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87화
‘좋아!’
자기 발로 드래곤 뱃속으로 들어간다!
남들이 보면 미친 생각이라고 했겠지만 태현은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다.
아직 안 쓴 권능 스킬들과, 빠르게 쿨타임이 돌아오고 있는 권능 스킬들.
이것들을 조합한다면 드래곤 뱃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목숨 하나는 부지할 자신이 있었다.
[카르바노그가 말립니다. 그냥 <신의 예지>가 알려준 약점을 뚫어보자고 합니다.]
‘아니야. 상대도 바보가 아니라서 무리다. 아까부터 계속 확실하게 방어하고 있어.’
보통 플레이어라면 가장 취약한 약점이 있을 경우 거기에만 집착했을 것이다.
그러나 태현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약점도 거기에 데미지를 넣을 수 있어야 약점!
-용용아!
-주인이여!
위에서 날며 공격하던 용용이가 태현의 부름에 쏜살같이 날아왔다. 태현은 재빨리 용용이 위에 타며 외쳤다.
-앞으로!
-어? 주인이여. 학카리아스가 물 수도 있다.
하필이면 왜 학카리아스 머리 근처로?
-날 믿어라!
-알겠다!
용용이는 태현을 믿었다.
괜히 골드 드래곤이 아니었다.
쉬이익!
-…!
학카리아스는 바로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어느 몬스터나 머리는 약점.
당연히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취약의 저주, 시간 둔화의 저주, 해체 불가능의….
순식간에 수십 개가 넘는 마법들이 목 근처를 감싸기 시작했다.
원래도 강력한 마법 결계가 쳐져 보호하고 있었는데, 저렇게 마법으로 떡칠이 되자 접근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주인이여! 무리다!
-목이 아니야! 위로 올라가!
-?!
태현은 학카리아스와 눈을 마주하고 섰다. 목이 아니라 입 앞으로 온 태현의 모습에 학카리아스는 살짝 당황했다.
-브레스를 먹여주….
-주인이여!?
탓!
태현은 용용이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목만 집중적으로 방어하고 있던 학카리아스는 태현의 움직임에 기겁했다.
저놈이 지금 어디로 착지하는 거야?
-블랙 드래곤 브레스!
촤아아아아아아아악!
[블랙 드래곤 브레스를 직격으로 맞았습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회피에 성공합니다!]
[회피에…]
[브레스의 독기로 인해 장비의 내구도가 빠르게 하락합니다!]
[행운 스탯으로 인해 장비의 내구도가 일정 이상으로 하락하지 않습니다!]
[……]
태현이 학카리아스의 혓바닥 위에 착지하는 순간, 학카리아스의 목구멍 안에서 브레스가 솟구쳐 나왔다.
태현은 이를 악물고 대만불강검을 학카리아스 입천장 안에 박았다.
푹!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학카리아스가 고통에 발광합니다!!]
[마법 <학카리아스의 산성비>가 취소됩니다!]
[마법 <학카리아스의 대지 골렘>이 취소됩…]
[마법 <학카…]
[……]
이제까지 단단한 비늘 위로 공격을 맞아대던 학카리아스도, 입천장 안에서 찔러대자 괴로워서 날뛰었다.
학카리아스의 어마어마한 HP를 생각해보면 태현의 폭딜도 초라한 수준이었지만….
이런 고통은 처음 겪어보는 것!
덕분에 주변을 휩쓸던 학카리아스의 마법이 취소되기 시작했다.
산성비에 쓸려 나가고 각종 원소 마법에 쓸려 나가던 악마들은 그 모습에 반색했다.
-죽여라! 죽여!
-지금이다!
학카리아스는 비명을 지르며 외쳤다.
-이런 미친 인간 놈! 어디로 들어가는 거냐!
“고맙게 생각해라, 학카리아스! 입이 막혔다면 뒷구멍으로 들어갈 생각이었거든!”
[카르바노그가 제발 좀…]
여유있게 대답했지만 사실 태현의 상황도 아슬아슬했다.
앞이 보이질 않았다.
마치 거대한 모래폭풍에 휩쓸린 것 같은 시야!
아직도 주변을 브레스가 휩쓸고 있었던 것이다. 태현은 이를 악물고 <신의 예지>를 사용했다.
입안으로 들어오자 <신의 예지>는 지금 상황에 맞게 새로운 길을 보여줬다.
‘저기다!’
태현은 대만불강검의 칼날 폭파를 사용했다.
다시 한번 학카리아스가 발광하고, 태현은 그 틈을 타 브레스를 헤치고 학카리아스의 목구멍으로 뛰어들었다.
‘역시 목구멍이 맞았어!’
[칭호: 드래곤 브레스를 맞고도 살아난 자를 얻었습니다.]
[체력이 크게 오릅니다!]
[민첩이 크게 오릅니다!]
[……]
[……]
[레벨 업 하셨습니다!]
아직 잡지도 못했고, 치열하게 싸우고만 있었는데도 레벨이 올랐다.
드래곤이 어느 정도 상대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키서스! 아키서스으으으!
학카리아스는 절규했다.
왜 드래곤들이 아키서스와 상종하지 말라는지 몸으로 직접 겪는 중!
설마 입으로 들어가 몸 안으로 들어올 줄이야!
이제 싸움은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 * *
드래곤 레이드가 워낙 화려해서 주변의 시선을 전부 끌어오고 있었지만, 그 뒤의 평원에서도 못지않게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길드 동맹 vs 오크 대공세!
원래라면 몇 주 동안 이거 관련 영상만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커다란 이벤트였다.
“내가 나선다! 비켜!”
“와아아아아!”
태현이 아키서스의 축복을 걸어주고 가버린 덕분에 오크들은 순식간에 진지 앞까지 다가와 난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레벨이 낮아도, 계속해서 맞고 맞고 맞다 보면 피해가 쌓이게 마련.
하나둘씩 로그아웃되고 쓰러지는 사람들이 나오자 결국 랭커들이 앞으로 나왔다.
-고대 무술 권법!
-몰아치는 얼음의 파도!
-섬광의 연쇄!
“…!”
랭커들은 과연 대단했다.
한 번 나서서 스킬을 사용하기 시작하자 주변에 있던 오크들이 수십씩 날아가며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대로라면 기껏 진지 앞에 붙어서 원거리 공격을 막은 게 소용없게 된다!
“가자! 저놈들을 막아야 한다!”
아저씨들은 용감하게 외치며 달려들었다.
컨트롤로는 밀리더라도 장비로는 밀리지 않아!
“뭐 이런… 죽어라!”
랭커, 린야오는 달려오는 아저씨 셋을 보고 바로 권법 스킬을 사용했다.
사방에 몰아치는 화려한 주먹의 그림자!
그러나 오크 아저씨들은 버텨냈다.
온갖 옵션이 덕지덕지 붙은 장비의 힘!
“시간만 끌어! 무리하지 말고!”
“알고 있다! 어이쿠! 이놈 살벌한 거 봐! 야, 이놈아! 넌 부모도 없냐!”
“내가 집에 가면 너만 한 자식이 있어 이 자식아!”
“…….”
린야오는 정신이 혼미해지는 걸 느꼈다. 이 인간들은 뭐지?
“됐다!!”
-취이이이익!
“!!!”
랭커들이 아저씨들에게 발목이 묶인 사이, 가장 앞에 위치한 진형 하나가 무너졌다.
거인들과 사디크의 마수가 집중적으로 덤빈 덕분에 진지가 완전히 박살 나고 그 사이로 오크들이 미친 듯이 쏟아져 들어온 것이다.
거기 안에 있던 길드원들과 NPC들은 그대로 포위당했다.
나름 버텼는데도 결국 대부분이 빠져나오지 못하고 로그아웃!
“크으윽!”
“큭!”
“우리도… 늙은 건가!”
그러나 진형 하나를 무너뜨린 대가는 컸다. 랭커 상대로 시간을 끌던 아저씨들도 하나둘씩 쓰러진 것이다.
아무리 장비가 좋아도 따라갈 수 없는 레벨과 실력!
시간을 끈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었다.
“죽어, 이 아저씨들아!”
린야오는 외치며 달려들었다. 그 순간 케인이 외쳤다.
-노예의 쇠사슬!
“으헉?!”
린야오가 그대로 끌려갔다. 린야오는 케인을 보고 경악했다.
“너… 너 이 자식!”
“케인!”
“케인! 케인! 케인! 케인!”
최강지존무쌍 길드원들은 케인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여기도 랭커가 있다!
그 외침에 케인은 뭉클해졌다.
‘크흑…!’
아까 아키서스 포병대를 지킬 때와는 딴판이었다.
-이거 지키는 거 의미가 있어? 학카리아스 소환수는 악마들이 오기 전에 다 썰어버리는데….
-근데 가면 죽잖아요.
-맞습니다. 그냥 팝콘이나 가져오… 아니, 그냥 경계나 하시죠.
-…나 저기 도우러 갈래!
케인은 울컥해서 외쳤다.
차라리 저기 뒤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에 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선배가 지키라고 명령했잖습니까?
-내가 김태현이 하라고 하면 하는 사람인 줄 알아?!
-네.
-그렇죠?
-당연한 소리를?
-…물론 내가 김태현이 하라면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한테도 자유 의지가 있어!
케인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래서 김태현한테 귓속말로 허락을 받았지.
-…….
-…….
-…….
-그러면 난 갔다 올게!
-저 사람 정말 쓸모가 있나요?
유지수가 의문을 표했다. 이다비와 정수혁이 변명해 줬다.
-그래도 활약할 때는….
-맞습니다.
* * *
“케인! 케인! 케인! 케인!”
케인은 거만하게 손을 들고 환호성에 답해줬다.
이 맛에 유명해지는 건가!
환호성이 들릴 때마다 뿌듯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살벌한 목소리가 곳곳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저 새끼 잡아 오는 놈한테 영지 준다!”
“케인 목에 영지 걸려 있다! 죽여!”
“?!?!”
케인은 기겁했다.
아니, 김태현이야 그런 현상금 거는 게 이해가 간다지만 왜 나까지?!
케인은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태현의 오른팔!
그 상징적인 의미는 길드 동맹이 이를 갈기 충분했다.
김태현을 잡기 무리라면 케인이라도 잡아서 길드 동맹의 체면을 세우고 말겠다!
“잡아라! 영지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미친!”
케인은 비명과 함께 뒤로 물러섰다. 오크들이 사방에서 덤비고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케인 척살 파티가 조직되어 덤벼오기 시작했다.
케인은 태현처럼 다가오는 놈들을 다 쓸어버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공격을 손쉽게 씹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케인을 보호해라!”
“취이익! 케인 전사를 보호해라!”
“케인! 잘했다! 놈들이 스스로 진형을 무너뜨렸다!”
아저씨들이 감탄했다.
보라!
태현보다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이는 케인.
그 케인을 쫓아 수많은 길드원들이 진형 안에서 밖으로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멍청이들아! 그렇게 많이 나가면 어떡해!”
“돌아와!”
그러나 탐욕으로 눈이 먼 길드원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케인은 확실히 잡을 수 있어!
“대단하다. 스스로를 미끼로 삼아 진형을 무너뜨리다니!”
“크으윽… 케인 저놈! 저런 교활한 수를!”
양쪽에서 케인에게 감탄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방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방송을 중계하는 플레이어들은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케인이 판 함정에 길드 동맹이 걸렸습니다! 길드 동맹이 스스로 진형을 무너뜨렸습니다! 오크들이 몰려듭니다!
빈틈을 틈타 두 번째, 세 번째 진지에 오크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플레어 샷! 태양의 강림!
쾅! 콰아앙! 콰콰콰쾅!
궁지에 몰린 길드원들은 팀킬을 각오하고 광역기를 사용했다.
아까 오크들을 내버려 뒀다가 함락당한 첫 번째 진지가 기억에 선명했던 것!
“미친?! 뭐하는 거야!”
“광역기 쓰지 마라! 멍청한 자식들아!”
랭커들이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오크들이 붙는다고 해도 그들이 가면 정리할 수 있었다.
저렇게 광역기를 난사하는 건 제 살 깎아 먹는 짓!
-취이이익!
-췩! 췩!
오크들은 더 흥분해서 돌격했다. 몸으로 구덩이를 메꾸고 닥치는 대로 화살을 쏘아 올렸다.
눈먼 조잡한 화살이지만 수백 개가 넘게 날아오니 보통 위협적인 게 아니었다.
쿵-
“뚫렸다!!”
“막아! 내가 간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이기적이었던 랭커들도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이대로 두다가는 정말 큰일이 날 것 같았던 것이다.
빠르게 달려와 닥치는 대로 오크들을 쓸어버리는 것으로 급한 불을 끄는 랭커들!
언덕 위까지 올라와 미친 듯이 몰아붙이던 오크들이 썰려 나가며 다시 공간이 생겨났다.
그러자 다시 마법과 화살이 쏟아지며 오크들을 무자비하게 쓸어내기 시작했다.
김태산과 아저씨들은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랭커들에게 이를 갈았지만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캬아아아아악!
“…!”
그 순간 길드 동맹 뒤편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체세도!”
김태산은 무릎을 쳤다.
김태산과 손을 잡은 리치 체세도!
이제까지 꾹 참고 숨겨놓았던 체세도가 드디어 활약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