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28화
“아니 그건 내가 한 게 아니라….”
블라디는 변명하려고 했다.
사신부터 시작해서 회의하고 있는 뱀파이어들을 공격한 건 태현이지 자기가 아니다!
물론 그런 변명이 먹힐 리 없었다.
“와. 진짜 뻔뻔한 놈이군.”
“하긴 뱀파이어 놈 인성이 어디 가겠어.”
기사단원들이 뒤에서 블라디를 욕했다. 블라디는 억울했다.
‘다른 놈들이 그래도 너희들이 그러면 안 되지!’
아키서스 놈 같이 따라다니던 놈들이면 상황 알 거 아냐!
그렇지만 기사단원들은 태현을 영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태현이 한 못된 짓들은 모두 블라디가 꼬셔서 한 게 분명해!
블라디 입장에서는 억울했지만 어떻게 해명할 방법이 없었다.
“쓰레기 같은 놈….”
“?!?!”
심지어 사신으로 온 뱀파이어마저 나지막이 욕했다.
“이, 이놈. 사신으로 온 주제에 날 욕해?”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맞아. 안 그랬어.”
기사단원이 적의 사신을 편들어주는 기묘한 상황!
블라디는 울고 싶어졌다.
“그래서 쓰레기 님. 제 주인님의 제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방금 쓰레기라고… 아니다. 됐다….”
블라디는 따지려다가 포기했다. 따져봤자 기사단원들이랑 같이 ‘얘가 언제 그랬어?’ 하고 욕하겠지!
‘서럽다!’
블라디는 갑자기 서러워졌다.
세상에 아키서스 놈을 그리워하게 될 줄이야!
“무슨 제안이지?”
“우정의 증거로 몇 가지 선물만 주시면, 이 크네마 섬에서 물러나고 블라디… 아니, 쓰레기 님의 정당한 지배권을 인정하겠습니다.”
“…!”
도중에 굳이 쓰레기로 바꿔 부른 게 신경이 쓰였지만, 블라디는 그건 넘어갔다.
제안이 정말 파격적이었던 것이다.
지배권 인정!
핏빛 군도의 귀족 중 하나가 ‘크네마 섬의 새 백작은 블라디다!’라고 공언하는 건 어마어마한 의미였다.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핏빛 군도의 귀족 사회.
거기에 끼워준다는 것 아닌가.
‘물론 거기 모임에 참가할 일은 없겠지만….’
원래라면 ‘와! 내가 뱀파이어 귀족이 됐다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군!’ 하고 쫄래쫄래 갔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블라디도 머리가 있고 눈치가 있었다.
가면 죽는다!
죽진 않더라도 죽는 게 나을 정도로 망신당한다!
‘사신공격자 블라디, 타락자 블라디, 쓰레기 블라디 같은 이름으로 불리겠지….’
모임은 참가 안 하더라도 지배권 인정만 해도 어마어마한 대가였다. 블라디는 슬며시 물었다.
“뭘 선물로 줘야 하지…?”
“아니! 쓰레기 님! 적과 협상을 하시다니!”
챙챙챙!
기사단원들은 칼부터 뽑았다.
적과 싸우려고 하지 않고 협상을 하려고 하다니, 김태현 폐하는 널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아… 아니! 제안은 들어봐야 할 거 아닌가!”
기사단원들이 목에 칼을 겨누자 기겁한 블라디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 좀 들어보기만 하려는 거야!
사신은 그걸 보고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왜 저러는 거지? 쇼하는 건가?’
절대적인 권한을 가진 블라디가 부하들한테 저런 위협을 당하다니.
설마?
‘…! 제안을 받지 않으려고 위장을 하는 건가!’
부하들이 들고일어나서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를 대려고!
정말 사악하다, 블라디!
“저희는 많은 걸 원하지 않습니다. 영지에서 나온 토끼와 그 토끼 관련된 시설만 건네주시면 됩니다.”
“그런 거라면 당장에라도!”
스르릉-
목에 겨눠진 칼날이 더 파고들었다.
“…할 수 있지만 좀 고민해 보지. 아, 잠깐! 잠깐! 진짜 찔렀어! 진짜 찔렀다고! 야! 빼!”
그냥 겨눈 게 아니라 칼날이 파고드는 수준!
“그러면 전 제안을 전해드렸으니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신은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다가 성벽 위로 훌쩍 뛰어내렸다.
그걸 본 기사단원 중 하나가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이라도 공격할까요?”
“사신으로 온 놈이다.”
“뭐 어떻습니까. 쓰레기 님은 좋아하실 겁니다.”
* * *
[전설 던전을 공략했습니다!]
[칭호: 전설 던전의 공략자를 얻었습니다!]
[검술 스킬이…]
[기계공학 스킬이…]
[……]
[스킬 시간이 지나 <신성력이 부여된 거대 대포>가 사라집니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
현실에서 주는 상금뿐만이 아니라 게임 내에서도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승에서 두 팀이 들어간 던전은 전설급 던전. 이런 보상은 당연했다.
‘던전 깨느라 들인 시간에 비하면 손해긴 하지만….’
태현의 생각은 틀린 게 아니었다.
실제로 몇몇 판온 랭커들 중에서는 대회를 포기하고 캐릭터만 키우는 랭커들도 있었으니까.
-불확실한 대회 안 나가고 캐릭 레벨 올려서 개인 방송하는 게 훨씬 이득이야!
던전 대회든, 투기장 대회든 시간과 노력을 꽤나 많이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러는 과정에서 직업 퀘스트는 비교적 미뤄둘 수밖에 없는 것!
퀘스트란 퀘스트는 다 받으면서 대회도 같이 뛰는 태현 팀이 이상한 거였지, 보통 대회를 앞둔 플레이어들은 퀘스트를 미루고 대회에 집중했다.
‘그나마 보상이 되긴 하겠군.’
이렇게라도 보상이 들어와서 다행!
‘경험치는 좋긴 한데 크게 의미 없고, 스킬 경험치가 오른 건 무난하게 좋군. <파이토스의 일격> 스킬 레벨도 올랐나? 어차피 <알렉세오스의 권능> 끝나면 못 쓸 스킬인데….’
<파이토스의 일격>은 남의 교단 훈련장에 멋대로 들어가서 훔쳐 배워 온 스킬이었다.
훔친다고 훔쳐진 것도 웃겼지만, 제대로 쓰려면 <파이토스 교단의 훈련장 5단계>을 마저 클리어해야 했다.
태현이 대회에서 쓸 수 있었던 건 아낌없이 퍼주는 알렉세오스의 권능 덕분!
축복으로 스킬 쿨타임도 대폭 줄여줘, 권능으로 각종 전사 스킬 버프도 줘….
언젠가 <알렉세오스의 축복>과 <알렉세오스의 권능> 스킬들이 시간이 다 되어 사라지게 되면, 정말 마음이 아플 것 같았다.
‘음. 알렉세오스한테서 어떻게 더 연장받을 방법 없나….’
사실 아스비안 제국은 한 번 더 가긴 해야 했다.
황제 우이포아틀한테 가서 ‘제가 블랙 드래곤 목을 땄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아무리 거만하고 재수 없는 황제라도 기뻐서 태현한테 보상을 내려줄 것이다.
드래곤 싫어하는 걸로 따지면 제국에서 제일가는 게 바로 황제 우이포아틀!
‘그래. 한 번 더 뜯어내야지.’
[카르바노그가 아키서스의 권능 때문에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의아해합니다.]
‘아. 그것도 있었지?’
[……]
다만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흠. 우이포아틀이 자기 부서진 왕관 안 찾아왔냐고 화내진 않겠지….’
태현은 우이포아틀을 완전히 부활시킬 수 있는 <잊혀진 망자의 왕관>을 망치로 부순 다음 ‘오스턴 왕국 놈들이 훔쳐갔네요!’라고 거짓말을 한 상태였다.
거기에다가 ‘제가 찾아오겠습니다!’까지 한 상황.
우이포아틀이 슬슬 ‘너 내 물건 안 찾아오냐??’라고 물어볼 때가 되긴 했다.
‘뭐 적당히 둘러대면 되니까.’
이제 황제도 만만해 보였다. 태현은 머릿속에서 계획을 정리했다.
‘할 게 많군. 핏빛 군도 퀘스트 마무리 짓고, 에랑스 왕국으로 가서 은행에 있는 아탈리 왕궁 보물 돌려달라고 하고, 세계수에 연결된 마계도 좀 털고 싶긴 한데… 그건 나중에 하고 그 다음은 아스비안 제국부터 가야겠지….’
그러면서 태현은 아이템을 확인했다.
대회 보상으로 뭐가 나왔으려나?
잘 손질된 전설의 램프:
내구력 1/1
<램프의 요정 소환> 사용 가능. 한 번 사용할 경우 파괴됨.
던전에 살고 있는 강력한 정령을 소환할 수 있는 램프다. 던전을 공략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
태현은 특이한 아이템에 의아해했다.
‘던전 공략 아이템인가?’
설명을 보아하니 던전 공략할 때 쓰라는 것 같은데….
‘던전은 어지간하면 내 힘으로도 깰 수 있는데.’
좀 미묘한 아이템이다!
태현은 다른 아이템으로 넘어갔다.
대포 소환의 반지:
내구력 100/100
<신성력이 부여된 거대 대포>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거대 대포가 파괴될 경우 일정 시간이 지나야 다시 소환할 수 있습니다.
아니…!
이건…!
태현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였다. 지금 그가 제대로 본 것인가?
대회에서 태현이 <기계장치로부터 온 신>을 사용해 불러냈던 <신성력이 부여된 거대 대포>!
스킬 시간이 지나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대포!
태현은 바로 소환했다.
-소환!
철커덩! 철커덩!
[<신성력이 부여된 거대 대포>가 소환됩니다.]
[부여된 신성력이 약합니다. <신성력이 부여된 거대 대포>의 힘이 약해집니다.]
[스킬의 힘이 없습니다. <신성력이 부여된 거대 대포>의 힘이…]
아무래도 태현이 불러냈던 때보다는 많이 약해졌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소환 완료.
“대포야!”
태현은 대포를 왈칵 껴안았다.
녀석! 보고 싶었잖아!
-…….
-…….
-…….
용용이, 흑흑이, 골골이는 모두 차가운 눈빛으로 대포를 쳐다보았다.
저 굴러온 돌은 뭐야?
-명령 부탁. 명령 부탁.
“녀석. 아키서스 포병대 쪽으로 가 있으렴.”
<악마가 빙의된 대포>, <아스비안 제국 거대 대포>, <신성력이 부여된 거대 대포>까지.
아키서스 포병대는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주인이여. 왜 저 대포만….
“하하. 기분 탓이겠지.”
태현은 매우 기분이 좋아진 얼굴로 일어섰다. 마침 다른 일행들도 줄줄이 접속하고 있었다.
“성벽 위로 가보자. 블라디가 많이 망치지 않았으면 좋겠군.”
흡혈성 안을 보니 아직 점령을 뺏기지는 않은 것 같았다.
뺏겼으면 성벽 위에 매달아 놓으려고 했는데 다행이야!
[……]
카르바노그의 시선을 받으며, 태현은 성벽 위를 향했다.
* * *
-카르릉!
[이 쓰레기 놈!이라고 카르바노그가 전해줍니다.]
토왕이는 블라디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카르릉거렸다.
블라디가 전해 준 제안 때문이었다.
“폐, 폐하. 이건 정말 좋은 제안….”
날이면 날마다 오는 제안이 아니다! 블라디는 필사적으로 태현을 설득하려고 했다.
“사람이 좀 타협할 수도 있어야지, 너무 꼿꼿하게만 굴면 부러질 수도 있습니다. 폐하.”
이건 정말 백작이 많이 양보한 거였다.
여기서 더 체면을 망치면 백작들은 전력을 다해 덤벼오리라!
자기 섬에 있는 전사들까지 부를 수 있었다.
다행히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이해했다. 블라디.”
“폐하…!”
블라디는 처음으로 진한 감동을 느꼈다.
아키서스는 머리가 없는 신이 아니었다. 오히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신이었지!
“저기 뱀파이어 백작들한테 그렇게 협박하란 뜻이겠지?”
“네?”
“가서 저기 밑에 있는 백작들한테 전해주고 와라. 타협하지 않고 꼿꼿하게 버티면 허리를 부러뜨려 버린다고.”
뭔가 좀 이상하게 알아들은 태현!
블라디는 기겁해서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뭐? 더 강하게 협박하라고?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다. 플레이어들을 불러 모아라! 공격하러 가자!”
“와아아아아!”
“역시 폐하셔! 가차 없지!”
기사단원들은 신이 나서 날뛰었다.
언데드 토벌 전문인 에랑스 왕국 제4 기사단, <은빛 검 기사단>에서 태현의 인기는 거의 아이돌 수준!
[<은빛 검 기사단> 내 당신의 평판이 최고치에 도달합니다!]
[언데드와 타협하지 않고 토벌을 고집하는 그 자세에서 기사단원들은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기사단원들의 불만도가 0으로 떨어집니다.]
[기사단원들은 어지간해서는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당신을 믿고 따라올 것입니다.]
“…….”
태현은 검을 뽑고 외쳤다가 메시지창을 보고 당황해서 고개를 돌렸다.
아니….
‘이런 찰거머리 같은 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