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54화
“헉. 얘네 약했어?!”
태현은 놀랐다. 어쩐지 잘하더라!
‘이 자식들 엄청 열심히 연습했다고 생각해서 케인을 구박했는데….’
경기가 끝나고 태현은 놀랐었다.
이긴 건 이긴 거지만, 태현 팀이 기록을 줄이지 않았다면 위험했었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아. 내가 케인을 좀 더 채찍질했다면’ 하고 스스로 반성했었는데….
살짝 미안해지는 마음!
“뭔 약인지는 모르겠지만 효과가 대단하긴 하군.”
“그, 뭐시냐. 반응속도하고 집중력하고 이것저것 올려주는 약이래.”
“지능도 올려주나?”
“지능은… 아닐걸?”
“행운은?”
“…이게 게임에 나오는 약이냐!”
케인은 어이가 없었다. 뭘 묻는 거야?
“생각보다 별로군. 그거 두 개 달랑 올려주는 거면.”
“…….”
그거 두 개 달랑 올라간 팀이 어떤 성적을 냈는지 생각해 보면, 별로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다들 기본 실력이 있고, 기본 레벨이 되는 프로들 사이에서는 약 한 방에 실력이 확 느는 것이다.
혹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저놈 빼고.’
솔직히 태현이 약을 먹는다고 더 반응이 빨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저기서 더 빨라질 수가 있나?
“이번 사건 때문에 LK 라이온즈는 해체될 거 같더라. 나름대로 역사 있는 팀이었는데….”
모기업의 지원이 주는 상황에서 성적도 못 내고, 이런 치명적인 스캔들을 냈으니….
수많은 게임단들이 들어서고 있는 판온. 슬슬 하나씩 탈락되어 가는 게임단들이 나오고 있었다.
E스포츠의 전통적 강국인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한국이 더 불리한 면이 있었다.
미국이나 중국 쪽 게임단보다 자금력이 밀리고 규모에서 밀리니, 아무리 뛰어난 한국 선수들이 많이 나와도 해외로 많이 유출됐다.
해외 유명 게임단 중 한국 선수 한 명 없는 게임단은 드물 정도!
그렇지만 국내 팬들은 ‘자금에 밀리고 규모에 밀려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란 변명을 들어줄 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팬들도 뛰어난 선수, 강한 게임단을 좋아하게 마련.
덕분에 나름의 역사가 있던 게임단들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허덕이고 있었다.
지금 국내 게임단 중 판온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받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유성 게임단과 팀 KL이었다.
한때는 ‘유성했다’라는 말이 비웃음으로 쓰였을 정도로 패배의 아이콘이었던 유성 게임단!
‘회장이 판온 경기 직접 보는 거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 정도로 파격적인 지원을 받더니, 이세연의 리더십으로 그만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시작 당시에만 해도 ‘선수들로만 구성된 게임단이 굴러가느냐’, ‘자금이 부족하고 유지하기 힘들어서 오래 못 갈 거다’, ‘괜히 프로 팀들이 지원받아가면서 감독 따로 두고 코치 따로 두는 게 아니다’ 같은 말들을 들었던 팀 KL.
작지만 강한 팀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하게 보여주며 연전연승하고 있었다.
덕분에 다른 대형 게임단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팀 KL은 지원 저렇게 받고 저렇게 성적 내는데 너희들은 뭐해!
-팀 KL을 본받아봐라! 돈 한 푼 안 받았는데 성적 내고 마케팅하고 광고까지 다 하잖아!
지원해주는 기업 입장에서는 팀 KL 같은 게임단이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위에서 까이는 감독 입장에서는 그만큼 억울한 것도 없었다.
‘시X놈들아… 그러면 김태현 같은 선수를 영입해 주던가….’
태현이 이상한 거지 그들이 잘못한 게 아니었던 것!
“선수들은?”
“나와서 뭐 알아서 살겠지? 다들 레벨 높으니까 개인 방송을 한다든가… 어. 너 전화 왔는데.”
태현은 핸드폰을 꺼냈다.
“아, 네. 광고요? 한동안은 그냥 게임에 집중하고 싶은데요. 돈이요? 아뇨. 안 모자라는데요.”
“…….”
케인은 태현의 대화를 들으며 부럽다고 생각했다.
나도 전화를 받으면서 저런 쿨한 반응을 보여주고 싶다!
어떻게 ‘광고 들어왔는데 찍을 생각 없냐’란 전화에 저렇게 반응할 수가 있지?
전화를 하고 있던 태현의 얼굴에 곤란한 빛이 드러났다.
“?”
“어… 음. 그건 좀 생각해 봐야겠는데요.”
‘무슨 일이지?’
“예. 알겠습니다.”
태현은 전화를 끊고 난감한 표정으로 케인을 쳐다보았다. 케인은 겁부터 덜컥 났다.
“헉… 왜? 무슨 문제야?”
“그게… 음….”
“설, 설마 나 때문이야? 팬들이 나 자르래? 다, 다음 경기부터 정말 열심히 할게!”
되레 스스로 찔린 케인!
이번 경기에서 태현이 미친놈처럼 날뛰는 동안 뒤에서 창과 발사대만 들고 움직인 탓에 ‘나 뭐 하는 게 없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던 케인이었다.
실제로 게시판에서 몇몇 리플은 ‘케인 하는 거 없이 업혀 가네’라고 달려 있었다.
물론 그런 리플은 아주 소수였지만, 선수에게는 크게 느껴졌다.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그보다 너 열심히 안 했었냐?”
뜨끔!
“…….”
“광고 제의가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나한테 들어온 게 아니라 팀 전원한테 들어왔어.”
“!!!!”
태현 개인이 아닌, 팀 KL 전원을 대상으로 한 광고 제안!
* * *
케인은 울며 매달렸다.
-이번 한 번만 찍게 해주면 하라는 거 다 할게! 뭐든 먹으면 되잖아!
-그거 어차피 먹어야 할 건데 뭘… 그리고 내가 너한테 안 좋은 거 줬냐?
-더 적극적으로 먹을 테니까!
-아니, 거절하려고 하지도 않았어. 팀으로 들어왔으니까 너희 의견도 들어봐야지.
-!
물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 찬성이었다.
“광… 광고! 제가 말입니까?”
“들어올 때가 되긴 했지.”
정수혁과 최상윤은 각자 다른 반응을 보였다.
“너도 광고 꽤 달지 않았나?”
“그건 찍은 게 아니라 단 거고….”
최상윤은 자기 개인 방송에 광고를 달았던 적도 있었다. 사실 이들 중에 태현을 제외하면 개인 방송으로는 가장 인기가 높았던 게 최상윤!
“광고요? 조금 부끄럽긴 한데요….”
이다비는 살짝 주저했다. 태현은 핸드폰으로 메시지를 하나 보냈다.
“이게 뭔가요?”
“출연료.”
“이, 이, 이… 이만큼을 나눠 가지는 건가요?”
“아니. 각각.”
“…!!!”
이 정도면 파워 워리어 광고 계정의 반년 수입치!
“나갈게요!”
“그래. 나가고 싶다면야.”
“받아서 드리고 싶어요!”
“아니. 그건 아니지. 그걸 왜? 남들 들으면 팀장이 돈 뺏는다고 소문나겠다.”
“나… 나는 못 준다?”
케인은 주저하며 말했다. 진짜 달라고 하면 어쩌지? 줘야 하나?
“가져갈 생각도 없었어 이 자식아… 그보다 용케 수락을 하네. 난 케인이 거절할 줄 알았는데.”
“?”
“무슨 광고인지 못 들었나? 아. 내가 말을 안 해줬군.”
“무슨 광고인데?”
최상윤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러나 케인은 신이 나서 듣고 있지도 않았다.
* * *
“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내가 잘 부탁해야지. 요즘 가장 잘나가는 게임단 선수들하고 계약하는데.”
이동팔 대표는 상냥하게 웃으며 케인과 악수를 해줬다.
태현 팀의 선수들도 앞으로를 대비해 회사와 계약을 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광고뿐만 아니라 각종 방송에 출연을 할 때를 대비한 계약!
이런 부분에서는 SI 엔터가 확실히 전문이었다.
이동팔은 흐뭇한 눈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볼 때마다 쑥쑥 크는구나!
계약할 때만 해도 이 정도로 클 줄은 몰랐는데!
‘나하고 대할 때와 태도가 좀 다른 거 같지 않나?’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느끼하고 당당하던 태도는 어디 가고, 케인한테는 많이 친절한 모습이었다.
이동팔은 태현에게 속삭였다.
“그야 저 친구는 심하게 대하면 겁먹을 거 같으니까.”
“!”
속마음을 읽어?!
“그보다 김태현 선수가 정말 최고야. 앞으로 광고도 많이 많이 나가고 그럴 거지?”
“아뇨. 지금 대회가 몇 개인데….”
“아. 이제 좀 있으면 리그 시작이군. 우리 조카가 자기 SNS 프로필에 <김태현 타도>라고 적어놓은 거 봤어?”
“어? 그런 프로필을 썼다고요?”
“아차. 가족들한테만 공유하는 계정이었지.”
“…….”
이세연 이 속 좁은 자식!
태현은 속으로 욕했다. 이동팔은 케인을 보며 말했다.
“저 친구, 처음 광고인데 그런 웃기는 컨셉을 받아주다니. 참 마음이 넓고 그릇이 넓은 친구야. 다른 선수들은 폼 잡는 광고를 찍고 싶어 하는데.”
“흠… 뭐 그럴지도….”
태현은 케인을 빤히 쳐다보았다.
‘저거 광고 내용도 제대로 안 읽고 사인하는 거 같은데….’
케인은 신이 나서 사인을 한 다음 말했다.
“이제 가서 메이크업 받으면 되나요?”
“응? 우리 광고 판온 안에서 찍는 거잖아.”
“어?”
“게임 안에서 캐릭터로 찍는 거 몰랐어?”
“앗. 그랬구나.”
케인은 놀랐지만 곧 받아들였다. 어쨌든 광고는 광고니까.
‘게임 캐릭터면 더 멋있게 나오겠군!’
* * *
“케인 씨. 저는 케인 씨가 거인으로 변신해서 악마를 쓰러뜨린 그 영상을 감명 깊게 봤습니다.”
“아. 그거 명장면이었죠. 후후.”
케인은 촬영 감독 앞에서 뿌듯해했다.
아! 그 장면 아시는구나!
수도에 나타난 악마 공작.
그 악마 공작을 상대하기 위해 융합체 거인으로 변신한 케인!
물론 그 뒤에는 태현이 억지로 정수를 먹이고 먹였다는 사정이 있었지만,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싸우기 직전에 우렁차게 먹는 케인 씨를 보는 순간 저는 감이 왔습니다. 이거다!”
“?”
“게다가 케인 씨나 김태현 씨가 판온에서 타고 다니는 게 뭡니까? 오토바이 아닙니까?”
“…그렇죠?”
“저희 광고를 위해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케인은 갑자기 걱정이 되어 태현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야. 우리 광고 찍는 거 뭐냐?
-응? 배들의 신족 광고인데. 배달 어플 너도 자주 쓰잖아.
-…!!!!
케인은 사색이 되어 광고 컨셉을 읽기 시작했다.
-케인을 제외한 나머지 넷이 치열하게 보스 몬스터와 싸우는 사이, 케인은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서 음식을 받아온다. 그런 다음 맛있게 먹고 거인으로 변신해서 싸운다!
“…….”
주연은 주연인데 뭔가 좀….
‘폼이 안 나잖아!’
“마음에 안 드세요?”
“마… 마음에 안 드는 게 아니라….”
-케인.
-?
-출연료를 생각해라.
“…너무 마음에 듭니다!”
케인은 그 순간 깨달았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힘!
* * *
-브라보! 브라보! 최고입니다. 케인 씨! 연기라고는 생각할 수 없군요!
감독도 만족하고 광고주도 만족하고 선수들도 만족하고 팬들도 만족하는 광고가 완성!
그러나 케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래서 김태현이 광고 찍기를 싫어하는구나!’
물론 이유는 달랐지만….
케인은 통장을 열어보았다. 착잡했던 마음이 출연료를 보니 사르르 녹아내렸다.
‘후. 다시 생각해 보니 광고도 참 좋은 것 같아.’
좀 웃기면 어떤가. 사람들을 웃게 만들 수 있으면 그것도 좋은 거겠지!
우우웅-
그 순간 케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케인 씨?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광고 때문에 전화를 드렸는데. 혹시 통화 가능하신가요?
-앗. 네.
-이번에 케인 선수가 나온 광고 너무 재밌게 봤습니다. 저희 사장님께서 그걸 보고 꼭 케인 선수한테 맡기고 싶어하셔서 이렇게 전화를 드렸는데….
-…잠깐. 근데 무슨 광고죠?
케인은 교훈을 얻은 상태였다.
계약서는 읽고 사인하자!
-치질방석 광고입니다.
-…네?
-치질방석 광고요.
케인은 잠시 멈칫했다. 예전이라면 바로 거절했겠지만, 케인은 이제 달라졌다.
-출연료가 얼마죠?
대답을 듣고 나자 케인은 침묵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하겠습니다!
* * *
“히히힉. 돈이 최고야. 돈이 최고라고.”
“얘 왜 이래?”
“광고 찍고 나서 좀 사람이 이상해졌어요.”
태현 일행은 알렉세오스의 던전을 나와 이동하고 있었다.
알렉세오스가 알려준, 권능이 있는 지도를 향해!
“저… 저희도 같이 가도 됩니까?”
베이징 파이터즈 선수들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음 같아서는 계속 같이 다니고 싶었지만, 과연 태현이 허락해 줄까?
“물론이지. 너희가 같이 다니면 폭탄… 아니, 든든하잖아.”
“김태현 선수!”
“흑흑! 평생 존경하겠습니다!”
“근데 도동수는 어디 갔냐?”
“어? 도동수 씨 어디 갔어?”
“그러게?”
“…던전에 두고 나온 거 아냐?”
케인은 주저하며 물었다. 그러자 선수들은 ‘아!’ 하는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