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61화
김현아는 그렇게 생각하고서 빠르게 이동했다.
한편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는 스미스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세 해골의 광산입니까. 여기 이세연 씨가 난이도 높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김태현 씨가 여기로 간 거군요.”
“예.”
“알았습니다. 이건 김태현 씨의 메시지군요.”
“…?”
“‘너라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잘 알아서 따라와라’라고 하고 있는 겁니다.”
“오….”
“그런….”
안타깝게도 여기 있는 건 모두 NPC였다.
플레이어였다면 ‘그건 좀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을 테지만, 스미스의 착각을 잡아줄 사람이 여기에는 없었다.
“정말로 김태현 씨답습니다. 지금 당장 가야겠군요.”
“세 해골의 광산은 위험합니다. 모험가! 저희들도 같이 가겠습니다.”
[녹색 용 부족이 전사들을 내어줍니다.]
[전사들을 많이 잃을 경우 평판이 깎입니다.]
[전사들을 성장시켜서 돌려줄 경우 평판이 오릅니다.]
스미스가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퀘스트를 위해서는 이 근처 부족들과 친해져야 하는 상황!
“좋습니다. 같이 갑시다!”
* * *
[<고리 부족 정예 전사>가 휘두른 원석 몽둥이에 용아병 스켈레톤 전사가 완전히 파괴됩니다!]
‘레벨이 다르다!’
<세 해골의 광산> 입구에 도착한 태현은 바로 이 던전의 난이도를 알아차렸다.
부족 전사 하나하나가 준보스급!
-크아아아악! 침입자 놈. 죽여 버린다!
“스켈레톤들 앞으로. 오지 못하게 시간을 벌어라. 대포 발사해!”
[발사가 실패…]
“…….”
콰콰쾅! 콰쾅!
다행히 한둘을 빼고서는 모두 발사하는 데에는 성공했다.
명중률이 형편없어서 그렇지.
콰지직! 콰직!
용아병 스켈레톤까지 공격해버리는 상황!
[언데드 군대의 공포가 올라갑니다.]
[……]
태현의 전술 스킬이 아니었다면 예전에 언데드들이 도망치거나 박살 났을 상황이었다.
-컥! 크억!
많이 쏘다 보면 한두 개는 맞게 마련. 고리 부족 정예 전사는 포탄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비틀거렸다.
“데스나이트들 앞으로!”
피해가 날까 봐 일부러 빼놨던 정예 언데드들이 나섰다. 데스나이트들은 활활 타오르는 검을 들고 정예 전사를 공격했다.
푹!
동시에 스켈레톤 주술사들과 궁수들까지 공격을 퍼부었다. 태현도 가만히 있지 않고 각종 저주를 걸어댔다.
다른 마법들을 아끼고 저주만 걸어대는 건, 일부러 언령 스킬과 저주 스킬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저주 스킬이 올라가면 기본적으로 다른 저주에 대한 저항 확률도 올라가니, 이번 기회에 올려놔야지.’
-크어어억….
잘 연계된 포위 공격에 두들겨 맞은 정예 전사는 결국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아이템을 얻었습니다.]
[아이템을…]
태현은 혀를 찼다. 생각했던 것보다 난이도가 높았다. 억지로 들어갔다가는 분명히 피를 봤다.
-언데드 소환 해제! 언데드 소환 해제!
태현은 일단 스켈레톤 전사들을 소환 해제하기 시작했다. 아까 보니 정예 부족 전사들을 상대로 거의 버티지 못했다.
-언데드 진급, 언데드 강화, 데스나이트의 오러, 데스나이트의 왕관….
‘여기는 맵이 상당히 좁고 복잡해. 그런데 이런 적들이 나오면 숫자가 장점인 용아병 스켈레톤 전사들은 불리하다. 차라리 숫자가 확 줄어도 데스나이트로 가는 게 나아.’
태현은 발 빠르게 전략을 수정했다.
[용아병 스켈레톤 전사가 <발빠른 데스나이트>로 진화합니다.]
[용아병 스켈레톤 전사가 <커다란 방패를 가진 데스나이트>로…]
[용아병 스켈레톤 주술사가 <정예 흑마법 주술사>로…]
광산 앞을 채울 정도로 몰려 있던 숫자가 확 줄어들었다.
붉은 전갈을 조종할 인원 정도만 남겨놓은 수준!
“너희들도 이제 앞에서 싸워야 할 것 같다.”
“예!”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은 힘차게 대답했다. 그러나 케인은 아니었다.
“…방금 아군한테 대포 쏘지 않았냐?”
“하하. 케인 씨. 그건 언데드니까 그런 거고 설마 저희가 있는데 그러겠습니까?”
“아니 너희들이 같이 안 해봐서 그런….”
케인은 자기 직업을 원망했다. 하필 탱커여서 이런 일이 생기면 맨날 앞에 서냐!
케인과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 데스나이트로 구성된 1열이 전사를 상대하면 뒤에 있는 유지수나 정수혁, 이다비와 전갈에 올라탄 드워프와 스켈레톤들이 딜을 넣는다!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구성이었다. 태현이 발 빠르게 수정한 것이 제대로 맞아떨어진 것이다.
물론 여기서 제일 힘든 사람은 1열에서 버티는 사람이었다.
“으헉! 으허헉!”
케인은 앞에 휘둘러지는 몽둥이에 기겁했다.
케인도 탱커라 어지간한 공격은 그냥 맞아주겠는데, 여기 나오는 전사들은 한 대 잘못 맞으면 [괴력에 스턴 상태에 빠집니다] 같은 메시지가 떴다.
어떻게든 방어하거나 흘려보내야 했다.
[힘이 오릅니다.]
[체력이…]
[검술 스킬이…]
[방패 스킬이…]
[갑옷 전문화 스킬이…]
“그렇군요! 이게 바로 김태현 선수가 하는 훈련이군요!”
“미친놈들아 지금 감탄할 때냐!”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이 건전한 땀을 흘리며 뿌듯해하자 케인은 기가 막혔다.
미친놈들이 뭘 뿌듯해하는 거야!
“하지만 케인 씨! 이걸 보십시오. 아무나 다 아는 안전한 던전을 공략하는 것보다 이런 던전을 공략하는 게 훨씬 더 도움이 된다! 김태현 선수가 알려주려는 건 이런 거 아닙니까!”
“으악! 앞에! 앞에 봐! 저 자식 버서커 상태다! 미쳐 날뛴다!”
“던전 대회에서 그런 성적을 거둔 비결을 알 것 같습니다!”
“알겠으니까 앞에 좀 보라고!”
태현은 뒤에서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막는군. 케인이 쟤네들하고 호흡이 맞나 봐.”
“되게 친한 거 같네요.”
훈훈하게 코밑을 쓱 훔치는 일행들!
태현은 뒤에서 명령만 내리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 여기 일행들 중에서 가장 복잡하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리더의 책임!
MP 계산하고, 스킬 쿨타임 계산하고, 지금 소환된 언데드들 숫자 계산하고, 떨어지면 보충하고, 전갈 위에 타고 있는 놈들이 실패하면 다시 소환해 주고, 혹시라도 대포나 조종 갑옷이 손상 가면 가서 수리하고, 그러면서도 저주 스킬만 따로 올리고 이후 던전 공략 방법까지 고민하고 있었다.
미친 난이도의 멀티태스킹!
‘아다만티움이 지하 깊숙한 곳에 있다고 했지? 길 한 번 더럽게 좁고 복잡하군.’
광산 안의 통로는 좁고 구불구불했다. 거의 미로나 마찬가지였다.
태현은 싸울 때마다 간간이 나오는 공터로 적을 끌어들여야 했다. 그래야 잡기가 쉬웠으니까.
더 들어가면 난이도가 높아졌지 낮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너희들은 무슨 배짱으로 여기를 공격하자고 한 거냐?”
태현은 붉은 전갈 부족의 드워프들을 쳐다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생각해 보니 웃기지도 않았다.
드워프들이 강력하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넓은 곳에서 싸울 때의 이야기였다.
이렇게 좁은 곳에서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이야기!
전갈 하나 지나가기 힘든 곳에서는 대포도 제대로 못 쏘고 전사들한테 탈탈 털릴 것이다.
드워프 하나가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
“새로 황제가 보내준 사람이 있으니 잘 될 줄….”
“…너희 설마 우리를 앞세우려고 한 건 아니겠지.”
“…….”
‘맞군 이 자식들.’
자기네들은 뒤에서 대포를 쏴야 하니 태현 일행에게 탱커 역할을 시킬 속셈이었던 것!
하긴 태현도 기회만 보다가 바로 제압해서 그들을 부려먹고 있었으니 욕할 처지는 아니었다.
‘이런 던전에서는 차라리 리치 상태가 아닌 게 나았으려나?’
태현의 원래 스타일이 이런 좁은 던전에서는 더 나았을 수도 있었다.
‘아니. 그랬다가는 일행 중에서 몇 명은 로그아웃했겠다.’
지금 태현이 부리는 정예 언데드들과 후방의 대포 전갈 덕분에 피해가 안 나오고 있는 거지, 아니었다면 태현 말고 다른 일행은 벌써 로그아웃됐을 것이다.
그만큼 나오는 전사들이 강력했던 것이다.
‘더 들어가면 저주 계열은 포기하고 공격 마법으로 가야겠군.’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언제나 비책을 찾고 해냈던 태현이지만, 이번 던전에서는 딱히 비책이 보이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정직하게 나아가야 할 뿐!
태현은 초조해하지 않았다.
모든 던전을 날로 먹는 건 솔직히 양심 없는 짓이었다.
태현이 비정상적으로 운이 좋았던 거였지 원래 이런 식의 정석 공략이 맞는 것!
게다가 남들은 이런 NPC 도움받으려면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용병을 고용해야 했는데, 태현은 대화로 얻어내지 않았는가.
초조해할 이유가 없었다. 여기서 스킬을 올리고 경험치를 얻으며 천천히 들어가야….
쿠쿠쿵!
“…?”
태현 일행은 고개를 돌렸다. 무슨 소리야?
* * *
“잠시 물러납시다!”
스미스 일행은 태현 일행보다 훨씬 느렸다.
스미스는 게임에서 손꼽히는 성기사 랭커였지만, 다른 능력들은 태현에게 비교가 되지 않았다.
상황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전략을 짜내는 능력.
갖고 있는 패들을 적재적소에 써먹는 능력.
게다가 스미스가 데려온 전사들은 태현이 부리고 있는 정예 언데드들보다 수준이 낮았다.
덕분에 스미스는 몇 배나 느린 속도로, 혼자 길을 만들며 나아가야 했다.
“아아앗!”
“?”
그때 뒤늦게 도착한 김현아가 스미스를 발견했다.
붉은 전갈 부족이 분명 여기로 왔을 텐데, 모습은 보이지 않고 스미스만 있다니.
설마….
‘벌써 쓰러뜨린 거야?!’
김현아는 분노했다. 감히 이세연의 계획을 망쳐놓다니.
용서하지 않겠다!
“스미스--!”
“?!”
“죽어!”
이세연은 김현아를 제대로 가르쳤다.
언제나 싸움은 선빵이 최고!
상대방보다 레벨이 낮으면 더더욱 선빵이 최고였다.
그 가르침에 김현아는 바로 공격을 퍼부었다.
“큭!”
생각지도 못한 뒤에서의 공격.
스미스는 재빨리 방어를 올리고 자세를 굳혔다.
-찌르는 얼음 폭풍!
김현아의 직업은 마법 검사!
김현아는 아낌없이 강력한 마법 스킬들을 사용했다. 스미스 상대로 스킬 아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스미스 상대로는 근접전 못 해!’
스미스는 걸어 다니는 요새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상대한테 어설프게 근접전을 걸었다가는 그냥 박살 나는 수가 있었다.
저벅, 저벅-
스미스는 마법을 두들겨 맞으면서도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김현아 씨. 이길 수 있을 거 같습니까?”
“흥. 어디서 건방이야!”
김현아는 바로 다음 작업에 들어갔다.
-아스비안 마도 골렘 소환!
이세연이 준 골렘들!
[아스비안 마도 골렘이 MP를 빠르게 회복시킵니다.]
[아스비안 마도 골렘이 자동으로 공격을 퍼붓습니다!]
아스비안 마도 골렘은 MP를 빠르게 회복시켜주고 동시에 공격도 해주는, 아주 귀하고 비싼 골렘이었다.
이런 걸 길드원들한테도 주는 이세연의 저력을 알 수 있었다.
[소란을 듣고 <고리 부족 정예 전사>들이 달려옵니다!]
[소란을 듣고 <녹은 강철 부족 정예 전사>들이…]
[……]
“!”
“!!!”
스미스와 김현아는 메시지창에 서로 당황했다.
입구에서 싸웠는데 이렇게 바로 메시지가 뜰 줄이야!
* * *
“아니, 얘네들 갑자기 미쳤나?”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한둘씩 나오던 전사 놈들이 뭐라도 잘못 먹었는지 떼거리로 나오고 있었다.
“김태현! 어떻게 하냐?! 튈까?”
“아니. 아직 그 정도는 아니고.”
이렇게 되면 저주 마법만 쓰면서 여유 부릴 때가 아니었다. 태현은 쓸 수 있는 마법을 총동원했다.
-어둠의 짙은 장벽, 혼돈의 저주, 죽음의 정수 흡수….
콰아아아악!
달려오던 전사들이 태현의 마법에 두들겨 맞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데스나이트 골골이가 <부족 정예 전사>의 정수를 흡수하고 더욱더 강해집니다!]
한 번 발만 묶으면 그 다음부터는 태현 일행의 공격력도 무시무시했다.
“뚫었다. 그대로 들어가!”
한 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다. 지금 이상하게 전사들이 많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 서!”
“서란다고 설 거 같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