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79화
<녹아 흐르는 철의 광산>에 들어간 태현 일행은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태현 일행을 발견한 플레이어들이 깜짝깜짝 놀랐다.
“어? 왜 김태현이 여기에….”
“김태현도 오스턴 왕국 왔다고 했잖아.”
“근데 길드 동맹하고 싸워야지 왜 여기 광산에 오지?”
태현의 레벨은 여기 광산에 올 수준이 아니었다.
여기는 높아봤자 레벨 100 정도나 올 광산!
1~2층은 그보다 더 낮아도 무리 없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괜히 대장장이나 광부 플레이어들이 와 있는 게 아니었다.
“태현 님. 위치는 알려졌을 거 같아요.”
“그렇겠지. 흑흑아. 넌 밖에 나가서 정찰 좀 하고 있어야겠다.”
-저… 저 혼자 말입니까?
“그래. 너라면 할 수 있을 거야.”
-…….
“학카리아스 오면 알아서 잘 말 걸어봐.”
-그, 그게 제가 별로 안 친한….
“이번 기회에 친해져.”
-하다못해 골골이라도 같이 가면 안 되겠습니까?
평소에는 태우기도 싫어하는 언데드를 데리고 갈 정도로 절박해진 흑흑이!
* * *
“흠. 저기 용암 있다. 어때?”
-쿠오!
골렘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얕다!
“…그러면 저기 용암은 어떠냐?”
태현은 다시 한 층 내려가 용암을 발견했다. 이번에는 상당히 깊어 보였다.
-쿠오오!
너무 미지근하다!
“내가 화끈하게 만들어 주랴?”
[카르바노그가 참으라고 말립니다.]
‘아니. 저놈이 자꾸 까다롭게 그러잖아.’
바쁜 시간 쪼개서 해주고 있는데 대충 좀 받아라!
그러나 뒤에서 새로 생긴 아키서스 포병대 부족들이 수군거렸다.
“여기가 광산인가?”
“우리가 있던 곳에 비하면 너무 초라한데.”
“광물도 없고 뜨겁지도 않고, 이건 광산도 아니지.”
-난 악마지만 좀 아닌 거 같다.
심지어 우리 안에 갇힌 악마까지 한 소리 거들 정도!
덕분에 골렘은 으쓱하며 말했다.
-쿠오. 쿠오.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왠지 모르게 재수 없는 태도!
“알겠어. 이것들아. 더 들어가면 될 거 아니야.”
태현은 투덜거리며 <신의 예지>를 켰다.
지금 알렉세오스의 버프를 받고 있어서 <신의 예지>를 계속 키고 있어도 MP는 별로 부담되지 않았다.
* * *
-김태현 <녹아 흐르는 철의 광산>에서 발견! 김태현 <녹아 흐르는 철의 광산>에서 발견!
-또냐? 제대로 확인해 봤어?
-저거 분명 가짜다. 가짜.
길드 동맹 간부들은 질색을 했다.
태현의 슬라임 분신 때문에 이미 쓴맛을 많이 본 그들!
김태현이 거의 꿰뚫어 보기 불가능한 분신 스킬을 사용하고 있다는 건 이미 소문이 퍼져 있었다.
오스턴 왕국에 나타난 태현을 보고 찾아간 플레이어들이 대부분 허탕을 쳤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태현이 또 나타났다고 하니….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야. 지금 김태현이 요새 털고 데리고 있던 놈들도 흩어졌다며? 그러면 당연히 변장을 하고 다니겠지! 김태현이 너처럼 바보겠냐? 그냥 맨얼굴로 다니게?
-죄, 죄송합니다.
길드 동맹 간부들은 나름 합리적으로 생각했다. 덕분에 태현은 귀중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 * *
깡! 깡!
“여기 나오는 몬스터는 쉬운 편이네.”
태현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 광산에서 나오는 몬스터들은 암석 계열 몬스터들!
<마력 깃든 바위>, <바위로 만들어진 거대 뱀>, <바위 야수> 같은 몬스터들이 우르르 튀어나왔다.
문제는 태현이 이런 무생물 몬스터한테는 극상성이라는 것!
꽝!
고대의 망치가 빛을 뿜으며 한 번 휘둘러지자, 암석 몬스터들이 한 번에 무너졌다.
숫자가 많이 오는 것도 문제 되지 않았다. 아키서스 포병대가 한 번 시원하게 쏴대면 몬스터들은 와르르 무너졌다.
별다른 원거리 공격 없이, 단순하게 근접 공격만 시도하는 몬스터들은 아키서스 포병대의 먹잇감!
[<아키서스 포병대>가 몬스터들을 쓸어버립니다!]
[전술 스킬이…]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오.’
아키서스 포병대의 또 다른 효과.
이들을 이끌고 같이 싸우면 기계공학 스킬에 추가 보너스가 들어간다는 점이었다.
키우는 맛이 있는 부하들!
‘아키서스 이름 들어간 놈들치고 같이 다녀서 기분 좋았던 적이 별로 없었는데….’
꽝! 꽝!
시원하게 쓸려 나가는 몬스터들을 보자 태현은 오히려 불안해졌다.
과연 이렇게 기분 좋아해도 되는 걸까?!
[…….]
카르바노그가 어이없어할 정도!
“아, 더럽게 단단하네! 무기 내구도 깎이는 거 봐라! 스크롤 좀 줘! 버프 다시 걸어야겠다.”
“기다려 봐! 내가 마법으로… 어?”
밑의 층에서 사냥하던 파티들은 갑자기 나타난 태현 일행을 보고 당황했다.
콰콰쾅! 콰콰쾅! 쾅!
굉음과 함께 길을 막는 몬스터들을 모조리 쓸어버리는 강력함!
단순히 플레이어들뿐만 아니라, 뒤에서 대포를 들고 쫓아오는 우락부락한 드워프들과 우리에 갇힌 악마. 거기에 날아다니는 작은 용과 온몸이 활활 타오르는 거인 골렘까지.
비주얼 하나는 정말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김… 김태현?”
“여기 공략하시는 겁니까?”
“어? 어.”
“…!”
아직 공략 안 된 던전을 김태현이 깬다는 말에 플레이어들은 반색했다.
왜 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건 기회다!
“뒤에서 쫓아가도 됩니까?”
“뭐? 그러든가. 대신 자기 목숨은 알아서 챙겨야 한다?”
“물론입니다!”
허락받은 파티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허락해 주는 것 자체가 엄청난 도움이었다.
원래 이런 던전 공략하는 파티들은 남들이 쫓아오는 것도 매우 싫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생은 자기가 했는데, 남들이 날로 먹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태현은 별생각 없었다.
‘이거 뭐 내가 점령할 것도 아니고….’
“김태현이 던전 깨기 한다는데?”
“뭐? 5층 밑으로 더 들어간다고?”
“진짜?”
우르르 몰려오는 플레이어들!
심지어 1층에서 곡괭이질 하고 있던 플레이어들도 구경하러 올 정도였다.
구름처럼 몰려드는 사람들의 모습에 이다비는 어이없어했다.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 같은 태현!
“태현 님은 왜 사람들을 풀어놓고서도 또 모아요?”
“내가 일부러 모은 거 아니잖아….”
* * *
-흑흑. 학카리아스 안 보였으면 좋겠다.
흑흑이는 하늘을 날아다니며 구슬프게 생각했다.
-…네놈 때문에….
골골이는 으르렁거렸다.
저 밑에서!
-아, 내가 사과했잖아!
-사과한다고 될 일이냐! 혼자 죽어라, 드래곤!
-무, 무슨 말을 그렇게…! 이거 죽을 일 아니거든?
아픈 곳을 찔린 흑흑이는 날카롭게 대답했다.
설마 주인님이 죽을 일에 보냈을 리가 없어!
그렇게 말해도 아직 태현을 나름 믿고 있는 흑흑이였다.
-내가 태워줄 테니까 위로 올라와라.
-난 거기 위에 올라가면 데미지 받는단 말이다!
드래곤 나이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골골이는 흑흑이를 타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타면 보너스와 페널티를 동시에 받았다.
드래곤을 타서 보너스를 받고, 신수라 언데드 페널티를 받는 것!
-흥. 기사면 좀 충실하게 싸우는 맛이 있어야지 매번 조건만 따지고. 너 생전에 별로 대단한 기사 아니었지?
-뭐… 뭐라? 감히 그런 말을 헉.
-…?
골골이가 갑자기 조용해지자 흑흑이는 의아해했다.
-할 말이 없어진 거군!
-위! 위를 봐라!
갑자기 드리워진 그림자.
흑흑이는 고개를 돌렸다.
자기보다 몇십 배는 커다란 덩치를 가진 블랙 드래곤이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블랙 드래곤 학카리아스!
-…….
-…….
-어, 어둠의 그림자 장막!
흑흑이는 바로 자기를 가리기 위해 은신 마법 스킬을 썼다. 그러나 그게 더 실수였다.
드래곤 앞에서 마법을 쓰는 건 안 들킬 수 없는 짓!
-으음?
그냥 날아가던 학카리아스가 고개를 돌려 밑을 주목했다.
-못 본 척 해라! 못 본 척 해라!
-어떻게 못 본 척 하라고?!
-…알아서 잘 해봐라!
골골이는 재빨리 나무 옆에 숨었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던 흑흑이는 숨을 곳도 없었다.
-너는… 발칼레오스 씨 셋째 아들 아니냐?
-오, 오랜만입니다. 학카리아스 님.
-흠. 오랜만이긴 하지.
푸르륵!
학카리아스는 날갯짓하던 걸 멈추고 흑흑이 앞에 섰다. 흑흑이는 더욱더 겁에 질렸다.
아직 죽기 싫어!
-발칼레오스 씨는 잘 지내고?
-예… 예.
-요즘 어린 드래곤들은 예의가 없어서 잘 안 찾아가고 그러지만, 너는 그러면 안 된다. 알겠느냐?
-…….
흑흑이는 내심 찔렸다. 사디크와 신수 계약을 하고서 딱히 발칼레오스를 찾아간 적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발칼레오스가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블랙 드래곤의 부모자식 관계는 그렇게 끈끈하지 않은 것!
독립하면 서로 알아서 잘 살겠지~ 하는 게 드래곤의 세계였다.
그러나 학카리아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 블랙 드래곤이 사악하고 음모의 조종자긴 하지만, 그래도 드래곤의 천륜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너는 그런 싸가지 없는 놈이 아니겠지?
-아… 예….
-그래. 너는 요즘 어디서 일하고 있느냐?
-저… 저는 사디크와 신수 계약을 맺었습니다.
-사디크? 사디크… 그 신은 대륙에서 인기가 좋으냐? 안 좋은 걸로 알고 있는데… 오스턴 왕국에서도 별로 인기가 없다.
-아, 아닙니다. 인기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유망한….
-중앙 대륙에서 유명한 악신이 얼마 없긴 하지만 그래도 잘 알아보고 골라야지.
쏟아지는 잔소리!
흑흑이는 기겁했다. 예전에 만났을 때는 이런 드래곤이 아니었는데, 그 긴 사이 왜 이런 드래곤이 됐지?
죽을 위험은 벗어났지만 이건 이거 나름대로 괴로운 일이었다.
-앙칼라오스 씨 딸 기억하지? 그 집 드래곤은 저 먼 대륙으로 가서 아주 잘 대접받고 지낸다고 하더라.
-…….
-너도 그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냐. 괜히 안주하지 말고 도전을 하란 말이야. 나 때는 말이야….
무적의 단어 ‘나 때는~’까지 나오자 흑흑이는 더욱더 질색했다.
-…내가 날갯짓만 해도 오스턴 왕가에서 벌벌 떨었다. 물론 지금도 떨고 있지. 너도 괜히 신수니 뭐다 헛된 짓 하지 말고 레어나 하나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공포의 존재가 되거라.
-그게 좋은 곳은 다 주인이 있고 그래서….
-어허! 약한 소리를 하면 안 되지. 블랙 드래곤은 약한 소리를 하지 않는다. 그런 약한 소리를 하는 건 블랙 드래곤이 아니야!
-아… 네….
-그래. 이쯤 하도록 하마.
‘휴.’
흑흑이는 안도했다. 드디어 끝났나?
-그런데 사디크의 신수로 요즘 뭘 하고 있느냐?
-…….
이쯤 하도록 한다며!
흑흑이는 속으로 외쳤다. 밖으로 외쳤다가 학카리아스한테 맞을까봐!
-저, 저는 사디크의 신수로 소환되어서… 음… 인간과 같이 모험을 하고 있습니다.
-오. 인간이라… 사디크 교단의 교황이냐?
-아, 아닌데요.
-그럼 성기사단장?
-아닌데요….
-설마 화신인가!
-화, 화신 맞습니다.
-사디크의 화신이 대륙에 있다니. 사디크 교단도 나름 좀 하는군!
-…….
흑흑이는 움찔했다.
그냥 오해를 안 풀면 안 될까?
그런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흑흑. 정말 말하기 싫다.’
-사디크의 화신이 아니라… 다른 신의 화신인데요.
-뭐?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러니까 다른 신의 화신이 능력이 있어서….
흑흑이는 주절주절 설명했다. 워낙 능력 있는 화신이라, 다른 신의 권능도 뺏어서 쓸 정도거든요!
학카리아스는 그 설명에 감탄했다.
-대단한 놈이다! 다른 신의 권능을 뺏다니. 그래. 그 정도는 되어야 블랙 드래곤을 감히 신수로 부릴 수 있는 거야! 네가 사디크 같은 신의 신수로 들어가서 좀 불쾌했는데 나름 잘 지내는 것 같구나.
-감… 감사합니다.
-아참. 그래서 그 화신은 누구의 화신이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