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08화
사디크와 가장 가까운 자에게 날아가도록 걸린 저주.
왜 대주교가 멀쩡한 적들을 내버려 두고 그런 저주를 걸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태현은 긴장했다.
‘젠장. 한 놈 정도는 살려둘 거 그랬나?’
대륙에 있는 사디크와 가까운 자들은 태현이 모두 사디크 곁으로 보내버린 상황!
게다가 아까 화끈하게 불을 지른 탓에 사디크와 많이 친해진 기분이 들었다.
설마….
에이 설마….
저주가 날아오더니 태현과 흑흑이 사이에서 멈칫했다.
그리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
-…!
태현과 흑흑이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상황을 깨달았다.
둘 중 하나한테 가려고 하고 있구나!
“흑흑아. 역시 사디크의 신수인 네가 사디크와 더 가깝지 않겠냐?”
-주인님. 주인님께서는 사디크 교단을 멸망시키고 사디크의 뜻을 이으시는 분이십니다. 헤헤. 방금도 산을 불태우셨는데 그게 사디크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서로에게 떠넘기는 사이좋은 둘!
“블랙 드래곤으로서 사디크 직접 만나 계약한 너보다 더 친하겠어?”
-아까 주인님께서 사디크의 검을 받은 거 봤습니다!
빙글빙글빙글-
태현은 긴장했다.
저 저주를 맞을 경우 버틸 수 있을까?
태현이 각종 저주 대책이 있긴 했지만, 강력한 저주 스킬은 언제나 두려운 법이었다.
한 번 잘못 걸리면 게임 내내 고생할 수도 있다!
파앗!
-으아아악!
“좋았어!”
-주인이여….
[카르바노그가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봅니다.]
저주는 결국 흑흑이에게 날아갔다.
태현이 요즘 부쩍 친해지긴 했지만 직접 계약을 맺은 흑흑이보다는 덜했던 것!
“후. 살았다.”
“그거 안심할 게 아닌데?”
에반젤린은 당황했다. 저 블랙 드래곤은 태현이 데리고 다니는 펫 아닌가?
“아. 물론 흑흑이가 맞은 것도 마음이 아프긴 하지.”
“…….”
퍽이나 그렇겠다!
“하지만 내가 맞는 것보단 낫잖아. 그래서 저거 뭔 저주인데?”
“뱀파이어가 되는 저주야.”
“…?”
태현은 의아해했다.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뱀파이어가 얼마나 불편한 종족인데.”
에반젤린은 몸서리를 쳤다.
각종 페널티 때문에 고생했던 걸 떠올리면 진저리가 났다.
행운 때문에 고생한 건 특히 그랬다.
-주인님! 햇빛이! 햇빛이!
흑흑이는 비명을 지르며 햇빛을 피했다.
태현은 흑흑이의 상태를 확인해 보았다.
<블랙 드래곤 뱀파이어>!
‘블랙 드래곤 뱀파이어… 처음 보는 종족이네.’
원래 드래곤 정도 되는 종족은 뱀파이어가 되는 일이 없었다.
눈만 깜박여도 뱀파이어를 쓸어버릴 수 있었고, 뱀파이어가 물어도 저항력으로 버틸 수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대주교가 마지막 독기를 품고 날린 저주는 매서웠다.
흑흑이마저 뱀파이어로 만들 정도로!
“그래도 장점이 있지 않나?”
“장점이야 있긴 한데… 너 설마 풀 생각 없는 거 아니지?”
에반젤린은 설마 싶었다.
직업이 뱀파이어 관련 직업인 그녀는 어쩔 수 없었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뱀파이어 상태는 푸는 게 무조건 좋았다.
단점이 너무 귀찮았던 것이다.
햇빛 받으면 데미지 입고, 은 닿으면 데미지 입고….
그녀야 <고대 뱀파이어의 후예>라는 직업 스킬들이 있어 이런 게 커버가 됐지만, 다른 뱀파이어들은 불가능했다.
실제로 판온 게시판에 보면 가끔 뱀파이어가 되는 저주에 걸린 플레이어들이 질문을 올리곤 했다.
Q: 흡혈귀의 고성 퀘스트 깨다가 잘못 맞아서 뱀파이어 됐는데 이거 어떻게 하죠? 햇빛 받는 순간 데미지 들어와서 뭘 할 수가 없어요.
A: 게임을 접으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A: 나 같으면 접는다.
A: 그냥 포기하고 밤에 돌아다니셈.
“아, 아니거든.”
-주인님….
흑흑이가 애처로운 눈빛을 보냈다.
“걱정 마.”
-주인님! 믿고 있었습니다!
“햇빛 안 닿게 양산 만들어줄게.”
-…그런 거 말고 다른 거 없습니까?
“일단 단점은 알 거고, 뱀파이어 장점은… 생명력이 좋아지는 거지. 흡혈하면 빨리 회복하고….”
“고대 뱀파이어는 뭐 더 좋나?”
“고대 뱀파이어는 페널티가 더 적고 장점이 더 좋은 정도?”
태현은 에반젤린의 말에 아이템을 꺼냈다.
<카인의 오른팔>!
예전에 마르덴 후작을 잡고 얻은 강력한 팔찌 아이템이었다.
자체 스탯도 준수했지만 이 팔찌의 진짜 강점은 달린 스킬!
무려 <고대 뱀파이어로 변신> 스킬이 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걸 왜 네가 갖고 있니?”
에반젤린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건 분명 <카인의 오른팔>이라고 불리는 뱀파이어 쪽 아이템일 텐데?
“어쩌다가 주웠어. 흑흑아. 이것 좀 차봐라.”
-주인님. 그냥 해제할 방법을 찾아주시면….
“찾기 전까지는 이걸 하고 다녀야 할 거 아냐. 자.”
태현은 흑흑이의 발을 붙잡고 억지로 팔찌를 끼워 넣었다. 다행히 잘 맞아서 들어갔다.
‘애완동물 표시해놓는 거 같은데.’
흑흑이가 들었다면 화를 냈을 생각을 하며, 태현은 팔찌를 끼웠다.
“변신이나 해봐. 페널티 큰 낮에는 변신하고 다니면 되겠지.”
-고대 뱀파이어로 변신!
연기가 흑흑이의 몸을 뒤덮더니, 흑흑이의 몸이 거대하게 커지기 시작했다.
“…?”
태현은 의아해했다. 이게 뭔 현상?
“너 뭐하고 있니? 억지로 몸 키울 필요는 없는데.”
-그게 아니라… 힘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주인님!
“…!”
사실 용용이나 흑흑이는 둘 다 젊은 드래곤이었다.
학카리아스처럼 고룡 수준은 아니어도, 둘 다 다 자란 드래곤이라고 할 수는 있을 수준!
그런 둘이 레벨 300대에서 헤매고 있는 건 신수 계약을 한 상태에서 너무 많은 힘을 소모해서였다.
경험치를 그렇게 먹었는데도 힘이 다 회복되지 않은 상황!
그런 상황에서 힘이 돌아오고 있다니.
태현은 용용이를 힐끗 쳐다보았다. 용용이는 질색하며 외쳤다.
-주인이여. 나는 뱀파이어 되기 싫다!
태현의 속셈을 눈치채고 바로 반응하는 용용이!
‘쳇.’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뱀파이어 되는 걸로 힘 회복할 수 있다면 남는 장사 아닌가?
쿠쿠쿵-
흑흑이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당당하게 고개를 들었다.
“학카리아스보다는 많이 작은 것 같은데?”
-…다 회복은 안 되어서… 다 회복되면 비슷해질 겁니다!
“진짜?”
다 회복되어도 학카리아스 정도 크기는 안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흑흑이는 우겼다.
-비슷해질 겁니다!
“너 내가 처음 나왔을 때 모습을 기억하는데… 음. 뭐 됐다. 어쨌든 힘이 많이 회복됐다 이거지?”
레벨 300대에서 레벨 500대 정도로!
생각지도 못했던 고대 뱀파이어의 효과였다.
-으아악! 햇빛! 햇빛이!
흑흑이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줄였다. 몸이 커지니 햇빛을 받는 면적도 늘어났던 것이다.
“…….”
-…….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흑흑이는 울컥했다. 뱀파이어 된 지 얼마 안 됐는데 어쩌라고!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군.’
태현은 생각에 잠겼다. 고대 뱀파이어가 되면 사라졌던 힘의 일부가 돌아오는 건 좋았지만, 써먹기가 또 애매했다.
지금 보니 낮에는 쓰기 애매할 것 같았고….
‘태양 없는 밤에나 싸울 수 있으려나?’
사실 무난무난한 스킬보다는 약점이 있더라도 강력한 스킬이 태현의 취향에 맞긴 했다.
전자와 달리 후자는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었으니까!
“알겠으니까 흑흑아. 변신 풀고 들어와 있어. 낮에는 가방 안에 있어라.”
-저… 그게, 변신이 안 풀리는데요.
“…?”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라고?”
-이거 팔찌 변신이 안 풀리는….
“너 지금 고대 뱀파이어 상태 풀기 싫어서 수작 부리는 거 아니지?”
주종 관계지만 신뢰는 없는 둘!
-아닙니다!
흑흑이는 펄쩍 뛰었다. 태현은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설마 팔찌를 먹튀하려고?
보다 못한 에반젤린이 옆에서 흑흑이를 변호해 줬다.
“뱀파이어 저주 때문일 수도 있어.”
“넌 그걸 알면 빨리 말했어야지. 이런 케인 같은 녀석.”
“저런 저주를 맞아봤어야 알지! 난 다른 뱀파이어라고!”
에반젤린은 억울했다. 케인 같은 녀석이 뭔 뜻인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그 느낌만으로 충분했다.
태현은 혀를 찼다. 팔찌 하나 없어진다고 태현이 약해지진 않았지만 뭔가 속은 기분이 들었다.
“에이, 그래. 들어가라.”
-네!
흑흑이는 신나서 몸을 줄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불 대충 다 꺼진 것 같은데. 안으로 들어가 볼까?”
케인은 동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최상윤은 그걸 보며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나도 안 남았겠다.”
전리품이고 뭐고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가봤자 <다 타버린 정체불명의 무언가>, <다 타버린 재 덩어리> 같은 것들만 나오겠지!
“그래도 뭐 확인은 해봐야 하니까….”
뭐라도 챙길 게 있을까 싶어 태현 일행은 주섬주섬 준비를 시작했다.
그때 산 아래로 내려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
살라비안 교단의 깃발!
태현 일행은 깜짝 놀랐다. 대주교가 죽었는데도 아직 남아 있었다니!
“적이다!”
“후. 다행이야.”
태현은 그걸 보고 안심했다.
은을 그렇게 써서 준비했는데 쓸 기회가 오는구나!
에반젤린은 미친 사람을 보는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이상해!
‘쟤는 왜 인기가 많은 거지?’
지금 개인 방송 리플만 봐도 태현이 한마디만 하면 ‘엌ㅋㅋㅋㅋ’ 하며 반응하는 사람들이 수백 명이었다.
태현이 숨만 쉬어도 좋아하는 사람들!
에반젤린이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공격을 준비했다.
“발ㅆ….”
-항복! 항복합니다!
“…….”
* * *
[살라비안 교단의 생존자들이 항복합니다!]
[대륙을 타락시키려던 뱀파이어들의 교단, 살라비안 교단이 완전히 토벌되었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에랑스 왕국 내 당신의 평판이 크게 오릅니다!]
[에랑스 왕국 국왕이 정말로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합니다.]
에랑스 왕국 국왕이 태현을 만나고 싶어하는 건 처음이 아니었다.
하도 많은 일들을 했었고, 그때마다 태현을 보고 싶어 한다고 떴던 것이다.
태현이 바빠서 못 갔던 거지!
[당신에게 병사들을 빌려줬던 영주들이 매우 기뻐합니다.]
[당신에게 은을 빌려줬던 영주들이 매우 만족스러워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은은 먹튀하는 건데….’
경비병들은 장애물 위에 설치된 은을 보며 물었다.
-폐하. 이건 영주님께 반납하면 됩니까?
“아니. 아직 남은 뱀파이어들이 있다.”
“…?”
에반젤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한테는 <타락한 뱀파이어들이 토벌되었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라고 떴는데, 어디에 뱀파이어들이 남았다고?
‘…설마 날 공격하려는 건 아니겠지?’
에반젤린은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
“그 뱀파이어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이 은제 무기들이 필요해!”
은괴 상태로 먹튀하진 못하더라도, 기껏 만든 은제 무기들을 돌려줄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만들었는데 가져가야지!
영지에 두면 언젠가 쓸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은가?
-그렇군요!
-역시 폐하께서는 영웅이십니다!
-충성충성충성!
싸움이 피해 없이 잘 끝나자 경비병들은 완전히 충성도가 올라 아부를 퍼부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레벨!
경비병들의 레벨만 더 올렸으면 에랑스 왕국에 있는 영주들이 맨발로 뛰쳐나와 태현을 맞이해 줬을 텐데….
‘방법이 없으려나?’
[이제 영지에 살라비안 교단의 신전을 설치할 수 있습니다.]
[영지에 살라비안 교단의 사제들을 고용할 수 있습니다.]
[영지에 살라비안 교단의 성기사들을…]
[교단 신전을 설치할 경우 뱀파이어들이 대거 찾아와 주민으로 정착합니다.]
‘…필요 없는데.’
태현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사디크나 시이바의 신전까지 지어준 태현이었지만 살라비안 교단은 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