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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815화 (815/1,826)

§ 나는 될놈이다 815화

“기사단의 함선을 타고 갑시다!”

“…기사단 함선도 마찬가지야! 그냥 뱀파이어들을 자극하면 안 돼!”

에반젤린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쳤다.

뱀파이어들의 동네에서는 뱀파이어들의 룰을 따라야 했다.

거기 가면 인간, 엘프, 드워프 같은 살아 있는 종족들이 비주류!

뱀파이어들한테 밉보이지 않도록 잘 지내야 하는데 이것들은….

“넌 거기 가 본 적 있지?”

“나야 있지. 오래 있지는 않았지만.”

에반젤린은 일단 뱀파이어라 핏빛 군도에서도 크게 불이익이 없었다.

에반젤린은 다시 한번 핏빛 군도에서의 주의사항을 말해주며 신신당부했다.

“알겠어? 절대 뱀파이어들을 놀라게 하면 안 돼. 그냥 뱀파이어인 척을 해.”

“그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변장에는 이골이 난 태현 일행들!

뱀파이어인 척은 충분히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데 뱀파이어인 척은 어떻게 할 수 있지?”

“좀 창백한 표정 지으면서 한 손에 피 담긴 컵 들고 다니면 되지 않을까?”

“…….”

에반젤린은 갑자기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얘네들 정말 데리고 가도 되는 걸까?

* * *

“우리는 뱀파이어다… 으어… 피 맛있다….”

“…제발 그만해.”

에반젤린은 짜증 가득한 얼굴로 태현 일행을 쳐다보았다.

애초에 그녀도 뱀파이어인데!

그녀는 저런 행동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뱀파이어도 그렇게 크게 차이 없거든? 그냥 좀 재수 없고….”

“네가 재수 없다고?”

“행운 낮다는 뜻으로 말한 거 알지?”

“아. 그런 거였어?”

에반젤린이 노려보자 태현 일행들은 모두 시선을 피했다.

촤아악!

그러는 사이 배가 파도를 가르고 핏빛 군도에 가까이 접근하기 시작했다.

핏빛 군도는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하늘에 떠 있는 짙은 회색 구름이 빛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바닷물까지 핏빛!

[카르바노그가 질색합니다.]

카르바노그도 신답게 뱀파이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뱀파이어는 괜찮은데 멀미가 난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아… 그래.’

정말 쓸데없는 정보!

탁-

“다들 명심해. 절대 뱀파이어 아닌 것 티 내면 안 돼.”

“물론이지. 걱정하지 마.”

그렇게 말하는 태현 뒤에는 기사단, 경비병, 심지어 아키서스 포병대까지 있었다.

아무리 봐도 너무 눈에 띄는 조합!

“…이 사람들은 일단 좀 여기 숨겨두고 가자.”

에반젤린은 해안가 근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들을 데리고 마을로 들어가는 순간 ‘히익! 뱀파이어 토벌이다!’ 하면서 뱀파이어들이 난리 칠 것 같았다.

-아니 왜! 우리가 뭘!

-저희를 두고 가시는 겁니까!

뒤에서 아우성치는 이들을 무시하고, 에반젤린은 그들을 뒤에 두고 가도록 했다.

무슨 일 생기면 그때 부르면 되지!

* * *

“클클클… 젊은 뱀파이어들인가.”

“무시해. 무시.”

길가에 웬 뱀파이어 하나가 앉아서 말을 걸어오자, 에반젤린이 잘랐다.

“왜? 누구길래?”

“그냥 미친 뱀파이어야. 여기는 하도 이상한 뱀파이어들이 많으니까 최대한 안 엮이는 게 좋아.”

진심 어린 조언!

핏빛 군도는 뱀파이어들의 땅.

그리고 뱀파이어들은 대표적으로 오래 사는 종족!

그만큼 미친놈들도 많았다.

판온 게시판에 가보면 핏빛 군도에 관한 질문들이 따로 있을 정도!

Q: 핏빛 군도 북쪽 작은 항구 길에 있는 뱀파이어 할아버지가 자꾸 뽑아보라고 말을 거는데, 이거 뭐 있는 건가요?

A: 그거 그냥 사기꾼임.

A: 나도 말 받아줬더니 자꾸 헛소리만 하더라.

A: 뭐 뽑으라고 하는데 절대 뽑지 마셈. 그냥 돈만 받아감.

“클클클. 젊은 뱀파이어들이여. 이걸 하나 뽑아보게.”

늙은 뱀파이어는 항아리를 짤랑짤랑 흔들며 그들을 불렀다.

에반젤린은 무시하라고 했지만 태현은 솔깃했다.

이런 이벤트에는 언제나 숨겨진 게 있었다. 아무 의미 없는 이벤트는 없었다.

그리고 뽑기인 게 마음에 걸렸다.

지금 태현한테 뽑기만큼 이득 보기 좋은 게 있을까?

그만큼 행운 스탯이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뽑아도 됩니까?”

“1실버네.”

이 뱀파이어 노인이 악명 높은 이유!

1실버나 받아가면서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태현은 1실버를 건넸다. 그러자 노인이 항아리를 내밀었다.

“자. 뽑게.”

“…?”

항아리 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돈을 냈으니 태현은 손을 뻗어 항아리 안으로 넣었다.

뭐가 있길래?

[혼돈과 어둠의 항아리에 손을 집어넣었습니다!]

[<크네마 백작의 의전용 검>을 얻었습니다!]

<크네마 백작-크네마 영지 영주 퀘스트>

뱀파이어 크네마 백작은 핏빛 군도의 크네마 섬의 정당한 주인이었다.

그러나 크네마 백작이 행방불명되고 나자 사악한 배신자들이 크네마 섬을 차지하게 되었다.

당신은 크네마 백작의 검을 얻은 정당한 후계자다.

배신자들을 처치하고 크네마 섬을 차지해라! 크네마 백작이 그 복수를 응원할 것이다.

“???”

뭘 했다고 영주 퀘스트?

태현은 당황해서 에반젤린을 쳐다보았다. 에반젤린도 당황한 얼굴이었다.

저 항아리에서 뭐 쓸 만한 것도 나오네?

“그거 무슨 검이야?”

“크네마 백작의 검인데.”

“크네마 백작의 검이 나왔다고?!”

에반젤린은 정말로 놀랐다.

핏빛 군도 섬 중 하나인 크네마 섬.

핏빛 군도의 뱀파이어들끼리 계속 치고받고 있는 전쟁 지역 중 하나였다.

원래 주인인 크네마 백작이 사라진 탓이었다.

그런데 그 크네마 백작의 검이 그냥 여기서 나온다고?

웬 사기꾼 뱀파이어의 항아리 안에서??

“너 지금 거짓말하는 거지?”

합리적 의심!

에반젤린은 태현을 못 믿겠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평소에 태현이 에반젤린에게 사기를 쳐 온 대가!

“내가 거짓말한다고 치고, 그래서 이 검이 있으면 뭘 할 수 있지?”

“크네마 섬에서 싸우고 있는 뱀파이어들이 그거 얻으려고 난리 치고 있을 텐데… 잠깐, 거짓말이 아니잖아?!”

에반젤린은 태현이 든 검을 알아보고 경악했다.

아니 진짜 저게 왜 저기서 나오냐?

에반젤린은 늙은 뱀파이어한테 달려가 멱살을 잡았다.

“내가 실버 낼 때는 아무것도 안 나오거나 이상한 먼지 같은 아이템만 주더니, 사람 차별하는 거야?!”

“켁, 켁켁… 아니, 자네가 운이 없는 걸 왜….”

목이 졸린 늙은 뱀파이어는 캑캑대며 변명했다.

“내 골드 내놔!”

‘골드라니. 실버를 얼마나 바친 거야?’

태현은 에반젤린이 여기서 한 재산 날렸다는 걸 깨달았다.

어쩐지 하지 말라고 하더라!

“뱀파이어가, 켁, 재수 없는 건, 켁켁, 당연한 건데….”

뱀파이어가 재수 없다는 걸 활용한 장사법!

태현은 감탄했다.

저런 방법이!

에반젤린처럼 행운이 –999까지 가는 심각한 불운이 아니더라도, 보통 뱀파이어들은 기본적으로 불운 페널티를 달고 살았다.

그런 이들이 뽑기에서 좋은 걸 뽑을 리가 없는 것!

‘상자를 여기서 팔아야 하나?’

뱀파이어들이라면 몇 배로 살 것 같았다.

에반젤린이 늙은 뱀파이어를 탈탈 터는 동안, 태현은 이 뜬금없는 검을 어떻게 써먹을지 고민했다.

그냥 대주교 보물만 찾아내려고 했는데 영지전이라니.

‘시간 오래 걸릴 것 같은데….’

게다가 뱀파이어들의 영지라니. 별로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걸 얻어서 어디다 쓴단 말인가.

거리가 좀 있어서 관리하기도 힘들 것 같고 얻는 것도 없을 것 같아!

[카르바노그가 뱀파이어들의 장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

[안 먹어도 잘 산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해줍니다.]

‘…너 신 맞니?’

만약 영지를 얻을 경우 농장이나 방앗간, 곡식 창고 같은 필수 건물은 짓지 말라고 조언하는 카르바노그!

다른 영지라면 [식량 부족으로 주민들이 도망칩니다!] 같은 메시지가 떴겠지만, 뱀파이어 영지는 그런 게 없었다.

‘그런 거 말고 뱀파이어 영지에서 뭐 잘 나오는 특산물 같은 건 없나….’

뱀파이어 영지의 특산물이 없지는 않았다. 일단 포도 같은 건 잘 자랐고, 각종 흑마법 관련 재료들도 잘 자라는 편이었다.

영지에 일반 몬스터 대신 언데드 몬스터들이 나오는 만큼 당연한 특성!

‘그리고 여기는 기껏 먹어도 아키서스 교단 같은 걸 박을 수가 없을 텐데.’

살라비안 교단처럼 뱀파이어들에게 특화된 교단이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교단들은 언데드랑 사이가 안 좋았다.

아키서스도 선신 계열이니 여기 신전을 박아놓으면 역효과가 날 게 분명!

[카르바노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니라고 합니다.]

‘…?’

[아키서스 교단은 신전 지어도 뱀파이어하고 별 상관없을 거라고 합니다.]

“아니… 그건 아니지.”

태현은 당황했다. 진짜?

-교단창 확인.

태현은 아키서스 교단 교황으로 열 수 있는 교단 상태창을 켰다.

[현재 지역은 아키서스 교단 신전을 지을 수 있는 지역입니다. 페널티가 없습니다.]

[아키서스 교단 신전을 지을 경우 매주 뱀파이어 34명이 신도로…]

“…….”

대체 아키서스 교단은 무슨….

* * *

일단 이런 검까지 얻었는데 그냥 갈 수는 없었다.

태현은 영지전의 상황을 알아보기로 했다. 일단 그 전에….

“뽑기 더 해도 됩니까?”

“클클클. 젊은 뱀파이어여….”

늙은 뱀파이어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항아리를 뒤로 돌렸다.

“…절대 안 되네….”

“…….”

1등 상을 이미 뽑아가 버린 태현!

안 그래도 밑천을 절반 이상 털린 셈이었는데, 더 뺏길 수는 없다!

늙은 뱀파이어는 매우 현명했다.

“아니, 1실버 낸다니까!”

“오늘 장사는 여기서 끝이네! 애초에 그걸 어떻게 뽑은 건가! 뱀파이어 맞긴 한 건가!”

늙은 뱀파이어는 태현을 보며 외쳤다. 태현은 움찔했다. 어떻게 알았지?

“그러면 얘가 대신 뽑는 건 어떻습니까?”

태현은 에반젤린을 끌어들였다. 그러자 늙은 뱀파이어가 움찔했다.

에반젤린은 이미 수많은 실버를 뜯긴, 늙은 뱀파이어도 기억하고 있는 호구!

그런 에반젤린이 뽑는다니.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클클클… 젊은 뱀파이어여… 두려움을 모르는….”

“아, 컨셉질 좀 작작하세요.”

태현은 짜증을 냈다. 늙은 뱀파이어가 유리할 때만 저렇게 폼을 잡는 게 짜증이 났던 것이다.

불리해지면 장사 끝났다고 하는 놈이!

“아까는 또 장사 끝이라면서?”

“클클클… 늙어서 그런지 잘 안 들리는군….”

“…….”

오랜만에 만난 강적!

태현만큼 뻔뻔한 NPC는 또 오랜만에 보는 기분이었다.

늙은 뱀파이어는 에반젤린을 보며 클클 웃었다. 그 웃음이 마치 호구를 보는 웃음 같아 에반젤린은 매우 기분이 나빠졌다.

사실 맞긴 했다.

‘손해를 여기서 메꿔야겠군….’

이 <혼돈과 어둠의 항아리>는 안에 들어가 있는 아이템 중 하나를 뽑을 수 있었다.

행운 스탯이 높을수록 좋은 아이템을 뽑는 것!

늙은 뱀파이어는 <크네마 백작의 의전용 검>이나 각종 영웅 등급 아이템들을 넣어놓고, 나머지는 먼지나 쓰레기, 잡동사니로 꽉꽉 채웠다.

그런 다음 ‘여기에는… 매우 대단한 아이템이 있지… 클클클….’ 하면 에반젤린 같은 호구가 낚이게 마련이었다.

“야. 내가 뽑아봤자 의미가 없잖아….”

에반젤린은 곤란하다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슬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호구라는 것을!

행운 스탯이 낮은 이상 뭘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 페널티는 이제 안 받지만 그렇다고 행운 스탯이 높아진 것도 아니었으니….

“걱정 마라.”

-아키서스의 축복!

[일시적으로 행운이 공유됩니다!]

“뽑아.”

“!!”

“아… 아… 아키서스…!”

늙은 뱀파이어가 태현의 스킬을 보더니 깨닫고 경악에 빠졌다.

뱀파이어 살려! 아키서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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