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58화
그래도 태현은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일단 유적 안에 다 집어넣고… 남은 놈들은 모래 속에 파묻고….’
용아병 데스나이트들은 순진무구한 눈동자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모르는 눈동자!
‘되려나? 음. 일단 한 번 해볼까.’
무엇이든 간에 한 번 시도해서 나쁠 건 없었다.
안 되면 그때 치지 뭐!
* * *
쿠르르릉….
“…….”
“…….”
“어, 저거랑 싸워야 하는 건 아니지?”
케인은 태현을 보며 물었다.
저 사막 멀리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다가오고 있는 붉은 전갈 부족!
태현 일행은 <붉은 전갈 부족>이라고 했을 때, 오크 부족 같은 걸 생각했었다.
전사들로 이루어져 있고, 좀 더 강하거나 규모가 크면 말이나 늑대 같은 걸 타고 다니는 정도?
부족 전사들의 레벨이 높더라도 태현 일행은 싸울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근데….
-꾸르륵. 꾸륵.
“워워. 착하다.”
나타난 건 거대한 전갈 몬스터 위에 자리 잡고 앉은 드워프 부족들!
심지어 전갈 위에는 대포와 대형 석궁까지 달고 다니고 있었다.
오크 부족과는 차원이 다른 첨단 기술!
‘저게 뭔 혼종이여?!’
붉은 전갈 부족의 드워프들은 멋지게 기른 수염을 쓸어내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순간 공격이 날아 들어왔다.
쉬쉬쉬쉬쉭!
“…!”
-드워프의 방패!
“갑옷 올려라!”
철커덩철커덩!
거대한 붉은 전갈 위에 순식간에 금속의 갑옷이 생겨나고, 드워프들이 타고 있는 주변에도 벽이 튀어나왔다.
[뛰어난 기계공학 스킬로 만들어진 아이템을 보았습니다. 스킬이 오릅니다.]
[최고급 기계공학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붉은 전갈 기계공학 전투갑옷>의 제작법을 배웁니다.]
[<붉은 전갈 기계공학 전투용 제어 의자>의 제작법을…]
[……]
이게 무슨 굴러다니는 기계공학 모음집이냐!
공짜로 얻은 제작법에 흐뭇해하던 태현은 문득 이상한 걸 깨달았다.
“잠깐. 누가 공격했냐?”
태현 일행 중에서 공격을 했을 리가 없는 것!
정답은 반대쪽에서 나타났다.
아까 도망친 플레이어들이 다시 나타나서 공격을 가해온 것이다.
“쟤네들이 왜 저러지?”
“반성하고 우리를 도와주려는 거 아닐까요?”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 중 한 명이 손을 들고 말했다. 그러자 태현 일행들이 모두 황당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무슨 이유로?”
“그야 김태현 선수를 직접 보니 소문이 틀렸다는 걸 알고….”
태현은 무시했다. 케인은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
이유는 간단했다.
현상금 사냥꾼들은 붉은 전갈 부족을 태현이 부른 NPC라고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원거리 공격 가능한 플레이어들 전부 모여라!
-김태현의 약점은 원거리다! 붙지만 않으면 한 방에 안 죽어! 최대한 멀리서 깔짝거리자!
쪼잔하지만 맞는 전략이었다.
현상금을 위해 모인 플레이어들의 성격에도 딱 맞았다.
안전하게 때리고 돈 받자!
그런데 갑자기 붉은 전갈 부족이 나타난 것이다.
-야! 저기서 뭔가 오는데?
-전갈 위에 대포랑 이것저것 올리고서 갑옷 입은 드워프들이 오고 있다고?
-기계공학에 대장장이 기술이면….
-김태현 특기잖아!
-김태현이 부른 놈들이다! 합치기 전에 잡아야 해!
부족들까지 합치면 정말 건드리지도 못할 거라는 생각에, 현상금 사냥꾼들은 일단 공격부터 날리고 봤다.
붉은 전갈 부족들은 그 공격에 분노했다.
“저놈들이냐! 용의 힘을 사용한 게!”
“드워프의 매운맛을 보여줘라! 발사!”
쿠쿠쿵! 쿠쿵!
드워프들은 가차 없이 대포를 난사했다. 태현은 그걸 보고 의아해했다.
‘왜 이렇게 발사 속도가 빠르지? 설마….’
[<아다만티움을 섞은 합금 대포>를 발견합니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오릅니다.]
[기계공학 스킬이 오릅니다.]
‘미친!’
태현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그 희귀한 아다만티움을 섞은 대포라니.
드라켄 비밀결사도 그렇고 저 부족들도 그렇고, 아스비안 제국은 아다만티움을 이상한 곳에 쓰고 있었다.
저렇게 쓸 바에는 날 줘!
‘아니… 확실히 저걸 섞으면 대포 발사 속도가 엄청 빨라지긴 하겠군.’
엄청나게 튼튼하니 미친 듯이 쏴대도 버텨줄 것이다.
그래도 태현이라면 아까워서 갑옷에 넣을 것 같은데, 저 드워프들은 대포에 넣어버린 것이다.
콰콰콰쾅! 콰콰쾅!
“으아악! 뭐야!!”
“저것들 뭐야!?”
“김태현이 파놓은 함정인가! 김태현! 비겁하다! 폭탄 말고 정정당당하게 싸우자!”
“어디서 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태현은 중얼거렸다.
적들이 알아서 자기 무덤을 파고 망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었다.
지금 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현상금 사냥꾼 플레이어들을 접근하지 못하게 만드는 붉은 전갈 부족!
날아오는 화살이나 마법 같은 원거리 공격들은 단단한 갑옷으로 막아내고, 무식하게 쏘아대고 있었다.
처음에는 좀 반격하던 플레이어들도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거나 방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당장 주변이 폭발하는데 방어 마법을 쳐야지, 반격할 마법사는 없었다.
“용을 숭배하는 역겨운 반역자 놈들을 부숴버리자! 드워프의 이름으로!”
“뭔 용?”
“잠깐. 우리는 용하고 상관이 없… 으어억!”
완전히 와해되어 도망치는 플레이어들!
주변에 흩어져서 기회를 노리던 플레이어들도 전부 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여기 더 남아 있다가는 정말 뼈도 못 추리겠다!’
한바탕 싸움이 끝나고 나자, 태현은 재빨리 붉은 전갈 부족 앞으로 달려 나갔다.
“정지! 넌 누구냐?”
붉은 전갈 부족 드워프들은 손에 거대한 머스킷을 들고 외쳤다.
꼬장꼬장하고 성질 가득한 표정들이, 성질이 사납다는 걸 알려주었다.
[최고급 기계공학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붉은 전갈 부족 드워프들이…]
[고급 대장장이 기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붉은 전갈 부족…]
[……]
그러나 태현은 기본적으로 드워프나 고블린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플레이어였다.
플레이어 중에서 손꼽히는 대장장이!
게다가 붉은 전갈 부족 드워프들은 전통적인 대장장이가 아닌, 기계공학 스킬에 능한 드워프들이었다.
[…드래곤 리치 상태입니다. 붉은 전갈 부족 드워프들의 친밀도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
태현은 의아해했다.
페널티가 아니라 보너스라고?
태현은 그 이유를 금세 알 수 있었다.
“언데드라니… 훌륭하군.”
“아주 귀족스러운 인간이야.”
“게다가 저 손을 봐. 언데드가 되기 전에는 뛰어난 대장장이였을 게 분명해.”
‘아….’
아스비안 제국은 황제와 귀족들이 전부 다 언데드로 부활한 제국.
다른 나라와 달리 당연히 언데드 대접이 좋았다. 오죽하면 네크로맨서 플레이어들이 ‘흑흑 네크로맨서라고 구박 안 받은 마을은 여기가 처음이에요’라고 하소연을 했을까.
태현은 드래곤 리치!
드워프들 눈에는 훌륭한 언데드로 보였다.
“너는 귀족이냐?”
“왕이다.”
“오오…! 혹시 우이포아틀 황제 폐하에게 인정받은 왕인가?”
“…그렇다고 할 수 있지.”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태현은 당당하게 말했다.
“우이포아틀 폐하를 뵈었는데 폐하께서 내게 임무를 내려주셨지.”
[붉은 전갈 부족 내에서 당신의 평판이 크게 오릅니다!]
“강력한 언데드다 했더니, 황제 폐하를 모시는 자였군!”
“어쩐지 고귀한 기운이 풍겼지.”
“대장장이다운 것도 그렇고.”
드워프들은 수군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앗. 설마 여기 온 건 감히 드래곤의 힘을 빌린 사악한 종자들을 처치하기 위해서였나!”
“…바로 그렇지. 내가 해치우려고 했는데 너희들이 와서 못 해치웠다!”
“역시!”
드워프들은 더욱 좋아했다.
그러는 사이 드워프들은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 흩어진 용아병 뼛조각을 봐라. 어떤 건방진 놈이 용의 시체를 건드린 게 분명해.”
“이 흔적을 봐. 본 드래곤이 짓밟고 지나갔나? 감히 용을 부활시키다니. 천벌을 내려야 해!”
드워프들은 살벌하게 외쳤다. 태현은 살짝 긴장됐다.
안 들키겠지?
지금 보니 들켜도 어떻게든 우길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기계공학+대장장이 기술+왕족+언데드+우이포아틀 퀘스트까지!
처음 봤는데 이렇게 친해지기도 힘들었다. 게다가 붉은 전갈 부족은 딱 봐도 까다로워 보이는 부족이었다.
이런 부족하고 친해진 건 순전히 운!
“김태현 왕! 우리 같이 용의 힘을 빌린 반역자 무리들을 처치하러 가자고!”
“어… 다 잡지 않았나? 방금 다 쓰러뜨린 것 같은데.”
태현은 상황을 덮기 위해 애썼다. 그가 원흉이었는데 누굴 처치하자는 거야?
그러나 붉은 전갈 부족들은 고개를 저었다.
“방금 있던 놈들을 말한 게 아니라, 다른 부족 놈들을 말하는 거다. 놀랍게도 이 땅에는 폐하를 따르지 않는 건방진 부족 놈들이 많지.”
“저런. 그런 못된 놈들을 봤나.”
“우이포아틀 폐하가 부활하셨다는 소문을 듣고 우리는 결심했다! 황제 폐하를 배신한 놈들을 모두 때려잡기로!”
‘귀찮은 놈들이군.’
태현은 빠르게 견적을 냈다.
같이 다니면 100% 피곤할 놈들!
태현은 아키서스의 권능부터 해야 할 게 많은 상황.
이 폭주하는 드워프들과 같이 다니면서 싸울 시간이 없었다.
<황제에게 충성을-붉은 전갈 부족 퀘스트>
대대로 아스비안 제국 황가에게 충성을 바쳐온 붉은 전갈 부족.
그들은 이번 우이포아틀 부활의 소식을 듣고 황제에게 바치기 위한 제물로 다른 부족들을 선택했다.
충성파인 붉은 전갈 부족에게 황제에 대한 충성을 버린 다른 부족들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존재!
붉은 전갈 부족의 세력은 적지만 그 용기와 힘은 대단하니, 손을 잡아 다른 부족들을 친다면 붉은 전갈 부족이 매우 고마워할 것이다.
보상: ?, ???, ????
-거절한다.
“거절한다니. 농담도 잘하는군.”
[거절을 실패했습니다.]
“…아니, 내가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폐하한테 임무를 받았다니까. 저기 멀리 있는 놈이 폐하의 신성한 물건을 가져가서 되찾으러 가야 해.”
태현은 일단 오스턴 왕국으로 떠나는 척까지 할 생각을 했다.
아직 아스비안 제국에서 할 게 많았지만, 이 끈질겨 보이는 놈들과 싸우는 것보단 나을 것 같았으니까.
‘따돌린 다음에 다시 와서 권능 찾아야지.’
“그래? 이런. 광산을 되찾기 위해 같이 싸우자고 하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지. 폐하를 위해서라면.”
“폐하를 위해서라면!”
드워프들은 무기를 들고 합창했다. 태현은 쿨하게 돌아섰다.
“그래. 다음에 보….”
태현은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무언가 놓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잠깐….’
“무슨 광산이지?”
“뭐라고?”
“무슨 광산을 되찾기 위해 싸우는 건데?”
“<세 해골의 광산>이다.”
“…그 광산에서는 뭐가 나오는데?”
“질 좋은 강철과 석탄이 나오고….”
“흠. 그렇군. 난 바빠서 다시 가봐야겠….”
“…아주 깊은 곳에서는 아다만티움도 나오지.”
“…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너희들 같은 충신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군. 눈에 밟혀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같이 싸우자!”
태현의 말에 드워프들은 기뻐했다.
“오! 그게 정말인가!”
“역시 처음 봤을 때부터 귀족처럼 생겼다 했는데, 책임감이 철철 넘치는군!”
“명예로운 드워프라고 불러줘도 좋을 정도야!”
[붉은 전갈 부족 내 평판이 크게 오릅니다!]
[붉은 전갈 부족이 당신을 동료로 여깁니다.]
[깐깐하고 오만한 붉은 전갈 부족에게 동료로 인정받는 것은 아무나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악명이 오릅니다.]
[아스비안 제국의 다른 부족들은 붉은 전갈 부족의 친구라는 말에 좋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칭호: 명예 드워프를 얻었…]
[……]
-야! 너 지금 드래곤 리치 상태잖아!!
케인은 기가 막혀서 귓속말을 보냈다. 쟤 지금 상황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거 맞아?
-…안 들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