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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될놈이다-803화 (803/1,826)

§ 나는 될놈이다 803화

‘어… 막아야 되나?’

태현은 고민했다.

악마들을 정말 막아야 할까?

사실 악마들은 대륙에 도움이 되는 존재 아닐까?

나와서 모험가들한테 잡혀주면 전리품도 떨어뜨려 주고, 각종 스킬들에도 능숙해 붙잡아서 고용하면 영지 운영에 도움도 되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아. 악마가 정말 나쁜 놈들이란 생각을 하고 있었지.”

“역시! 폐하!”

천사는 기뻐했다.

아탈리 왕국의 새 국왕, 태현에 대해 이런저런 안 좋은 소문이 있었지만 그건 역시 헛소문이었다.

저렇게 명성 높은 영웅이 그런 짓을 했을 리가!

명성 스탯이 악명 스탯을 훌쩍 뛰어넘어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의심부터 받았을 것이다.

‘근데 쟤 진짜 누구 천사지?’

파이토스… 는 아니고.

태현을 찾아올 만한 천사가 누가 있더라?

아키서스? 카르바노그?

‘아니지. 아키서스는 천사가 없지.’

쫄딱 망한 신답게 천사도 찾기 힘든 아키서스였다. 이제 와서 나오면 그게 더 놀라웠다.

카르바노그는….

[카르바노그는 대신 천사 같은 토끼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

카르바노그도 거의 잊혀져 가던 마이너 신!

천사를 데리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오죽 존재감이 없었다면 신들과 악마들이 싸우고 대륙을 떠날 때 혼자 여기 남아 있었겠는가.

[카르바노그가 항의합니다.]

그냥 정말 순수하게 세계수를 지키러 온 천사인가?

“흠. 그래.”

태현은 고민을 멈추고 손을 내밀었다. 천사는 그 손을 붙잡고 악수하려고 했다.

살짝 놀란 표정으로!

‘이것이 인간 영웅의 정의로움인가…!’

뭐가 이득이고 손해인지 따지지 않고 악마를 막기 위해 바로 나서는 정의로움!

탁!

“폐하! 역시 폐하는…!”

“너 뭐하냐?”

“??”

“지원 내놓으라고.”

태현은 천사가 붙잡은 손을 쳐내고 다시 손을 내밀었다.

천사는 손을 자세히 봤다.

악수가 아니라 뭘 내놓으라는 듯이 펼치고 있었다.

“…….”

“뭐가 있어야 악마를 막을 거 아니냐? 자. 빨리 갖고 있는 거 다 내놔봐.”

* * *

잠시 혼란에 빠진 후, 천사는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저… 제가 지원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만.”

“어디서 거짓말을 해? 천사는 믿고 있는 신의 교단으로 가면 지원 얻어낼 수 있는 거 다 안다. 가서 받아와.”

대륙에 있는 교단과 천사는 서로 돕고 돕는 사이였다.

차이가 있다면 천사가 좀 더 높은 위치에 있고 신과 가깝다는 자부심에 가득 차 있다는 차이 정도?

덕분에 천사가 나타나면 교단 성기사나 사제들은 물불 가리지 않고 도왔다.

“제 교단은… 음… 대륙에서 잠시 사라졌….”

“망했다고?”

“망하지 않았습니다!”

천사는 발끈해서 외쳤다.

“망한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모든 교단들이 망할 때가 있는 법이라고.”

“그런 게 어디 있… 아. 아키서스 교단. 크흠.”

말하던 천사는 아키서스 교단을 떠올렸는지 헛기침을 했다.

한동안 교단이 멸망했다가 앞에 있는 태현이 부활시켰다는 걸 떠올린 것이다.

그래! 교단이 망하기도 하는구나!

‘교단이 망한 곳이면 내가 알기가 힘든데….’

태현은 고민했다.

판온에는 수많은 신들이 있었고 태현이 모르는 신들이 더 많았다.

그런 신을 믿는 천사라면 태현이 정보를 알아내는 게 무리였다.

‘뭐, 확인하지 말고 그냥 뜯어내기만 하면 되지.’

“가진 게 없으면 몸으로 때워야지.”

“폐… 폐하. 저는 천사입니다.”

“뭐 어쩌라고? 너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천사도 몸으로 때웠어.”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천사는 발끈했다.

어디서 그런 거짓말을!

태현은 천사가 화를 내는데도 당황하지 않고 말했다.

“진짜면 어쩔래?”

“진짜면 제가 믿는 신을 바꾸겠습니다!”

“?”

“??”

“???”

-????

[?????]

자리에 있던 일행, 흑흑이, 용용이, 카르바노그까지 동시에 경악!

저 천사 혹시 호구들의 신 ‘사기당한 놈’을 믿는 천사인가?

태현도 당황할 정도였다.

살짝 속여서 조금 뜯어낼 생각이었는데 냉큼 ‘절 잡아먹어주십시오!’라고 선언하다니.

‘아니야. 천사가 원래 이런 종족일 수도?’

[카르바노그가 그건 아니라고…]

‘사람들이 천사를 안 만나봐서 그런 거지, 사실 천사는 이런 퍼주는 종족이었던 거지.’

[카르바노그가 정신 차리라고 외칩니다!]

‘천계를 막아놓은 건 그래서였나! 어떻게든 가야겠군.’

[카르바노그가 바닥을 탕탕 칩니다.]

“그래. 가자.”

태현은 정신을 차리고 천사에게 말했다.

“어딜 말입니까?”

“네게 보여줄 사람… 아니, 천사가 있다. 그런데 네 이름은 뭐니?”

그러고 보니 천사의 이름도 모르고 있었다.

“제 이름은 사띠끄입니다.”

“…사디크?”

“아, 아니! 무슨 그런 불경스러운… 사띠끄입니다!”

사디크 이름으로 불러주니 불경스럽다고 펄쩍 뛰는 천사!

“그, 그래. 사띠끄….”

태현은 다른 일행들과 시선을 교환했다.

-얘 사디크 믿는 천사지?

-맞는 거 같은데요.

-사디크 믿는 천사 같은데…?

-사디크 믿는 천사가 왜 나한테 오지?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사디크 교단과 철천지원수인 게 태현!

나름 야심 차게 왕국 먹어서 대륙 양지에 모습을 드러내려던 사디크 교단을 막은 것도 태현이었고, 골짜기로 쫓아가서 교단을 날려 버린 것도 태현이었고, 그것도 모자라 다른 대륙까지 쫓아가서 남은 쪽박마저 깨버린 것도 태현이었고….

마지막 마지막에 화신 소환하려던 성기사단장을 방해하고 마지막 희망까지 끝내버린 것도 태현!

솔직히 사디크가 대륙 오는 순간 태현부터 멱살 잡을 것 같았다.

-지금 그나마 대륙에 있는 사디크 계승자가 태현 님밖에 없어서 아닌가요?

이다비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럴듯했다.

그나마 남은 사디크 권능 사용자!

사디크 성기사단장이나 대주교는 태현이 사디크 곁으로 보내버렸고, 남은 교단 NPC들은 태현이 아키서스 교단으로 흡수했다.

<아키서스를 믿는 사디크…> 뭐시기로 변한 지 오래!

그렇게 생각하니 사띠끄가 좀 안쓰럽게 보였다.

원래라면 교단 가서 지원받아야 할 놈이 태현 때문에 저렇게 혼자서 돌아다니고 있었으니까.

오죽 도와줄 사람이 없었으면 태현한테 왔을까!

“왜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폐하?”

“아무것도 아니야.”

불쌍하긴 했지만 공은 공, 사는 사.

태현은 사띠끄를 내버려 둘 생각이 없었다.

내기는 분명 네가 걸었다!

* * *

“여기는 사람들이 모두 신을 열렬하게 믿습니다. 보기 좋습니다.”

천사 사띠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 있는 플레이어들을 보고 감동한 사띠끄!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아키서스의 이름을 간절하게 불렀다.

-아키서스으으으으! 아키서스!!

-아! XX! 아키서스 님! 좀! 제발 좀!

-아키서스 XXX!

욕이 들린 것 같은데 그건 기분 탓이겠지?

“그보다 여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사띠끄는 의아해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딘가 많이 익숙한 광경!

“하하. 빨리 들어가자.”

태현은 사띠끄를 재빨리 끌고 들어갔다.

원래는 사디크 교단의 소굴이었던 골짜기!

사띠끄가 오래 보면 뭔가 이상한 걸 눈치챌 수도 있었다.

‘그나저나 이놈 사디크 교단이 어떻게 탈탈 털렸는지는 모르는 게 확실하군.’

대륙에 없던 천사답게 사디크 교단이 왜 망했는지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차라리 잘 됐다!

태현은 입을 싹 닫기로 했다. 그게 사띠끄를 위하는 일이었다.

모르는 게 행복하겠지!

“자. 봐라. 사디크.”

“사띠끄입니다.”

“아. 미안. 사띠끄. 저기 천사 보이지?”

태현은 대장간을 가리켰다. 악마들과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 훈훈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제가 요즘 고민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지?

-폭탄 안에 뭘 넣어야 상대방이 기분이 더 나쁠지… 데미지가 높은 폭탄보다 상대방의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폭탄이 진정한 폭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저건 악마 아닙니까?”

“응? 아. 미안. 생각해 보니 착각했다.”

악마의 대장간이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에 있었고, 요하스가 맡은 천사의 대장간은 아탈리 왕국 수도에 있었다.

“폐하?? 폐하???? 저건 악마잖습니까!”

“악마는 악마인데 내가 붙잡아서 노예로 부리는 악마야. 마계로 돌아가지 말고 반성하라는 거지.”

[설득에 성공합니다.]

[사띠끄가 매우 감동합니다!]

“아키서스 교단에는 그런 좋은 풍습이 있군요!”

“그렇지. 악마를 그냥 보내면 안 된다. 우리 교단의 법칙이야.”

“저희 교단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띠끄 입맛에도 딱 맞는 규칙!

악마는 일단 무조건 죽여야 한다고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그 능력이 조금 아쉽기도 했다.

잘 부려먹으면 더 좋지 않을까?

과연 악신 계열 사디크의 천사다운 생각이었다.

아직 대륙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조심하고 있었지만 본성은 어디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면 수도로 가야겠네. 자. 빨리 가자.”

“예. …잠깐. 저거 사디크 사제 아닙니까?”

“사디크? 그런 신은 모르는데. 너 혹시 사디크 천사니?”

“저, 저는 아닙니다만 방금 사디크 사제를 본 것 같은데….”

“아. 시간 없다니까. 빨리 움직이자고!”

“예….”

아쉬운 을의 입장인 사띠끄는 불평할 수 없었다. 결국 태현의 손을 잡고 수도로 향했다.

* * *

“자. 저기 천사가 있다!”

“말… 말도 안 돼! 천사가 왜!”

“…?”

열심히 노동하던 요하스는 외침에 고개를 돌렸다.

“누구십… 아니! 저건 악신의 천사 아닙니까!”

“뭐? 요하스. 그걸 어떻게 알았지?”

“날개 색! 날개 색을 보십시오!”

“???”

태현과 일행은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둘 다 날개 색은 흰색인데?

“저놈 색이 훨씬 더 탁하지 않습니까!”

“어… 그렇게 말하니까 아주 미묘하게 덜 흰 것 같기도 하고…?”

엄청 노려봐야 아주 조금 알 것 같은 미묘한 차이!

무슨 마X노기도 아니고 이런 차이를 구분하는 놈이 어디 있겠는가!

“저게 바로 악신을 믿는 천사의 상징입니다!”

“그, 그렇군.”

[천사에 관한 지식이 늘었습니다.]

[천계로 갔을 때 보너스를…]

‘…이런 걸 알아야 해?’

[카르바노그도 고개를 끄덕입니다.]

요하스는 냉큼 달려와 사띠끄를 밀쳐냈다.

“폐하! 저런 놈과 놀면 안 됩니다! 속을지도 모릅니다!”

“으음?”

“??”

방금까지 태현이 사띠끄를 사기에 빠뜨리려던 걸 본 일행은 모두 당황했다.

누가 누굴 속인다고?

“쟤 착하던데?”

“착해 보이는 건 위장입니다. 폐하! 천사는 믿는 신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존재. 악신의 천사는 근본적으로 사악합니다. 악마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악마와 악신의 천사는 어떤 점이 다를까?

사실 서로 싫어한다는 것 빼고는 하는 짓이 비슷했다!

그걸 빼면 신성력을 쓰지 않는다는 점 정도?

요하스는 악마를 욕하기 위해 썼지만, 태현에게는 별로 욕으로 들리지 않았다.

악마=쓰기 좋은 부하!

“저 천사가 착하게 굴었다면 저 천사가 아쉬운 게 많아서 그랬을 겁니다!”

“아. 확실히.”

교단은 모두 사라졌고 믿을 구석은 태현밖에 없으니, 태현 앞에서 공손하게 군 것도 이해가 갔다.

‘그러면 먹고 살 만하면 본색이 나온다는 건가?’

[안 먹이면 된다고 카르바노그가 해답을 내놓습니다.]

‘카르바노그는 참 똑똑해.’

[카르바노그가 엣헴합니다.]

“…뭐 어쨌든. 이제 얘는 악신의 천사가 아니다.”

“예? 어째서 말입니까?”

“내기를 했거든. 몸으로 때우는 천사가 있을 리 없다고. 있으면 믿는 신을 바꾼대.”

요하스는 민망함에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니… 저도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데….”

“그래그래. 넌 잘못이 없어. 어쨌든 사띠끄….”

사띠끄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뒤늦게 정신이 돌아온 그는 입을 떡 벌리고 요하스를 가리켰다.

“너… 너는 자존심도 없냐?!”

요하스는 시선을 피하고 모르는 척했다.

“나… 나는 처음부터 아키서스의 천사였다. 화신을 위해 봉사 정도는 좀 할 수 있지.”

“…….”

“…….”

[천사는 모시는 신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게 확실하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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