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77화
“이 안개 무슨 효과야?”
“몰라. 안개니까 밖에서 안 보이는 거겠지. 안 보이면 좋은 거 아닌가?”
“마법의 안개인데 뭐 추가 효과라도 있나?”
“더 강력한가?”
배 위에 탄 플레이어들은 웅성거렸다. 갑작스럽게 뜬 효과라 그들도 정확히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대충 던진 예상이 의외로 잘 맞아떨어졌다.
* * *
“애들아. 준비됐냐!”
“근데 길마님.”
“선장님이라고 부르라니까!”
길마라고 불린 해적 플레이어, 티치는 성질을 냈다.
그 모습에 다른 해적들이 서로 쳐다보았다.
‘컨셉에 미쳐 버리셨나….’
‘우리 길드 괜찮은 거 맞아?’
‘그래도 이만한 사람이 또 없으니까….’
해적 길드 <검은 수염>!
티치가 이끄는 길드였다.
해적 길드 자체는 특이하지 않았다. 판온에는 온갖 길드들이 있었으니까. 심지어 거지 길드도 있었다.
문제는 길마 티치가 좀…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
자기가 진심으로 해적이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선장님. 근데… 길드 동맹이 요즘 좀 먹튀를 한다는 말이 많습니다만.”
벌써 슬슬 퍼지기 시작한 현상금 소문!
-김태현을 쳤습니다! 이걸 보십시오!
-그건 가짜입니다! 저는 아스비안 제국에서 진짜 김태현을 쳤습니다! 이 영상을 보십시오! 김태현이 아파 비명을 지릅니다!
-무슨 소리! 제 영상에서는 김태현이 뒹굴뒹굴 구릅니다!
어디서 자기가 쳤다고 말하는 놈들만 수백 명이 넘게 몰려오자, 길드 동맹도 더 이상 현상금을 줄 수가 없었다.
-일단은 기다려라!
최대한 버티고 트집 잡고 말 돌리는 식으로 넘어가려는 길드 동맹!
그러나 이런 방식이 오래 갈 리 없었다. 당연히 소문이 퍼졌다.
-길드 동맹 놈들 현상금 안 준다고?
-뭐?! 내가 지금 그거 받으려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야. 근데 오스턴 왕국에 지금 짭짤한 일이 있다더라.
생각지도 못한 역효과!
돈을 떼인 분노는 무서웠다.
길드 동맹도 모르는 사이 현상금 사냥꾼들이 오스턴 왕국으로 대거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허! 같은 나라 사람을 믿지 못하면 누굴 믿는단 말이냐!”
티치는 성을 냈다. 닉네임은 티치지만 중국인이었다.
“아니… 같은 나라 사람이라도 사기는 칠 수 있잖아요.”
“어허!”
티치의 라이벌인 해적 플레이어, 잭은 태현을 쫓아다니다 대해적 갈르두를 만나 크게 피해를 입었다.
티치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걱정 마라. 김태현의 상대법은 내가 잘 알고 있으니까.”
“그게 뭡니까?”
솔깃해진 길드원들이 물었다.
“정면에서 맞서 싸우지 않는다!”
“…그, 그게 답니까?”
뭔 미친 개소리야?
길드원들은 티치를 경악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지금 김태현이 타고 오는 배를 공격하러 가는데….
“김태현이 탄 배 말고 나머지 배만 최대한 공격하고 튀는 거다. 그러면 김태현이 어떻게 쫓아오겠냐!”
“오….”
“의외로 그럴듯한데?”
해적 길드답게 그들의 항해술 스킬은 엄청나게 높았다. 게다가 배도 최대한 빠른 배를 고른 상태.
아무리 김태현이라도 느린 배 끌고 쫓아오지는 못하겠지!
피해는 피해대로 주고, 생색은 생색대로 내며, 김태현하고는 안 마주칠 수 있는 좋은 전략이었다.
“마법 공격이나 화살 공격만 버티면 될 거 같은데?”
“김태현이면 기계공학 스킬 있잖아. 폭탄도 있을 텐데.”
“아. 폭탄….”
“걱정 마라! 폭탄은 조종해서 피하면 된다. 그거 던져봤자 사거리가 얼마나 되겠냐. 붙으면 쏘지도 못할 거야!”
그들은 해적질을 한두 번 해본 게 아니었다.
마법사들이나 궁수들이 탄 배도 충분히 공격 가능했다.
온갖 혼란 스킬을 펼치고, 배를 빠르게 붙이고, 치고 빠진다!
폭탄이라고 다를 거 없었다.
“저기 온다!”
“뭐 왜 이렇게 일렁거리지?”
태현이 끌고 다니는 함대가 무슨 아지랑이처럼 일렁거렸다.
“마법 좀 썼나보다. 후후. 하지만 내 앞에서는 의미가 없지.”
티치는 <해적의 탐욕스러운 뿔나팔>을 꺼냈다.
수많은 해적질을 성공하는 데 도와준 강력한 아이템으로, 하루에 횟수 제한이 있지만 한 번 사용하면 주변 마법을 해제하는 효과가 있었다.
뿌우우우우-
[<해적의 탐욕스러운 뿔나팔>을 사용했습니다!]
[일시적으로 마법의 안개가 걷힙니다!]
촤아아악!
날렵한 해적선들이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내달렸다.
“응? 왕국 해적인가?”
케인은 멀리서 달려드는 해적선들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왕국 해적이라고 말하면 뭔가 말이 안 되게 들렸지만, 사실 아탈리 왕국에는 왕국 해적이 있었다.
태현이 복속시킨 해적 부족들!
“적이다!”
“적이다! 적이다!”
“!!!”
배 위에 타고 있던 플레이어들은 모두 당황했다.
설마 태현이 타고 있는 배를 칠 만큼 간 큰 놈이 있다니!
“하하! 배를 붙여라!”
“저기 김태현이 타고 있다! 반대쪽으로 가! 반대쪽으로 가!”
“시선 마주치지 마! 시선 마주치면 죽을 수도 있다!”
촤아아악-
빠르게 접근하는 해적선들.
태현의 배 위에 타고 있던 NPC들은 모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바로 <아키서스 포병대>였다.
그들에게 저 정도 움직임은 그냥 손쉽게 맞출 수 있는 수준에 불과!
“쏠까요?”
“쏴버려. 버티나 보자고.”
태현은 흥미진진한 눈빛으로 해적선들을 쳐다보았다. 이거 정도는 버틸 자신이 있으니까 왔겠지?
그러나 아키서스 포병대는 공격할 기회가 없었다.
[다시 <마법의 안개>가 펼쳐집니다.]
“??”
“뭐, 뭐야! 해제했는데?!”
티치는 당황했다. 저런 대규모 마법을 해제했는데 바로 다시 쓰다니.
[항해술 스킬이 낮습니다. 함선을 모는데 패널티를 크게 받습니다!]
“!??!?!”
엄청나게 어렵고 복잡한 지역을 지날 때나 뜨는 메시지창!
[길을 잃었습니다!]
“뭔 개소리야! 길 잃을 게 뭐가 있다고?!”
[함선들이 멋대로 움직입니다!]
해적선의 버프, 몰고 있는 해적들의 스킬을 모조리 무시하고 길을 잃게 만드는 강력한 마법의 안개!
티치도 경험해 본 적 없는 강력한 디버프 안개였다.
덕분에 태현만 황당하게 됐다.
“저거 뭐냐?”
기세 좋게 공격하던 놈들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안개 속에서 뱅뱅 돌기 시작한 것이다.
-쿠오!
[자신의 몸에 있는 강력한 마력이 안개를 만들어서…]
“좀 요약해 주면 안 될까?”
[다 자기 덕이라고 카르바노그가 전합니다.]
“그래. 잘했다. 그래서 저거 언제 끝나지?”
-쿠오….
[자기도 잘 모른다고…]
“…….”
그러나 답은 곧 나왔다.
촤아악!
안개 속에서 빙빙 돌던 해적선 하나가 툭 튀어나와서 앞에 멈춰선 것이다.
그것도 태현 앞에!
태현은 빤히 쳐다봤다. 헉헉대며 갑판에서 일어난 해적 플레이어 한 명이 태현과 눈이 마주쳤다.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순간!
태현 옆에는 아키서스 포병대가 각종 포탄을 들고 겨냥하고 있었고, 태현을 따라온 플레이어들이 온갖 마법과 화살을 장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명령만 떨어지면 그대로 로그아웃!
태현은 상냥하게 말했다.
“안녕?”
“…안, 안녕하십니까?”
“무슨 일로 왔니?”
“그… 저… 태현 님을 도와드리러 왔습니다!”
“오… 그래?”
“예! 길드 동맹 이 나쁜 먹튀 놈들을 공격하는 숭고한 싸움! 그 싸움에 끼지 않으면 해적으로 부끄럽습니다!”
태현 일행 사이에서 어이없다는 웃음이 튀어나왔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러나 태현은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그래. 그랬구나.”
그 순간 다른 배 한 척이 안개에서 또 튀어나왔다.
“커헉. 커헉… 김태현 어디 있냐? 빨리 공격… 공격을… 헉.”
“…….”
“…길드 동맹 공격을! 김태현한테 길드 동맹을 공격하러 간다고 말해야 하는데!”
빠른 태세 전환!
태현은 감탄했다. 저 정도 태세 전환이라니. 파워 워리어 애들 정도는 하는 것 같았다.
촤아악-
또 배 한 척이 튀어나오고, 헛소리를 하다가 머리를 박고….
검은 수염 길드원들은 웅성거렸다. 이제 배 한 척만 남았는데, 하필이면 선장… 아니, 길마 놈만 남았던 것이다.
“야. 길마 나와서 헛소리하면 어쩌냐?”
“그, 그러게?”
간신히 빌었는데 길마가 나와서 ‘뭐? 항복 따윈 없다! 돌격!’이러면….
마지막으로 티치가 헉헉대며 배를 끌고 빠져나왔다.
“드디어 빠져나왔다. 하하하….”
“…….”
“하… 항복.”
“역시 우리 선장님이야!”
길드원들은 감탄했다. 뭘 좀 아신단 말이지!
* * *
“이 바닷길이 가장 빠르다. 여기가 더 가까워 보이지만 사실 여기는 내리기 좋지 않아서 배 내구도 손실이 많이 간다. 이쪽에서 내린 다음 쭉 올라가면 바로 요새도 하나 나오고 아주 털기 좋다.”
‘무슨 준비된 인재도 아니고…?’
태현은 살짝 당황했다.
너무 협조적인 해적 놈!
이렇게 나오니 오히려 ‘길드 동맹이 준비한 첩자 아냐?’ 싶었다.
‘아니… 길드 동맹이 그렇게 머리 굴리진 못하지.’
태현은 냉정하게 평가했다.
그런 복잡한 짓을 누가 해!
“너 길드 동맹 편 아니었나?”
“맞다!”
“근데 이렇게 말해줘도 돼?”
“난 해적이다.”
“…?”
“해적은 원래 편을 자주 바꾼다.”
“…???”
태현은 뭐하는 미친놈인가 싶었다. 이놈은 대체 뭐지?
“너희가 먼저 내려서 공격할 건데 괜찮냐?”
“괜찮다!”
“그, 그래. 열심히 해라.”
좀 저항하거나 도망치려고 할 줄 알았는데 충실하게 대답하는 티치의 모습에, 태현은 더더욱 혼란스러워졌다.
* * *
“와아아!”
“앞으로 돌진해라!”
‘…저것들 진짜 함정 아니겠지?’
영광스러운 상륙!
[오스턴 왕국에 상륙했습니다!]
[오스턴 왕국이 이 사실을 알면 매우 분노할 것입니다.]
오스턴 왕국=길드 동맹이었으니 별 상관없었다. 이미 최대치로 분노했을 사람들이었다.
[명성이 크게 오릅니다!]
[악명이 크게 오릅니다!]
‘아… 씨앗 심어야 하는데 좀 더 착하게 살아야 하나….’
태현은 살짝 고민이 됐다.
씨앗 때문에 신경 쓰이는 악명 스탯!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제 와서 뭘 한다고 수습이 될 악명 스탯이 아니었다.
너무 멀리 온 것이다.
‘역시 남의 영지에 심는 수밖에 답이 없어.’
“김태현!”
“어?”
“요새를 점령했다!”
빠르다!
검은 수염 길드원들은 생각지도 못한 속도로 앞의 요새를 공격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했지?”
“길드 동맹 길드원들이 우리를 보더니 요새 문을 열어줬다.”
“그거… 괜찮냐?”
태현은 뭔 상황인지 깨달았다.
일단 길드 동맹에게서 의뢰를 받은 길드니, 같은 편인 줄 알고 문을 열어준 것이다.
당연히 길드 동맹 입장에서는 몇 배로 더 화날 일!
“우린 해적이다.”
“…그, 그래.”
태현은 일행들에게 말했다.
“쟤네랑은 가까이 있지 말자.”
나중에 뒤통수를 쳐도 우린 해적이다! 라고 하면서 칠 것 같은 놈들이다.
* * *
-악마가 올라왔다!
김태현이 나타나면 말하기로 한 암호!
김태현이 나타나자 길드 동맹은 긴장으로 가득 찼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준비해라! 김태현의 위치는?”
“지금 왕국 남서쪽에서 발견됐습니다.”
“보낼 수 있는 랭커들과 김태현 척살대 다 준비시켜! 그리고 학카리아스한테 말해! 가장 우선으로 조져야 한다고!”
“학카리아스가 지금 너무 많이 받아먹습니다만….”
“김태현만 털면 솔직히 반은 끝난 거야! 꼭 잡아야 해.”
학카리아스는 탐욕스럽고 거만한 드래곤이었지만 그 힘은 확실했다.
아무리 비용이 많이 들어도 길드 동맹은 이걸 포기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잡고 만다!
* * *
“음….”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일단 흩어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