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43화
유적과 던전에 대한 정보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 누구겠는가?
바로 그 유적과 던전을 지키는 사람들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정보를 알차게 정리해서 떠먹여 주니, 태현 같은 플레이어는 하나를 듣고 열을 배울 수 있었다.
‘그렇군. 여기 던전은 지하 5층짜리 던전이고 나오는 몬스터들은 석상 계열. 물리 방어력 높고 마법 방어력 낮고. 쓰는 마법은 저주 계열에 아이템은 사제들이 쓰는 아이템….’
에랑스 왕국에 플레이어들이 많이 몰리고, 많이 시작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가장 많은 정보와 공략글이 있어서였다.
그만큼 정보는 중요했던 것!
지금 아스비안 제국은 알려진 게 거의 없어서 이세연조차 아스비안 제국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모으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었는데 태현은 혼자 날로 먹고 있었다.
“잠깐 우리끼리 회의 좀 해도 되겠지? 다들 모여봐. 여기 중에서 뭘 먼저 털… 아니, 먼저 지켜야 할까?”
“오오…!”
“이건…!”
일행 모두가 감탄했다. 이렇게 상세하게 정리된 맛집, 아니 유적 리스트라니.
이런 건 아무도 갖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황제나 부활한 귀족들도 이 유적과 던전들은 알지 못했다.
그들이 멸망한 동안에도 드라켄 비밀결사는 꾸준히 유지되어 왔으니까!
“여기 탱커용 아이템 나오는 거 같은데? 여기 먼저 가자!”
“여기는 마법사 장비가 나온답니다. 여기가 좋은 것 같습니다.”
“여, 여기 활 있다는데 여기부터….”
훈훈하게 자기부터 챙기는 일행들! 태현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이 녀석들… 어느새 이렇게….’
[카르바노그가 좋아해야 하냐고 의아해합니다.]
‘자기 거 열심히 키우려는 건 좋은 법이지. 양보해서 뭐하겠어.’
[카르바노그는 너무 좋게 봐주는 거 아니냐고…]
“뭐, 다툴 거 없지. 빠르게 다 털면 되니까.”
“그런 천재적인 발상이!”
“케인 씨. 저건 천재적인 발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정수혁은 당황했다. 저건 천재적인 발상이 아니라 탐욕에 눈이 먼 발상 아닌가?
“빠듯하긴 하지만 가능은 할 거야.”
“그런데 선배님. 지금 저 결사원들이 저희를 빤히 쳐다보고 있습니다만… 저 상태에서 유적을 털 수 있습니까?”
“대충 시야 돌리게 한 다음 몰래 털면 되지.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고.”
“어… 저는 해본 적 없습니다.”
“나도 해본 적 없는데.”
“저도요….”
“저도 그런데요.”
“!?”
태현은 깜짝 놀랐다.
“너희들 다른 사람들 몰래 던전 터는 거 한 번도 안 해봤어? 아니, 보통 길드나 파티가 던전 선점하고 있으면 매번 싸울 수는 없으니까 몰래 들어가서 필요한 것만 챙기고 나올 때가 있잖아?”
“…보통 선점하고 있으면 못 들어가죠….”
일반인과는 너무 다른 상식!
태현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말했다.
“남이 선점하고 있으면 더더욱 들어가서 훔쳐야… 아니. 됐다. 이번에 내가 어떻게 하는 건지 보여줄게. 다들 잘 보고 배워둬. 나중에 쓸모가 많을 거야.”
“…….”
“…….”
일행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확실히 적당한 핑계가 필요하겠군. 지도 중에 몇 개는 공개하자. 익명으로 올리면 안 믿을 가능성이 크니까….”
아이러니하게도, 판온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각자 올리는 정보가 많다 보니, 그중 믿을 수 있는 정보는 오히려 얼마 안 됐다.
초보자들 사이에는 이런 팁이 돌 정도였다.
-익명으로 올라온 정보는 일단 의심해라!
누군가 함정을 팠거나, 자기 이득을 위해서 속였거나, 아니면 그냥 심심해서일 수도 있었다.
지금 아스비안 제국에는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왔으니 서로 견제하기 위해 가짜 정보 올리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할 것이다.
“파워 워리어 계정으로 올릴까요?”
“그거 괜찮겠네. 여기, 여기, 여기 올려줘.”
다른 플레이어들을 찾아오게 한 다음, 유적이 털리면 ‘이놈들이 한 거다!’라고 책임을 돌릴 생각이었다.
* * *
“새 제국이라니. 탐험가로서 절대 놓칠 수 없다!”
나름 유명한 탐험가 플레이어, 호마는 신이 나서 파티를 이끌고 제국에 도착했다.
탐험가는 새로운 지역을 탐색하고 미발견 몬스터와 던전을 찾는 것으로 성장하는 직업.
그런 호마에게 아스비안 제국은 새로 열린 기회의 땅이었다.
“맞아. 호마. 길드 동맹한테 붙은 제카스 그 자식은 탐험가 랭커로서 자격이 없어.”
“아주 치사한 놈이라니까!”
같은 파티원들도 호마를 응원했다.
호마가 실수가 잦고 좀 허술한 면모가 있어도 뛰어난 탐험가인 건 사실이었다.
저번에 대륙을 뒤덮은 프로즈란드의 저주도 호마가 해결하지 않았던가!
“일단 우리 목표는 20개다. 이 근처에 있는 단서들을 모으고 퀘스트들을 해결해 던전 정보를 찾는 거다.”
던전은 판온의 꽃.
어떤 곳이든 간에 모든 플레이어들이 던전을 원했다.
“야. 제카스도 왔다는데?”
“뭐? 이런….”
“걱정 마. 우리는 해낼 수 있어!”
“길드 동맹 놈들도 좀 데리고 왔다는데….”
“…우리는 그래도 해낼 수 있어!”
“그, 그래.”
‘괜찮을까?’
탐험가 플레이어들은 PVP에 익숙하지 않았다.
보통 싸울 일을 최대한 줄이고, 싸울 일이 생기면 피하거나 도망치는 게 탐험가!
그러나 던전 정보의 첫 발자국을 찍은 것은 호마도, 제카스도 아니었다.
그건 파워 워리어였다.
<길마님이 미쳤어요! 아스비안 제국 고오급 던전 위치 공개!>
<추가 골드를 낼 경우 던전 내부 정보 DLC로 판매합니다!>
<매달 골드를 내시고 파워 워리어 정기 구독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특전이…>
“어, 어떻게 이렇게 빨리!?”
“말도 안 돼!”
아스비안 제국에 도착해 있던 탐험가 파티들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막 여기 주변의 NPC들과 대화를 하고, 책들을 모아 단서를 추적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빨라도 그들보다 더 빠를 수는 없었다.
“가짜 정보 아니야?”
“맞아. 파워 워리어는 좀….”
“맞아 좀….”
이제 어엿한 판온의 대형 길드로 성장한 파워 워리어였지만, 판온 초기 때부터 한 플레이어들은 이미지 세탁에 넘어가지 않았다.
-파워 워리어? 거기… 커지긴 했어도 좀… 못 믿을….
-파워 워리어… 걔네는 좀… 수상한데….
뿌리 깊은 수상쩍음!
그러나 모두가 의심만 하는 건 아니었다. 잃어도 손해 볼 거 없는 플레이어들, 호기심 많은 플레이어들은 정보가 뜨자마자 호다닥 달려갔다.
그리고 가장 먼저 온 사람들은 대박을 터뜨렸다.
[오랫동안 출입한 사람이 없는 던전에 처음으로 입장했습니다. 막대한 추가 보너스를…]
[이 던전에서 일주일 동안 아이템 드랍 확률이…]
[……]
[……]
‘대, 대박이다!’
너무 기쁜 나머지,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이 정보를 올렸는데도 왜 처음 입장 보너스가 뜨는 건지는 눈치채지 못했다.
이번 주의 게시판에서 가장 뜨거운 인기와 관심을 끄는 것은 파워 워리어!
-다음 정보 언제 나오나요!?
-1,000골드까지 낼 수 있습니다. 저한테만 먼저 공개하시면!
-대체 어떻게 정보를 획득하고 있는 거죠? 파워 워리어 탐험가 파티가 그렇게 대단했나요?
-혹시 파워 워리어 가입 가능합니가?
수많은 부류의 플레이어들이 몰려와서 떠드는 상황!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반대로 탐험가 파티들은 당황했다. 이럴 때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아야 하는데, 파리만 날리고 있는 것이다.
“시청자 숫자가 절반이야…!”
“파워 워리어가 다 쓸어갔어! 이 자식들! 상도덕도 없나! 적당히 공개하란 말이야!”
“이 자식들 진짜 어떻게 찾은 거지?”
“뒤를 쫓아볼까?”
“자존심이 있지 어떻게 파워 워리어 길드원을…!”
그러나 자존심이 없는 탐험가 플레이어들도 있었다.
제카스와, 제카스를 돕기 위해 온 길드 동맹 길드원들!
“제카스 님. 결과를 못 내시면 간부들이 화를 내실 겁니다.”
“알고 있으니까 다 닥쳐 좀.”
제카스는 짜증을 냈다. 탐험이 뭔지도 모르는 놈들이 옆에서 참견을 하니 짜증이 났다.
한때는 태현을 엿 먹이기 위해 쑤닝과 손을 잡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지만, 준비한 것들은 모두 실패했다.
남은 건 허탈한 마음뿐!
답도 안 나오는 복수에 계속 매달릴 수는 없었다. 제카스도 자기 캐릭터 퀘스트를 해야 했다.
“파워 워리어 길드원 하나 찾아봐. 그놈 뒤를 쫓는다.”
“그건 좀 너무 쪼잔한….”
“…….”
“찾겠습니다.”
“찾으면 되잖습니까.”
제카스가 노려보자 길드원들은 투덜거리며 움직였다. 그들이 걸어가면서 ‘탐험가 랭커라면서 쪼잔하게시리’, ‘탐험가 랭커 맞아?’라고 말하는 게 들렸다.
‘확 쏴버릴까….’
“앗. 저 길드원 수상하지 않냐?”
“오. 쫓아가 보자.”
파워 워리어 길드원을 찾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았다.
보통 눈에 띄게 ‘파워 워리어 길드에 가입하세요!’라고 하거나, ‘기계공학의 정수! 랜덤박스입니다! 하나 사면 하나가 더! 지금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라고 하고 다니는 것이다.
“낄낄. 우리가 쫓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잘 움직이는군.”
“멍청하기는.”
길드원들은 신이 나서 파워 워리어를 쫓아갔다.
“…그러니까….”
“…다음 계획은….”
“!”
길드원들은 눈을 반짝였다. 저 골목 너머에서 회의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은신 써! 가서 듣는다!”
길드원들은 바로 은신을 써서 접근했다.
“길드 동맹 길드원들한테 유람시켜준다고 하고 배 또 태우면 안 되나? 그거 수입이 너무 좋았는데.”
“걔네들이 바보도 아니고 설마 유람한다고 탈까?”
“배 타고 위로 좀 올라가면 던전 많은 지역 있다고 거짓말을 해보는 건 어때?”
“오. 그거 먹힐 거 같다.”
듣는 길드 동맹 길드원들의 피를 거꾸로 솟게 하는 사악한 계획!
심지어 여기 길드원 중 한 명은 오면서 사기에 당한 길드원이었다.
“이… 이 새끼들이?!”
“헉! 사람이다!”
“모두 도망쳐!”
“죽여 버릴….”
“멈춰! 여기 도시 안이라고!”
오스턴 왕국이면 모를까, 아스비안 제국에 오자마자 도시 내에서 PK를 할 수는 없었다.
공적치도 없고 친밀도, 평판도 없는 상황에서 범죄를 저질러봤자 뒷감당 불가능!
* * *
“뭐라? 버러지 같은 모험가 놈들이 감히 신성한 유적 주변에 나타났다고?!”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태현은 분개하며 외쳤다. 손에는 망치가 들려 있었다.
지금 태현은 드라켄 비밀결사의 대장간에서 망치를 두드리고 있었다.
-용을 위해 저도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아주 좋은 생각이십니다. 쓰시죠!
-아다만티움은 없나요?
-그건 아주 중요할 때 쓰는 신성한 재료이기 때문에 안 됩니다.
-쳇.
-방금 뭐라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도 드라켄 비밀결사에서는 쓸 만한 재료들이 많았다.
각종 희귀 보석들과 금속들!
아스비안 제국의 땅이 축복받았다는 게 괜히 나온 소문이 아니었다.
태현은 아이템을 만드는 척하면서 하나씩 슬쩍슬쩍 집어넣었다.
<신의 예지> 스킬로 비밀결사원들의 눈을 피하면서, 대장장이 기술 스킬로 양을 부풀리지 않았다면 들켰을 비범한 기술이었다.
[들킬 경우 친밀도가…]
[들킬 경우 평판이…]
‘안 들키면 그만이지.’
태현은 망치를 멈추고 일어섰다.
“가만히 볼 수 없군! 그 건방진 침입자들을 잡으러 가겠다!”
“오오…! 역시 용의 친구답습니다!”
“대단합니다!”
“따라가서 도와드려!”
“!”
태현을 돕기 위해 따라붙는 비밀결사원들!
태현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나 혼자 할 수 있다.”
“아닙니다. 잡일이라도 돕게 해주십시오!”
“혼자 할 수 있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