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69화
하지만 스미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어려운 퀘스트들은 다 이러지 않았던가.
매번 못 믿고 의심하는 NPC들.
그런 NPC들을 조금씩 설득하고, NPC들의 궂은일들을 맡아서 해결해 주고, 그러면서 더 나은 퀘스트를 받아가면서 친해지고….
이러는 게 바로 새 지역의 퀘스트 아니겠는가!
-저 인간 놈 재수 없다.
-맞다.
고블린은 받은 황금은 벌써 잊었는지 스미스를 욕했다.
-하지만 황금은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으니….
“저 황금 많습니다. 여러분!”
스미스는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외쳤다.
그러나 태현이 옆에 있었다면 ‘어허! 그렇게 하면 안 되지!’라고 외쳤을 것이다.
협상에서 약점을 보여주는 건 위험한 짓!
특히 고블린처럼 탐욕스러운 상대라면 더더욱 그랬다.
-우리는 밖의 일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황금이라면 생각이 좀 달라질 수 있겠지.
“…?”
스미스는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그러자 고블린들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황금을 주면 용병으로 뛰어주겠다는 뜻이다.
“아…! 얼마나 드리면 됩니까?”
-얼마까지 알아보고 왔나?
“…….”
[<해골 광산 동굴 고블린 부족>이 부족을 용병으로 고용하는 값을 받으려고 합니다.]
[주의하십시오! 탐욕스러운 고블린들은 절대 양보를 모릅니다.]
* * *
-아키서스! 아키서스!
-용암 끓는 이 땅에~ 아키서스께서 터 잡으시고~
-화신님. 이 <펄펄 끓는 용암맛 음료> 좀 드셔보시겠습니까? 드시면 화끈하고 좋습니다.
그거 괴식 요리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만한 음료 이름!
그래도 태현은 받았다.
공짜로 주는 게 어디냐!
[<펄펄 끓는 용암맛 음료>를 마셨습니다. 레시피를 완전히 이해합니다.]
[화염 저항이…]
[요리 스킬이 오릅니다.]
[괴식 요리 스킬이 오릅니다.]
‘괴식 맞네!’
옆에서 보던 이세연이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넌 NPC들하고 진짜 빨리 친해지는 거 같다?”
“뭐? 무슨 소리야. 나 별로 안 친한데?”
-아키서스! 아키서스!
-노예 동지! 목소리가 작다!
“아… 아키서스! 아키서스!”
강제로 갑옷을 벗고 어깨동무를 한 채 아키서스 이름을 외치고 있는 케인!
누가 봐도 엄청나게 친한 모습이었다.
“네가 사람하고 친해지기 좋은 성격은 아닌데….”
“얘가 은근슬쩍 시비를 거네. 나 친구 많거든?”
“친구 이름 여섯 명만 대봐. 1초 내로.”
“최상윤, 케인, 정수혁, 이다비, 유지수… 펠, 펠마스.”
“마지막 이름은 NPC 이름 같은데?”
이세연은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외국인 플레이어 이름이야.”
“아닌 것 같은데… 그보다 게임에서만 만난 친구는 안 돼. 현실에서도 만난 적 있어야 해.”
“뭐? 게임 친구 무시해? 사람들한테 말해야겠군. 이세연이 게임 인연 무시한다고.”
“안 통하거든. 여섯 명. 1초 안에.”
“최상윤, 케인, 정수혁, 이다비, 유지수, 어… 이세연.”
1초 안에 말하려다 보니 어쩔 수가 없었다. 태현은 이세연을 집어넣었다.
현실에서 만나긴 했잖아!
“…양심이 없으세요?”
이세연은 어이가 없었지만 더 이상 뭐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언니, 지금 얼굴 붉어지신….”
“현아야, 조용히 하렴. 이야기 중이잖아.”
꽉!
어깨를 파고드는 손!
“언, 언니. 아파요.”
[<세 해골의 광산>의 <악마 숭배 드워프 부족>의 영역에 들어섰습니다!]
[<악마 숭배 드워프 부족>은 악마를 숭배하는 드워프들로, 사악하고 강력한 기술들을 다룹니다.]
“오옷!”
“…왜 좋아해?”
기뻐하는 태현을 보며 이세연은 찜찜해했다.
여기서 얻은 제작법을 설마 나한테 쓰지는 않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태현은 기대 가득한 얼굴로 앞을 쳐다보았다.
붉은 전갈 부족도 쏠쏠했는데, 악마 숭배 드워프 부족은 뭘 주려나?
‘악마 조종 개목걸이 같은 거… 아니, 더 좋은 게 있을지도 몰라.’
일반 플레이어들에게 악마는 최대한 피해야 하는 보스 몬스터였다.
그렇지만 태현에게 악마는 든든하고 소중한 밥줄이었다.
만날 때마다 밑천을 다 퍼주는 착한 종족!
“아. 여기는 황제 따르는 부족인가?”
“아니. 여기는 중립이야.”
“쯧. 별로 도움이 안 되는군.”
“다 들리거든?”
“들리라고 한 소리거든? 그러면 경고 보내고 싸우자. 선봉은 아다만티움 골렘이 맡을게.”
-쿠오?
처음 듣는 소리!
아다만티움 골렘은 왜 그런 걸 멋대로 정하냐는 듯이 태현을 쳐다보았다.
“네가 가장 튼튼하잖아. 여기 모두를 지켜줘야지.”
‘네가 들어가서 두들겨 맞으면 아다만티움이 또 떨어져 나올 수도 있겠지.’
[카르바노그가 정말…]
-쿠오오….
아다만티움 골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현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들어라! <악마 숭배 드워프 부족>들아! 아키서스의 화신이 왔다!”
-악마보다 더 끔찍하고 사악한 아키서스의 화신이 왔다!
옆에서 추임새를 넣는 아키서 부족!
“…굳이 도와줄 필요는 없는 거 같다.”
-아닙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뭔가 미묘한 도움이었지만, 태현은 계속했다.
“악마를 믿든 말든 상관하지 않는다!”
-악마를 계속 믿으면 다 용암 속으로 밀어 넣을 테니까!
“아니. 그런 소리는 안 했… 에이, 됐다. 싸우면 좋지 뭐. 어쨌든 아키서스를 믿어라! 아니면 전쟁이다!”
원래는 ‘너희 믿던 거 다 믿어. 거기에 아키서스 하나 추가하면 돼’ 같은 관대한 제안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빡빡한 제안으로 변했다.
‘싸워서 이기면 많이 뜯어먹을 수 있으니 좋지.’
슈우우욱-
“?”
콰아아앙!
활활 불타는 마력탄이 날아와 아다만티움 골렘의 가슴팍을 후려갈겼다.
-쿠오오!
“저건 <상급 지옥 마력 포탄>이네!”
이세연은 마법 스킬로 날아온 게 뭔지 바로 알아보았다.
“악마의 마력을 빌려서 시전하는 아주 강력한 마법이야. 보통 고위 악마들이 시전하는 건데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오. 그러니까 저 드워프들은 저걸 다루는 방법을 안다 이거지?”
이세연과 태현은 화기애애하게 상황을 관찰했다.
그러는 사이 골렘은 비명을 질렀다.
-쿠오! 쿠오!!
쾅! 쾅쾅!
저 멀리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드워프들은 닥치는 대로 마력 포탄을 발사했다.
일행들은 무사했다. 앞에 선 골렘의 덩치가 너무 커서 공격을 다 막아주고 있었던 것이다.
-힘내라, 골렘!
-그러게 아키서스를 진작에 믿었으면 그 포탄이 다 빗나갈 게 아니냐!
아키서 부족 전사들은 골렘 뒤에서 훈수를 뒀다.
-쿠오오오!
견디다 못한 골렘은 머리를 팔로 감싸고 뒤로 피하기 시작했다. 태현은 외쳤다.
“아니! 벌써? 조금만 더 버티지 그래?”
-쿠오!
[욕설이니 굳이 번역해 주지 않겠다고 카르바노그가 전합니다.]
“그만 놀고 들어가자. <유령 어새신 소환>!”
이세연은 정면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정예 암살자 언데드들을 소환한 다음 옆으로 빙 둘러서 침투시켰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앞에는 시선을 끌기 위해 언데드 마법사들과 주술사들을 소환해 각종 마법으로 방어막과 연막을 쳤다.
날아오던 마력 포탄들이 방향이 틀어지거나 꺾여나갔다.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언데드 소환수들을 부릴 수 있는 이세연이기에 가능한 전법!
“언니, 대단해요!”
“내가 좀 대단하지.”
김현아의 감탄에 이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옆, 뒤, 위에서 각종 특수 언데드 소환수로 흔들고, 그사이 정면에서도 천천히 압박해 들어간다.
저 앞의 고지에 요새를 만들고 있는 드워프들을 공략하는 정석적인 방식!
“김태현. 어때? 너라도 이 방법에는 흠을 잡을 수는 없겠지?”
“응?”
태현은 바닥에 떨어진 아다만티움 조각을 줍고 있었다.
“야!”
“아. 미안. 대단해. 대단해.”
“언니. 저 사람 제대로 보지도 않았어요!”
“아니. 제대로 봤다니까? 그… 언데드 소환했잖아.”
“네크로맨서가 당연히 소환했겠지! 어디서 대충!”
그때 옆에서 고함이 들렸다.
-아키서스!!
-돌진하라!
“…….”
아키서 부족 전사들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나가더니 정면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저것들이 미쳤나?’
태현은 황당해했다.
상대 부족은 높은 곳에 요새를 만들고 위에서 마력 포탄을 빵빵 쏴대고 있는데….
심지어 케인도 사이에 끼어 있었다.
물론 케인은 가고 싶어서 가는 게 아니었다.
앞, 뒤, 양옆에서 도망치지 못하게 붙잡고 있어서 그렇지!
-아키서스 님이 지켜주신다!
“후. 그래. 아키서스 믿는 놈들이 멀쩡할 리가 없지.”
아무리 레벨이 높더라도 저 공격을 맨몸으로 받으면서 가다가는 죽기 딱 좋았다.
태현은 한숨을 쉬며 따라 들어갔다.
-아키서스의 축복!
[화신이 이끄는 사람들에게 일시적으로 행운을…]
슈우웅-
일시적으로 태현의 행운 스탯을 공유하는 강력한 버프 스킬!
[회피에 성공했습니다!]
[회피에…]
-봐라! 아키서스 님이 지켜주신다!
“아니거든.”
-쏴 봐라! 하하! 몇 번을 쏴도 빗나갈 테니까!
“아니라니까.”
태현은 시큰둥한 목소리로 뒤에서 말했다. 어쨌든 덕분에 드워프 부족 코앞까지는 도착했다.
-앗! 화신님! 저희를 지켜주신 거군요!
“그래.”
-앞으로 더욱더 과감하게….
“…그보다 저 위는 어떻게 올라갈 셈이지? 기어 올라갈 건가?”
-던져!
“…?”
부족 전사 둘이 하나를 잡고 위로 집어 던졌다. 그러자 올라간 전사가 노예의 쇠사슬을 사용해 부족 전사를 끌어 올렸다.
슈슈슈슉!
‘저런 방법이!’
순식간에 위로 올라가는 부족 전사들을 보며 태현은 감탄했다.
그래도 여기서 오래 살아남은 건 다 이유가 있구나!
‘앗. 지금 내가 감탄할 때가 아니지.’
태현은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
이세연은 저 멀리 뒤에 있었으니, 이세연이 오기 전에 최대한 먼저 많이 아이템을 얻을 기회!
“바로 들어간다! 내가 앞에 설 테니 날 믿고 따라 들어와라!”
[<최고급 전술>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폭군의 지휘> 스킬을…]
[막대한 보너스를 받습니다!]
-와아아아아!
“이세연 오기 전에 최대한 챙겨야 한다!”
-다 들려!
이세연의 귓속말이 날아왔다.
* * *
각종 버프를 받은 데다가 태현이 직접 앞에서 이끄는 아키서 부족은 강력했다.
드워프들은 허둥지둥하며 도망치다가 그대로 항복했다.
-아키서스를 믿을 테냐! 안 믿을 테냐!
-믿… 믿겠다.
“하는 김에 황제에게 충성도 해.”
-하… 하겠다.
드워프들은 웅성거리다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우리는 악마를 모시는데… 아키서스를 믿는다는 건 좀….
“둘 다 믿으면 되지 뭘.”
태현은 쿨하게 대답했다.
아키서스의 화신이 인정해 주는 지위!
“그보다 너희 악마 어떻게 관리하고 있냐? 나도 좀 알려줘라.”
-…?!
드워프들은 기겁했다.
이놈, 아키서스의 화신이라면서 왜 악마를 찾아?!
드워프들은 태현을 미친놈 보듯이 보며 안내했다.
-여… 여기 악마를 가두고 힘을 뽑고 있다.
“…!”
평범한 감옥처럼 생겼지만, 안에는 덩치 큰 악마가 갇혀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 대악마 에슬라도 이런 장치에 갇혀 있었던 것 같은데.’
물론 에슬라를 가둔 장치는 이것보다 훨씬 더 커다랗고 복잡했지만.
-크르릉. 인간. 나를 풀어라. 나를 풀어주면 미천한 너한테 힘을 주마.
[악마를 숭배하지 않습니다. 제작법을 이해하는 데 페널티가 들어갑니다.]
[신성 스탯이 너무 높습니다. 제작법을 이해하는 데 페널티가 들어갑니다.]
[<악마의 기계공학 비전>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악마 마력 추출기> 제작법을 완벽하게 파악합니다.]
[<악마 구속기> 제작법을 완벽하게 파악합니다.]
“오오…!”
태현은 감탄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라면 불가능했지만 <악마의 기계공학 비전>을 갖고 있던 덕분에, 제작법을 보는 것만으로 얻어낼 수 있었다.
-크르릉. 인간.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드워프들. 이거 내가 갖고 가도 되지? 이대로 들고 다니면서 써도 되나? 하루에 몇 시간 이상 쓰면 안 된다거나 하는 주의사항 있어?”
완전한 무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