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804화
요하스의 뻔뻔함에 사띠끄는 말도 잇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사띠끄에게 말했다.
“자. 아키서스 믿자.”
“아… 아니… 나는… 믿는 신이….”
“그래. 그래. 누구나 처음은 다 그런 법이야.”
태현은 자연스럽게 사띠끄를 무릎 꿇렸다. 요하스도 냉큼 사띠끄의 어깨를 붙잡았다.
“자! 아키서스를 믿어라!”
“안… 안 돼…! 크아아악!”
[사디크의 천사, 사띠끄가 아키서스 교단으로 들어옵니다!]
[신성이 크게 오릅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어디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사디크 교단의 NPC들이 극도로 분노합니다!]
[사디크의 권능을 갖고 있습니다. 사디크의 저주를 받지 않습니다.]
[……]
[……]
[천사들 사이에 당신의 악명이 더욱 퍼져나갑니다!]
[천사들이 당신을 피하기 시작합니다!]
[칭호: 천사들의 공포를 얻었습니다!]
“사디크 님…! 잠깐. 폐하는 사디크의 권능을 어떻게 갖고 있습니까?”
“사디크 교단이 대충 멸망해서 내가 남은 애들을 보살펴주고 있지. 사디크 권능도 그 과정에서 얻었고.”
사디크 교단을 멸망시킨 게 태현이긴 했지만!
어쨌든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사띠끄는 그것도 모르고 속아 넘어갔다.
“그러면 제가 아키서스를 믿어도 그렇게 큰 배신은 아닌 거죠?”
“그렇지.”
“아니지. 그건 배신이지.”
옆에서 요하스가 제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줬다.
그건 배신 맞지!
“…….”
“뭐 살다 보면 배신 좀 할 수 있는 거 아니겠냐. 난 다 이해한다.”
태현은 사띠끄를 격려해 줬다.
“자. 그래서 사띠끄. 안 그래도 요하스가 혼자서 수도 관련으로 일하느라 힘들었는데 잘됐다. 넌 스펙이 어떻게 되니?”
“…예?”
갑자기 분위기가 면접장처럼 바뀌었다. 사띠끄는 적응하지 못하고 당황했다.
“어, 그러니까, 저는 일단 최고급 궁술 스킬을….”
“오. 그래? 좋네. 그리고?”
“최고급 화염 마법 스킬을….”
“마법사가 부족한데 그건 아주 좋아. 우리 교단에 지원할 만해.”
“음음. 그렇습니다. 폐하.”
태현과 요하스가 순식간에 쿵짝이 맞아 말을 주고받자 사띠끄는 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대륙은 이런 곳이었나?
대륙 너무 무서워!
태현은 기대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사디크는 화염을 다루는 신. 대장장이 기술도 그만큼 뛰어나겠지?”
“어… 저는 재봉 전문인데요.”
천이나 가죽옷 다루는 전문!
태현은 정색했다.
“아니, 자네는 왜 사디크를 믿는다면서 화염을 다루기 좋은 대장장이 기술이 아니라 재봉을 익혔나? 전공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국어국문학과 들어가고서 판온 프로게이머로 데뷔한 사람이 하는 소리치고는 조금 많이 이상했다.
“폐하. 말투가….”
“아. 미안. 몰두하다 보니까… 어쨌든 재봉이라 이거지? 그래… 뭐 이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대장장이 기술이야 요하스가 있으니까.”
“폐, 폐하. 제 일이 많아서 도와주시려고 한 거 아니었습니까?”
“쟤가 재봉 전문이라는데 어떡하냐.”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천이나 가죽 관련 장비도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마법사나 도적 등 중갑을 입지 않는 사람들의 필수 장비!
“자. 그러면 대충 이 정도로 정리하고 사띠끄한테 어디서 일하면 되는지 알려주자고.”
태현은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속도로 일을 마무리 지었다.
사띠끄는 자기가 뭐에 당한 건지도 모르는 채 수도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폐하! 폐하!”
“응? 왜?”
“아니…! 제가 대륙에 온 건 악마들을 막기 위해서라니까요!”
“아. 그랬지.”
태현은 그제야 사띠끄의 목적을 떠올렸다.
“그거 진심이었어?”
“…당연히 진심입니다! 절 뭘로 보시고!”
“아니… 넌 사디크 믿는 천사잖아. 사디크는 악신이고. 그냥 핑계인 줄 알았지.”
“사디크 님이 조금 성질 더럽고 대륙을 불태우긴 하지만 대단한 신입니다!”
“…….”
[카르바노그가 한심하게 쳐다봅니다.]
둘이 차가운 눈빛을 던졌지만 사띠끄는 꿋꿋이 말을 이어갔다.
“사디크가 대륙에서 세력은 작을지 몰라도 사디크 역시 대단한 신입니다. 다시는 사디크를 무시하지….”
사띠끄가 악마를 막으려 온 건 진심이었다.
하는 짓은 비슷했지만 악신의 천사와 악마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내가 타락시킬 사람들 먼저 타락시키지 마라!
악마가 사람을 타락시키는 건 절대 두고 볼 수 없었던 것!
일종의 상도덕이었다.
그런 상도덕을 지키지 않는 악마들은 악신의 천사들에게 분노의 대상이었다.
“됐고. 그래서 악마를 막으러 왔다 이거지?”
“예!”
“음. 근데… 사디크 교단이면 그냥 자기 앞가림이나 하는 게 낫지 않을까?”
“…….”
“…….”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명치를 후려친 것 같은 일격!
“폐하. 그건 좀 말씀이….”
[카르바노그도 심했다고 말합니다.]
“아니. 교단 망했으면 교단부터 다시 지어야 하지 않나? 악마 상대할 시간에….”
“대륙의 교단은 대륙의 종족들이 지어야 합니다! 악마를 상대하는 것이 더 우선입니다.”
“그래. 알겠다.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천사들도 참 여러모로 하는 거 없군!
태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교단 관리는 돕지도 않고 와서 악마만 잡으려고 하고 있으니….
사디크 교단 놈들이 알면 참 억울할 것 같았다.
“그러면 악마를 막으러 가는 겁니까?”
“응? 아니. 악마는 내가 막을 테니까 넌 여기서 일하고 있어.”
“…….”
* * *
사띠끄의 덕을 제대로 본 건 유지수였다.
사띠끄가 주력으로 궁술 스킬을 갖고 있었기에 대부분을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사띠끄에게서 뜯어낼 수 있는 건 전부 뜯어낸 다음에야 일행은 움직일 준비를 시작했다.
문제는….
태현부터 의욕이 별로 없다는 것!
“악마를 꼭 막아야 하나? 아. 없으면 좀 섭섭할 거 같은데.”
대륙에는 꼭 있어야 할 존재!
대륙에 악마가 없다면 무슨 즐거움으로 살겠는가?
“그래도 너무 많아지면 좀 그렇지 않나요?”
“맞아. 악마들이 많아지면 여기 아탈리 왕국도 좀 위험하다고.”
땅, 땅, 땅-
회의 자리였지만 망치 소리가 계속해서 들렸다.
태현이 대장간 앞에서 만들고 있었으니까!
“…그냥 우리 나중에 회의하면 안 되냐?”
케인은 정신 사나워서 물었다.
“안 돼. 시간을 아껴야지.”
‘이런 미친놈 같으니….’
“너 지금 나 욕했지?”
“허억!”
“놀란 거 보니 정말 욕한 게 맞군. 어쨌든 이야기 계속해라.”
태현은 지금 <아키서스 포병대>를 다시 무장시키기 위해 작업을 추가로 마치고 있었다.
거대한 전갈 위에 대포를 올리고 다니는 아키서 부족 전사들과 드워프들!
안 그래도 무시무시한 이들이었는데 거기에 중무장을 하니 더더욱 무서워졌다.
NPC 용병단 두셋은 그냥 날려 버릴 수 있는 전력!
땅!
태현은 망치질을 마치고 말했다.
“그리고 아탈리 왕국은 괜찮을 거 같아.”
“아. 하긴. 악마들이 너만 보면 도망치니까 내려오더라도 아탈리 왕국은 좀 덜 찾아오겠네.”
케인은 납득했다. 그러나 태현은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뭔 헛소리야?”
“어? 분명 세계수 밑에서 악마들이 널 보고 도망치지 않았나?”
“그건 그냥 하급이라서 그런 거고. 설마 다른 악마들까지 그러겠냐? 악마들이 그러면 악마 이름 떼고 다녀야지.”
태현은 냉정했다.
“그러면 왜 괜찮다는 건데?”
“아. 수도랑 골짜기는 방어 제대로 되어 있으니까 어차피 털리는 건 내 말 안 듣는 놈들이야.”
“…….”
“…….”
현재 아탈리 왕국의 수도와 골짜기를 제외하면 태현의 명령을 듣는 영주들이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새 국왕 태현의 명령을 잘 안 듣는 이들!
그런 놈들이 뭐가 예쁘다고 영지를 챙겨주겠는가.
알아서 해라!
악마들한테 좀 당해봐야 정신이 들겠지!
그러나 태현은 모르고 있었다.
이번에는 케인이 맞았다는 걸!
사실 악마 한두 번 잡았다고 악마들이 그 사람을 두려워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긴 했다.
악마 종족이 무슨 종족인가.
마계에서 태어난, 겁을 모르고 세상을 파멸시키려고 하는 타락한 종족 아닌가!
그런 종족이 몇 번 맞았다고 겁을 낸다면 그건 말도 안 되는 일!
그러나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대륙에 나온 악마들을 두들겨 패고, 붙잡아서 이용하고, 화살받이로 써먹고….
하도 많아서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
원래라면 악마들이 겁을 먹지 않았을 테지만, 태현은 너무 많이 악마들을 괴롭혀왔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세계수에서 내려온 대부분의 악마들이 태현을 피해 다른 왕국으로만 가고 있는 현상!
‘지금이 바로 적기야.’
그런 것도 모르고 태현은 빠르게 계획을 세웠다.
길드 동맹이 분열되고 한숨 돌릴 수 있는 지금!
지금 바로 아탈리 왕국의 내부 정리를 해야 했다.
태현이 국왕에 오르긴 했지만 태현의 편에 선 귀족 NPC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길드 동맹과 싸울 때라면 건드릴 수 없었지만 지금은 건드릴 수 있었다.
‘세계수도 오스턴 왕국 쪽에 솟아난 상황. 거기서 나온 악마들은 아탈리 왕국 북쪽 영지들부터 먼저 오게 되어 있어. 악마에 피해를 입기 시작하면 거기 영주들은 날 부를 수밖에 없을 거고.’
사람은 아쉬울 때 굽히고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게다가 태현은 화술 스킬 최고급!
영주들이 ‘폐하, 영지에 악마들이 많이 나오는데 악마를 많이 잡아본 영웅은 폐하밖에 없습니다. 도와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순간 영주들은 갖고 있는 걸 모두 털릴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완벽한 계획이야!’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바노그가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잠시 악마를 내버려 두자. 좀 더 퍼지면 그때 잡고 막을 방법을 찾아도 되니까.”
“엥? 진짜?”
“그래. 지금 그것보다 급한 게 많으니까. 일단 에랑스 왕국으로 가자고.”
마침 최상윤과 에반젤린에게서 연락이 오고 있었다.
살라비안 교단 토벌 도저히 못 해 먹겠다고!
* * *
[아키서스 포병대의 겉모습이 주민들을 놀라게 만듭니다!]
[주민들이 두려워합니다!]
“…….”
태현 일행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포병대를 쳐다보았다.
생각지 못했던 부작용!
겉모습이 너무 흉악해 주민들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아스비안 제국이야 워낙 넓고 대부분이 사막이라 이런 놈들 데리고 다녀도 상관이 없었지만, 에랑스 왕국은 이야기가 달랐다.
판온 왕국 중 치안이 가장 높은 대국!
덕분에 5분마다 한 번씩 병사들이 찾아왔다.
[경비대장 한스가 당신들을…]
[명성이 너무 높습니다!]
[아탈리 왕국의…]
“허억! 죄송합니다!”
경고하러 왔다가 너무 높은 스탯과 국왕의 이름에 다시 호다닥 돌아가는 경비대장들.
두 번쯤 반복되자 귀찮아졌고, 네 번쯤 반복되자 태현은 슬슬 저것들을 써먹을 방법이 없나 고민하게 되었다.
‘흠. 살라비안 교단 토벌에 데리고 갈까?’
생각지도 못한 발상!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마을이나 도시 주변을 돌아다니는 경비대 병사들을 그렇게 쉽게 빌릴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런 게 가능하다면 플레이어들이 왜 비싼 돈을 주고 용병을 고용하겠는가.
그러나 태현은 달랐다.
‘흠. 잘하면 될 거 같기도 하고?’
일단 에랑스 왕국에 있는 악신 살라비안 교단 토벌하러 가는 거기도 했고, 명성도 높고, 국왕이기도 했고….
잘 협박하고 달래면 빌릴 수 있지 않을까?
“이봐! 이런 곳에서… 허억! 죄송합….”
“죄송하면 대가를 치러야지!”
[경비대장 잭스와 잭스 휘하의 에랑스 왕국 경비병 열다섯 명이 밑으로 들어옵니다!]
[임시로 지휘할 수 있습니다.]
[최고급 전술 스킬을…]
[보너스를 받습니다!]
[병사들을 잃어버릴 경우 에랑스 왕국 쪽에 항의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병사들을 성장시킬 경우 에랑스 왕국 쪽에 감사를…]
‘오. 되네.’
다른 플레이어들이 봤다면 대체 어떻게 한 거냐고 기겁했을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