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29화
이쯤이면 숨만 쉬어도 올라가는 인기!
태현은 뭘 해야 인기가 내려갈지 알 수가 없었다.
‘에랑스 왕궁 가서 국왕 뺨이라도 때려야 하나?’
그랬다가는 인기 내려가기 전에 다른 기사들한테 찔려 죽겠지만….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이미 올라간 걸 어쩌겠는가. 지금 할 일부터 해야지.
“플레이어들을 불러라!”
-카르릉!
[많이 고마워한다고 카르바노그가 전해줍니다.]
뱀파이어들한테 넘기지 않은 걸 고마워하는 토왕이!
물론 태현이 토왕이를 걱정하고 아껴서 그런 건 아니었다.
‘뱀파이어 백작 정도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런 거지.’
솔직히 토왕이는 어떻게 써야 할지 아직 감이 잘 안 오는 상태였다.
토끼 괴수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지만, 그걸 만들어내기 위한 조건이 너무 까다로웠다.
그 사료들을 어디서 구해!
만약 태현이 불리한 입장이었다면 토왕이를 바로 넘겼을 것이다.
그러나 태현은 지금 아쉬울 게 없었다.
언데드 전문 기사단!
점점 더 미친 괴물이 되어가는 아키서스 포병대!
거기에 태현의 이름만 들으면 신나서 달려오는 뱀파이어 플레이어들까지!
여기 온 백작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기껏해야 레벨 400~500이겠지. 600은 안 갈 거고.’
레벨 200도 안 되는 플레이어의 패기!
하도 고렙 보스들을 상대하다 보니 이제 400~500대 보스 정도는 만만해 보이는 착시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 * *
“김태현! 김태현! 김태현!”
“우승 축하드립니다!”
태현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자, 성에서 웅성거리던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달려왔다.
성 밖으로 도망쳤던 플레이어들까지 다시 돌아올 정도!
그들은 태현의 이름을 외치며 우승을 축하했다.
“하하. 고맙군.”
“이세연은 가라! 김태현이 최고다!”
“무슨 말씀을. 이세연도 좋은 상대였어. 내가 운이 더 좋았을 뿐.”
“아…!”
“너무 멋지다!”
뱀파이어들은 홀린 눈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방금 말을 꺼낸 플레이어는 반성하는 얼굴로 자신의 머리를 쳤다.
“죄송합니다! 태현 님은 저렇게 넓은 마음을 가지고 계신데 제가 멋모르고 이세연 욕을… 앞으로는 조심하겠습니다!”
“아냐. 계속해.”
“???”
플레이어는 귀를 의심했다. 잘못 들었나?
그러나 태현은 이미 멀어져가고 있었다.
태현은 용용이 위에 위풍당당하게 타고서 말했다.
“애들아! 길게 말 안 한다. 가서 털고 뺏자!”
아쉬울 거 없을 때는 매우 짧아지고 간단해지는 말!
아쉬운 게 많으면 온갖 미사여구를 붙이면서 ‘여러분! 저와 같이 싸워주십시오!’라고 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판온 1 때 같은 모습!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물론 이런 간단한 말에도 콩깍지가 씐 플레이어들은 열광했다.
저런 간단한 명령이라니! 너무 멋져!
“가자!”
흡혈성의 성문이 열리고, 거대한 무리가 우르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한밤중의 기습이었다.
* * *
“그렇게까지 제안을 했는데 받아들이겠지.”
“맞는 말씀이십니다, 주인님! 블라디 놈을 보아하니 아주 혹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런 제안을 누가 거절하겠습니까?”
“크하하! 놈은 그 토끼의 가치를 정확히 모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어쩌다가 챙긴 거겠지.”
스카비오 백작 진영은 모처럼 훈훈한 분위기였다.
사신으로 갔다 온 뱀파이어의 보고가 괜찮았던 것이다.
잘 먹힐 것 같다!
“놈이 싸구려 연극을 펼치긴 했지만 저는 알 수 있었습니다. 놈이 그 제안을 간절히 원한다는 걸….”
쾅!
“…말입니다.”
쾅! 쾅!
“그래… 그런데 이거 뭔 소리냐?”
“어디서 들어본 소리인데….”
정답은 그들이 쫓겨날 때 들었던 대포 소리!
그 소리에 뱀파이어들은 화들짝 깨어났다.
“폐하. 스카비오 백작과 그 휘하의 흡혈귀들은 본인들도 뛰어난 전사지만, 강력한 마법사기도 합니다. 흑마법으로 자신들을 강화시키고 버틸 수 있을 겁니다.”
기사단원들은 태현에게 재빨리 보고했다.
핏빛 군도의 스카비오 백작은 기사단도 알고 있는 거물 뱀파이어!
게다가 지금은 밤이었다.
뱀파이어들의 재생력이 더 올라가고, 각종 스킬들을 쓰기 더 좋은 상황!
그러나 태현은 자신만만했다. 그걸 다 묶을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불 지르자.”
화르륵!
아키서스 포병대는 뱀파이어 진영을 향해 직격으로 쏘고 있지 않았다.
그 주변을 향해 쏘고 있었다.
태현이 노린 건 주변에 불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것도 그냥 불이 아니었다.
사디크의 화염!
포탄에 친절하게 사디크의 화염 룬을 새긴 덕분에, 포탄이 닿을 때마다 주변에 화염이 확확 피어올랐다.
살라비안 교단과 싸우면서 태현은 사디크의 권능이 뱀파이어 상대로 아주 잘 먹힌다는 걸 깨달았다.
화염+신성.
뱀파이어들이 싫어하는 것만 모아놨다!
[카르바노그가 사디크의 화신도 이렇게 사디크의 힘을 알뜰하게 잘 쓰지는 못했을 거라고 말합니다.]
‘내가 좀 잘 쓰지.’
“우측으로 30도 돌려서 쏴라. 저기 화염이 좀 부족해 보인다.”
“예!”
꽝! 꽝!
얼마 지나지 않아 포위망이 완성되었다.
화염으로 된 포위망!
[스카비오 백작 진영이 화염으로 둘러싸였습니다!]
[스카비오 백작 진영의 사기가 크게 하락합니다!]
[블라디의 악명이 오릅니다!]
“완전히 포위했으니 이제 알아서 튀어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잡으면 되겠지.”
태현은 느긋하게 언덕 위에서 밑을 내려다보았다.
타죽기 싫으면 알아서 나오겠지!
“어… 태현 님.”
“…?”
플레이어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런데 불이 계속 커지는 거 아닙니까?”
“조금 커지긴 하겠지.”
“조금이… 아닌 것 같은데….”
화르르륵!
[마력이 담긴 핏빛 군도의 공기가 사디크의 화염을 더욱더 키웁니다!]
[불꽃이 거세게 타오릅니다!]
[비슷한 일이 저번에도 있었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해줍니다.]
살라비안 교단 대주교 털 때도 있었던, 화력 조절 실패!
사실 이렇게 대규모로 불을 지르면서 화력 조절을 완벽하게 해낸다는 게 욕심일지도 몰랐다.
다행히 위치는 잘 잡아서 그런지 플레이어들과 대기하고 있는 쪽까지 화염이 오지는 않았지만….
[사디크의 화염이 더욱 거세게 타오릅니다! 열기가 당신을 침범합니다!]
[뱀파이어의 차가운 피부가 열기를 견디지 못합니다!]
[……]
화염이 오지 않았어도 열기만으로 충분했다. 후끈후끈한 열기가 밀려오자 뱀파이어 플레이어들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후퇴했다.
“뭔 놈의 불이 이렇게 세?!”
“열기가…!”
보통의 화염과는 다른 사디크의 화염!
덕분에 뱀파이어 플레이어들은 접근도 하지 못하고 물러서야 했다.
태현도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불을 좀 줄일까?”
“…어떻게?”
키운 이상 줄이기는 힘든 게 화염!
물러선 플레이어들도 플레이어들이지만, 태현은 다른 게 더 걱정됐다.
‘설마 백작이 저 안에서 죽진 않겠지?’
살라비안 교단 대주교도 그래서 아이템 하나 제대로 못 건졌는데….
대주교야 그나마 철두철미한 사람이라 은행에 보물을 맡겼다지만, 백작까지 그러리란 법은 없었다.
백작이 저 안에서 죽으면 아무것도 못 건진다!
[흡혈성의 지배권을 얻을 수 있지 않냐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그게 지금 중요해?’
[……]
태현은 초조하게 기다렸다.
힘내라 스카비오 백작!
난 널 믿는다!
이 화염을 극복하고 뚫고 나와라!
파아앗!
“크아아악! 블라디 이 비열하고 더러운 개자식 같으니!”
태현의 기도가 먹혔는지, 스카비오 백작과 부하들은 화염을 뚫고 달려 나오는 데에 성공했다.
온몸에 불이 붙었지만 각종 마법과 뱀파이어의 힘으로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스카비오 백작! 믿고 있었다고!”
태현 일행은 환호했다.
그래도 백작이라고 뚫고 나오는구나!
“???”
스카비오 백작과 부하들은 당황했다. 저게 무슨 반응?
“애들아! 목표 나왔다! 가서 잡자!”
“저희는 못 가는데요.”
“너무 뜨거워서….”
뱀파이어 플레이어들은 난색을 표했다.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러면 우리끼리만 가지 뭐.”
태현은 기사단원들을 이끌고 재빨리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 모습에 플레이어들은 순간 ‘여우와 두루미’ 옛날 이야기를 떠올렸다.
뭔가 속은 기분!
“활활 타는 놈이 스카비오 백작이다! 저놈을 잡아라!”
“이런 미친….”
중무장한 기사단이 달려들자, 스카비오 백작도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금 호위나 부하들도 화염 속에 갇혀 몇 명밖에 없는 상황!
스카비오 백작은 재빨리 변신해서 도망치려고 했다. 그걸 두고 볼 태현이 아니었다.
-아키서스의 저주!
상대방 발 묶는 데에는 이만한 스킬이 없다!
태현의 저주가 들어가자 스카비오 백작은 변신에 실패했다.
“크윽! 잠… 잠깐. 아키서스의 저주?”
스카비오 백작은 당황스러운 와중에도 자신이 무슨 저주에 당했는지 깨닫고 경악했다.
“블, 블라디 이런 미친놈 같으니! 붙어먹을 게 없어서 아키서스와 붙어먹어?”
“…….”
멀리서 조용히 있던 블라디는 스카비오 백작의 말에 공감했다.
물론 그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는 것만 빼고!
그러는 사이 태현은 스카비오 백작 앞에 도착했다.
“고맙다! 스카비오 백작! 화염을 뚫고 나와 줘서!”
진심이 듬뿍 담긴 말!
태현은 벌써 스카비오 백작의 위아래를 훑으며 견적을 뽑고 있었다.
“항복!”
“그래! 행복하군!”
“항복한다! 나 스카비오 백작은 정식으로 항복… 이 미친놈 좀 누가 말려줘!”
태현은 못 들은 척 검을 휘두르려고 했다. 스카비오 백작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그냥 여기서 잡으면 안 되나?”
[기사단 내에서 당신의 평가가 올라갑…]
“…후.”
“역시 폐하! 언데드는 즉시 처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기사단원들은 눈빛을 초롱초롱 빛내며 말했다.
“아냐. 포로로 잡자.”
태현은 말을 바꿨다.
기사단 내 평가를 떨어뜨리고 싶…기도 했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살려서 몸값을 뜯어내는 게 더 비싸게 나올지도 모르겠어.’
귀족들은 기본적으로 몸값이 비쌌다.
지금 스카비오 백작을 잡고 갖고 있는 걸 뜯어내는 것보다는, 포로로 잡은 다음 몸값을 뜯어내는 게 더 비쌀 것이다.
[기사단 내에서 당신의 평가가 올라갑…]
“역시 폐하! 언데드를 상대하면서도 명예를 지키는 그….”
“…….”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너희 혹시 아키서스 교단 믿니?”
“예? 저는 데메르….”
“저는 파이토스….”
“타이란….”
딱히 믿는 신과는 상관이 없었다. 기사단원들은 다 제각각 다른 신을 믿었다.
그냥 태현의 어마어마한 명성과 업적 때문!
너무 열심히 살아온 것이다.
“나는 귀족이다! 귀족다운 정식 대우를 원한다!”
악마 공작 아들도 우리에 넣어서 다니는 태현인데, 뱀파이어 귀족이라고 딱히 대우를 더 해주진 않았다.
게다가 태현은 아탈리 왕국 국왕이었다. 기사단원들은 화를 내며 백작을 욕했다.
“이분이 누구신지 아시고!”
“너 같은 섬의 백작은 감히 못 쳐다볼 아탈리 왕국의 국왕이시다!”
“???”
스카비오 백작은 기사단원들의 말을 듣고 당황했다.
“아탈리 왕국의 국왕이라고? 아니, 아탈리 왕국에서 왜 핏빛 군도를…! 이건 침략이다!”
외부의 침략에는 핏빛 군도의 모두가 손을 잡고 맞서는 게 규칙!
그걸 알기에 스카비오 백작은 분노해서 외쳤다.
“…사실 내가 주도한 일은 아니고 블라디가 주도한 일이지.”
태현은 은근슬쩍 책임을 돌렸다.
바지사장을 왜 뒀겠는가!
이럴 때 쓰려고 두는 거지!
그 말을 들은 스카비오 백작은 이를 갈며 블라디를 욕했다.
“비겁한 뱀파이어 같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