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83화
-걱정 마라. 학카리아스는 널 구박할 틈도 없을 테니까.
키우는 소도 잡아먹기 전에는 잘 대해준다고, 태현은 흑흑이에게 친절하게 대했다.
앞으로 아주 많이 싸워야 할 테니까!
그러나 흑흑이는 다른 의미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역시 그렇죠? 그렇죠? 신수가 주인을 모시는 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닌… 학카리아스 씨도 보고서 괜찮다고 할 겁니다.
-그래그래.
태현은 대충 대답했다.
날아가던 흑흑이는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런데 주인님. 학카리아스 씨가 그렇게 화를 내며 쫓아냈는데 어떻게 설득하실 생각이십니까?
-흠.
저 멀리서 학카리아스의 거대한 모습이 보였다.
학카리아스는 흑흑이의 기운을 알아차렸는지 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분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내가 분명 자비롭게도 기회를 줬는데! 네 주인한테 내 말을 제대로 전한 것이냐?!
[<검은 묘비 산맥의 지배자 학카리아스>가 분노합니다!]
[공포로 세상이 떱니다!]
[최고급 전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일행이 공포에 저항하는 데 성공합니다.]
[명성 스탯이 오릅니다!]
[공포 스탯이 오릅니다!]
[마법 스탯이…]
[……]
“저기….”
-시끄럽다!
[설득이 실패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말도 못 걸게 하는 학카리아스!
쌩쌩하게 살아 있는 블랙 드래곤은 그만큼 성질도 더러웠다.
태현의 화술 스킬을 아예 차단하고 들어왔다.
[카르바노그가 감탄합니다. 블랙 드래곤답게 아키서스의 화신에게 속지 않는 법을 잘 아는 것 같다고 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르는 건 좋은데, 몇 번 더 설득할 수는 없겠지?’
아스비안 제국 황제 우이포아틀한테도 썼던 방법!
태현의 화술 스킬은 최고급.
스킬 레벨이 높아진 건 좋은데, 그만큼 부작용도 있었다.
이제 어지간한 설득으로는 레벨을 올리기 힘들다는 것!
그만한 상대를 찾아야 하는데 그것도 일이었다. 판온의 다른 플레이어들이 화술 스킬을 안 키우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쓰기도 애매하고 키우기는 더 애매한 스킬!
그런 면에서 우이포아틀은 참 좋은 상대였다.
워낙 레벨이 높고, 잘 설득도 안 되는 상대다 보니 시도만 해도 화술 스킬이 꽤 많이 올랐다.
학카리아스도 우이포아틀 비슷한, 어떻게 보면 더 좋은 상대였지만….
아쉽게도 설득할 상황이 아니었다.
말 한 마디 더 걸었다가는 브레스가 들어올 것 같았다.
-주인님? 주인님? 정말 어떻게 설득하실 겁니까?!
흑흑이가 초조해졌는지 다급하게 물어왔다. 학카리아스가 살벌하게 노려보고 있는데 태현은 당당하게 앞으로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나 죽여줍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태현은 바로 검을 뽑아 들고 스킬을 사용했다.
-에슬라의 군세 소환!
설득의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말로만 하는 설득도 있지만, 이렇게 직접 칼을 휘두르는 설득도 있었다.
그리고 태현의 주특기는 원래 후자!
[악명이 미친 듯이 크게 오릅니다!]
‘아. 젠장.’
태현은 메시지창을 보고 질색했다.
씨앗을 오기 전에 심었어야 했어!
악명 스탯이 4만을 훌쩍 넘기고 달려가고 있었다.
명성 스탯이 6만을 넘겨서 그나마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정말….
[마계의 문이 열립니다!]
[에슬라의 군세가 대륙에 강림합니다!]
[……]
[……]
[……]
‘너 악마 소환했다!’고 알려주는 각종 메시지창들!
매우 나쁜 짓이고 각 왕국에서 이걸 알면 널 욕할 거라는 메시지창이었지만 태현은 무시했다.
저기 학카리아스가 더 나쁜 놈이니까!
-인간이여! 너와 맺은 계약을 지키기 위해 내가 왔도다!
우르릉! 번쩍!
하늘 높은 곳이 순식간에 어두워지더니 강력한 마력이 담긴 번개가 사방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계의 문이 열리더니 에슬라의 군세가 쏟아져 내려왔다.
-에… 에… 에슬라!!!
학카리아스가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학카리아스! 오랜만이다!
-이 더러운 악마 놈이 어디서 대륙에 고개를 내미느냐!
-크하하. 내가 더럽다고 해도 너만큼 더럽겠느냐! 내가 신들과 싸울 때 저 구석에 박혀서 벌벌 떨고 있던 놈이 건방지게 잘도 지껄이는구나!
-…닥쳐라! 대륙은 드래곤의 땅. 여기는 마계가 아니다!
-감히? 학카리아스. 내가 마계에서만큼 강하지는 못하지만 너 하나 정도는 쓰러뜨릴 수 있다. 내 군세들이여! 나와서 저 인간을 도와라!
[에슬라의 군세가 당신의 지휘 하로 들어옵니다!]
[에슬라의 상급 악마 전사가…]
[에슬라의 상급 악마 마법사가…]
[……]
[최고급 전술 스킬로 이들을 모두 지휘할 수 없습니다! 페널티를 받습니다!]
[……]
페널티를 받는다고 해도 태현은 기뻤다.
그만큼 강력한 놈들이라는 것이었으니까!
학카리아스도 에슬라의 군세가 두렵긴 한 모양이었다. 바로 공격하지 않고 에슬라를 설득하려 들었다.
-에슬라! 악마가 신의 화신과 손을 잡으려 드는 것이냐!
-아키서스의 화신과 손을 잡는 게 뭐 그리 새로운 일이라고. 아키서스는 예전에도 그랬다.
예전에도 신과 악마 사이를 오가며 서로를 엿 먹였던 아키서스!
고대부터 있었던 존재인 에슬라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멍청한 악마 놈! 아키서스와 손을 잡은 놈들이 어떻게 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느냐!
-난 그래서 한 번만 잡고 끝낼 생각이다.
현명한 에슬라!
약속한 것만 지키고 빠르게 마계로 돌아가 태현과 상대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키서스를 상대하는 것에 있어서 하책은 아키서스에게 넘어가서 호구를 잡히는 것이고, 중책은 반만 호구를 잡히는 것이고, 상책은 아예 도망쳐서 상대하지 않는 것!
에슬라는 경험 많은 악마답게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에슬라가 씨알도 먹힐 것 같지 않자 학카리아스는 목표를 태현으로 바꿨다.
-아키서스의 화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화신이란 작자가 악마와 손을 잡는 건….
그러자 에슬라가 대신 대답해줬다.
-아키서스의 화신이잖나.
-그… 그건 그렇지만… 그건 그렇지만…!
콰아아아아아앙!
-크윽!
그 순간 학카리아스에게 강한 충격이 왔다.
에슬라와 그 부하들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태현이 은신 스킬로 다가와 학카리아스에게 일격을 날린 것이다.
말은 간단했지만 어마어마한 난이도였다.
태현도 <신의 예지> 스킬로 아주 좁은 길을 간신히 통과했을 정도!
[<신의 예지>의 길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흑흑아! 운전 제대로 못하냐! 지금 길에서 벗어나고 있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주인님!
흑흑이도 필사적이었다.
은신해서 접근하는 게 걸리면 학카리아스가 곱게 보내주진 않을 테니까!
덕분에 제대로 한 방 먹일 수 있었다.
행운의 일격이 몇 번이고 중첩된 화끈한 일격!
[드래곤에게 일격을 먹였습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검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은신 스킬이…]
[……]
‘아, 약점을 때려야 하는데….’
성공했지만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신의 예지가 가르쳐주는 약점은 드래곤의 목 아래였다.
그러나 거기까지는 갈 수 없었다.
신의 예지가 아예 길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건, 현재 태현의 은신 스킬 수준으로는 갈 수 없다는 것!
태현의 은신 스킬은 고급 은신 스킬.
어지간한 도적 플레이어와 맞먹는 수준인데도 갈 수 없다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태현은 <아키서스 검법>을 발동시킬 수 있는 다른 만만한 약점을 노렸다.
-이… 이놈…!
학카리아스의 눈빛이 분노로 번뜩였다.
그러나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외쳤다.
“내가 대화하자고 할 때 받아들이지 그랬냐?”
태현도 학카리아스를 설득할 생각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설득할 구석이 보이면 설득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학카리아스는 보자마자 설득을 걷어찼고, 태현은 다른 방식으로 설득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설득은 설득이지!
-감히! 인간 따위가!
“에슬라의 군세! 내가 명령한다! 알아서, 최선을 다해, 학카리아스를 총공격해라!”
[최고급 전술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명령에 보너스를…]
[<폭군의 지휘>를 사용합니다! 악마들의 기세가 오릅니다!]
[<직감과 행운의 지휘>로 군세에 보너스가 들어갑니다!]
크아아아아아아아!
하늘에서 쏟아져 나오는 악마들이 거세게 함성을 질렀다.
태현은 이들을 일일이 지휘할 생각이 없었다. 태현도 사람이었다.
다른 보스 몬스터면 모를까, 학카리아스 상대로 지휘하면서 싸움까지 같이 할 수는 없었다.
한 번이라도 실수했다가는 그대로 로그아웃!
그래서 태현은 명령했다.
알아서 잘 패라!
태현의 명령을, 에슬라의 군세는 찰떡같이 잘 알아들었다.
-주인님을 해방시킨 영웅, 아키서스의 화신을 도와라!
-악마보다 더 사악한 아키서스의 화신이라니. 소문으로 듣던 놈을 직접 보게 되다니!
-어린 악마들아! 저걸 보고 배워라! 저게 그 악마보다 더 사악한 아키서스의 화신이다!
-와! 저게 아키서스의 화신!
뭔가 이상한 말들도 섞여 있었지만 어쨌든 에슬라의 군세가 말을 잘 듣는다는 게 중요했다.
에슬라의 부하들은 에슬라가 자신만만했던 것처럼 충성스럽고 강했으며, 집요했다.
블랙 드래곤 학카리아스를 앞에 두고도 전혀 겁먹지 않고 덤벼들었다.
-오냐! 어디 한번 덤벼봐라!
학카리아스도 결국 칼을 뽑았다. 브레스를 날리면서 동시에 사방을 향해 마법을 갈기기 시작했다.
마법의 대가, 드래곤의 마법!
언령 마법과 흑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학카리아스의 마법은 무시무시했다.
밑의 땅이 뒤집혀 박살 나더니 숲이 통째로 날아갔다. 산과 언덕이 쪼개지더니 그대로 무너졌다.
하늘에서는 검게 타오르는 암흑의 창이 닥치는 대로 쏘아져 내려가며 악마들을 쏘아 떨어뜨렸다.
콰르르르릉!
마치 세상의 종말 같은 위력!
그러나 악마들은 망설이지 않고 덤볐다. 수십, 수백 마리의 악마들이 일격에 사라졌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놈을 떨어뜨려라!
-<악마의 사슬>! <악마의 사슬>! <악마의 사슬>!
-<악마의 사슬>!
[저거 어디서 많이 본 스킬이라고 카르바노그가 중얼거립니다.]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아키서스랑은 상관이 없지. 사슬 들어간 스킬이 한두개야?’
태현은 카르바노그에게 변명했다.
설마!
악마들은 우선 학카리아스를 바닥에 떨어뜨리는 것으로 목표를 잡았다.
학카리아스 정도 되는 보스 몬스터가 날아다니는 것부터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레이드를 위해서는 땅으로 떨어뜨려야 한다!
악마들이 닥치는 대로 지옥의 마력이 담긴 사슬들을 던져댔다. 학카리아스가 아무리 떨쳐내도 악마들은 계속 덤벼들었다.
“진짜 잘 싸우는데?”
태현은 감탄했다.
원래라면 태현이 직접 나서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줄 알았는데, 에슬라의 군세가 생각보다 훨씬 더 잘 싸웠다.
차원이 다른 악마들!
“김태현. 우리는 뭘 할 수 있지?”
케인은 긴장되고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판온에서 최초로 드래곤 레이드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긴장이 되고 흥분될 수밖에 없었다.
“어? 넌 뒤에 있어야지.”
“…….”
케인은 시무룩해졌다.
“나는 학카리아스 공격에도 피할 정도가 되고, 수혁이나 지수는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잖아. 근데 케인 넌….”
“팝콘이나 가져오라고 할까요?”
“야!”
구구절절 맞는 말!
근접해서 때려야 하는 케인 입장에서, 그 데미지 넣겠다고 드래곤 옆에 붙는 건 미친 짓이었다.
아무리 HP가 많고 방어력이 높다고 해도 드래곤한테 잘못 맞으면 한 방!
“그냥 포병대나 지켜라. 아키서스 포병대, 준비하고 있냐!”
-날 구해줘! 날 꺼내다오! 동포들이여! 날 꺼내다오!
포병대 뒤에 있는 악마 우리에서, 갇혀 있는 악마가 애타게 외쳤다.
그러나 에슬라의 군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저거 뭐냐?
-몰라. 인간한테 잡혔나 봐.
-뭐? 인간한테 잡혔다고? 나 같으면 자살한다.
-맞아. 맞아. 까르륵.
-…….
악마들은 냉정했다.
같은 주인을 섬기는 것도 아니고, 멍청하게 인간한테 속아 갇힌 놈한테까지 자비를 베풀진 않았다.
“야. 쟤 조용하게 해라.”
“예! 야. 조용히 해라! 성수 뿌린다!”
-힉! 그것만은!
악마는 금세 조용해졌다.
태현은 그걸 보고 갑자기 궁금해졌다.
원래는 드워프들한테 잡힌 멍청한 악마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멍청한 악마치고 되게 잘 버티고 있었다.
하급이나 중급 악마는 아니다!
‘뭐하는 놈이지?’
쿠우우웅!
“…!”
태현은 고민에서 깨어났다. 블랙 드래곤 학카리아스가 추락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