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22화
괴수 몬스터는 왜 강한가?
체력, 방어력, 공격력 등등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크기는?
크기는 장점과 단점이 모두 있었다.
크면 공격력이 올라가지만 그만큼 커져서 피할 공격도 많이 맞게 됐다.
그렇다면 작지만 엄청나게 강력한 괴수가 있다면 어떨까?
“그게 바로 크네마 백작이 만든 고대 뱀파이어 토끼 군단이다! 놈은 아주 영리했지. 토끼의 민첩함과 영리함, 그리고 번식 속도까지!”
안달토 백작은 토끼가 아주 강한 괴수가 될 수 있는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빠르고 영리한 데다가 작았다. 어둠을 틈타 공격한다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게다가 빨리 불어났다.
크네마 백작이 괜히 토끼를 고른 게 아닌 것!
하지만 자리에 있는 뱀파이어들이 모두 안달토 백작처럼 이성을 잃어버리진 않았다.
아직 정신줄을 붙잡고 있던 뱀파이어들이 손을 들고 말했다.
“하지만 백작님. 기왕 고대 뱀파이어의 피를 이어받은 괴수를 만들 거라면 다른 몬스터가 낫지 않았을까요?”
“맞습니다. 날아다닐 수 있는 와이번이라거나… 아니면 늑대라거나….”
“흥. 잘 알지도 못하는 소리 하지 마라. 늑대와 토끼가 싸우면 누가 이길 거 같나?”
“당연히 늑대가 이기죠…?”
“아니다. 얼핏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겠지. 하지만 늑대와 잘 훈련 받은 토끼가 싸우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토끼가 좌우 위빙으로 공격을 피하고 늑대 밑으로 뛰어 들어가면 능히 늑대의 배를 공격해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이다.”
“…예?”
“토끼가 그만큼 강하다.”
이게 무슨 ‘드래곤? 그거 뒤에서 목 조르면 발톱 안 닿으니까 쉽게 잡지~’ 같은 소리?
“토끼! 아! 얼마나 무서운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크네마 백작이 토끼 좋아서 고른 거 같은데….’
뱀파이어들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을 다물었다.
전투를 앞둔 안달토 백작은 특히 난폭했다. 괜히 아니라고 말했다가 좋을 게 없었다.
“전부 전투 준비해라. 흡혈성으로 간다!”
눈치 없는 뱀파이어 하나가 손을 들고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그러면 토끼하고 와이번하고 싸우면 누가 이깁….”
“야. 그만해.”
“넌 왜 계속 묻냐?”
“좋은 걸 물었다. 얼핏 보면 와이번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되겠지만 토끼가 와이번의 눈을 노리고….”
다른 부하들은 동료를 노려봤다.
왜 쓸데없는 질문을 해서 저 지겨운 헛소리를 들어야 하나!
* * *
태현은 흡혈성의 옥좌에 앉아 토왕이를 쓰다듬었다.
처음에는 카르릉대던 토왕이도 의외로 편했는지 태현의 무릎 위에서 가릉대고 있었다.
“흠. 그러니까 네 능력이 상대방 위압시키는 것과… <고대 뱀파이어 토끼>를 불리는 거라 말이지?”
토왕이의 능력은 심플했다.
혈통으로 인한 각종 상태 이상 스킬들.
그리고 크네마 백작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준 숫자 불리는 번식능력!
“잠깐. 너 혼자잖아?”
혼자서 어떻게 늘어나?
[토왕… 아니, <고대 뱀파이어 토끼들의 왕>은 혼자서도 번식할 수 있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해줍니다.]
‘그냥 너도 토왕이라고 해라.’
[싫다고 카르바노그가 고개를 흔듭니다.]
너무 촌스러!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토왕이라고 불렀다.
‘혼자서 늘어나다니. 신기한데.’
슬라임처럼 나눠지나?
아니면 버섯처럼 포자를 뿌리나?
사실 그런 자세한 원리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토왕이가 숫자를 불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언데드 토끼들은 꽤 쓸 만했는데 고대 뱀파이어 토끼들도 좋으려나….’
얼마나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척후용 몬스터 군단으로 써먹기 괜찮지 않을까?
기왕 손에 넣었는데 안 쓰기는 또 아쉬우니, 태현은 한 번 써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늘어나?”
[배불리 먹이면 된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해줍니다.]
“그거야 쉽… 잠깐. 설마….”
태현은 아까 사육장 설명 창을 떠올리고 움찔했다.
분명 거기 사료가 보통이 아니었는데….
-카릉.
[격에 맞지 않는 건 안 먹는다고 합니다.]
“…그, 그래.”
-카릉?
[그래서 밥은 언제 주냐고…]
“나중에!”
태현은 말을 회피했다. 지금 그 재료를 어떻게 구해주니?
“김태현!”
성 앞에 도착한 일행의 목소리가 들렸다. 태현은 성벽 위로 올라갔다.
“케인!”
“김태현!”
“…근데 그 뒤에 애들은 누구니?”
못 보던 플레이어들이 한가득!
“내 팬!”
케인은 당당하게,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뒤에 있던 플레이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요.”
“…?”
“저는 케인 님 팬이 아니라 태현 님 팬인데요. 그러니까 ‘네’ 팬이라고 해주셔야….”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발음을 조심해 주세요.”
“…….”
케인은 울컥했다.
이 자식들이 아까는 같이 끼워달라고 그렇게 빌더니…!
* * *
“케인 님! 제발 저희도 퀘스트에 참가시켜주세요!”
“무슨 퀘스트든 좋습니다! 잡일도 좋아요!”
“한 번만 같이 해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해안가 쪽으로 몰려온 플레이어들은 무릎을 꿇고 빌었다.
케인은 당황했다. 뱀파이어들 중에 꽤 고렙 같아 보이는 이들도 몇 명 있었던 것이다.
‘아니 저 레벨에 무슨 잡일을…?’
저 정도 레벨이면 그냥 자기 퀘스트를 하는 게 이득이었다. 굳이 뭔 퀘스트인지도 모르는 태현 쪽으로 와서 끼려고 하는 것보다.
계산이나 이득이 아닌 순수한 팬심!
-태현하고 같이 뭔가 해보고 싶다!
-솔직히 이번 기회 아니면 김태현을 핏빛 군도에서 볼 일 없을 것 같다!!
-김태현이 뭐가 아쉬워서 이런 어둡고 침침하고 냄새나는 곳에 또 오겠….
-야. 적당히 해라. 슬퍼지잖아.
어쨌든 이런 뱀파이어 플레이어들이 무보수로 퀘스트에 참가한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케인은 다른 사람들과 상담을 마치고 외쳤다.
“좋아! 내가 허락한다! 같이 퀘스트를 하자!”
“와아아아! 케인! 케인! 케인!”
“내가 누구냐!”
“케인! 케인! 케인!”
“내 이름을 더 외쳐라!”
“케인! 케인! 케인!”
“더 크게!”
“작작해! 작작해!”
* * *
‘생각해 보니 그때부터 시선이 좀 차가웠던 것 같은데….’
그나마 있던 몇몇 케인 팬도 부끄러워서 ‘나 케인 팬 아닌데?? 나 정수혁 팬인데???’ 하고 슬며시 태세전환을 하게 만든 행동!
“그래서 쟤네가 누군데?”
“…네 팬!”
그걸 또 바꿔서 말하고 있었다. 일행은 짠한 눈빛으로 케인을 쳐다보았다.
“아. 그럼 들어오시죠.”
태현은 선선히 들어오라고 허락했다. 플레이어들은 우르르 흡혈성 안으로 들어왔다.
태현이 영주가 된 덕분에 쓸데없는 저주 같은 건 없었다.
“와. 여기가 그 크네마 백작의 흡혈성이야?”
“거기 침입불가 아니었나? 김태현은 어떻게 들어온 거지?”
“김태현이잖아.”
“하긴.”
별다른 설명이나 추측 필요 없이 ‘김태현이잖아’로 끝나버린 대화!
“…??”
최상윤은 뱀파이어 플레이어들의 대화를 들으며 의아해했다.
방금 대화 뭔가 이상하지 않았나?
뱀파이어 플레이어들은 처음 보는 크네마 백작의 흡혈성에 놀라 웅성거렸다.
“태현 님!”
“…?”
“오는 길에 친구한테 들었는데, 스카비오 백작이 군대를 이끌고 여기 오고 있답니다!”
“어. 그거 말해줘도 괜찮아?”
“괜찮습니다!”
친구 따위는 바로 팔아먹는 쿨함!
친구야, 네 퀘스트보다는 내 퀘스트가 중요해!
“태현 님! 안달토 백작도….”
“안달토 백작이 끌고 오는 전사들은….”
“스카비오 백작의 진영은 지금 어디 어디 있냐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뱀파이어 플레이어들은 신이 나서 정보를 쏟아냈다.
핏빛 군도가 좁다 보니 남이 뭐 하는지는 가만히 있어도 귀에 들어오는 법!
‘역시 <흡혈성의 거대한 심장>을 노리는 건가?’
태현은 토왕이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 말고는 답이 보이지 않았다.
[흡혈성의 거대한 심장-흡혈성의 중앙에 있는 거대한 심장입니다. 이 흡혈성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의 근원입니다.]
아무도 없는데도 이 성에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아이템!
뱀파이어들이라면 이걸 탐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내가 미리 먹어버리면 안 되겠지?’
[카르바노그가 미친놈 보듯이 쳐다봅니다.]
‘음. 하긴 뱀파이어도 아닌데 괜히 심장 먹었다가 탈나면 골치 아프겠지… 흑흑이한테 한 입 먹여볼까….’
오싹!
흑흑이는 몸을 떨었다. 성 안이 추운지 이상하게 싸늘했다.
“앗. 태현 님. 그 토끼는 뭐에요!?”
“아. 이거? 성에 있는 거 주웠어.”
이다비가 와서 귀엽다는 듯이 토왕을 쓰다듬으려고 했다. 토왕은 이빨을 드러내고 위협하려 했다.
-카르릉….
“야. 뭐하냐?”
태현은 토왕이의 뒷목을 붙잡고 노려보았다. 지금 이게 어디서 누구한테 성질이야?
[카르바노그가 아키서스해버린다고 협박하라고 조언합니다.]
-카르릉….
토왕이는 주눅 든 표정으로 얌전해졌다. 태현이 어느 정도로 강한 건지 알아챈 것이다.
“너… 너무 귀여운데요…?!”
이다비는 토왕이를 마구잡이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카르릉! 카릉!
“토끼 좋아했어? 집에서 기르지 그래?”
“아… 아뇨.”
“왜? 번거로워서?”
“길러서 잡아먹을 수 있는 동물 아니면 굳이….”
“…….”
-카르릉!!
“아, 아니야! 널 잡아먹겠다는 게 아니야…!”
그러나 이미 신뢰는 물 건너간 상태!
토왕이는 재빨리 태현의 등 뒤로 타고 돌아가 이다비를 피했다.
“잡아먹을 생각 없는데…!”
이다비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러나 토왕이는 끝까지 피했다.
“나중에 만지게 해줄게. 일단 플레이어들부터 배치해야겠다.”
태현이 <흡혈성의 거대한 심장>을 어떻게 쓸지는 나중에 확인해 보고 결정해도 됐다.
중요한 건 일단 공격을 막아내는 일!
기껏 흡혈성을 먹었는데 제대로 방어를 못해서 뺏기면 그것만큼 웃긴 일도 없었다.
[현재 <흡혈성의 거대한 심장>의 힘을 사용해서 흡혈성 전체에 마법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흡혈성의 거대한 심장>의 힘은 62%입니다. 회복되기 전에 많은 힘을 소모할 경우 심장에 과부하가 걸릴 수 있습니다.]
‘심장 상태가 왜 이러지?’
[성문을 부순 걸 복구하는 것 때문 아닐까 하고 카르바노그가 추측합니다.]
‘아….’
태현은 납득했다.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여러분! 성벽 위로! 지금부터 싸울 준비를 하겠습니다!”
태현이 외치자 그렇게 웅성거리던 플레이어들이 싹 조용해졌다.
말 한마디로 좌중을 휘어잡을 수 있는 카리스마!
‘우리가 싸우면 뭐 해줄 거에요’, ‘이거 무슨 퀘스트에요’ 같은 당연한 질문도 나오지 않았다.
김태현이 말하면 한다!
김태현이 시키면 한다!
일사불란 그 자체였다.
‘방어 시설이 좀 애매하긴 한데, 그건 플레이어들 공격하고 아키서스 포병대로 퉁쳐야겠군.’
흡혈성이 강한 건 성을 감싸고 있는 마법적 능력 때문이었지, 그 시설 때문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관리되지 않은 탓에 망루 같은 방어 시설들은 작동이 안 되거나 내구도가 낮았다.
태현 일행 혼자서 이 거대한 성을 막아내려면 힘들었겠지만, 다행히 태현에게는 공짜 노동력이 생겼다.
“와아아아!”
플레이어들은 태현이 지시하는 대로 성벽 곳곳에 자리 잡고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심장이 회복되는 동안 마법을 쓰지 않고도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전력!
동시에 태현은 끌고 온 경비대와 기사단들을 불렀다.
“폐하! 저희는 어디를 지키면 됩니까? 성문 뒤에서 대기하고 있을까요?”
기사들은 기대된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성문 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성문이 부서지는 순간 돌격!
수비 시 기사들이 즐겨 쓰는 전략이었다. 간신히 성문을 뚫고 들어오는 적들을 그대로 짓밟아줄 수 있었다.
“아니야. 너희들은 <흡혈성의 거대한 심장>을 지켜야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저길 노리고 들어오는 놈들이 있을 거야.”
“과연…! 역시 폐하십니다! 적들을 완전히 읽고 계시군요!”
-카르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