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12화
“생각해 보니 미국도 별로 안전한 것 같지는 않다.”
옆에서 최상윤이 거들었다.
나라를 가리지 않고 쌓은 안티 팬들!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판온 1에서 태현한테 당한 플레이어들이 수두룩했다.
“넌 진짜 한국이라 망정이지….”
“시꺼.”
태현은 둘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뒤에서 일행을 따라온 스태프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김태현 선수가 그렇게 적이 많아?
-엄청 이미지 좋은 줄 알았는데?
일반인들과 판온 랭커들의 차이점!
일반인들은 태현의 이름을 들으면 ‘아 김태현? 판온에서 엄청 인기 있는 선수?’라고 반응했지만 랭커들은 ‘아 김태현? 히이이익!’라고 반응했다.
“근데 저렇게 스태프들이 필요해?”
“당연히 필요하지. 방송 나갈 때 너만 맨얼굴로 나갈래? 아니다. 너만 맨얼굴로 나가자. 그것도 재밌겠네.”
“아냐! 나 메이크업 하고 싶어! 메이크업 받게 해줘!”
대형 게임단과 달리 태현 팀은 정말 최소한으로 이뤄진 팀이었다.
스타일리스트나 코디를 따로 두지 않았던 것!
덕분에 이번에 나갈 때 이동팔 대표한테 부탁해 아는 사람들을 소개받아서 데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다른 게임단들은 저런 사람들이 있나?”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대형 게임단들은 데리고 있지.”
게임단들도 천차만별이라, 역사 깊고 규모 있는 게임단들은 스타일리스트와 코디부터 시작해서 온갖 복지시설을 갖고 있었다.
최근 엄청난 투자를 받은 베이징 파이터즈나 상하이 팬더즈의 게임단 시설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
그렇지만 규모 작은 게임단들은 정말 열악한 곳도 많았다.
게임단이 오늘내일 폐지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게임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괜히 게임단들이 기업 투자나 광고에 매달리는 게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태현 팀은 손에 꼽힐 정도로 작은 규모의 팀이면서도 잘 굴러가는 예외적인 경우!
팀의 이름값과 성적이 워낙 확실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당장 태현이 벌이고 있는 활약 덕분에 온갖 광고와 지원이 들어오고 있었으니….
“어? 우리도 잘나가지 않나? 우리는 왜 없어?”
“…너 내가 그 돈 아껴서 너희들한테 다 주고 있는 거 알지?”
다른 게임단 선수들은 팀 KL의 분배 방식을 보면 눈을 크게 떴을 것이다.
구단주가 미쳤어요! 소리가 절로 나올 분배 방식!
보통 게임단은 들어오는 수입을 일정 부분 떼어서 가져갔다.
게임단이 해주는 일이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태현은 그러지 않았다.
아낌없이 퍼주는 구단주!
“너희가 방송을 자주 나가기나 하냐, 아니면 얼굴로 홍보를 하기나 하냐. 굳이 상시고용 해봤자 가성비 안 좋을 거 같아서 이렇게 하는 건데… 뭐 너희 돈 깎아서 고용하고 싶다면 내가 못 해줄 것도 없다.”
태현 팀 모두 실제 얼굴로 뜬 선수들은 아니었다.
판온 플레이어 중에는 실제 얼굴로 화제를 모은 유명 플레이어도 있었지만, 적어도 태현 팀은 아닌 것!
그런데 무슨!
“태현아. 난 아무 불만 없다.”
“저도 불만 없습니다. 선배님.”
“나, 나도 불만 없어!”
자기 혼자만 남게 되자 케인은 급히 말했다.
“앗. 저희 고용되는 거 케인 선수가 방해한 건가요?”
“죄, 죄송합니다….”
스타일리스트의 농담에 케인이 주눅 든 얼굴로 말했다.
“농담이에요. 저 어차피 할 일 많 아요.”
“음. 확실히 그렇지.”
최상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스타일리스트의 솜씨는 예전부터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태현의 인상을 ‘인상 더러운 새X’에서 ‘날카로운 미남’으로 바꿔준 마법사!
판온을 했다면 미술 스킬 최고급이나 변장 스킬 최고급부터 시작했을 천재가 분명했다.
“…너 뭔가 눈빛이 이상한데 무슨 생각 하냐?”
“어… 상금 받으면 뭐 할지 생각하고 있었지!”
“벌써부터 잿밥에 관심이 많군. 게임에나 집중해라.”
태현의 말에 케인은 슬며시 핸드폰을 집어넣었다. 화면에는 ‘상금으로 뭘 사야 좋을까요?’라는 질문이 올라와 있었다.
“잘 들어. 이세연은 분명 생각지도 못한 사악한 계략을 꾸미고 있을….”
“와! 전용기다!”
“판온에서 보내준 거지?”
태현의 말을 듣다가 앞에 나온 전용기의 모습에 눈이 뒤집힌 일행!
“애들아. 뒤질래?”
“미, 미안.”
“듣고 있습니다!”
* * *
“잘 들어. 김태현은 분명 생각지도 못한 사악한 계략을 꾸미고 있을 거야.”
“주장?”
“뭔데?”
“김태현 선수는 정정당당한….”
“쟤 입 좀 다물게 해.”
“읍읍!”
태현의 광팬인 류태수는 입이 막혀졌다.
“그렇지만 김태현 페이스에 휘말릴 필요는 없어. 다행히 이번 대회는 우리 일에만 집중하면 되는 거니까.”
이세연은 냉정했다.
괜히 태현이 무슨 짓을 했나 신경쓰느라 페이스를 잃는 것보다는 자기들이 연습해 온 것에 집중하는 게 현명했다.
‘리치 변신, 특수 언데드… 시간을 몇 단계는 줄일 수 있을 거야.’
이번 던전 공략 대회의 트렌드는 ‘얼마나 빨리 몬스터를 모아서 처리할 수 있는가?’였다.
폭탄 아이템은 그 질문에 대한 강력한 대답!
그러나 모두 알고 있듯이 폭탄 아이템은 이런저런 단점이 많은 아이템.
그 단점을 잘 커버한 팀만이 성적을 내고 올라올 수 있었다.
태현은 기계공학 메타의 아버지라고 불릴 정도로 폭탄에 능숙했고 그걸로 단점을 커버했다. 애초에 폭탄 붐은 태현이 없었다면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세연은 자신의 장기인 언데드를 이용해 폭탄의 단점을 커버했다.
특수 언데드한테 폭탄을 먹여 안정적으로 사용한 것!
둘 다 방법 자체는 확보했다.
이제 거기서 얼마나 시간을 줄이냐의 싸움!
이세연은 아껴놨던 버프 스킬들을 총동원해 언데드들을 강화하고 팀원들의 힘으로 시간을 대거 단축시킬 생각이었다.
준결승전에서 본 태현 팀이 어느 정도 실력을 숨겼는지는 몰라도 승산은 분명 있다!
* * *
이다비는 눈을 감고서 머릿속에서 대회 전략을 공부하고 있었다.
몇 번이고 해본 일이지만 그렇다고 긴장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수천만이 넘는 세계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는 일!
실수를 하면 그대로 남게 됐다.
“그러고 보니 넌 상금 받으면 뭐할 거야?”
태현은 이다비에게 물었다. 긴장하고 있던 이다비는 퍼뜩 놀랐다.
“네??”
“아, 아니. 상금 받으면 뭐할 거냐고. 그렇게 충격적인 질문이었나?”
“아니요. 다른 생각 하고 있어서….”
“아니 왜 이다비한테는 저렇게 물어보고 나한테는….”
케인은 울컥했다. 그러자 옆에서 최상윤과 정수혁이 말했다.
“닥쳐 좀.”
“케인 씨. 닥치십시오.”
“?!?!”
정수혁까지?!
케인은 시무룩해져서 조용해졌다.
“저는 집 구해볼까 생각 중이었는데요.”
“응?”
태현은 놀랐다.
“나가려고?”
“네… 계속 신세 지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실제로 이다비는 태현 일행 중에서 가장 소득이 높은 사람 중 하나였다.
선수 수입뿐만이 아닌 파워 워리어 길드를 운영하면서 나오는 수입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여기가 낫지 않아? 시설도 좋고 전망도 좋고.”
“그건 당연하지만….”
이다비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사람’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당연히 시설이나 그런 걸로 비교하면 지금 집을 따라갈 수 있는 곳이 얼마 없었다.
한국에서도 최고가에 들어가는 집 아닌가!
“역시 계속 신세만 지고 있는 건 좀 그래요.”
“저번부터 말했지만 상관없다니까. 그리고 동생들도 좋아하던데. 계속 있는 게 좋대.”
“네? 그게 무슨… 너희 그런 소리도 했어?!”
이다비는 말하다가 뭔가 깨닫고 홱 고개를 돌려 동생들을 쳐다보았다.
뒤에서 앉아서 창밖을 보던 동생들은 모르는 척 시선을 피했다.
이번 대회에 태현이 데려온 그들!
이다비는 ‘태현한테 폐 끼치지 마라’, ‘태현한테 뭐 해달라고 하지 마라’, ‘아니 그냥 태현한테 먼저 말을 걸지 마! 좀!’라고 말했지만 그건 별 소용이 없었다.
태현 본인부터가 동생들을 챙겨주는데!
동생들에게 태현은 이미 언니 남자친구였다.
“뭐, 내가 네 집 사는 걸 말릴 수는 없지. 역시 부동산만 한 재테크는 없으니까.”
“아, 아니. 그런 뜻으로 한 소리는 아닌데요. 그냥 폐 끼치기 싫어서….”
누구 아들 아니랄까 봐 이상하게 해석하는 태현이었다.
“집은 근데 너무 거창하잖아. 뭐 다른 건 없어?”
“음… 동생들 선물하고….”
“또?”
“태현 님 선물….”
“…고맙긴 한데 네 건 없니?”
“앗. 없네요.”
태현은 황당하다는 듯이 이다비를 쳐다보았다. 이다비는 멋쩍은 표정으로 시선을 피했다.
언니나 동생이나 불리해지면 하는 짓이 비슷!
“넌 집이고 뭐고 스스로부터 좀 챙겨야 할 거 같은데.”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데요….”
이다비는 진심이었다. 살면서 요즘만큼 행복하고 마음이 편했던 적이 없었다.
걱정도 없고 주변에는 든든한 사람까지 있었다.
“내 선물은 됐고 네가 쓸 거 사자.”
“그래도 딱히 없는….”
“아냐. 찾아보면 나올 거야. 저기 케인을 봐. 욕망에 충실하잖아. 아까 봤지? 운전도 못 하면서 상금으로 차 살 생각하고 있더라. 사실 쟤는 집부터 생각해야 하는데….”
“어, 어, 언제 본 거냐?!”
케인은 오싹했다. 이 자식 진짜 시야가…!
* * *
“나 어떠냐?”
“좋아 보이십니다.”
“위엄 넘치냐? 샤프하냐? 뭔가 있어 보이냐?”
“…….”
상사만 아니었어도 한 대 팼을 텐데!
윤주환은 이를 갈며 최명성 팀장을 쳐다보았다.
최명성 팀장은 확실히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인공지능과 게임 분야 모두 전문가였고,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도 업계에 명성이 자자했다.
그런 사람이니만큼 판온 프로젝트 때 한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도 스카우트당해 팀장 자리를 맡을 수 있었던 것!
윤주환도 최명성을 동경하던 때가 있었다.
-해외에서 이름을 날리는 한국인 기술자!
-차세대 젊은 과학자 50 중 하나!
물론 그건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사라졌다.
성격 좁고 소심하고 귀찮은 인간!
그런 주제에 능력은 또 있어서 사람을 귀찮게 만들었다.
-이번 결승전은 확실하게 못을 박는 이벤트가 될 겁니다.
판온 측은 향후 십몇년 간은 다른 게임이 판온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전세계 최고 인기 게임이란 명성에 못을 박는다!
당연히 거기에 걸맞은 준비를 했다. 경기장부터 시작해서 온갖 이벤트가 준비되었다.
빌보드 1위를 찍은 유명 가수를 섭외해 노래를 부르는 이벤트 정도는 아주 사소한 일각일 정도로.
-슈퍼볼(미국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 뺨을 세 번은 때려야 한다!
이런 말이 공공연히 회사 안에 돌 정도로 기대치가 높았다.
결승팀들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도 당연했다.
참가하는 팀의 품격이 높아질수록 대회의 품격도 높아지는 것이다.
전용기는 물론이고 최고급 호텔을 통째로 빌려 경기장 앞에 준비해 놓은 판온 측이었다.
-팀 KL은 누가 맞이하겠습니까?
-김태현 선수 한 번 만나보고 싶었는데 제가 가도 됩니까?
-괜찮으시다면 제가 가보고 싶습니다.
각 팀의 팀장들이 예의 바르게 손을 들었다. 태현에게 관심이 있는 팀장들이었다.
판온 프로젝트를 맡은 팀장들은 전부 다 기본적으로 인공지능과 게임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는 이들!
게임에 관심이 있는 이상 태현에게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었다.
한 번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
물론 그들은 상식적인 사회인이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예의 바르게, 훈훈하게 손을 들었다.
쾅!
최명성은 양손으로 탁자를 내려치는 소리였다.
-여러분!
-????
-????
-내가 입찰한 김태현 상회입찰하지 마십시오!!
다른 팀장들은 ‘저 또라이 또 시작이네’ 하는 표정으로 최명성을 쳐다보았다.
손을 들었던 팀장들은 슬쩍 손을 내렸다.
-그러면… 최명성 팀장이 맡아주시는 걸로….
-하하. 꼭 하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맡겨주시다니. 어쩔 수 없이….
-맡기지 말까?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
최명성은 바로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합니다. 이상한 짓 하지 말고.
-하하. 사람을 뭘로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