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32화
[괜찮을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위로해 줍니다!]
카르바노그가 옆에서 아키서스 스킬은 결투에서 써도 괜찮을 거라고 말해줬지만 별로 위안은 되지 않았다.
‘에이. 뭐 어쩔 수 없지.’
태현은 고민하다가 포기했다.
아키서스 관련 스킬은 태현이 쓰고 싶지 않다고 해서 안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몇 개는 기본적으로 강제 발동인 패시브 스킬인 것!
태현이 어쩔 수 없는 걸 가지고서 고민하는 건 의미가 없었다.
쉭쉭-
태현은 검을 몇 번 흔들었다.
납득 안 되면 그냥 죽이고 뺏지 뭐!
[카르바노그가 역시 아키서스답다고 감탄합니다!]
“내가 간다! 안달토 백작!”
“와아아아아아!”
태현이 나서자 플레이어들은 함성을 질렀다.
보통 ‘아니 왜 막타 뺏어가세요?’란 반응이 한두 개 정도 나와도 이상할 게 없었는데….
그만큼 태현의 인기가 절대적이었던 것이다.
보스 경험치고 뭐고 다 필요 없다!
태현이 싸우는 걸 보고 싶다!
“와아아!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쾅!
“?!”
대포 소리가 들리자 태현은 고개를 돌렸다. 아키서스 포병대원이 민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폐하. 실수로 발사했습니다.”
“잘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예?”
뭔가 예상했던 것과 다른 대답!
태현은 작게 말했다.
“한 방 더 쏴라. 실수인 척.”
“…예!”
포병대원은 눈빛을 반짝이며 신나게 대답했다.
역시 폐하는 뭘 좀 아신다니까!
쾅!
“크악! 뭐하는 거냐!”
안달토 백작은 대포알이 날아오자 성질을 냈다. 1:1 결투 하기로 해놓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아. 미안. 실수였다.”
쾅!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쏘는 태현! 그 비겁한 태도에 안달토 백작은 분노했다.
“블라디 이 비겁한 놈!”
[블라디의 악명이…]
[……]
“아니 왜 날?!”
블라디는 억울해서 자기도 모르게 외쳤다. 포병대원이 친절하게 대답해 줬다.
“네가 지금 우리 옆에 서 있잖아.”
“…….”
누가 봐도 오해하기 좋은 상황!
태현은 안달토 백작 앞에 섰다.
“미안하군. 블라디가 좀 비겁한 짓을 좋아하긴 하지.”
“흥! 저런 더러운 놈과 같이 다니다니!”
“말조심해라, 뱀파이어! 위대하신 폐하 앞에서 네깟 놈은 하찮은 언데드에 불과하다!”
“맞다! 지금 당장에라도 달려들어서 네 목에 은검을 쑤셔 박을 수 있다!”
“…너희 왜 거기 있냐?”
태현은 당황했다.
에랑스 왕국 기사단원들이 플레이어들 사이에 섞여 있었는데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태현의 광팬인 플레이어들과 하는 짓이 똑같았다.
“폐하라니? 그게 무슨 소리지?”
안달토 백작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기사단원들은 신나서 태현이 누군지 설명을 늘어놓았다.
“…블랙 드래곤마저 때려잡으신….”
“…그, 그걸 믿으라고…?”
안달토 백작은 반신반의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솔직히 믿기에는 너무….
“맞거든?”
“우우! 네가 허접하다고 태현 님까지 네 기준으로 보지 마라!”
“맞아! 더럽게 비싼 척하더니 별것도 아닌 귀족 놈아!”
뱀파이어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야유했다. 평소에는 얼굴도 제대로 못 볼 플레이어들이 저러자 안달토 백작도 당황했다.
“아… 아니 이런 건방진… 그보다 아탈리 왕국의 국왕이라고?! 그렇다면 이건 아탈리 왕국의 공격이다!”
“아니다. 안달토 백작.”
태현이 해명하기도 전에 뒤에서 스카비오 백작이 나왔다.
“스, 스카비오 백작?!”
“아탈리 왕국 국왕이 여기에 그냥 왔겠는가?”
그냥 왔다.
“아탈리 왕국의 국왕이 아무 이유 없이 왔겠는가?”
아무 이유 없이 왔다.
그러나 안달토 백작은 이미 감을 잡은 얼굴이었다.
“설마…!”
“그렇다.”
“블라디! 이 비겁한 놈!”
“그래! 바로 블라디가 부른 것이다.”
“…….”
태현은 둘의 대화를 기묘한 표정으로 지켜보았다.
‘아직 세상에는 배울 게 많다!’
진작에 이렇게 살았으면 적의 숫자가 한 1/10로 줄었겠다!
“…크크크….”
“…?”
블라디가 고개를 숙이고 웃기 시작하자 태현은 의아해했다.
왜 저래?
“…그래! 내가 했다. 이 멍청한 귀족 놈들아!”
[블라디가 자포자기합니다!]
“역시!”
“이 사악한 뱀 같은 놈!”
“어디서 그런 것만 배워서!”
“뱀파이어의 수치!”
두 뱀파이어의 공격에 블라디가 분노해서 크게 외쳤다.
“닥쳐라!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
진심 가득히 담긴 블라디의 외침!
“너희 같은 놈들은 내가 아주… 아주 아키서스해버릴 거다!”
[벌써 아키서스를 잘 쓴다고 카르바노그가 감탄합니다.]
“아키서스해버린다니 이놈! 못하는 말이 없구나!”
“폐하께서 널 좋게 봐주신다고 건방 떨지 마라!”
두 뱀파이어 귀족들은 매우 분노했다.
다른 모욕은 그렇다 쳐도 아키서스해버린다는 거는 정말 너무 심한 모욕!
불구대천의 원수한테도 저런 말은 할 수 없었다.
“흠. 우리 근데 1:1 결투 언제 하냐?”
태현은 안달토 백작을 보며 물었다. 지금 태현에게 안달토 백작은 걸어 다니는 경험치 덩어리로 보였다.
어떻게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아닙니다. 폐하.”
“…뭐가 아니니?”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태현은 평소와는 달리 상냥하게 말했다. 그걸 들은 케인은 오싹해했다.
“항복하겠습니다. 폐하처럼 고귀한 신분을 가진 분에게 결투를 신청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인데, 백작인 그가 아탈리 왕국 국왕인 태현에게 결투를 신청할 수는 없는 법!
안달토 백작은 고개를 숙이며 무례를 사과했다.
[안달토 백작이 항복합니다!]
[명예가 크게…]
[……]
[……]
“아, 아니. 난 결투를 하고 싶은데. 전사라면 결투를 해야지!”
물론 태현 입장에서는 어이없는 소리였다.
아니 이 자식이 경험치 안 주려고 이러나?
살살 팰게!
“아닙니다. 폐하. 제가 어떻게….”
“…….”
태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안달토 백작을 보니 이미 틀렸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 * *
‘에이… 좋게 생각하자.’
안달토 백작의 부하들을 포로로 잡고, 진영에 있던 아이템들을 챙기며 태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결투를 못 해서 아쉽긴 했지만 그렇다고 얻은 게 없지는 않았다.
진영에 있는 아이템들을 이번에는 태우지 않고 챙겼고, 흡혈성의 권리를 확실히 얻은 것이다.
“흠. 이제 사료들을 모으긴 했는데….”
-카르릉!
토왕이는 신이 나서 폴짝 뛰었다.
카르바노그가 해석해 주지 않아도 뭔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빨리 사료 줘!
‘이거 진짜 의미가 있는 거 맞나?’
태현은 떨떠름했다. 그냥 먹튀가 되는 건 아니겠지?
다른 재료면 모를까, 토왕이의 사료들은 워낙 고급 재료들이라 다른 곳에 쓸 일이 많았던 것이다.
“자. 여기 있다.”
찹찹찹!
토왕이는 신이 나서 먹기 시작했다.
재료가 와이번의 심장부터 시작해서 고대 뱀파이어의 혈액까지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그리 보기 좋은 장면은 아니었다.
유혈 낭자한 식사 장면!
태현 일행은 ‘어떻게 되나 보자’ 하는 눈빛으로 토왕이를 지켜보았다.
“쟤 살이 엄청 찌는 거 같은데…?”
“덩치가 커지고 있어요!”
마치 슬라임처럼 덩치가 불어나는 토왕이!
툭-
“!”
“반, 반으로 나뉘었다!?”
정말 슬라임처럼 늘어나는 토끼들!
토왕이는 있는 걸 다 먹더니 계속 숫자를 불렸다.
무려….
네 마리!
“…?”
“???”
꺼억-
토왕이는 상자째로 쌓여 있던 사료들을 다 먹더니 기분 좋게 드러누웠다.
“…이, 이게 끝이니?”
-카릉!
[숫자를 늘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냐며 당연하다고 카르바노그가 전해줍…]
사기당했다!
순간 태현의 뇌리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 사기가 아닐 수도 있다고 카르바노그가 변명해 줍니다.]
‘퍽이나 그러겠다!’
아무리 토끼가 좋다고 해도 저만한 재료를 먹고서 4마리 불렸으면 가성비가 안 맞았다.
스카비오 백작도, 안달토 백작도 이렇게 가성비가 안 좋았을지는 몰랐을 것이다.
‘젠장….’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아쉬워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다들 토끼에 환장한 거 보면 쓸 만한 건 분명한데….’
이미 들어간 게 있어서 포기할 수는 없다!
사실 이건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서 재산을 탕진하고 있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하는 생각이었지만….
“애들아! 모여봐라! 재료 모으자!”
태현은 일행을 불러 모았다. 이런 재료는 원래 같이 모아야 빨랐다.
“여기 있는 시약류는 길드원들 시켜서 채집시키게 할게요.”
“고마워. 와이번은 내가 직접 찾아가서 잡으면 될 거 같고… 또 어려운 거 뭐 있지?”
“여기 고대 뱀파이어의 혈액은 어떻게 구하죠?”
“…글쎄?”
다른 재료들은 희귀하지 않든, 희귀하든 어떻게 구할 수는 있는 재료긴 했다.
와이번의 심장?
잘 안 나오는 아이템이지만 일단 와이번을 잡다 보면 나왔다!
그렇지만 <고대 뱀파이어의 혈액>은 말 그대로 고대 뱀파이어를 찾아야….
“…….”
“…….”
태현 일행은 무언가를 깨닫고 흑흑이를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보십… 헉.
현재 흑흑이는 고대 뱀파이어 블랙 드래곤!
“흑흑아. 덩치 좀 최대로 키워보자.”
-싫… 싫습니다!
“어허! 피는 잘 먹으면 또 생기게 될 거야!”
태현은 흑흑이를 붙잡았다.
“맞다. 이다비. 혹시 에반젤린 좀 불러줄래?”
“네? 왜요?”
“걔도 고대 뱀파이어잖아. 피 기부 좀 받자.”
“…….”
“…….”
* * *
“으흑흑! 진짜 휴가야! 진짜 휴가라고!”
케인은 기뻐 외치며 호텔 밖으로 뛰쳐나왔다.
흡혈성 퀘스트가 일단락된 덕분에(지금도 태현은 피를 뽑고 있었다) 받은 천금 같은 자유 시간!
‘수학여행 때도 이렇게 빡빡하진 않았던 거 같다!’
케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호텔 밖으로 달려나갔다.
오늘부터 비행기 타고 돌아가는 날까지 방탕하고 자유롭게 살 거야!
“으악! 김태현이다!”
밖으로 뛰쳐나온 케인은 비명을 질렀다. 눈앞에 태현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수십 명이!
‘악… 악몽인가?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케인은 스스로가 갈 데까지 갔다고 생각했다.
게임에서 시달리다 못해 이제 꿈에서까지 시달리는구나!
그러나 꿈이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진짜 태현이 아니라, 태현처럼 생긴 가면이나 태현처럼 분장하고 나온 사람들이었다.
“아니 이런 씨….”
케인은 울컥했다.
사람을 이렇게 놀려?!
어떤 악의적인….
‘헉. 몰래카메라인가?!’
케인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나 카메라가 많이 보였다.
미국까지 따라와서 몰래카메라를 하다니 이런 할 일 없는 방송국이….
‘아닌가! 내가 인기가 많아진 건가!’
그렇게 생각하던 케인은 익숙한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걸 보았다.
케인의 게임 캐릭터로 분장한 사람들이었다.
‘나도 있네?!’
자세히 보니 태현이 많았을 뿐, 케인, 이세연, 정수혁, 이다비, 최상윤 등 이번 대회에서 활약한 플레이어들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성공적으로 대회가 마무리되고 나자, 몰려든 팬들에 의해 주변에서 축제가 벌어진 것이다.
카메라도 한국에서 따라온 카메가 아닌, 이 축제를 찍기 위해 나온 방송사 카메라들!
‘그러고 보니 영어네.’
어디 카메라인지는 잘 모르겠고 일단 영어 방송국인 건 알겠다!
케인은 허겁지겁 통역기를 켰다.
-여기 케인 선수로 분장한 시민분과 인터뷰를 해보겠습니다. 정말 똑같이 하셨는데요.
-네. 제가 케인 선수 팬이어서….
“…!”
케인은 눈이 번쩍 뜨였다.
아니! 내 팬이 저기 있다고!?
케인은 슬며시 다가섰다. 다가서면 사람들이 알아보겠지?
“저기, 죄송한데 비켜주시겠어요?”
“어… 아니… 그게… 저… 모르세요…?”
“?? 누구세요?”
“죄송합니다! 이분 인터뷰 중이니 잠깐만 나와 주시겠어요?”
진짜 선수가 눈앞에 있는데 팬을 먼저 인터뷰하려는 방송사들!
“…….”
스태프들의 친절한 태도가 더 마음이 아팠다. 케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김태현 놈 데리고 나올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