 선수 출현’, ‘케인 인터뷰 중’, ‘케인 즉석 사인회’ 같은 이름들이 많이 보였다.
케인만 따로 놀고 있는 것 같은데?
“…케인은 따로 있는데요?”
“…걔만 그런 거겠지.”
나머지 넷은 같이 있을 거야!
김태현도 있겠지!
…라는 기대는 5분 후에 사라졌다. 최명성은 시무룩해졌다.
윤주환은 감탄했다. 최명성은 정말 프로였다. 실망스러운 와중에 표정 관리가 정말 대단했던 것이다.
“하하. 이다비 선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어….”
이다비는 의아해했다.
이 주변 설명 들으려고 직원을 불렀는데 왜 팀장이 오지?
의아했지만 일단 이다비는 부른 이유를 설명했다.
그걸 들은 최명성은 ‘음, 음’ 하며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윤주환은 그걸 보며 물었다.
“오… 잘 아시는 분이라도 있습니까?”
“없는데.”
“…그럼 방금 그 진지한 태도는 뭡니까?”
“다 방법이 있지. 원래 이런 건 전문가가 해야 하는 거야.”
게임 개발은 게임 개발 전문가가.
경기는 프로게이머가.
그리고 선수들의 자질구레한 수발은?
에이전트가 한다!
최명성은 엄청나게 빠른 손놀림으로 탁자 밑 스마트폰을 조작해 에이전트 빈센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선수 케어 좀 도와줘라.
* * *
“아! 하늘에서 뛰어난 선수가 계약하러 굴러떨어졌으면 좋겠다!”
“일 좀 하세요.”
“일하고 있잖아!”
소파에 누워서 기도하던 빈센트는 비서한테 툴툴댔다.
빈센트는 스스로를 초일류 에이전트라고 자부했다.
-언제나 진심으로 최선을 다한다!
게임단에게도, 선수에게도 최선의 계약을 따내는….
실제로 빈센트의 명성은 업계 내에 자자했다.
그런데 그래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결국 김태현과 계약도 못했는데!
‘난 초일류가 아니야. 흑흑.’
다른 게임단 스카우트들이 ‘김태현? 좋지. 근데 포기하게’라고 말한 이유들을 직접 몸으로 겪은 빈센트였다.
‘정말… 대단한 계약이었는데….’
뉴욕 라이온즈 등의 게임단에서 제안한, 1억 달러 규모의 게임단 인수 제안.
성공하면 빈센트는 태현 같은 초일류 선수의 에이전트를 맡아 행복하고, 태현도 돈방석에 앉아 행복하고….
그런데 태현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대회까지 끝나버렸다.
빈센트는 던전 공략 대회 영상을 다시 켰다. 몇 번이고 본 영상이지만 봐도 봐도 감탄만 나왔다.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들려.”
“무슨 소리요?”
“김태현 선수 몸값이 두 배로 뛰는 소리.”
“…….”
“으으으… 김태현 선수는 왜 게임단을 차려서 에이전트 계약도 하기 애매하게 하고….”
“최명성 팀장님께 연락 왔습니다.”
“응? 미스터 최? 어휴. 이 친구는 돈도 안 내면서 일은 참.”
빈센트는 불평하며 일어섰다.
최명성과는 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다.
에이전트는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어야 해서, 미국에 가 있는 한국 선수가 한국에 있는 X라면을 먹고 싶다면 알아서 구해 와야 했고, 이미 표가 다 팔린 콘서트를 보고 싶다고 하면 표를 구해 와야 했다.
그걸 할 수 있냐 없냐에 따라 일류와 초일류가 나뉜다!
초일류 에이전트는 이렇게 계약 외적인 부분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최명성은 자기가 해결 못하는 일이 생기면 일단 빈센트한테 도와달라고 연락을 했다.
그래도 오래 알고 지낸 사이고, 빈센트도 최명성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으니, 이번에도 도와주려 일어섰다.
“이분 일은 왜 도와주시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미스터 최는 내 친구라고. 그런데 이번 일은 무슨 일이래? 좀 의미가 있는 일이면 좋겠는데.”
“선수 케어라는데요.”
“그래? 뭐 도와주고 싶은 선수라도 만났나? 누구냐고 물어봐줘.”
“어… 팀 KL 소속….”
쾅!
비서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이미 빈센트는 자리에 없었다. 문을 박차고 달려 나간 것이다.
* * *
“맞춤 정장!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입니다! 맡겨만 주시죠.”
빈센트는 너무 쉬운 일에 웃음을 꾹 참았다.
이 정도 일은 식은 죽 먹기!
“여기 디자이너 마틴 킴은 어떻습니까? 저와도 오랜 친분이 있고, 한국계니 한국 쪽에도 유명할 겁니다.”
“아. 이름 들어본 적 있어요.”
이다비도 뉴스에서 한두 번 본 적 있는 유명한 디자이너였다.
“그분에게 맡기겠습니다. 김태현 선수가 아주 좋아할 겁니다.”
“아, 아니. 태현 님이라고 말 안 했는데요.”
“앗. 아닙니까?”
“…맞긴 해요.”
“그런데 주문 제작을 하려면 본인이 직접 와서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아… 깜짝 선물로 하고 싶어서요. 치수는 다 알고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흠. 괜찮을지 물어보죠. 마틴 킴이라면 할 수 있을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빈센트는 순간 의아해했다.
치수는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 * *
“애들아. 많이 먹으렴.”
“네!”
태현은 이다비의 두 동생들을 레스토랑에 데리고 왔다.
정말 한 명도 같이 노는 사람들이 없는 팀 KL!
“뭐가 그렇게 재밌어?”
이다샘이 스마트폰을 보면서 깔깔거리자, 태현은 의아해졌다.
“여기 케인 선수 영상이요.”
“…케인이 대포로 발사된 게 좀 웃겨 보일 수는 있지만 그건 걔 잘못이 아니라 내가 쏜….”
“네? 아뇨. 인터뷰요.”
“?!”
태현은 스마트폰 영상을 확인했다. 케인이 수많은 사람들한테 붙잡혀서 헹가래를 강제로 당하고 있었다.
-케인 선수, 행복해 보입니다!
-웃고 있어요!
‘…겁먹은 것 같은데?’
보내달라고 하고 싶은데 차마 못 말하는 것 같은 얼굴!
그만큼 수많은 팬들이 거리에 쫙 깔려 있었던 것이다.
“흠. 다 먹고도 아직 저러고 있으면 가서 구해줘야겠다.”
“구해… 준다고요?”
“그래.”
“어, 케인 선수도 어른 아닌가요?”
“하하. 너도 크면 알게 될 거야.”
레스토랑에 들어온 손님들이 태현의 얼굴을 보고 수군거렸다. 그러자 태현은 가볍게 목례했다.
그걸 본 팬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말 걸어볼까?”
“아냐. 식사하시잖아. 다음에 물어보자.”
품격 있는 선수와 팬의 만남!
저 밑에서 ‘놓아줘! 으아아! 내려줘!’ 하고 있는 케인과는 너무 비교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애들아.”
“?”
“이다비한테 뭘 선물해야 좋을까?”
“켁켁.”
“콜록, 콜록.”
맛있게 먹고 있던 두 동생들은 사레가 들려 기침을 했다.
“내가 뭐 어려운 질문이라도 했나?”
“아… 아뇨. 그런 거 물어볼 줄 몰라서….”
“그냥 존재 자체가 선물 같은… 아! 왜 찔러!”
“넌 눈치가 없냐? 조용히 해! 나중에 언니한테 다 말하기 전에.”
“그, 그건 제발….”
“??”
태현은 둘의 대화를 보고 의아해했다. 뭔 소리래?
“보니까 이다비가 대회 끝난 기념으로 내 선물 주려고 고민하는 거 같더라고. 괜찮은데 말이지.”
태현은 케인과 달랐다.
케인은 쓸데없는 부분에서도 예리하지 않았지만, 태현은 이런 쓸데없는 부분에서는 예리하다!
“어, 괜찮다고 말하시지 그랬어요?”
“서운해할까 봐 말 안 했어. 선물도 마음인데 그걸 말리는 것도 좀 그렇지.”
두 동생들은 감동 받은 표정을 지었다. 저런 마음씀씀이라니.
“흠. 근데 생각해 보니 게임단 단장 입장으로 선수한테 선물 받아도 되나? 좀 공사 혼동 같기도 한데.”
“…….”
두 동생들은 방금 받은 감동을 취소했다.
“무조건 돼요!”
“받아도 되는 게 학계의 정설이에요! 제가 학교에서 배웠어요!”
“그, 그래? 처음 들어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