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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819화 (819/1,826)

§ 나는 될놈이다 819화

“흠. 별거 아니군.”

“으아… 으아아….”

블라디는 머리를 감싸 쥐고서 절규했다.

나는 그저 호구 뱀파이어들을 속이면서 착하게 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왜 내게 이런 시련을!

살라비안을 배반한 탓인가!?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사신들이 도망치는 걸 느긋하게 구경하고 나서 말했다.

“좋아. 한동안 준비하느라 안 올 테니까 이 근처 점령 좀 해볼까.”

영지를 얻기 위해 싸우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영지에서 나오는 이익 때문!

만약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라면 거길 갖기 위해 싸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뭐가 나와야 싸우지….

태현은 이 주변에서 쓸 만한 게 뭐가 있나 찾아볼 생각이었다.

‘크게 안 바라고 본전 정도만 나왔으면 좋겠는데.’

어차피 크네마 섬을 얻으려는 데에는 거창한 목적이 있는 게 아니었다.

아키서스 신앙 퍼뜨리기+겸사겸사 뱀파이어 전사들도 얻기 정도?

아탈리 왕국의 일부만 점령하고 있는 태현 입장에서는 핏빛 군도처럼 멀지 않은 섬에 영지를 하나 더 두는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만약의 상황에서 지원군을 불러올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런 걸 하려면 뭐라도 좀 있어야….’

영지가 좀 돈이 있고 풍족해야 뱀파이어 전사들을 팍팍 뽑아 군대로 쓰지, 아무것도 없으면 잘 뽑히지도 않았다.

[영지에 돈이 없어 뱀파이어들이 도망칩니다.]

[영지에 돈이 없어 뱀파이어들이 불만을 가집니다.]

…같은 메시지나 뜨겠지!

“음….”

“으으음….”

“흐으으음….”

태현 일행은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뭐 쓸 만한 게 없나 찾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와 뭐 이런 땅이 있냐?

“핏빛 군도는 원래 이래?”

“뱀파이어 땅이 원래 이렇지. 뭘 바란 거야? 햇빛 잘 들고 곡식 잘 자라는 땅을 기대했어?”

에반젤린은 어이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애초에 핏빛 군도는 햇빛이 들지 않는 뱀파이어 특화 땅.

그만큼 농사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좀 심한데. 음… 아키서스 신앙으로 어떻게 되려나….”

[햇빛이 들지 않아 농사에 페널티를 받습니다.]

[……]

-확인.

음산한 핏빛 버섯:

햇빛이 들지 않는 땅에서 뱀파이어들의 기운을 받고 자란….

비쩍 마른 B급 젖소:

피를 많이 빨려서 마른 젖소다. 우유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목장도 별로였고, 그나마 지역에서만 나오는 시약 몇 개 정도가 전부!

“아. 그래도 포도는 맛있어.”

“뭐? 정말?”

태현은 에반젤린의 말을 미심쩍어하며 확인했다. 포도가 맛있다니.

‘혹시 뱀파이어라 미각도 맛이 갔나?’

[괴식 요리의 길을 걷는 아키서스가 할 소리는 아닌 것 같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피를 받고 자란 아름다운 핏빛 포도:

핏빛 군도의 특산물인 붉은 포도다. 피를 많이 먹고 자랄수록 더 감칠맛 있는 맛을 낸다.

“어라? 진짜잖아?”

“…내 말이 그렇게 안 믿기니?”

에반젤린의 말은 못 들은 척 넘기고 태현은 이다비와 고민했다.

“포도는 쓸 만한 거 같은데, 어떻게 하지?”

“포도로 또 장사할 만한 아이템 만들어볼까요? 파워 워리어 표 팝콘처럼.”

“좋은 생각이긴 한데 괜찮은 게 있나?”

“와인 어때요? 골짜기에서 팔면 사람들이 마시고 취해서 더 지를 것 같은데요.”

지금도 모자라 더 긁어모으려는 둘!

일행은 그 철저함에 전율했다.

너무 무섭다!

[현재 점령하고 있는 지역의 경제 상태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현재 점령하고 있는 지역의 치안…]

[……]

대충 계획을 세웠어도 지금 점령하고 있는 곳이 개판이라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여기가 그렇다면 크네마 섬의 다른 지역도 비슷하리라.

‘아무리 핏빛 군도가 다 황량하다지만 이건 좀 심한데? 경제도 안 좋고 문화도 바닥이고 치안도 안 좋은 땅을 왜 이렇게 얻으려고 싸우는 거지? 무슨 다른 이유라도 있나?’

태현은 이상함을 느꼈다.

NPC들이 그렇게 안 물러서고 꼬라박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블라디. 크네마 섬에 뭐 숨겨진 보물이라도 있나?”

“예? 그런 게 있으면 제가 먼저 가져왔죠.”

솔직담백한 블라디의 대답!

“아. 그렇지만 크네마 백작이 워낙 대단했던 뱀파이어였으니까 숨겨놓은 보물이 있을지도….”

크네마 백작은 나름 고대 뱀파이어의 혈통을 이어받은 대단한 뱀파이어였다.

그런 만큼 크네마 백작의 성에는 대단한 보물들이 잠들어 있을 수도 있었다.

“…?”

태현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크네마 백작이 사라진 지 꽤 되지 않았나? 근데 성에 보물이 남아 있다고?”

“크네마 백작의 성에는 아무도 못 들어갑니다. 섬의 정당한 지배자가 아니면 문을 열어주지 않거든요.”

<크네마 백작의 성 안으로-핏빛 군도 지역 퀘스트>

크네마 백작의 성에는 강력한 마법이 걸려 있어 권리가 없는 침입자를 막아낸다.

성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

섬의 정당한 주인으로 인정받아 크네마 백작의 후계자가 되는 것뿐이다.

섬의 정당한 주인이 되어 크네마 백작의 성 안으로 들어가라!

보상: ?, ???

‘오….’

태현은 퀘스트창을 보고 흥미가 생겼다.

다른 뱀파이어 백작들이 이러는 걸 보면 성 안에 뭔가 있는 것 같았다.

강도… 아니, 플레이어의 직감!

“한 번 가볼까?”

“예? 아니, 성에 마법 걸려 있어서 아무도 못 들어가는데….”

“블라디. 고정관념을 버려. 포기부터 하면 쓰나.”

“…….”

블라디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이 아키서스가 대체 무슨 아키서스를 하려고 이러는 거지?

* * *

핏빛 군도에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크네마 섬 영지전에 웬 새로운 세력이 나타났다고!

뱀파이어 플레이어들은 그 소문에 솔깃했다.

판온에서 뱀파이어 종족을 고른 플레이어들은 매우 숫자가 적었다.

뱀파이어 종족은 장점이 뚜렷했지만, 그만큼 단점들도 뚜렷했던 것!

덕분에 초보자 뱀파이어들은 핏빛 군도에서 주로 지냈다. 대륙에서는 햇빛을 피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귀찮은 일이 많았으니까.

그런 와중에 갑자기 날아온 영지전 소식은 모두의 관심을 샀다.

-새로운 놈들이 나타났다고? 뭐하는 놈들인데?

-플레이어 같던데? 그리고 들어보니까 김태현이란 소문이 있대.

-김태현? 김태현이 왔다고?!

마치 아무것도 없는 시골에 스타가 온 것 같은 기분!

핏빛 군도에 태현이 왔다는 소문이 돌자 뱀파이어 플레이어들은 엄청나게 흥분했다.

진짜 김태현이 왔어?!

-아니. 김태현이 여기 왜 와?

-맞아. 뱀파이어 아니면 여기 올 이유가 없는데.

-그리고 김태현 지금 대회 때문에 미국에 있지 않나? 한참 마지막으로 던전 돌면서 준비하고 있을 텐데.

-…그러게?

확실히 설득력 있는 말!

얼마 있으면 대회가 시작하는데 어떤 미친놈이 던전을 안 깨고 여기에 있단 말인가.

그러나 뱀파이어 플레이어들은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정말 김태현이라면….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평생 후회할 거야!’

-너 어디 가냐?

-그러는 너는?

-김, 김태현 맞나 한 번 확인만 해보려고….

-크흠. 나도 한 번 확인만 해보려고. 믿지는 않는데~ 그냥 어떻게 된 일인지 보려는 거지.

-나, 나도 그래.

뱀파이어 플레이어들은 서로 민망한 표정으로 움직였다.

아까까지는 ‘그게 말이 되냐’ 하고 구박하던 플레이어들도 슬쩍 끼어 있었다.

진짜였으면 좋겠다!

* * *

“진… 진짜잖아?!”

멀리서 하품을 하며 거대한 대형 망치를 휘두르고 있는 사람.

저건 케인이었다!

뱀파이어 플레이어들은 깜짝 놀랐다. 정말 케인이라니. 그렇다면 김태현도 여기 있단 말인가?

“헉. 뭐야?”

요새 벽을 보강하고 있던 케인은 질겁했다.

해안가로 소형 나룻배 수십 척이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태현은 블라디를 데리고 크네마 성으로 떠나면서 케인에게 명령을 내렸다.

-내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공격 안 할 거 같지만, 공격할 경우에는 네가 알아서 잘 막아.

포병대부터 기사단까지 다 두고 갔으니 아무리 케인이라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전술 스킬이 낮더라도 포병대나 기사단은 알아서 잘 싸울 수 있는 이들!

케인은 꿀꺽 침을 삼켰다.

‘그… 그래! 이번 일을 잘해서 나도 전술가로 명성을 날려보는 거야.’

판온에서 대규모 지휘를 잘하는 플레이어들은 극히 소수였다.

수십, 수백 명이 넘는 플레이어들을 어디로 보내고 어떻게 싸워야 할지 결정을 내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그만큼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명성이 따라붙었다.

최고의 전술가나 마법사나….

태현 관련 기사를 보면 저런 별명들이 꼭 들어갔다.

-<전술의 마법사> 김태현, 평원에서 길드 동맹을 격파하고 블랙 드래곤을….

-PVP만 잘하는 게 아니다! 판온 최고의 전략가, 김태현을 분석한다!

케인은 태현처럼 그런 폼나는 별명 하나 정도는 받고 싶었다.

<튼튼한 인간 방패> 케인, <논개> 케인 같은 별명 말고!

투기장 대회 때 한 번 붙은 별명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논개라고 부른 놈 잡히면 진짜….’

케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공격 선언을 하려고 했다.

“케인 님!!”

“케인 님 맞으시죠!!”

“어… 어?”

케인은 들어 올렸던 팔을 슬쩍 내렸다. 나룻배에서 내린 뱀파이어들이 반짝반짝 눈을 빛내며 달려왔던 것이다.

“맞, 맞는데.”

“역시!!!”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여기 오래 계실 거죠?”

“근데 곧 대회 아니에요?”

“김태현 님은 어디 계시죠?”

케인을 둘러싸고 우르르 질문을 던져내는 뱀파이어들!

마치 스타를 직접 만난 팬 같았다.

케인은 그 대접에 당황하면서도 기뻐했다.

‘뭐, 뭐지? 함정인가?’

* * *

“점점 더 음산해지는군.”

“아. 예.”

“여기 뭐 알려진 함정이나 피해야 할 만한 자연지형 있나?”

“없을걸요.”

“그래… 너 지금 도망치려고 눈 굴리는 거 아니지?”

“!!!”

블라디는 기겁했다.

어떻게 알았지?!

“블라디. 도망치는 건 좋지만 하나만 생각해라.”

“…?”

“살라비안 교단도 도망치다가 나한테 잡혀서 전부 다 죽었는데 네가 도망칠 수 있겠냐?”

“…!!”

[블라디가 공포에 질립니다!]

[최고급 화술…]

[블라디의 공포가 최대치에 달합니다!]

“제, 제가 어떻게 도망칠 생각을 하겠습니까? 폐하께서 저한테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데….”

“하하. 알긴 아네.”

태현은 그렇게 말하고서 멈춰섰다. 저 멀리 언덕 위에 높게 솟아오른 크네마 백작의 성이 보였다.

‘수상쩍긴 한데….’

안 그래도 어두운 핏빛 군도. 크네마 백작 성 근처는 더욱 어두웠다. 구름 사이로 들어오는 빛 한 줄기 없을 정도로.

‘뭐, 도망칠 수는 있겠지.’

태현의 자신감은 확실했다.

언제 어느 상황이 닥치더라도 자기 목숨 하나는 챙겨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

[카르바노그가 바로 그게 아키서스의 자신감이라며 손뼉을 칩니다.]

“…….”

자신만만하던 태현은 표정을 구겼다.

‘아니, 난 아키서스하고 다른….’

[아주 똑같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됐다.’

태현은 성 가까이 다가갔다.

[섬의 정당한 지배권을 얻지 못했습니다. 크네마 백작의 성이 접근을 거부합니다!]

[<흡혈성의 저주>가 덮쳐옵니다!]

[가까이 올수록 불운이 심해집니다.]

[……]

괜히 다른 뱀파이어들이 성을 내버려 둔 게 아니었다.

뭘 하기도 전에 접근만 하면 각종 저주가 쏟아져서 행동불능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실제로 블라디는 발 한 번 뻗었다가 넘어져서 구덩이 밑에 빠진 다음 언덕 밑으로 굴러떨어지기 시작했다.

“…?”

태현은 저 멀리 굴러가는 블라디를 보며 의아해했다.

왜 저래?

“도망치는 거 아니지?”

“이게 그걸로 보입니까 이 샊… 아니, 폐하!”

블라디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쟤는 왜 멀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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