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74화
-김태현 전하! 위대하신 대왕이자 아스비안 제국의 황제, 언데드 군단의 지배자이자 위대한 수도의 수호자, 드래곤을 멸하는 자이자….
귀족 기사는 우이포아틀의 칭호를 하나씩 다 털어놓기 시작했다.
하도 길어져서 태현뿐만 아니라 다른 일행들도 하품을 하며 들었다.
-…께서 김태현 전하를 뵙고 싶어 하십니다!
[아스비안 제국의 귀족 기사, 아샤크가 황제 우이포아틀을 칭송합니다!]
[당신도 당신의 칭호를 스스로 자랑할 수 있습니다.]
‘응?’
자랑해서 뭐하나 싶었지만, 일단 할 수 있다니 태현은 하기 시작했다.
“오냐. 중앙 대륙의 토끼 학살자이자 카테란드 바다의 질서를 가지고 온 자이며 교단의 부활을 가지고 온 자….”
다른 사람들은 다 하품을 했지만 귀족 기사는 감탄하며 들었다.
“…불화를 일으키는 자….”
-예?
“아. 이건 취소.”
자랑하는 상황에서 불명예스러운 칭호는 늘어놓을 수 없었다.
‘악마를 속인 자는 좋은 칭호인지 나쁜 칭호인지 애매하군.’
[카르바노그가 애매할 때는 빼라고 조언해 줍니다.]
‘그래. 그래야겠다.’
“…가 아샤크를 맞이한다!”
-영광입니다! 전하!
“그런데 폐하께서 무슨 일로?”
-폐하께서 세 해골의 광산에서 있었던 싸움을 들으셨습니다.
“…….”
알렉세오스와 같은 이유!
태현은 매우 불길해졌다. 세 해골의 광산에서 있었던 싸움이 어떻게 들어갔길래 둘 다 태현을 부르지?
일단 알렉세오스 부하나 우이포아틀 부하나 태도 자체는 괜찮아 보이는데….
이게 함정일 수도 있다!
“알겠다. 바로 찾아가겠다.”
* * *
일단 둘 다 찾아가겠다고 말은 했는데….
‘괜히 줄 타다가 피 보는 거 아닌지 모르겠군.’
태현은 새삼 난이도 높은 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걸 자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진영 하나 골라서 평범하게 퀘스트를 하는데, 태현은 진영 사이를 오가면서 곡예를 부리고 있는 셈!
“일단 너희들은 세 해골 광산으로 돌아가서 있는 부족들 전부 챙겨서 항구 쪽으로 와. 다 황제한테 충성 바치기로 한 부족들이니까 도시에 들어와도 괜찮을 거야.”
태현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일을 나눴다.
나머지 일행들은 데리고 나온 부족들을 챙기고 항구로 이동!
그리고 태현은 따로 알렉세오스와 우이포아틀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시간도 절약하고, 만약의 일이 생길 경우 도망치기도 편했다.
적어도 기껏 생긴 부하들이 다 죽어 나가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거 정말 좋은 생각이다!”
케인은 감탄했다.
“너 지금 위험한 일 안 맡을 것 같아서 그러는 거지?”
“아, 아닌데.”
케인은 말을 더듬었다. 어떻게 알았지?
‘이놈을 데리고 갈까?’
태현은 살짝 고민하다 말았다. 튈 때는 혼자가 편했다.
“알렉세오스부터 먼저 가실 건가요, 우이포아틀부터 먼저 가실 건가요?”
“음….”
태현은 갈등했다.
다른 플레이어였다면 별생각 없이 대충 골랐겠지만, 태현은 조심스러웠다.
난이도 높은 퀘스트는 사소한 선택 하나도 조심해야 한다!
여기서 잘못 골랐다가 피를 볼 수도 있었다.
‘우이포아틀한테 먼저 가야겠군.’
성격 더러운 놈 먼저!
* * *
“왔는가. 김태현 왕.”
“부르셨습니까!”
태현은 넙죽 엎드렸다.
성격 더러운 NPC를 상대할 때는 일단 최대한 저자세로 나가야 했다.
‘젠장. 언데드라서 표정 읽기가 힘들군.’
태현은 힐끗 우이포아틀을 쳐다보았다. 언데드라 표정 읽기가 힘든 얼굴!
그러나 다행히 태현한테는 화술 스킬이 있었다.
[우이포아틀이 당신의 태도에 기뻐합니다.]
‘분노해서 부른 건 아닌 것 같은데.’
“광산에서 있었던 일을 들었다.”
“예.”
“짐의 명령을 거역하는 놈들을 때려잡다니. 아주 흡족하도다.”
‘아.’
태현은 안도했다.
다행이다!
태현이 알렉세오스와 붙어먹거나, 우이포아틀이 내린 명령(오스턴 왕국으로 가서 우이포아틀의 신물을 훔쳐간 걸 찾아오는 것)을 무시한 것 때문이 아니었구나!
[아스비안 제국의 공적치 포인트가 크게 오릅니다!]
[우이포아틀의 친밀도가 아주 조금 오릅니다.]
“충신 이세연의 말을 들어보니 김태현 왕의 활약이 아주 대단했다고?”
“하하. 제가 좀 열심히 했습니다. 그게 다 폐하를 존경해서 아니겠습니까?”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해보라.”
“그러면 사양하지 않고….”
냉큼 대답하는 태현!
공적치 포인트도 생겼겠다, 뜯어낼 수 있을 때 최대한 뜯어내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짐의 신물은 언제 찾을 생각이지?”
“바로 출발할 생각입니다, 폐하!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래. 믿고 있다. 만약 짐과의 약속을 어길 경우에는….”
달그락달그락-
우이포아틀의 해골이 음산한 소리를 냈다.
“걱정 마십시오. 폐하. 아. 그리고 오스턴 왕국에 드래곤이 나타났다고….”
“뭐라?!”
“아주 흉악한 놈들입니다. 붙을 상대가 없어서 드래곤하고 붙다니!”
태현은 드래곤을 두 마리나 부리고 다녔지만 지금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남의 험담!
“절대 용서하지 마라!”
“그런데 그런 놈들과 싸우려면 더 지원이….”
[우이포아틀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화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우이포아틀이 더 많은 것들을 지원해 줍니다. 지원 목록이 새로 열립니다!]
드래곤의 이름은 잠겨 있던 목록까지 새로 열리게 만들었다.
‘음… 일단 <아키서스 포병대> 강화시킬 지원하고, 영지 수비 올릴 것들 좀 가져가야겠다.’
아스비안 제국 황실의 보물들은 강력한 것들이 많았다.
아스비안 제국 황실의 감시자 깃발:
성벽 위에 꽂는 아스비안 제국 황실의 깃발이다. 휘날리는 것만으로도 적들을 위압하는 이 깃발은, 성벽 위에 있을 경우 특수한 효과를 부여한다.
설치 시 치안 대폭 상승.
성벽 내구도 대폭 상승.
가져갈 시 우이포아틀이 싫어할 수 있음.
우이포아틀이 쪼잔한 게 신경이 쓰였지만,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제 떠나면 볼일 거의 없을 텐데!
‘잠깐. 저번에도 이러지 않았었나?’
저번에도 우이포아틀과 다시 안 만날 줄 알고 화술 스킬 연습 시험대로 삼았었는데!
태현은 좀 자제할까 고민하다 말았다.
이번에는 진짜 만날 일 없을 거야!
<아스비안 제국의 망원경>, <아스비안 제국의 마법 대포>, <아스비안 제국 황실의 감시자 깃발>….
우이포아틀은 불만스럽다는 듯이 물었다.
“그놈들을 징벌하러 가는데 그런 깃발은 왜 가져가는 거지?”
“폐하! 놈들을 잡기 위해서는 요새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필요 없을 것 같은데….”
태현은 옳다구나 하고 외쳤다.
“그러면 제가 왜 필요한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기회에 화술 스킬이나 더 올리자!
“아니. 됐다.”
[우이포아틀이 당신과의 대화를 거절합니다!]
저번에 하도 많이 괴롭힌 탓에 아예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우이포아틀!
“…….”
* * *
우이포아틀과 만족스럽게 끝난 건 다행이었지만, 그러자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다.
‘그러면 알렉세오스는 불만 때문에 부른 건가?’
우이포아틀이 광산에서 있었던 일을 좋아한다면, 알렉세오스는 싫어할 게 분명했다.
태현은 가면서 변명할 거리를 생각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거짓말을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까!
그러나 알렉세오스의 반응은 태현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황제의 광산에 있는 부족들을 쫓아내고 광산을 못 쓰게 만들어버리다니. 과연 아키서스의 화신답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대단하군.
“?”
[죽은 용 알렉세오스가 당신이 한 일에 매우 만족스러워합니다!]
[알렉세오스의 친밀도가 오릅니다.]
[알렉세오스의 공적치 포인트가…]
생각지도 못한 긍정적인 반응!
알렉세오스는 광산이 그 꼴이 난 게 태현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키서스의 화신이 아니면 누가 그런 짓을 했겠냐는 믿음!
-왜 그러지?
“…별로 칭찬받을 만한 일이라고 생각지도 않아서 그랬습니다!”
-겸손한 건 아키서스의 화신답지 않은데.
“…….”
-걱정했는데 네가 우이포아틀과 잘 싸우는 걸 보니 마음이 놓인다. 음. 그렇게 포기하지 말고 계속해서 싸우도록….
“아, 그런데 알렉세오스 님.”
-?
“제가 지금 중앙 대륙에 일이 생겨서 잠깐 가봐야 하는데….”
-무슨 일? 우이포아틀과 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단 말이냐?
“중앙 대륙에 블랙 드래곤 학카리아스가 나타나서 아주 포악하게 날뛰고 있답니다. 제 왕국도 위험하니 가서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태현은 은근슬쩍 학카리아스를 욕했다.
알렉세오스를 어떻게든 싸움에 끼워 넣고 싶은 마음!
그러나 알렉세오스는 이 무덤을 벗어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학카리아스? 그놈은 욕심 많고 게으른 놈이라 자기 영역을 벗어나지 않을 텐데…?
“아닙니다. 들어보니 다른 왕국도 불태우겠다고 협박한다고 합니다. 블랙 드래곤답게 아주 나쁜 놈입니다.”
-역시 블랙 드래곤다운 천박한 놈이야.
-…….
딱히 학카리아스가 그런 소리를 하지 않았지만, 학카리아스는 여기에 없었다.
자리에 없는 놈인데 뭐 어떠냐!
덕분에 흑흑이만 떨떠름했다.
“알렉세오스 님. 도와주시죠. 그놈을 막지 못하면 저도 우이포아틀과 싸우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아키서스의 화신. 네가 아무리 강해도 학카리아스를 이길 순 없다. 전성기의 드래곤을 무시하느냐? 그냥 포기하는 게….
“흠. 전성기의 드래곤을 때려잡은 우이포아틀은 더 무시무시하겠군요. 우이포아틀과 싸우는 것도 포기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만 가끔 어떤 싸움은 피할 수 없지. 정의를 위한 싸움은!
[알렉세오스와의 화술 대결에서 승리합니다.]
[화술 스킬이 오릅니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알렉세오스는 영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알렉세오스가 직접 가서 싸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부하들을 딸려 보내봤자 학카리아스도 부하가 있을 것이니 제물밖에 안 될 것 같았고….
-그냥 싸우지 않고 해결하는 게 어떠냐?
“…진지하게 하는 소리입니까?”
태현은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블랙 드래곤이 지금 왕국을 태우면서 날뛰고 있는데 어떻게 안 싸우고 해결을 한단 말인가?
-물론 우리 드래곤은 고고하고 긍지 높은 종족이니….
“?”
태현은 용용이와 흑흑이를 쳐다보았다.
-왜 그러나, 주인이여?
-주인님. 방금 한 말에 무슨 문제라도?
-아무것도 아니야.
용 앞에서 용을 욕하진 말아야지!
태현은 다시 알렉세오스의 말을 경청했다.
-긍지 높은 종족이니 하찮은 인간의 말을 듣진 않을 거다. 하지만 같은 드래곤이라면 어떨까?
“앗. 알렉세오스 님께서 직접 말을 해주실 겁니까?”
-아니. 나는 여길 떠나지도 못할뿐더러, 놈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거다.
블랙 드래곤과 레드 드래곤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실, 같은 색 드래곤이 아닌 이상 사이가 좋은 경우가 더 드물었다.
“그러면 뭐 어떻게 하란 겁니까?”
-꼭 내가 말을 하란 법이 있나? 다른 드래곤이 있잖나.
“어? 아스비안 제국에 다른 드래곤이 있습니까?”
-…….
-…….
용용이와 흑흑이가 황당해했다. 알렉세오스도 마찬가지였다.
-…네가 데리고 다니는 그 드래곤들….
“아아아!”
-주인이여….
-주인님….
두 신수의 시선이 따가웠지만 태현은 모르는 척했다.
-심지어 저 드래곤은 블랙 드래곤 아닌가. 학카리아스와 말이 통할 것이다.
“그게 정말이냐?”
태현은 흑흑이를 보며 물었다. 흑흑이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학카리아스 씨와는 이야기 안 한 지 좀 오래됐습니다만….
“뭐? 아는 사이였어?”
-아, 아니. 이야기 안 한 지 좀 오래 됐….
“알면 그걸로 된 거지!”
태현은 기뻐하며 흑흑이의 등을 두드려줬다. 흑흑이는 매우 불안해졌다.
-주인님. 학카리아스 씨는 성격이 진짜 더러운데… 저는 자신이….
“괜찮아. 난 널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