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65화
-아키서스의 노예! 빨리 와서 도우라니까!
“어떤 자식이야?!”
케인은 울컥해서 외쳤다. 옆에서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이 수군거리는 게 가슴 아팠다.
“방금 노예라고….”
“잘못 들은 거 아니야? 직업이 <노예>일 리가….”
“그런 직업을 고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하하하.”
“…….”
케인을 부른 건 새로 나타난 부족 전사들이었다.
아키서 부족 전사들!
‘잠깐. 부족 이름이 뭔가 불길한데?’
케인은 부족 이름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행운을 위하여! 아키서스 님 만세!
-행운을 위하여!
[아키서 부족 전사들이 <노예의 함성>을 사용합니다!]
[아키서 부족 전사들이 <노예의 돌진>을 사용합니다!]
“…!”
케인은 깨달았다.
이놈들, <아키서스의 노예> 직업 스킬을 쓰고 있다!
그 순간 퀘스트창이 떴다.
<광산의 노예들-아키서스의 노예 직업 퀘스트>
지금은 사라진 아키서스 교단이지만, 그렇다고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당신은 아스비안 제국에서 아키서스가 남긴 흔적을 발견했다.
아키서스를 따르는, <아키서스의 노예>를 영광으로 여기는 아키서 부족!
아키서 부족을 만나 그들을 돕고 그들에게서 배워라!
보상: <아키서스의 노예> 직업 스킬.
“…….”
이렇게 하기 싫은 퀘스트 이름도 드물 것이다.
선배 노예들이라니!
‘으윽… 직업 퀘스트니 안 할 수도 없고….’
예전에 갈락파드를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매번 ‘노예야! 와서 도와라!’ 하고 구박하던 갈락파드.
졸지에 케인은 머슴의 기분을 느껴봐야 했던 것이다.
설마 지금도 그래야 하는 건….
“간다! 가!”
안 할 수는 없었다. 케인은 투덜거리며 돌진했다.
[같은 아키서스의 노예들과 싸웁니다!]
[능력치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아키서스의 축복이 내려집니다!]
-아키서스! 아키서스를 위해!
-날 쳐봐라! 네 공격은 빗나간다!
‘뭐 이리 버프가 좋아?!’
케인이 오자 아키서 부족 전사들은 더 날뛰기 시작했다.
아짓 부족 전사들은 결국 도망쳤다.
-이런 잡신을 믿는 미친놈들이!
-두고 보자! 이 미친놈들!
수많은 욕들 중에서 하필이면 ‘미쳤다’라고 말하는 게 신경 쓰였지만….
케인은 일단 무기를 휘둘렀다.
-잘했다! 아키서스의 노예!
-반갑다! 노예 동지!
“아, 아니. 난 노예가 아니라….”
-뭐?
그 순간 아키서 부족 전사들의 눈빛이 희번덕거렸다. 케인은 움찔했다.
[아키서 부족 전사들은 아키서스와 상관이 없는 이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주장할 경우 공격당할 수 있습니다!]
“…아키서스의 노예란 이름은 나한테 너무 과분한 이름이라….”
-아하. 그런 거군!
-하하. 같이 아키서스를 섬기는 노예끼리 그런 겸손은 필요 없어. 노예 동지!
-노예 동지! 노예 동지!
아키서 부족 전사들은 케인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헹가래를 쳐주기 시작했다.
[<노예의 헹가래>를 받았습니다.]
[일시적으로 행운이 크게 오릅니다.]
-좋아! 우리 부족으로 안내해 주지. 저 뒤에 있는 놈들은 누군가? 아키서스 님의 노예는 아니지만 아키서스 님이 느껴지는군. 저놈들은 빼고.
아키서 부족 전사들은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선수들에게 메시지창이 떴다.
[아키서 부족 전사들은 아키서스를 믿지 않는…]
“저, 저는 믿으려고 고민 중이었는데….”
“저도 요즘 생각은 했습니다.”
-그러면 믿어!
-왜 고민을 하나!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인데! 지금 당장 믿어!
“아, 아니. 그게. 이게 원래 믿던 교단도 있고….”
-믿으라고! 믿을 테냐, 아니면 저 용암으로 갈 거냐?
아키서 부족 전사들은 거대한 무기를 들고 와서 으르렁거렸다.
갈락파드가 봤다면 ‘아, 전도는 저렇게 해야 하는데!’라고 감탄했을 모습!
선수들은 고민했다.
지금 싸워야 하나?
아키서 부족 전사들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세 해골의 광산>에서 사는 부족답게 강력한 레벨을 자랑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은 다 아키서스를 믿고, 케인도 퀘스트를 진행하는 것 같은데 그들이 방해해도 되나?
결국 그들은 어처구니없이 믿던 교단들을 포기했다.
“믿… 믿겠습니다!”
그 순간 아키서 부족 전사들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야지!
-그래! 믿고 있던 쓰레기 신보다는 아키서스가 최고지!
“…….”
“…….”
-자. 아키서스를 믿기 전에 ‘믿고 있던 신 개자식!’이라고 외쳐보게.
“네?”
-그래야 아키서스 님이 좋아하셔!
‘왜 내가 창피하지?’
케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부족 전사들은 다른 일행들을 확인했다.
-허어억!
부족 전사 중 하나가 정수혁을 보고 펄쩍 뛰었다.
-아키서스의 마법사시군요!
“네? 아, 네. 그렇습니다.”
-애들아! 대단하신 분이시다!
부족 전사들은 갑자기 가마를 하나 꺼내더니 그 위에 정수혁을 앉히기 시작했다.
“아, 아니. 이런 거 필요 없습니다.”
-아닙니다! 그냥 둘 수 없습니다!
“저기… 나도 나름 아키서스 교단 최측근인데….”
-넌 우리하고 동지잖아.
-맞아. 같이 가마나 들자.
“…….”
케인은 시무룩해졌다. <아키서스의 노예>는 뭐 이래?
‘앗. 생각해 보니 이다비는 아키서스의 노예도 마법사도 아니니 나보다 낮은 처지겠지?’
얄팍한 생각을 하는 케인!
그러나 케인의 예상은 빗나갔다.
-허어어어어어어억!
이다비를 보더니 더 펄쩍 뛰는 부족 전사!
-저, 저건 아키서스 님의 갑옷!
-저런 걸 입고 계시다니!
-애들아! 더 대단하신 분이시다!
아까보다 더 큰 가마를 꺼내는 부족 전사들!
이다비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가마 위에 탑승했다.
* * *
“아. 여기 귓속말이 안 되네.”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아다만티움 골렘의 은신처는 귓속말도 안 되는 곳이었다.
‘뭐, 괜찮겠지.’
밖에 있는 일행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았다.
이다비도 있고,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도 있고, 드워프 놈들도 있고, 케인도 있고….
‘음. 갑자기 불안해지지만….’
[골렘이 집중하라고 한다고 카르바노그가 전해줍니다.]
“아. 미안.”
태현은 다시 망치를 휘둘렀다. 지금 나갈 수는 없었다.
최대한 잘 만들어서 갖고 나가야 한다!
아다만티움 골렘은 직접 아다만티움 원석을 들어 용암에 푹 집어넣어 약하게 만들고, 다시 들어 온몸의 열기로 녹여냈다.
이런 도움 없이 태현이 그냥 다루기는 힘들었다.
대장장이 플레이어라면 각종 대장장이 직업 스킬로 어떻게 해보겠지만, 태현은 일단 대장장이가 아니었으니까!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크게 오릅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매우 크게 오릅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
[사디크의 화염 스킬의 위력이 오릅니다.]
아다만티움은 정말 꿈의 금속이었다. 만지고 녹일 때마다 스킬이 쫙쫙 오르는 게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모든 대장장이들이 꿈꾸던 곳이 여기 있다!
“근데 넌 왜 아키서스 이름을 듣고 도와주지?”
움찔!
골렘이 움찔했다.
-쿠오.
[그냥 도와주는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개소리하지 말고.”
물론 숙련된 태현이 그런 어설픈 거짓말에 넘어갈 리 없었다.
-쿠오….
[예전에 아키서스에게 신세를 진 적이 있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아다만티움 골렘이 갓 태어나서 작고 약할 때, 아키서스가 골렘을 도와주고 간 것이다.
‘아스비안 제국에 권능이 잠들어 있는 건 아키서스가 왔다 가서인가?’
태현은 그렇게 추측했다. 근데 골렘은 왜 도와줬지?
‘설마… 그때는 작았으니까 키워서 아다만티움을 빼먹으려고….’
[카르바노그가 설마 그러겠냐고 합니다.]
‘아니야. 충분히 가능성 있어.’
화신으로서 냉정한 판단!
그것도 모르고 아다만티움 골렘은 아키서스를 좋게 말해주고 있었다.
빚진 걸 갚으려고 태현을 도와주기까지 하고 있었으니까!
‘흠. 말하지 말아야지.’
사실을 안다면 아다만티움 골렘이 별로 행복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왜 그냥 도와준다고 했냐?”
-쿠오.
[여기에는 아키서스를 믿는 다른 미친놈들도 있다고 카르바노그가 전해줍니다.]
“뭐?”
* * *
-아키서스의 신수시다!
-으허헉! 감히 두 눈으로 볼 수가 없다! 저희가 봐서 죄송합니다!
아키서 부족 전사들은 넙죽 엎드려서 벌벌 떨었다.
정수혁→이다비를 지나, 용용이까지 온 것이다.
그것까진 좋았다.
좀 과하긴 해도, NPC한테 극진한 대접을 받는 게 나쁠 건 없었으니까.
공격받는 것보단 낫지!
문제는….
-노예 동지. 뭐하냐! 머리 숙여!
-너 왜 이래? 못 배운 노예처럼!
-밖에서 다른 놈들이 보면 흉본다! 못 배웠다고!
그걸 자꾸 케인한테 강요한다는 점!
“크으윽… 크으으으윽….”
“죄, 죄송합니다. 케인 씨.”
정수혁은 당황해서 말을 걸었다. 그러자 아키서 부족 전사들이 달려와서 외쳤다.
-아닙니다! 마법사님!
-모시고 섬기는 게 저희의 기쁨입니다!
‘너희끼리 하라고!’
왜 그걸 나한테 강요하는데!
케인은 속으로 외쳤다.
아키서 부족 전사들은 같은 노예라고 케인과 뭐 하나도 같이 하려고 했다.
-그런데 저놈은… 아무리 봐도 아키서스의 신수 같지가 않은데….
아키서 부족들은 흑흑이를 노려보았다. 매우 수상쩍은 눈빛이었다.
-힉!
-아키서스의 신수는 아니지만 아키서스를 따르는 놈 맞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용용이의 말 한마디에 전사들은 바로 납득했다.
이다비는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태현 님 만나면 기절하는 거 아니야?’
흑흑이는 용용이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위기 상황에서 싹트는 우정!
[<아키서 부족의 영역>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아키서 부족의 허락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만약 허락을 받지 않고 들어올 경우 아키서 부족은 끝까지 쫓아올 것입니다.]
[행운이 오릅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세 해골의 광산> 내 세력이 오릅니다.]
[……]
-자. 여기서 기도하고 들어가자.
“…?”
케인은 의아해했다. 기도라니?
‘여기도 신전이 있나?’
이건 좀 신기했다. 중앙 대륙에도 그렇게 많지 않은 아키서스 교단 신전이 여기에도 있나?
그러나 케인의 예상은 다시 한번 빗나갔다.
“…이, 이게 뭔데?”
-기도하는 곳이지.
“미친놈들아! 함정이잖아!”
케인은 기겁해서 외쳤다.
부족 전사들이 가리킨 장소에 서자, 위에서 창칼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자살하기 딱 좋은 곳!
-어허. 그런 불경한 소리를 하면 쓰나. 저기 가면 아키서스 님에 대한 믿음이 진실해진다.
“그야 진실해지겠지!”
제발 빗나가라고 빌게 될 테니!
케인은 들어가기 싫어서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부족 전사들의 힘 스탯은 대단했다.
-자! 너도 가서 기도해라!
[<아키서스의 간이 시험대>에 들어섭니다!]
[성공할 경우 랜덤으로 스탯이 증가합니다.]
파파파파팍!
“으아악! 으아악!”
-가만히 서서 빗나가길 빌어!
-어허.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옆에서 훈수를 두는 전사들까지!
“헉, 헉….”
[힘 스탯이…]
-다시 하고 싶나?
“미쳤냐?!”
-어차피 다시 못 해. 하루에 한 번씩만 할 수 있는 귀한 기회거든.
“…….”
-후후. 이런 걸 말해주다니. 나도 좀 수다스러워진 거 같군. 밖에서 우리 같은 노예가 찾아올 줄은 몰랐거든.
전사는 쑥스럽다는 듯이 코밑을 훔쳤다. 물론 케인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밖에서 찾아온 노예 동지를 위해서라면 이런 기회를 양보할 수 있지.
-맞아. 나도 불만 없어.
-역시 동지들!
“나 그냥 나가면 안 되냐?”
케인은 직업 스킬이고 뭐고 포기하고 싶어졌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면 진짜 죽을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