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64화
그러자 다른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놔줘도 되나?”
“태현 님이 스미스 별로 안 좋아하잖아요.”
“근데… 무시하면 뒷감당이 좀….”
케인은 말끝을 흐렸다.
스미스한테 원망을 사고 싶진 않다!
원래 착한 놈이 화나면 무섭다고, 스미스처럼 착하고 성격 좋은 놈한테 한 번 찍히면 오래 갈 것 같았다.
“뭐 어때요.”
“그, 그치? 스미스는 착하니까 못 들은 척 무시해도 뭐라고 안 할 거야.”
‘…케인 씨라면 찍혀도 괜찮지 않냐는 소리였는데….’
이다비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괜히 설명해 줘봤자 겁만 먹을 거 같다!
“여러분?”
스미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불렀다. 왜 대답이 없지?
“크흠! 이 주변이 시끄러워서 그런지 소리가 잘 안 들리는군!”
“앗! 정말 그렇습니다!”
실제로 이 주변이 시끄럽긴 했다. 그렇지만 저 멀리서 크게 말한 스미스의 목소리가 안 들릴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실제로 김현아도 황당해했다.
“지금 못 들은 척하려고 저러는 거 아니지?”
“…….”
“…….”
정곡을 찔린 케인과 정수혁은 움찔했다.
그러나 스미스는 둘을 믿었다.
“시끄러우니 못 들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내가 그걸 두고 볼 줄 알아? 다리 절대 놔주지 마! 놓으면 내가 공격할 테니까.”
김현아는 본색을 드러냈다.
방금까지는 아다만티움 거인 골렘이라는 강력한 적이 있어서 참았지만, 이제는 참을 필요가 없었다.
스미스를 더 안으로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된다!
“순순히 밖으로 나가지 그래? 그러면 목숨은 살려줄게.”
“김현아 씨. 절 너무 우습게 보는 거 아닙니까. 제가 김태현 씨나 이세연이면 몰라도 그쪽을 상대하는 걸 겁내진 않습니다.”
스미스는 예의 발랐지만 철벽같았다. 뒤로 돌아서며 단호하게 말했다.
여기 광산을 공략해서, 안에 있는 부족들을 설득해 제국을 공격하게 만들겠다!
김현아는 혀를 찼다. 스미스가 가만히 서 있었는데도 벌써 긴장이 됐다.
‘시간만 끌어야지.’
스미스가 이 광산 안의 부족들을 설득하는 건 막아야 했다.
둘이 팽팽하게 노려보자 케인은 살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까먹은 거지? 그치?”
‘이 사람도 나름 최상위권 랭커로 손꼽히는 사람인데….’
정수혁은 짠하다는 듯이 케인을 쳐다보았다.
케인도 분명 인기가 많고, 대회 성적도 확실하게 내고 있는 최상위권 랭커 중 하나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허술해 보일까?
스미스나 김현아만큼 날카로운 기세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거지? 설마….”
‘아차.’
“내 임기응변이 존경스러웠던 건가? 헤헤. 김태현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도 좀….”
“…….”
“그건 아니거든요.”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유지수와 이다비가 냉정하게 말했다.
* * *
“무조건 갑옷인데… 물론 부츠도 만들고 팔찌도 만들고 귀걸이도 만들고 반지도 만들고… 사실 마음 같아서는 몸을 통째로 덮고 싶긴 해.”
아다만티움 망토, 아다만티움 손수건, 아다만티움 속옷까지 만들고 싶다!
-쿠오오….
아다만티움 골렘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태현을 쳐다보았다. 그 눈빛은 왠지 모르게 경멸 같았다.
‘더 뜯어내고 싶은데 이제 무리겠지.’
태현은 이미 아다만티움 골렘한테서 뜯어낼 수 있을 만큼 뜯어낸 상태였다.
-더 내놔!
-쿠오오….
[아다만티움 광석을…]
-더 내놔! 여기를 아키서스해버리기 전에!
-쿠오, 쿠오오….
눈물을 흘리며 아다만티움을 내놓는 골렘!
[아다만티움 광석을…]
[더 이상 설득이 불가능합니다. 만약 더 협박을 했다가는 아다만티움 골렘이 공격해 올 것입니다.]
뜯길 만큼 뜯기자 골렘도 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물론 지금 뜯어낸 양으로도 태현이 전신 세트를 갖춰 입고도 남을 양이긴 했다.
지금 플레이어들 중에서 이만큼 아다만티움을 모은 사람은 없을 정도!
사실 양보다는 다른 게 문제였다.
‘지금 내 수준으로 완전히 다루기가 힘들어.’
그랬다.
아다만티움은 그 희귀함만큼이나 다루는 난이도가 높았다.
‘갑옷을 만들면 페널티도 페널티지만 도중에 손실되는 양이 생길 텐데….’
아다만티움 한 조각이 사라질 때마다 피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떻게든 아다만티움을 잘 다루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속시간이 끝나 골골이가 <정예 드래곤 데스 나이트>로 돌아옵니다.]
[<정예 드래곤 데스 나이트>는 드래곤을 타고 있을 경우 막대한 추가 효과를 받습니다.]
슈우욱-!
골골이의 몸에서 연기가 솟구치더니, 덩치가 줄어들었다.
온갖 언데드를 흡수해서 생긴 강력한 버프는 끝났지만, 데스 나이트에서 한층 진화한 것은 사실!
그렇지만….
“…어, 너 근데 드래곤은 어떻게 타고 다니냐?”
문제는 드래곤이 없다는 것!
드래곤 데스 나이트는 드래곤을 타고 다니는 죽음의 기사였는데, 드래곤이 없으면 데스 나이트랑 크게 차이가 없었다.
-예? 주인님….
“지금 날 계속 타고 다닌다는 거 아니지?”
태현의 말에는 살기가 담겨 있었다. 골골이가 급히 말했다.
-주인님이 소환해 주시면 되지 않냐는 소리였습니다!
본 드래곤도 드래곤은 드래곤!
드래곤 리치와 비교하면 초라할 정도의 몬스터였지만, 본 드래곤도 나름 강력한 몬스터였다.
그리고 본 드래곤 정도면 지금 태현이 소환할 수 있는 드래곤이었다.
“어….”
-?
태현이 망설이자 골골이는 의아해했다.
“…나 이제 곧 드래곤 리치 상태 풀고 아다만티움 다룰 건데.”
-…본 드래곤 소환해 주시고 풀면 되지 않습니까?
“드래곤 리치 상태 풀면 본 드래곤 유지 못 하지.”
지금 태현이 드래곤 리치 상태라서 본 드래곤을 우습게 보는 거지, 네크로맨서 플레이어 중에서 본 드래곤을 소환하고 유지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손에 꼽혔다.
골골이 같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안 그래도 MP가 부족한 태현이 본 드래곤까지 유지하고 다닐 수는 없었다.
다른 스킬 쓸 MP도 아까운데!
-그,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합니까?
“음… 용용이나 흑흑이는….”
-저 데스 나이트입니다 주인님!
언데드가 어떻게 신수를 타!
“…그냥 걸어 다니자.”
-!!!
골골이는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기껏 온갖 정수를 흡수하고 전투를 치러 이렇게 진화했는데!
-주인님! 주인님!
태현은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아다만티움 골렘과 눈이 마주쳤다.
아다만티움 골렘은 꼭 ‘저놈 아까 풀렸으면 아까 죽이는 건데’란 표정이었다.
“왜 그렇게 살벌하게 쳐다보냐?”
-쿠오….
골렘은 모르는 척 고개를 흔들었다.
태현은 어깨를 으쓱하고서 <알렉세오스의 권능>을 풀었다. 뒤에서 골골이가 애타게 울부짖었다.
-주인님----!
[<알렉세오스의 권능>을 해제했습니다.]
[골골이의 능력이…]
[마법 스킬이…]
[흑마법 스킬이…]
[MP…]
온갖 버프가 사라지고 각종 마법들도 사라졌지만, 태현은 홀가분했다.
권능은 다시 쓸 수 있고, <아키서스의 화신> 상태가 더 마음이 편했다.
역시 안 하던 짓은 하는 게 아니다!
-쿠오오!
아다만티움 골렘은 깜짝 놀랐다. 골렘은 일어서더니 펄쩍 뛰었다.
한 번 뛰자 바닥이 울리고 용암이 솟구쳤다.
“뭐야. 공격인가?”
-주인님! 드래곤 리치 상태를 풀면 안 됐습니다. 놈은…!
태현은 무기를 들었다. 어디 한번 해볼….
‘음. 그냥 골골이 버리고 용암 속을 헤엄쳐서 튈까….’
행운이 높으니 어떻게든 용암 속에서 버틸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아다만티움 골렘은 태현을 공격하려고 일어선 게 아니었다.
-쿠오오오!
“뭐라는 거야?”
[네가 아키서스의 화신이냐고 하는 것 같다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라면 말 안 통하는 상대와 말하기 위해서 온갖 짓을 해야 했지만, 태현에게는 카르바노그가 있었다.
썩어도 신은 신!
“내가 아키서스의 화신이다. 아까 아키서스한다고 말했잖아.”
-쿠오!
아다만티움 골렘은 그 말을 듣고 다시 한번 놀라 펄쩍 뛰려고….
“아, 그만 뛰어 이 자식아!”
-쿠오….
골렘은 용암 속에 손을 넣어 뒤적거리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거대하게 타오르는 용암 망치였다.
[아다만티움을 제련하는 걸 도와주겠다고 하는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말합니다.]
“오… 혹시 몸에 있는 건 좀 안 떼어주나?”
-쿠오오오!
[싫다고…]
“그건 해석 안 해줘도 알 것 같으니까 괜찮아.”
[아다만티움 골렘이 당신을 도와줍니다. 아다만티움 제련에 막대한 보너스를 받습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오릅니다!]
‘지금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고급 8 초반이니까… 아다만티움으로 다 만들고 나면 고급 9를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어느새 보이는 최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
대장장이 직업도 아닌 태현이 최고급 기계공학을 찍고 최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대장장이 랭커들이 안다면 기가 막힐 일이었다.
* * *
쾅! 콰콰쾅!
“으윽!”
“케인 선수! 대단합니다!”
“역시 케인 선수!”
“그런 소리 할 여유 있으면 돕기나 해 이것들아!!”
케인은 비명을 질렀다.
태현이 사라지자 던전의 난이도는 순식간에 몇 배로 올라갔다.
다행히 적들이 많이 안 나와서 그렇지, 많이 나왔다면 진짜 위험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 고생하는 건 역시 케인이었다.
별생각 없이 맨 앞에 선 게 화근이었다.
점점 길이 좁아지더니….
갑자기 적이 등장!
덕분에 케인 뒤에 있는 사람들은 맞지도 않고 케인 혼자서 두들겨 맞고 있었다.
한 대 맞으면 내구도가 떨어지고 스턴 상태에 걸리고….
물론 케인이 탱커긴 했지만, 넓은 곳에서 같이 싸우며 탱커 역할을 하는 것과 이런 좁은 곳에서 혼자 억지로 두들겨 맞는 건 기분이 달랐다.
콰콰쾅!
뒤에 있던 드워프들이 대포를 발사했다. 대포알 중 하나가 케인의 등을 갈겼다.
“크아아악! 어떤 자식이야!”
“미, 미안하다. 고의가 아니다!”
“노예의 쇠사슬!”
케인은 앞에서 달려드는 부족 전사를 향해 쇠사슬을 걸었다. 그 순간 다른 전사가 덤벼들었다.
“으헉!”
케인은 급히 몸을 비틀었다. 그러자 쇠사슬에 끌려오던 부족 전사가 몸을 튼 방향에 따라 몸이 돌아갔다.
그리고 거기는 절벽 위였다.
“!”
-으아아아아!
쇠사슬을 걸어 용암 속으로 던져 버린 케인!
뒤에 일행은 감탄했다.
“역시 케인 선수!”
“케인 씨…! 감탄했습니다. 그런 사용법이!”
“아니, 일부러 한 게….”
-이런 비겁한 놈 같으니! 정당하게 싸우지 않고!
[아짓 부족 전사들이 더더욱 분노합니다!]
[<광전사의 분노> 버프가…]
“아오! 진짜!”
케인은 이를 갈았다. 뭐 이리 일이 꼬이냐!
그러나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통로 저편에서 새 NPC들이 나타난 것이다.
[아키서 부족 전사들이 나타납니다!]
“망했다. 튀자!”
케인은 깔끔하게 포기하고 말했다.
“예? 케인 선수. 설마 도망을….”
“안 되면 도망쳐야지 이 자식들아! 그러면 싸우리???”
케인은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을 의심했다.
‘이 자식들 지들이 맞는 거 아니라고 나 엿먹이는 거 아냐?’
물론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은 순수한 존경심으로 한 말이었지만….
케인에게 그렇게 들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케인의 예상은 빗나갔다.
차차차창!
새로 나타난 아키서 부족 전사들이 아짓 부족 전사들과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
한 맵에서 나온 NPC들끼리 꼭 친하리라는 법은 없다!
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죽는 줄만 알았는데 숨통이 트였다.
“쟤네 싸우는 거 기다렸다가 이긴 놈 공격하자.”
어부지리를 노리는 케인!
싸우고 나면 누가 이기든 간에 다치고 지쳤을 테니 좋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케인의 예상은 다시 한번 빗나갔다.
-뭘 노는 거냐! 아키서스의 노예! 와서 도와라!
“????????”
케인은 생각지도 못한 부름에 기겁했다. 어떤 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