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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827화 (827/1,826)

§ 나는 될놈이다 827화

이세연은 좌절했다.

솔직히 진 이상 어떤 이유든 간에 화가 나고 분할 것 같았지만….

저거에 지다니!

아니 좀 멀쩡한 거에 질 순 없나?

“흑흑. 나 잘했지?”

“그래그래. 잘했다.”

“내가 대포로 쏘아진 덕분에….”

“쏜 내가 할 말은 아니긴 한데, 그렇게 말하고 나면 좀 슬프지 않냐?”

태현은 케인을 보며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대회에서 자기가 한 일을 이야기할 때 대포에서 쏘아진 걸 이야기하면 좀 슬프지 않나?

터벅터벅-

그러는 사이 캡슐에서 나온 이세연이 태현 일행 쪽으로 걸어왔다.

그걸 본 태현이 말했다.

“조심해라. 우릴 공격할지도 몰라.”

“…….”

다 들린다!

그러나 이세연은 정신줄을 붙잡았다. 전 세계 사람들 앞에서 태현을 패는 걸 방송할 수는 없었다.

“우승… 까득, 축하, 까득, 해.”

말 사이에 들리는 이 가는 소리!

태현은 그 말을 듣고 조용히 이세연을 쳐다보았다. 이세연은 그 모습에 불안해졌다.

이 자식이 대체 무슨 짓으로 사람 속을 뒤집으려고…?

태현은 이세연이 내민 손을 맞잡고 악수했다. 그리고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

“좋은 승부였어.”

“…?!”

이세연보다 태현 일행이 더 놀랐다.

‘내가 이겼어! 내가 이겼다고! 이 패배자야!’ 정도까진 아니라도 도발이나 조롱은 기본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최상윤은 놀라 물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어디 아프냐? 협박 받았냐?”

“이세연이 협박했어? 헉. 혹시 총으로 겨누고 있나?”

“아니. 그냥 이렇게 하면 이세연이 제일 화날 것 같아서.”

어설픈 조롱이나 도발은 오히려 이세연을 침착하게 만들어줄 뿐.

역의 역으로 간다!

“…….”

“…….”

일행은 뜨뜻미지근한 시선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아니 사람이 뭐 저렇게까지 하냐?

“…침착하게 대응하면 이세연이 더 화낸다고? 그게 말이 돼?”

케인은 납득이 안 간다는 듯이 되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 안 되는 둘의 세계!

* * *

“언니! 멋있었어요!”

“주장. 주장은 최선을 다했습니다.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이세연이 악수를 하고 오자 팀원들이 우르르 와서 격려를 해줬다.

방금 이세연과 태현이 악수를 하는 장면은 스포츠맨십 그 자체였다.

승자와 패자가 서로를 격려하는 훈훈한….

부들부들!

“??”

“왜 그러십니까?”

“저… 저게 날 더 도발하려고… 일부러… 착한 척을…! 가증스러워!”

이세연은 주먹을 쥐었다.

태현이 갑자기 미쳐서 저렇게 예의 바르게 굴 리 없었다.

분명히 더 엿 먹이려고 저런 게 분명해!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맞아요. 언니. 그건 아닐 거예요.”

“너희들이 뭘 알아!”

* * *

“아이고… 아이고….”

유 회장은 탄식했다.

결국 유성 게임단이 진 것이다.

아까워 죽겠다!

우승을 못한 것보다 김태현 놈한테 졌다는 게 더 아쉬웠다.

“어르신. 유성 게임단 팬이셨습니까?”

유 회장 옆에서 낚싯대를 기울이고 있던 이중섭이 의아해했다.

명예퇴직 당한 아저씨들끼리 모인 생계형 플레이어 길드, <가늘고 길게> 길마 이중섭!

눈송이 물고기만 찾아댄 인연으로 유 회장과 꽤나 친해진 그였다.

그리고 이중섭은 유 회장을 유성 그룹에서 잘린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그… 그렇지.”

“허. 어르신도 참 대단하십니다. 저 같으면 유성의 ‘유’자만 봐도 치가 떨릴 것 같은데.”

직장에서 잘린 원한은 깊다!

물론 지금은 플레이어로 제2의 인생을 찾아 잘살고 있긴 하지만, 잘렸을 때 충격은 어디 가지 않았다.

“하긴 오래 일하셨을 테니 바로 미워하긴 쉽지 않겠죠.”

이중섭은 알아서 납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일이란 건 원래 딱 잘라지지 않는 법.

“어르신. 기운 내시고 눈송이 물고기나 잡으러 갑시다.”

“…좀 다른 거 잡으면 안 되나?”

유 회장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낚시를 좋아해 주는 건 고마웠다.

<가늘고 길게>의 길드원들은 대체로 아저씨들이다 보니 낚시를 다 좋아했던 것이다.

고렙 이상의 플레이어들이 유 회장을 도와주다 보니 유 회장의 퀘스트도 몇 배는 쉬워졌다.

우연히 만난 인연치고는 정말 괜찮은 인연이었다. 게다가 길마 이중섭도 사람이 서글서글하니 괜찮았고….

‘눈송이 물고기만 찾는 것만 빼고!’

눈송이 물고기만 잡다 보면 다른 물고기도 좀 욕심을 낼 줄 알았는데 사람이 정말 한결같다!

“사람이 한 우물만 파야죠. 하하.”

“…….”

“허. 김태현 선수가 인터뷰하네요. 이야. 참 잘생겼네. 사람 참 훤칠하니 보기 좋지 않습니까? 예의도 바르고요.”

“예의가… 발라?!”

“제가 딸이 있었다면 딱 사위 삼고 싶은 놈인데 말이죠.”

“그, 그래.”

취향은 존중한다!

이중섭은 우승 시상식 영상을 켜놓고 감탄하며 쳐다봤다.

태현 팀이 인터뷰를 마치고 우승컵을 들어 올린 뒤 다음 투기장 리그를 대비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었다.

“참 대단한 친구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자네 자식 있나?”

속이 쓰릴 대로 쓰려진 유 회장은 은근슬쩍 주제를 돌렸다.

“아. 아들 놈 하나 있습니다.”

“오… 아들도 같이 하나?”

“하하. 걔는 바빠서 가끔 들어옵니다. 가끔 들어오면 제가 도와주고 그러죠.”

“바쁘다니 잘됐군. 무슨 일이길래?”

“취업 준비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아들놈도 이번에 유성 그룹에 도전하네요.”

“…!”

유 회장은 움찔했다.

“어, 어느 분야에?”

“유성전자일 겁니다.”

“그, 그렇군.”

“어르신, 혹시 뭐 해주실 조언이라도 있습니까?”

“그… 글쎄.”

유 회장은 다짐했다. 절대 그의 정체를 밝히지 말아야겠다고!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는 사람이니 한 번쯤 기회를 줬을지도 모르지만, 유 회장은 이런 면에서는 칼 같았다.

‘그래도 들어오면 신경은 써줘야겠군.’

그렇게 다짐하는 유 회장이었다.

* * *

“휴가다!”

“와아아!”

호텔로 돌아온 태현 일행은 신나서 우승을 자축했다.

우승했다고 바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아직 일주일 넘게 호텔이 잡혀 있었고, 이제 남은 시간 동안 근처를 느긋하게 관광할 수 있었다.

결승전 전에는 긴장되고 초조해서 제대로 관광도 못 했지만(사실 판온하느라 못 한 것도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것!

우승한 뒤의 휴식만큼 즐거운 것도 없었다.

케인은 벌써 어떤 옷을 입고 나가야 팬들한테 어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케인은 옆에 있는 이다비를 보고 웃었다. 이다비도 끙끙대며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녀석!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군!’

케인은 이다비를 쿡 찌르며 물었다.

“너도 그 고민을 하고 있구나?”

“앗? 어떻게 아셨어요?”

“척 보면 척이지.”

“태, 태현 님한테는 말하지 말아주세요.”

“당연하지. 김태현이 알아서 좋을 게 없잖아!”

“그렇죠? 태현 님한테 깜짝 선물 하려고 하는데… 미리 알면 좋을 게 하나도 없잖아요.”

“…어, 어. 그렇지. 나, 나도 고민하고 있었어!”

케인은 황급히 말을 틀었다.

‘배신자!’

사실 배신이고 뭐고 없긴 했지만!

케인은 다른 일행들을 훑어보았다. 일행들은 어마어마한 결승 상금으로 뭘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흠. 부모님한테 뭘 사다드려야….”

“부모님께서 기뻐하실 겁니다!”

“…….”

케인은 갑자기 매우 부끄러워졌다. 옆에서 최상윤이 희한하다는 듯이 물었다.

“넌 가족 선물 다 골랐냐? 김태현 선물 고를 여유까지 있는 거 보니….”

“…물론이지!”

케인은 방금 있었던 일은 말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다들 고생 많았다. 이제 즐기면 돼.”

“와아아아! 주장! 주장! 주장!”

평소에는 볼 수 없는 태현의 풀어진 태도에 모두 감동했다.

이세연을 이기니까 마음도 관대해지는구나!

“그렇지만 일단 접속부터 하고!”

“와아아….”

‘와아아아!’에서 ‘와아아….’로 바로 바뀌는 마술!

케인은 믿기지가 않아 물었다.

“아… 아니. 야. 그래도… 우리… 우승… 휴가….”

“나도 알아. 놀고 싶은 거. 하지만 그렇게 현실을 열심히 살면 게임은 언제 하겠니?”

“???”

뭔가 반대 같은데?

“지금 흡혈성이 위험할 수 있다고. 빨리 가서 흡혈성만 마무리짓자! 그러면 휴가 준다!”

“크으윽….”

“으윽….”

일행은 울상이 되어 캡슐에 들어갔다. 확실히 흡혈성 퀘스트가 긴박한 상황이라 따질 수도 없었던 것이다.

* * *

“음. 망했군.”

블라디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성벽 위를 걸어 다녔다.

“음… 역시 망했어.”

아무리 생각해도 승산 없는 상황!

물론 성벽 내에는 기세등등한 뱀파이어 모험가들과 기사단, 아키서스 포병대 등등이 있었지만….

핏빛 군도의 뱀파이어 귀족들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모욕적으로 공격당하고 쫓겨났으니 이제 전력을 다해서 송곳니를 들이대리라.

그리고 그들의 최우선 목표는 바로 블라디가 될 것이다.

아! 너무 무섭다!

‘으… 도망치고 싶은데….’

악귀 같은 아키서스 놈이 없을 때가 바로 기회였다.

그런데 도망칠 기회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기사단부터 아키서스 포병대까지 철저하게 블라디를 쫓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태현의 명령!

누가 아키서스 아니랄까 봐 사람 붙잡고 괴롭히는 데에는 아주 철저했다.

‘그냥 몇 대 맞을 각오하고 도망칠까?’

뒤에서 느껴지는 기사단원과 포병대원의 시선을 느끼며, 블라디는 고민했다.

몇 대 맞으면서 도망치면….

‘뼈와 살이 분리될 거 같다….’

참고 버티기에는 너무 높은 데미지!

슈우우우-

“?”

블라디는 움찔했다. 멀리서 마력이 담긴 안개가 날아오고 있었다. 이런 걸 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안개 변신은 뱀파이어의 종특!

“습… 습… 습격이다!”

“뭐라고?!”

블라디를 쫓아다니던 기사단원들이 재빨리 무기를 뽑았다. 블라디는 안개를 가리키며 호들갑을 떨었다.

“저기! 저기를 봐라. 날 죽이려고 암살자가 오고 있다!”

뱀파이어들끼리의 공성전은 화려하고 격렬하지 않았다.

마법부터 변신까지 하도 쓸 수 있는 방법이 많다 보니 이런 식으로 뒤를 치는 걸 선호했다.

블라디가 기겁하는 것도 당연했다.

“날… 날 지켜라! 날 지켜야 한다! 날 지켜주지 않으면….”

“알겠으니 좀 조용히 해라. 뱀파이어.”

기사단원들이 짜증을 냈다.

태현이야 대륙을 울리는 영웅이었지만 블라디는 그냥 한낱 뱀파이어일 뿐이었다.

“암살이 맞나?”

“맞다니까! 저 안개를 봐라!”

“위협이 느껴지지 않는데….”

기사단원들은 안개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마력이 담기긴 했지만, 사악한 땅에서는 마력이 담긴 안개 정도는 흔히 보였다.

중요한 건 살기가 없다는 것!

기사단원들은 블라디를 의심쩍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놈 수작부리는 거 아냐?

“이 뱀파이어 놈 혹시 도망치려고….”

파앗!

그 순간 안개가 뱀파이어로 변하더니 성벽 위에 착지했다.

“봐라! 보라고! 암살자잖아!”

“…?”

착지한 뱀파이어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당황한 표정으로 블라디를 쳐다보았다.

“스카비오 백작님께서 저를 보내셨습니다. 블라디 님. 스카비오 백작님께서는 협상을 원하십니다.”

뱀파이어가 여기 온 이유는 암살이 아닌 협상!

그걸 깨달은 블라디는 헛기침을 했다.

“크흠. 크흐음…! 스카비오 백작이 그래도 머리가 있군!”

기사단원들은 한심하다는 듯이 블라디를 쳐다보았다.

이제 와서 그런다고 바닥에 떨어진 체면이 주워지냐?

“이 나를 존중해서 사신을 보내다니.”

“참고로 절 공격하면 앞으로 어떤 협상도 없을 겁니다. 블라디 님.”

“내가 왜 사신을 공격하겠나?”

“…….”

사신은 ‘네가 감히 그런 소리를 해?’라는 눈빛으로 블라디를 노려보았다.

‘아….’

블라디는 그제야 기억이 났다.

사신들에게 신나게 쏴댔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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