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68화
‘아차. 정신 차리자.’
태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카르바노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합니다. 신도들은 모두 소중한 법이니, 실력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저놈들도 분명 이상한 점이 있을 거야.’
아키서스를 믿는 놈이니 분명 이상한 점이 있을 것이다!
태현은 믿었다. 법칙이 틀릴 리 없었다.
[…….]
카르바노그의 따가운 시선은 무시하고, 태현은 사냥에 몰두했다.
이상한 점과 별개로 사냥은 잘 돌아갔다.
‘든든하군.’
-노예의 시선!
-노예의 시선!
-노예의 시선!
[부족 정예 대전사가 <노예의 시선>으로 움직임이 느려집니다.]
[부족 정예 대전사가 <노예의 시선으로 움직임이 더욱 느려집니다.]
[부족 정예 대전사가 <노예의 시선>으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다 같이 <아키서스의 노예> 스킬을 사용하자, 그 효과는 케인의 몇 배였다.
[8케인 정도 되는 것 같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아니. 10케인 정도는….’
‘뭔가 불쾌한데.’
케인은 찜찜한 얼굴로 무기를 휘둘렀다. 왠지 모르게 기분이 찜찜했다.
누군가 그를 갖고 노는 기분!
[같은 <아키서스의 노예>가 쓰는 스킬을 보고 새 스킬을 얻었습니다.]
[힘이 오릅니다.]
-노예 동지. 벗고 싸우니까 좋지?
-역시 진정한 힘은 갑옷 없을 때 나오는 법이지.
-노예 동지 좋아서 말도 못 하는 거 봐. 후후. 고맙다는 말은 됐어.
“아니 나 이제 갑옷 입고 싶은데….”
“아주 좋은 성장법이군.”
태현은 감탄했다.
일부러 갑옷을 벗고 싸우다니!
실수하면 죽기 딱 좋은 전투법이었지만, 장점이 확실했다.
일단 아슬아슬하게 싸우면서 스탯 보너스가 더 들어갔고, 집중력과 컨트롤도 향상됐다.
죽기 좋지만 안 죽으면 그만 아닌가!
‘케인을 저렇게 키웠어야 했는데!’
태현은 스스로 반성했다.
너무 착하고 인정이 많아서 케인을 제대로 도와주지 못했구나!
“야! 나 이제 힘 스탯 더 올라서 갑옷 입을 수 있어!”
“아냐. 더 그렇게 싸워라.”
“?!”
케인은 황당해했다. 태현마저 저놈들 편을 들기 시작한 것이다.
“보니까 스탯하고 컨트롤 키우기 딱 좋은 방법이다. 진작 했어야 했는데.”
“그럼 너도 그렇게 싸우던가!”
-어허! 어디서 불경하게!
-이놈!
우당탕!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케인은 바로 제압당했다.
태현은 당당하게 말했다.
“난 어지간하면 다 회피 떠서 그 방법을 못 써.”
“…….”
“그리고 난 저걸로 오를 컨트롤도 없다.”
‘그건 그렇긴 하지.’
재수 없지만 사실은 사실이었다.
태현이 이제 와서 저런 걸 한다고 더 실력이 오를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더 오를 수가 있나?
“그러니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하라 이거야. 세상에는 그런 스탯 성장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
케인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논리만 듣고 맞는 말인데, 왜 이렇게 기분이 억울할까?
-쿠오….
[자기는 가면 안 되냐고 카르바노그가 전해줍니다.]
“아직 안 된다니까. 너 갔다가 우리끼리 죽으면 어쩔 건데!”
태현은 아다만티움 거인 골렘을 따끔하게 혼냈다.
지금 딱히 쓸모는 없지만 널 보낼 수는 없다! 언제 어디서 쓸 수 있을지 모르니까!
…라는 이유였지만, 이걸 솔직하게 말했다가는 아무리 착한 골렘이라도 난동을 부릴 것이다.
-쿠오오….
[저 부족들 정말 싫다고 카르바노그가 전해줍니다.]
아다만티움 거인 골렘은 정말 아키서 부족이 싫은 모양이었다.
아키서 부족 전사들은 틈만 나면 아다만티움 거인 골렘에게 말을 걸었다.
-아다만티움 골렘! 그 몸을 아키서스 님에게 바쳐라!
-맞다! 맞다! 그렇게 덩치가 큰데 몸 좀 잘라도 괜찮겠네!
-조각상 만들게 내놔라! 아니, 네가 조각상이 되어라!
“…….”
싫어할 만도 하다!
-화신님! 화신님이 온 것은 아키서스의 계시입니다. 이 광산에 있는 불신자 놈들에게 아키서스 님을 가르쳐주라는 계시!
“어?”
태현은 살짝 당황했다.
여기 온 건 아다만티움을 얻기 위해서였다.
이제 얻을 만큼 다 얻었으니 나갈 생각!
아다만티움 거인 골렘을 어떻게 꼬드겨서 조금 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정도만 생각했지, 광산을 정복할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여기 광산은….’
잘못 건드렸다가는 이세연한테 오해받기 딱 좋았다.
아스비안 제국과 황제를 따르는 부족들은 이세연이 지켜야 하는 세력이었으니까!
-역시…! 김태현 너! 날 방해하려고 온 거였어!
오해였지만 변명하기 매우 힘든 상황!
그런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아니. 꼭 가르쳐줘야 하나? 난 너희들만 있으면 되는데.”
-아닙니다! 아키서스의 규칙은 하나. 죽느냐 아키서스냐! 그뿐입니다!
태현도 처음 듣는 강렬한 규칙!
-죽느냐 아키서스냐!
-죽느냐 아키서스냐!
-여기 모든 부족들에게 아키서스를! 그렇지 않는다면 죽음을!
-전부 죽여 버리자!
그리고 그때, 반대편 골목에서 최정예 언데드 몬스터를 이끌고 온 플레이어가 나타났다.
이세연이었다.
“…….”
“…….”
“역시…! 김태현 너! 날 방해하려고 온 거였어!”
이세연은 태현을 가리키며 외쳤다. 태현은 천장을 쳐다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이다비의 말이 귓속에서 맴돌았다.
-태현 님! 이세연 씨와는 싸우시면 안 돼요! 길드 동맹도 있는데 두 분끼리 싸우시면…!
‘아니. 잘 생각해 보자. 정확히 이런 말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태현 님! 이세연 씨와는 최대한 싸우시면 안 돼요! 싸우실 거면 이세연 씨가 갖고 있는 걸 전부 뜯어내세요!
물론 이다비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태현이 기억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었다.
“김… 김태현! 믿었는데! 너 진짜 나쁜 놈이야!”
김현아는 배신감에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김태현을 믿고 그렇게 말해줬는데 여기서 그런 흉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니!
태현은 마음을 다잡고 진지하게 이세연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세연.”
“…왜?”
그 모습에 이세연은 움찔했다.
“오해야.”
“오해는 무슨 오해! 한다는 소리가 고작 ‘오해야’가 다냐!”
-화신님. 죽일까요?
-저 흉흉해 보이는 네크로맨서는 보기만 해도 불쾌한….
아키서 부족은 옆에서 오해를 더 부추겼다. 이세연과 김현아는 벌써 무기를 든 상태였다.
“잠깐. 저거 아다만티움 골렘이잖아?! 저건 대체 어떻게 부리고 있는 거야?!”
이세연은 정말 깜짝 놀랐다.
아다만티움 골렘은 처음 봐!
김현아도 마찬가지로 놀랐다.
“아까까지 싸우던 건데?! 저걸 어떻게 부리고 있는 거야?!”
“어… 친해졌어.”
“…….”
“…….”
* * *
당장에라도 공격할 것 같은 이세연을 상대로, 태현은 최선을 다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여기 왔는데 아키서스 믿는 부족이랑 아키서스한테 신세를 진 아다만티움 골렘이 있어서 이렇게 된 거라고?”
“응.”
“…….”
이세연은 ‘이 자식이 날 케인으로 보는 건가’ 하는 눈빛을 보냈다.
아무리 봐도 믿기지 않는 거짓말!
“얘네들이 다른 부족들 아키서스 믿게 해달라고 난리라서 그런 말을 한 거야. 다른 부족들을 전부 쓸어버릴 생각은 없다고.”
“진짜? 진짜지? 정말이지?”
“언니. 방송으로 맹세하라고 해요.”
“쟤는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애라 의미가 없어.”
“다 들리거든?”
둘의 대화를 듣던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잘 생각해 봐라. 내가 스미스랑 손을 잡았으면 여기 부족들을 설득해야지 왜 쓸어버리겠냐.”
“확실히 그건 그래.”
처음에는 ‘전부 죽여버리자!’만 듣고 오해했는데, 듣고 보니 태현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러면 이해한 거겠지? 난 이만.”
“잠깐. 뭐하려고?”
“가서 아키서스 전도 좀 하고 가려고.”
“걔네가 말 안 들으면?”
“…설득?”
“퍽이나 설득하겠다!”
이세연은 어이가 없었다. 설득은 무슨! 공격하겠지!
“이렇게 하자. 내가 가서 설득하는 걸 도와줄게.”
-화신님. 저 더러운 네크로맨서가 아키서스를 믿는 겁니까?
“…쟤네 좀 닥치게 해줄래?”
이세연은 아키서 부족의 모습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어디서 저런 걸….
“잠깐. 저거 케인이잖아?!”
이세연은 깜짝 놀랐다. 장비를 벗고 같이 앉아 있어서 몰랐는데 케인이었다.
“이야기가 기니까 넘어가자.”
“…그래. 어쨌든 내 제안은 이거야. 여기 부족들 중에 황제한테 충성하는 부족들이 있거든?”
이세연은 품속에서 <황제 우이포아틀의 칙서> 아이템을 꺼냈다.
황제의 이름으로 충성 부족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고, 공격을 받지 않는 아이템이었다.
태현은 눈빛을 빛냈다. 저거 하나면….
“…훔치면 죽는다.”
“누, 누가 훔친다고 그래?”
“내가 가서 아키서스 믿으라고 설득할 테니, 너는 내 일을 도와줘.”
“네 일이 뭔데?”
“스미스 잡아야 해. 아까 스미스를 놓쳤거든.”
태현과 달리, 스미스는 확실하게 이세연과 반대편이었다.
중립 부족들과 충성 부족들을 설득해 황제 반대 부족으로 만드는 게 퀘스트 목표!
“스미스 잡으면 아이템은… 흠. 서로 잘 맞는 장비 가져갈까?”
“야….”
이세연은 속 보이는 제안에 태현을 노려봤다. 스미스 장비는 네크로맨서인 그녀보다 당연히 태현이 더 잘 맞겠지!
“그냥 주사위 굴려.”
“…그러자!”
태현은 방긋 웃었다. 그 웃음에 이세연은 무언가 실수를 한 것 같은 오싹함이 들었다.
“근데 중립 부족은 네가 설득 못 하지 않아?”
“그런 애들은 싸워도 상관없어.”
-죽음! 죽음! 죽음!
-아키서스냐 죽음이냐!
이세연은 질린 눈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너 정말 취향이 점점….”
“내 취향 아니거든.”
* * *
[숨겨진 동굴 입구에 입장했습니다.]
[<해골 광산 동굴 고블린 부족>이 침입자를 경계합니다.]
‘고블린인가.’
스미스는 가방에서 고블린들이 좋아하는 아이템들을 꺼냈다.
‘황금이 좋겠군.’
남들이 보면 아까워 죽으려고 하겠지만, 스미스는 랭커였다. 이 정도 아이템은 쓸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시간이 없었다. 이세연이 나타난 이상 최대한 빠르게 부족들을 설득해야 했다.
‘빠르게 설득하고 김태현 씨와 손을 잡아야….’
스미스는 아직 태현이 이세연과 손을 잡은 걸 모르고 있었다.
헛된 꿈!
“고블린 여러분! 여기 황금이 있습니다. 이걸 받으시고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샤샤샥-
멀리서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작은 그림자들이 나타났다.
손에 작은 화약 바람총으로 무장한 고블린들이 나타나더니, 내려놓은 황금 조각들을 탐욕스럽게 낚아챘다.
[<해골 광산 동굴 고블린 부족>이 황금을 보고 좋아합니다.]
[친밀도가 아주 조금 오릅니다.]
[<해골 광산 동굴 고블린 부족> 내 명성이 오릅니다.]
저렇게 황금을 바쳐도 아주 조금 오르는 친밀도와 부족 내 명성!
그러나 스미스는 당황하지 않았다. 원래 처음 만나는 NPC들은 이러는 법이었으니까.
만나자마자 서로 친해지는 태현이 이상한 거였지, 스미스가 이상한 게 아니었다.
-무슨 일이냐?
“다름이 아니라, 아스비안 제국의 폭군 우이포아틀이….”
스미스는 길게 설명을 시작했다. 태현과 달리 스미스는 정직하게 상황을 다 설명했다.
-하암!
듣고 있던 고블린들이 하품을 할 정도!
[장황한 말로 인해 화술에 페널티를 받습니다.]
[고블린들을 설득하는 난이도가 올라갑니다.]
“…….”
-그래서?
“저와 같이 싸웁시다! 그러지 않으면 폭군 우이포아틀이 다시 제국을 불행으로 빠뜨릴 겁니다.”
-관심 없다. 여기 광산은 폭군 우이포아틀이라고 해도 못 올 테니까. 그리고 이 동굴은 아무도 찾지 못하지.
“제가 찾았잖습니까.”
-…….
[친밀도가 내려갑니다.]
‘…너무 어려워!’
스미스는 속으로 한탄했다. 이렇게 화술 스킬로 친해지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차라리 그냥 퀘스트를 주고 깨오라고 하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