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42화
“도대체 어떻게 용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까?”
“저희에게도 방법을 가르쳐주실 수 있으십니까?”
비밀결사원들은 태현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고 공손하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눈빛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요즘 이상하게 미친놈들만 만나는 거 같아….’
태현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피에 미친 엘프 공작 겔렌델부터 시작해서 이제는 이런 놈들까지.
[카르바노그는 유유상종이라고 말합…]
어쨌든 흑흑이와 용용이 덕분에, 이 비밀결사의 사람들은 태현을 처음 보는 데에도 꽤 신뢰하는 것 같았다.
가끔 하는 짓에는 광기가 보였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환대에 들어갔다.
‘이놈들을 어떻게 이용한다?’
태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도움을 받거나 지원을 받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그 과정!
보아하니 이놈들은 제국에게 쫓기는 놈들 같았는데, 잘못 엮였다가는 태현도 같이 쫓길 수 있었다.
‘이세연이 신나서 달려오겠군.’
제국의 이름으로 태현의 목을 딸 수 있다면 이세연은 신나서 달려올 게 분명했다.
중요한 건 안전하게 지원을 받는 것이었다.
“그런데….”
“?”
“저 황금 용이 더 대단합니까, 저 칠흑 용이 더 대단합니까?”
-?
-??
비밀결사원 중 한 명이 태현한테 묻자, 다른 비밀결사원들도 일제히 수군거렸다.
“역시 황금 용이지. 골드 드래곤은 예전부터 질서의 수호자인 데다가 번개를 다루는 위대한 용이었….”
“무슨 소리! 사악하고 심계가 깊은 블랙 드래곤이야말로 진정한 용이라고 할 수 있지. 용의 분노를 모르나? 블랙 드래곤의 분노야말로 진정한 분노! 흑마법의 정수를 맛보아야 정신을 차리겠는가?”
“흥! 그런 얄팍한 흑마법 따위, 골드 드래곤의 위대한 번개 마법 앞에서는 산산이 찢어질 뿐!”
“뭐? 너 이놈. 그게 삼촌 앞에서 할 소리냐?”
“시끄럽소, 삼촌! 시대에 안 맞는 구닥다리 취향은 저리 치우시오. 블랙 드래곤이 최강이라니 무슨! 최강은 골드지!”
-…….
-…….
[드라켄 비밀결사의 파벌이 대립을 시작합니다!]
[블랙 드래곤파와 골드 드래곤파는 오랫동안 대립해 왔습니다. 이들 중 누구의 편을 드느냐에 따라 친밀도가 변화할 수 있습니다.]
용용이와 흑흑이는 고개를 돌려 태현을 쳐다보았다. 과연 태현은 무슨 소리를 할까?
“둘 다 옳다.”
“…….”
“우우우! 우우우우우!”
“그게 무슨 약해 빠진 놈이나 할 소립니까!”
바로 튀어나오는 야유!
그러나 태현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호령했다.
“닥쳐라!”
“!”
[최고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좌중의 분위기를 장악합니다.]
[드라켄 비밀결사를 설득하는 데 보너스를…]
[……]
최고급 화술 스킬은 말다툼을 하는 사람들도 입을 다물게 하고 듣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너희들은 용을 숭배한다면서 어찌 용의 색깔로 등급을 나눠 차별하는 것이냐! 부끄러운 줄 알아라. 여기 이 용들도 너희 같은 놈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화내는 척해라.
-네?
-화내는 척하라고.
-??
-????
흑흑이와 용용이는 당황했지만 시키는 대로 했다.
-크아앙! 크앙!
-우아아아앙?
“아이고!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위대하신 용이시여! 저희를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넙죽 엎드리는 비밀결사의 사람들!
[파벌간의 다툼을 해결했습니다!]
[경험치가 크게 오릅니다.]
[드라켄 비밀결사 내 권한이 오릅니다!]
[명성이…]
* * *
“뭐? 김태현이 와 있어?”
이세연은 질색했다. 왜?!
그걸 본 길드원들은 수군거렸다.
-역시 길마님은 김태현만 나오면 사람이 좀….
-내가 뭐라고 했냐? 김태현 이야기 하지 말자니까.
“야. 다 들리거든?”
이세연은 어이가 없었다. 몇 번 말도 안 되는 기사가 나오더니 그 다음부터는 길드원들이 뜨뜻미지근한 눈으로 그녀와 태현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녀가 왜 태현의 움직임에 민감하겠는가?
그야 태현이 오면 퀘스트가 생각했던 방향과 다르게 흘러가니까 그렇지!
랭커이자 길마로서 당연한 고민을 하는 건데 이 길드원들은 머릿속이 꽃밭으로 가득 찼는지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
“길마님… 그게 길마님의 뜻이라면….”
“안 돼요, 언니! 그놈은 안 돼요!”
“애들아?”
“네?”
“모두 다 닥쳐.”
이세연의 목소리가 한층 내려가자 길드원들은 입을 다물었다.
이세연이 화났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럴 때 이세연은 무서운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다.
“지금 퀘스트 깨야 할 시간에 아주 헛소리들만… 내가 시킨 건 제대로 했어?”
“네! 괴수가 지키고 있는 무덤의 퀘스트는 끝냈습니다.”
“제국의 흑마법 골렘에 필요한 자수정과 시약들을 갖고 왔습니다.”
길드원들은 재빨리 대답했다.
이세연의 길드는 소수정예. 그리고 대부분이 판온 1 때부터 이세연을 따라온 충직한 길드원들이었다.
하나하나가 뛰어난 인재들!
길드 동맹과 김태현, 다른 랭커들이 날뛰고 있는 동안에 이세연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녀도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곧 좋든 싫든 길드 동맹과 붙게 될 때가 오겠지.’
지금 길드 동맹은 미친 듯이 팽창하고 있었다. 솔직히 태현만 없었다면 근처 영지를 몇 배는 더 먹었을 것이다.
맞서 싸우려면 그와 비슷한 크기의 길드를 만드는 게 최선.
그러나 이세연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의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판온 1에서도 그랬듯이 그녀는 소수정예의 길드를 고집했다.
‘나하고 맞지 않는 방법으로 해봤자 문제만 생길 뿐이니까.’
숫자를 불리고, 길드 규모를 키워도 결국 마지막에 승부를 결정짓는 건 실력.
수천, 수만 명의 사람도 한 명을 당해내지 못할 때가 있었다.
이세연은 판온 1 때처럼 그런 존재가 될 생각이었다.
“이세연. 안녕하십니까.”
“아, 스미스. 오랜만이야.”
<고대 제국의 백기사>라는 전설 직업을 가진, 최상위권 랭커 중 하나. 스미스!
판온 초기에서 시간이 꽤 지난 지금에도, 사람들은 전설 직업을 가진 플레이어는 10명이 되지 않을 거라고 추측되고 있었다.
그 스미스가 지금 이세연의 앞에 와 있었다.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봤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최상위권 랭커 둘이 연합하다니!
예전 던전에서 둘이 부딪힌 건 서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것이 랭커였다.
“원하던 건 찾았어?”
“아니요. 역시 전설 직업 퀘스트는 만만치 않습니다.”
“그렇겠지.”
“그래도 그쪽이 아스비안 제국을 부활시켜주신 덕분에 퀘스트를 깨기가 더 수월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스미스는 고개를 숙였다.
뉴욕 라이온즈의 간판선수로 영입되고, 판온에서는 최상위권 랭커인데도 언제나 겸손한 스미스였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
“길드 동맹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저한테 혹시 길드 동맹 공격을 사주한 게 아니냐고 하던데….”
“그 자식들 맨날 트집 잡잖아?”
“그렇긴 하지만 저한테는 잡지 않았었습니다.”
“이제 슬슬 압박할 자신이 생긴 거겠지.”
이세연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스미스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했지? 길드 동맹은 위험하다니까.”
“으음… 하지만 제가 직업 퀘스트를 다 깨고 나면 아무리 길드 동맹이라도 저를 이길 수는 없을 겁니다.”
“퀘스트는 너만 깨? 김태현도 깨고 나도 깨고 다른 랭커들 다 깨고 있는데.”
“김… 김태현 이야기는 왜….”
스미스는 움찔했다. 왠지 모르게 태현의 이름을 들으면 살짝 긴장하게 됐다.
아니, 이유는 알고 있었다. 판온 1 때부터 당했던 것 때문이겠지.
스미스가 이런 걸로 원한을 갖는 그릇 작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긴장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세연은 스미스가 움찔하는 걸 보며 웃었다.
‘잠깐. 내가 다른 사람 비웃을 때가 아니지.’
길드원들이 ‘길마님은 김태현만 상대하면 이상해져요!’라고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들었을 때는 화가 났지만, 길드원들이 저렇게 걱정을 하는 걸 보면 분명 그녀가 제대로 처신을 못한 것이다.
앞으로는 좀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굴어야겠어!
“앗. 잠시만요. 귓속말이….”
스미스가 귓속말을 받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 어? 김태현이 여기 와 있다고? 앗….”
“…….”
태현이 혼자 온 게 아니라 함대를 이끌고 온갖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건너와 준 덕분에 소문이 쫙 퍼진 모양이었다.
이세연은 그게 좀 신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태현이 공짜로 봉사해 줄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김태현 이 자식 무슨 생각으로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온 거지? 설마 돈 받은 거 아냐?’
예리한 지적!
“만나서 인사라도 하고 올까요?”
“넌 참 속도 좋다.”
“네? 만나면 반가운 건 반가운 거죠.”
“그거 못하는 사람 많거든… 어쨌든 김태현하고 안 부딪히는 게 좋을걸. 만약 네가 하고 있는 퀘스트가 김태현하고 얽히면 꽤 귀찮아질 테니까.”
“그건 그렇지만, 설마 그럴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스미스는 사람 좋게 웃었다.
* * *
“황제를 쓰러뜨리고 용을 부활시키자!”
“황제를 쓰러뜨리고 용을 부활시키자!”
드라켄 비밀결사는 음산하게 외쳤다. 태현은 그걸 보며 생각했다.
‘음… 위험한데.’
드라켄 비밀결사는 정상적인 단체가 아니었다. 아니, 태현이 만난 곳이 대부분 그렇긴 했지만….
일단 이들은 제국을 다시 멸망시키고 용의 이름으로 불태우려고 했다.
만약 교단이었다면 악신 계열 확정!
여기가 오스턴 왕국이었다면 신이 나서 ‘그래! 불을 지르자!’라고 동의했겠지만 여기는 멀고 먼 제국이었다.
게다가 얼마 전에 ‘이세연과는 동맹 맺어야 할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싸우지 말자’고 계획을 짰는데….
고민 끝에 나온 결론은 하나였다.
먹튀!
‘다행히 용의 이름도 있고 친밀도, 명성, 평판은 최대니 쉽게 뜯어낼 수 있겠어.’
아까 아다만티움을 조각하는 걸 보며 정말 놀랐다. 아무리 고대의 제국이라지만 저런 걸 갖고 있다니.
“용의 친구인 김태현 님. 우리와 같이 움직이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래! 같이 움직이자고.”
일행들은 태현의 말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먹튀네.’
‘먹튀할 생각입니다.’
‘먹튀할 생각이네요….’
“그런데 뭘 할 거지?”
태현은 슬쩍 눈치를 봤다.
비밀결사 쪽에서 <부활한 제국 황궁을 불태워라! 돌격!>같은 퀘스트를 던졌다가는 바로 거절할 생각이었다.
정도가 있지!
“유적 순찰입니다.”
“오…?”
의외로 멀쩡해 보이는 퀘스트!
“유적 순찰?”
“예. 저희의 숭고한 임무 중 하나가 바로 용들이 남긴 유적을 지키는 것이지요. 제국은 그런 유적을 싫어해서 보는 족족 파괴하려 하지만….”
“아주 나쁜 놈들이네.”
“아주 사악한 놈들입니다!”
드라켄 비밀결사원들은 매우 분노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그런 유적을 순찰하며 침입자들을 잡아내는 것이 저희의 임무입니다.”
“뭐 그 정도라면야….”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도도 높지 않고, 공적치 포인트를 쌓기 좋은 퀘스트였다.
게다가….
‘안 밝혀진 유적 던전이라면 얼마든지 챙길 수 있다!’
“혹시 유적 관련된 지도를 볼 수 있을까?”
“여기 있습니다.”
[지도 정보가 추가되었습니다.]
“음. 드라켄 비밀결사의 의로운 마음이 내 가슴을 울리는군. 혹시 이 유적 근처에 다른 유적도 알 수 있을까?”
“역시 용의 친구이신 김태현 님. 열정적이십니다. 자, 여기 있습니다.”
[지도 정보가…]
“좋아. 좋아. 여기서 가장 비싼… 흠흠. 여기서 가장 우선으로 지켜야 할 유적이 뭐지?”
유적을 지키겠다고 도굴꾼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비밀결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