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11화
“저 안은 보물을 보관하기 좋은 곳이 아니라고….”
“하하. 너희 대주교는 참 현명하고 지혜가 깊은 뱀파이어였던 게 분명하다.”
방금 대주교를 불로 태워 죽인 사람이 하는 소리치고는 좀 많이 이상한 소리!
뱀파이어들이 ‘이 사람은 대체’ 하는 눈빛으로 쳐다봤지만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서 현명하신 대주교님께서는 보물을 어따 놨냐?”
“그건 저희도 잘… 컥!”
태현은 바로 뱀파이어의 멱살을 잡았다.
“이 자식들이 어디서 사기를 치려고… 내가 사디크나 살라비안으로 보이냐?”
“아닙니다! 아키서스로 보입니다!”
“진짜 100% 아키서스로 보입니다!”
필사적으로 외치는 뱀파이어들!
[카르바노그가 쟤네 욕하는 것 같다고 추측합니다.]
“대주교님께서는 의심이 많고 저희를 믿지 않으셔서 그런 걸 잘 알려주지 않으셨습니다!”
“짜증 나게 그럴듯하군.”
그럴듯한 뱀파이어의 말!
의심이 많은 NPC라면 일반 교단원들에게 그런 귀중한 보물을 어디다 맡겼을지 알려주지 않을 법도 했다.
“그래도 심복이라면 알고 있겠지.”
“다 죽었는데요.”
“하나 정도는….”
“아뇨. 다 죽었는데요.”
“…….”
태현은 못 들은 척했다. 그러나 뱀파이어들은 다시 한번 말했다.
“다 죽었….”
“그게 말이 돼? 대주교 심복 정도면 최정예 전사나 사제들일 텐데!”
태현이 화를 내자 뱀파이어들은 속으로 욕했다.
‘네가 불을 그렇게 질렀잖아…!’
지가 그렇게 세게 불을 질러놓고 왜 죽었냐고 화를 내다니. 세상에 나쁜 놈도 저렇게 나쁜 놈이 없었다.
살라비안 교단도 악신 교단이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그야… 대주교님을 직접 모시는 전사분들은 대주교님 곁에 있었고….”
대주교가 죽었으니 바로 옆에 있던 전사들도 다 같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대주교나 전사들은 자기들의 실력에 자신감이 넘치는 NPC들이었다.
화염이 들이닥칠 때 약한 뱀파이어들은 최대한 안쪽으로 들어가 땅굴을 파고 벌벌 떨었지만, 대주교는 당당하게 전사들을 이끌고 맞서려고 했다.
물론 별 의미가 있는 짓은 아니었다. 그냥 쓸려 나갔으니까.
“후. 됐다. 불타지 않은 게 어디냐.”
태현은 붙잡은 멱살을 놓아주었다. 왕국 보물이 불타지 않았다는 걸 알아낸 것만으로도 솔직히 다행이었다.
원래는 불탄 줄 알고 있었으니까!
* * *
“정말….”
“완전히….”
“다 탔네요.”
“화력 하나는 정말 확실한….”
“사디크가 진짜 불꽃 하나는 잘 쓴다니까.”
수군거리는 태현 일행!
그만큼 살라비안 교단의 동굴 요새는 깔끔하게 불타 있었다.
[<뱀파이어의 잿가루>를…]
[<정체불명의 잿가루>를…]
[<그냥 잿가루>를…]
[<중급 잿가루>를…]
“…….”
나오는 건 잿가루뿐!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잿가루가 발에 차일 정도였다.
‘스킬 확인이나 해야지.’
태현은 씁쓸한 마음으로 상태창을 켰다.
그래도 이번 살라비안 교단 토벌에서 얻은 게 꽤 있었다.
<화염 용오름 소환>, 전설 무기 <사디크의 정당한 분노>, 그리고 살라비안 교단 대주교 토벌로 인한 살라비안 교단의 권능까지.
보물이 없더라도 충분히 얻는 게 많은 원정이긴 했다.
보물이 아까워서 그렇지!
<화염 용오름 소환>
모든 힘을 소모해 사디크와 아키서스의 힘이 담긴 화염 회오리를 불러내 주변을 파괴합니다!
-전부 사용된 MP는 한동안 회복되지 않습니다.
‘와. 미친 한 방 스킬이군.’
사디크의 신성 권능+아키서스 행운의 바람+기타 등등이 합쳐져서 나온 결과물!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강력하고 희귀한 스킬이었다.
그만큼 페널티도 강력했다.
MP를 전부 소모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모된 MP가 한동안 봉인.
패시브 스킬을 제외한 나머지 대부분의 스킬들을 한동안 쓸 수 없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이야 다행히 <알렉세오스의 축복>이 있긴 한데….’
모든 스킬들의 쿨타임을 대폭 줄여주는 역대급 사기 버프, <알렉세오스의 축복>!
괜히 용이 자기 이름을 걸고 버프를 걸어준 게 아니었다.
‘축복이 끝날 생각을 하니 속이 쓰리군.’
학카리아스 잡을 때에도 <알렉세오스의 축복>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이 축복이 사라질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쉬웠다.
다음은 <사디크의 정당한 분노>.
태현은 아이템을 확인했다. 그리고 의아해했다.
“??”
이거… 검 맞아?
사디크의 정당한 분노:
내구력 1,500/1,500, 물리 방어력 300, 마법 방어력 300, 물리 공격력 250.
착용 시 <사디크의 화염 장막> 발동. 공격에 신성 속성 부여.
스킬 ‘사디크의 분노’ 사용 가능, 스킬 ‘사디크의 가호’ 사용 가능.
힘 제한 1,000, 체력 제한 1,000, 사디크 교단에게 허락 받아야 착용 가능.
사디크가 신자들에게 내려준 방ㅍ… 아니, 검이다. 거대하고 넓적한 방패처럼 생겼지만 엄연한 검이다.
제대로 된 방어 스킬이 없는 신자들에게 방패를 내려주고 싶었지만 그냥 방패를 주면 쓰지 않을까 봐 굳이 검으로 내려준 사디크의 고뇌가 담겨져 있다.
“…….”
태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세상에 방패처럼 생긴 검이 있다니!
사람 서너 명은 가릴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방패였다. 게다가 착용하는 순간 전면에 <사디크의 화염 장막>이 각종 마법을 막아주는 효과까지 달렸으니….
‘성능 자체는 좋군.’
어처구니없는 무기 종류와는 별개로 성능 자체는 좋았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내구력.
어지간한 갑옷과 맞먹는 방어력.
조금 낮긴 했지만 방패에 달린 것치고는 매우 높은 공격력까지.
게다가 착용 제한 조건도 쉬운 편이었다. 사디크 교단에게 허락받아야 한다는 게 매우 어려웠지만….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착용 가능합니다.]
태현이 데리고 있는 사디크 교단에게 허락받아야 되는 모양이었다. 꽤나 까다로운 조건이지만 태현에게는 별다른 제한이 뜨지 않았다.
교단을 부려먹을 수 있는 태현이기에 가능한 조건!
‘좋긴 한데 내가 쓰기에는 좀 애매한 아이템인데….’
일단 태현은 방패를 잘 쓰지 않았다. 막기보다는 피하는 게 우선이었다.
공격력도 대만불강검보다는 낮고, 방어력도 지금 태현이 착용하고 있는 아키서스 아다만티움 갑옷보다 낮고….
“케인. 잠깐 와볼래?”
“??”
이런 건 언제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태현이 아이템을 주자 케인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착용했다.
“이렇게 좋은 걸 왜 나한테… 이거 뭐 함정인가?”
케인은 의심하면서도 착용하는 걸 멈추진 않았다.
잘 훈련된 호구!
“???”
케인도 이 검, 아니 방패가 특이하다는 걸 깨달았는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뭐야?”
“방패처럼 생긴 검이지. 쓸 수 있지?”
“방패처럼 쓰면 된다지만….”
케인은 황당하다는 듯이 검을 쳐다보았다. 뭐 이런 무기가 있냐?
케인이 방패(검)를 이리저리 휘두르는 동안 태현은 마지막 확인을 진행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살라비안 교단 권능인가.’
대주교를 잡고 얻은 권능 스킬.
<살라비안의 생명력 봉인>
살라비안의 힘을 빌려 생명력을 억제시킵니다. 상대방은 일정 시간 동안 HP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오오…!’
의외로 무난하게 좋은 권능 스킬!
상대방에게 일정 시간 동안 HP 회복을 못 하게 방해하는 저주는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쓸 만한 스킬이었다.
PVP에도 그렇고 레이드에서도 그렇고….
‘괜찮네.’
“폐하. 죄송하지만 언제쯤 출발하십니까?”
기다리던 기사들이 태현 일행이 영 출발하지 않자 동굴까지 와서 말을 걸었다.
[에랑스 왕국 기사들이 당신을 기다립니다!]
[계속 기다리게 할 경우 기사들이 떠날 수 있습니다.]
“…!”
생각지도 못한 돌파구 발견!
시간만 끌면 기사들이 알아서 떨어져나가 준다니. 이런 좋은 기회가 있나!
“여기 사악한 기운이 느껴져서 좀 더 수색해야겠다.”
“잿더미밖에 없지 않습니까?”
“그래. 이 잿더미에서 느껴지는 사악한 기운을 봐라!”
“???”
물론 기사들은 태현의 속셈을 눈치채지 못하고 당황스러워했다.
저기서 뭔가 느껴지나?
안 느껴지지만 태현이 느껴진다고 하는 걸 보니 뭔가 있을지도?
“끄으응….”
“끄으으읍….”
기사들은 인상을 쓴 채 잿더미 주변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물론 그런다고 나오는 건 없었다.
시간을 번 태현은 여유롭게 고민에 잠겼다.
‘그보다 대주교 놈이 어디다 맡겼을까?’
<대주교의 보물을 찾아라!-살라비안 교단 퀘스트>
살라비안 교단 대주교는 죽기 전 막대한 보물을 자기만이 아는 장소에 숨겼다고 한다.
대주교가 죽은 지금 그 보물을 찾아낸다면 완전히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단서를 모아 대주교가 숨긴 보물을 추적하라!
‘단서가 있어야 말이지….’
대주교?
태현이 죽였다.
대주교 심복들?
태현이 죽였다.
대주교가 머무르던 장소?
태현이 불태웠다!
전부 다 태현이 깔끔하게 처리한 덕분에 다른 곳에 가서 불평할 수도 없는 상황!
[카르바노그가 안타까워합니다.]
“뭐 고민하는 거야?”
태현이 계속 생각에 잠겨 있자 에반젤린이 물었다. 태현 정도 되는 플레이어가 고민하는 일은 흔치 않았던 것이다.
“혹시 대회….”
“혹시 살라비안 교단 대주교하고 좀 친한 뱀파이어 알아?”
“…고민이 아니었군.”
에반젤린은 걱정해서 손해봤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긴 김태현이 대회 때문에 긴장할 리 없지!
아무리 그게 결승전이라고 할지라도.
“뭔 대회? 아. 판온 던전. 생각해 보니 슬슬 결승전 준비해야 할 때군.”
대회 경기 준비 이야기가 아니었다.
경기장으로 출발할 준비!
대회 경기 준비는 평소부터 다 하고 있었다.
각종 스킬들을 결승전에 쓰려고 쟁여둔 데다가, 알렉세오스의 축복 같은 버프까지 받은 상태였다.
이세연도 분명 결승전을 대비해 숨겨놓은 것들이 있겠지만, 태현은 그가 숨겨놓은 게 한 수 위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에반젤린도 역시 랭커였는지 태현이 대회 준비 이야기를 하니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역시 결승전을 대비해서 따로 전략을 준비해놓은 게 있구나?”
“물론이지.”
“혹시 뭐 준비했는지 물어봐도 돼?”
“물론 안 되지. 이세연의 스파이야.”
“…….”
어처구니없는 의심을 받은 에반젤린은 어이가 없어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내… 내가 이세연의 스파이라고?”
“말을 더듬는 걸 보니 당황한 게 맞군.”
“하도 개소리라서 당황한 거거든?! 내가 걔 스파이 짓을 왜 해!”
“나에 대한 원한?”
“그건 그럴듯하지만…! 어쨌든 아니거든? 안 알려줘도 돼!”
에반젤린은 화가 나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태현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그래서 살라비안 교단 대주교하고 좀 친한 뱀파이어 아는 놈 있어?”
“…….”
방금 있었던 대화는 천연덕스럽게 무시하고 넘어가기!
에반젤린은 진짜 한 대 후려갈길까 생각했다.
* * *
“아. 판온할 시간도 없는데.”
태현은 투덜거리며 준비했다.
이론상 판온 대회는 집에 있는 캡슐 안에서 해도 됐지만, 결승전쯤 되면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전용 경기장에 직접 와서 얼굴을 내밀고, 카메라 앞에서 촬영하고, 이것저것 이벤트를 진행해야 하는 것!
투기장 대회 같은 경우는 국내 방송사가 진행하는 대회여서 국내 E스포츠 경기장에서 진행됐지만, 이번 판온 던전 공략 대회는 판온 회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대회.
경기장도 해외로 지정되었다.
즉 태현 일행도 비행기를 타고 나가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는 것!
지금 이 시간에도 열심히 판온을 할 사람들을 생각하니 속이 쓰렸지만, 그나마 다행인 건 이세연도 이렇게 시간을 날리고 있을 거라는 점이었다.
“그래도 중국이 아닌 미국이라 다행이다.”
“…?”
케인의 말에 태현이 의아해했다.
“왜?”
“중국이었다면 네 안티들이 습격했을지도 모르잖아.”
“…….”
의외로 그럴듯한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