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51화
드래곤 같은 보스 몬스터에게서 최대한 많이 뜯어낼 때는, 상대가 공감할 만한 이유를 만드는 게 좋았다.
그리고 태현은 그런 이유를 이미 갖고 있었다.
“알렉세오스 님! 기껏 알렉세오스 님께서 사악한 아스비안 제국을 멸망시켰는데, 더 사악한 황제 우이포아틀은 부활해서 날뛰고 있습니다. 제국을 쓰러뜨릴 수 있게 힘을 주십시오!”
먹튀하려는 의지가 가득!
아스비안 제국과 우이포아틀 핑계를 대서 최대한 뜯어내겠다는 의지가 가득 느껴졌다.
-뭐라고?
“…?”
-우이포아틀이 부활했다고!?
알렉세오스는 충격받은 목소리로 외쳤다.
‘뭐야. 모르고 있었나?’
-말도 안 된다! 놈과 놈의 부하들은 모두 쓰러져서 모래 밑으로 처박혔는데! 어떤 놈이 감히!
“그러게 말입니다! 아주 나쁜 놈입니다!”
태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아주 나쁜 사람이네!
-아키서스의 화신이여. 우이포아틀을 처치해라. 아스비안 제국은 다시 멸망해야 한다!
<황제 우이포아틀을 처치하라-알렉세오스 퀘스트>
폭군 우이포아틀은 아스비안 제국의 군대를 이끌고 폭정을 펼치던 황제였다.
용들은 더 이상 우이포아틀을 내버려 둘 수 없어 연합해서 그를 모래 속으로 묻어버렸다.
그러나 어느 사악한 네크로맨서가 우이포아틀을 부활시켰다.
제국과의 싸움에서 육체를 잃은 죽은 용 알렉세오스는 당신에게 우이포아틀을 처치하라고 명령한다!
보상: ?, ???
-우이포아틀을 어떻게 쓰러뜨렸는데… 이 주변이 벌써 폭군에게 고통받고 있겠군.
‘응?’
태현은 의아해했다.
‘아. 알렉세오스는 우이포아틀이 완전하게 부활 못 한 걸 모르는구나.’
우이포아틀과 알렉세오스의 싸움은 꽤 치열했던 모양이었다.
알렉세오스는 리치 드래곤이 되어 이 지하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우이포아틀도 제대로 부활을 못 하고 자기 궁전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으니….
‘잠깐. 이거 되게 괜찮은 상황 같은데?’
서로 밖에 나오질 못한다면?
이용해먹기 더 좋은 상황!
-내 말 듣고 있나, 아키서스의 화신?
“아, 네. 듣고 있습니다. 요즘 주변이 엄청 안 좋죠.”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우이포아틀은 워낙 강한 놈이고, 부하들도 많아서 제가 혼자 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 혹시 도와주실 수 있으십니까?”
-나는 밖에 나가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나?
“꼭 알렉세오스 님뿐만 아니라 다른 드래곤들도 있지 않습니까?”
태현은 기대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드래곤 한 마리만 빌릴 수 있다면 그 파괴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용용이나 흑흑이가 소환되었을 때 전력을 다해 브레스를 썼던 위력이 아직도 생생했다.
-다른 드래곤들은 대부분 죽었을 거다. 우이포아틀과의 싸움이 그만큼 격렬했다.
“…!”
태현은 깜짝 놀랐다.
우이포아틀이 전성기에는 그 정도로 강한 보스 몬스터였단 말인가?
드래곤을 하나도 아니라 여럿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미친. 절대 제대로 부활시키면 안 되겠군.’
태현이라도 재수 없으면 바로 슥삭 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대 제국, 고대 마법사, 고대 성기사 등 왜 이렇게 ‘고대’만 들어가면 강해지는지….
태현은 속으로 불평했다.
“그러면 알렉세오스 님께서는 뭘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네게 내 축복을 내리겠다.
“또 뭐가 있습니까?”
-…네게 내 권능 또한 빌려주겠다.
“또요?”
-…네게 레어 안에 있는 무구들을 빌려줄 수 있다.
주는 게 아니라 빌려주는 것!
레드 드래곤의 탐욕은 유명했다. 그건 리치가 되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알렉세오스는 알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 게 누구인지!
“또요?”
-뭘 더 달라는 거냐!
“아니, 저 같은 놈이 우이포아틀 같은 자와 싸워야 하는데 어떻게 그냥 싸웁니까?”
-넌 아키서스의 화신이다! 저 사악한 폭군 놈한테 절대 밀리지 않는다.
아키서스의 화신에 대한 쓸데없는 믿음!
감동받아야 할 상황이지만 태현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 아키서스 화신 별거 없어요. 교단도 다 망해서 간신히 부활하고 다른 교단들도 구박하고 그럽니다.”
-뭐? 그런… 하긴, 그럴 법….
“예?”
-아, 아니다. 아키서스의 진심을 몰라주는 다른 교단들이 잘못했군. 아키서스도 엄연히 선신인데.
[알렉세오스가 당신의 눈치를 보기 시작합니다!]
[화술 스킬 성공 확률이 높아집니다!]
[주는 보상이 더 많아집니다!]
아쉬워지자 알렉세오스도 태현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게다가 전 권능도 다 회복 못 했습니다.”
-하긴 인간의 몸으로 권능을 다 얻기는 힘들었겠지. 그 와중에 다른 신들의 권능은 용케 뺏었군.
“…얻은 걸 수도 있잖습니까?”
-뭐라고? 정, 정말 얻은 건가? 정말로?
아키서스의 화신이 다른 신들의 권능을 뺏지 않고 얻었다는 것에 알렉세오스는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뺏었긴 했습니다.”
-역시! 저 추잡한 블랙 드래곤은 사디크의 신수가 맞았군. 하여간 블랙 드래곤 놈들은 예전부터 추잡하게 논다고 생각했지.
-…….
흑흑이는 속으로 욕했다.
나중에 다른 블랙 드래곤을 만나면 일러바치고 말겠다!
태현은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런데 블랙 드래곤 종족도 사디크와 신수 계약을 맺은 것 같은데, 왜 아키서스만 두려워합니까?”
-그야 블랙 드래곤과 사디크의 계약은 동등한… 아니군. 블랙 드래곤 쪽에게 더 좋았을 수도 있었겠어. 그때 한참 신들과 악마들이 싸우던 때라 사디크가 아쉬운 처지였었으니까… 어쨌든 나름 서로에게 괜찮은 계약이었다.
“아키서스는…?”
-아키서스는 완전 불공정한 계약이었지. 그래서 한동안 소문이 돌았었다. 골드 드래곤의 장로가 미친 거 아니냐고.
“…….”
아키서스와 단독으로 대화하고 나서 골드 드래곤 종족의 장로가 뭐에 홀린 것처럼 계약을 맺어버린 것이다.
다른 드래곤들은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지?’ 하면서 두려워했다.
그 이후 아키서스는 드래곤에게 꺼려지는 이름이 되었다.
-아키서스와 어울리지 마라! 속아서 영혼이 묶일지 모른다!
‘그런 슬픈 비화가….’
-…….
용용이는 날개를 축 늘어뜨렸다. 선조들의 슬픈 비화!
[카르바노그가 깔깔 웃어댑니다.]
-사디크는 별로 두려운 신도 아니지. 아… 혹시 중앙 대륙이 아닌 여기까지 온 이유가 권능을 찾아서였나?
“…!”
태현은 깜짝 놀랐다. 안 그래도 물어보려고 했던 거였다.
이 제국에 온 목적 중 하나는 아키서스의 권능!
“알고 계십니까?”
-아니… 아키서스와는 최대한 엮이는 일을 피했기 때문에….
“…….”
-하지만 소문을 들은 적은 있다. 아키서스가 보물을 숨겨 놓은 던전이 있다고.
“!”
태현은 눈을 반짝였다. 찾았다!
역시 이것저것 자료를 찾으며 빙빙 돌아가는 것보다는, 이렇게 직접 아는 놈을 찾아내서 물어보는 게 빨라!
[카르바노그가 어이없어합니다.]
“위치를 아십니까?”
-그게… 으음. 거기 위치를 알았다가 아키서스와 엮일까 봐….
얼마나 아키서스와 엮이는 걸 싫어하는 거야!
알렉세오스도 조금 민망한 것 같았다.
-기다려봐라. 데스나이트를 보내 확인할 테니. 확인하면 금세 알 수 있을 거다.
“그게 가능합니까?”
-이 주변의 던전은 모두 다 여기와 연결되어 있다.
‘아. 그런 거였군.’
이 주변 던전의 지하는 모두 다 알렉세오스의 영역인 모양이었다.
도동수 같이 용에게 밉보인 놈이 있으면 지하 던전으로 초대해서 슥삭!
지하의 거처에서 나올 수 없는 알렉세오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이었다.
-찾았군.
[지도를 얻었습니다.]
-아키서스의 화신으로서 권능을 얻게 되었으니 우이포아틀과 싸울 자신이 생겼나?
알렉세오스는 슬쩍 떠봤다. 어떻게든 해줄 지원을 줄여보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태현은 냉정했다.
“다른 지원이 더 필요합니다!”
-그래….
[알렉세오스와 화술 스킬로 대결에 들어갑니다.]
[승리할수록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 * *
<알렉세오스의 축복>
죽은 용 알렉세오스가 당신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모든 스킬의 쿨타임이 대폭 줄어들고 효과가 강력해집니다.
<알렉세오스의 권능>
리치가 된 용 알렉세오스가 당신에게 리치의 힘을 빌려줍니다. 권능을 사용하면 드래곤 리치로 변신합니다.
잭팟!
태현이 알렉세오스에게서 뜯어낸 건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알렉세오스의 축복>과 <알렉세오스의 권능>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집니다.]
[사라지기까지 3개월 남았습니다.]
[우이포아틀과 싸우지 않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알렉세오스가 분노할 수 있습니다.]
시간제한이 있다는 게 아쉽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했다.
그리고 안 들키면 분노할 일도 없었으니까!
‘아, 이걸로 뭐부터 한다? 할 게 너무 많아서 곤란하군.’
공격해야 할 놈들도 많고, 가서 점령해야 할 곳도 많고, 사냥해야 할 던전도 많았으며….
‘앗. 그러고 보니 좀 있으면 던전 공략 대회 다음 경기군….’
준결승전을 앞두고서 이렇게 긴장감 없는 사람도 드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벌써부터 떠들고 있었는데!
‘…상대팀한테 조금 미안하게 됐는데.’
숨겨진 수단을 쓰지 않아도 이 정도면 기록이 대폭 단축될 것 같았다.
[<오래된 용의 뼈>를 대량으로 받았습니다.]
[<알렉세오스의 무구 세트>를 대량으로 받았습니다.]
“어… 더 좋은 건 없습니까? 좀 더 유니크하고 강한 건?”
알렉세오스의 무구 세트는 분명 좋은 장비 세트였다. 고렙 플레이어들이 보면 바로 착용할 정도로.
그렇지만 이미 장비를 최상위권 랭커 수준으로 맞춰 입고 다니는 태현의 눈에 차지는 않았다.
-나는 청렴한 드래곤이라 갖고 있는 보물이 많지 않다.
“…….”
아무도 믿지 않을 변명이었다.
뭔가 갖고 있는 거 맞구만!
태현은 결심했다. 나중에 언젠가 뜯어내리라!
‘뭐, 무구 세트도 잘 쓸 수 있지.’
태현 영지에는 이런 고렙 장비들이 필요한 곳이 넘쳐났다. NPC들부터 시작해서 플레이어들까지.
[<알렉세오스의 물약>을…]
[<알렉세오스의 다크 골렘>을…]
[알렉세오스의 황금 조각상을…]
[……]
정말 귀한 건 감췄지만, 알렉세오스가 해준 지원은 어마어마했다.
사실 축복과 권능만 해도 충분한 보상이었다. 나머지는 일종의 덤이었다.
미래에 쓸 일이 많을 덤!
-아키서스의 화신이여. 가서 폭군 우이포아틀을 처치하라.
“알겠습니다. 알렉세오스 님. 우이포아틀이 밖으로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 * *
-아주 재수 없는 놈이다!
-맞습니다. 레드 드래곤 놈들은 하여간 상종해서 좋을 게 없는 놈들입니다.
밖으로 나오자 용용이와 흑흑이는 대번에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앞에서는 무서워서 입 다물고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흠. 그래도 괜찮은 걸 얻어냈어.”
-?
-??
알렉세오스의 붉은 비늘:
죽은 용 알렉세오스가 살아 있었을 때 갖고 있던 비늘이다. 불타는 듯한 무늬가 아직도 살아서 꿈틀거린다.
알렉세오스의 발톱:
……
알렉세오스의 육체에서 나온 것들 중 챙길 수 있는 건 모조리 챙겨 나온 태현!
마치 정육점에 가서 다들 잘 안 먹는 부분을 싸게 받아온 것과 비슷했다.
눈이나 심장 같은 건 귀한 소재여서 알렉세오스가 내주지 않았지만, 비늘이나 발톱은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설… 설마 그걸 정수로 만들어서 먹일 생각인가!
“어? 어… 갑옷 만들어서 너희 입혀주려고 했는데. 대장장이 기술 스킬도 올릴 겸.”
-…….
“근데 그것도 좋은 생각 같다. 넉넉하게 받아왔으니 만들고 나서 남으면 요리해 줄게.”
-야!!
흑흑이는 용용이한테 화를 냈다.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내… 내가 알고 한 소리겠나!
푸드덕!
두 용이 날개로 서로를 때리는 걸 무시하고 태현은 걸어 나왔다.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태현 님!”
“대화는 잘 끝났는데… 다들 왜 그래?”
“최강지존무쌍 길드가 선전포고 했다는데 알고 계셨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