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741화 (741/1,826)

§ 나는 될놈이다 741화

태현은 어이가 없었다. 그가 뭘 했다고 보자마자 저런단 말인가.

물론 그가 도시 몇 개 날려 버리고, 길드도 몇 개 날려 버리고 했지만….

‘음. 생각해 보니 경계할 만하군.’

“그쪽이 왜 여기 있어요!? 아탈리 왕국 국왕이면 거기서 노세요!”

“아니, 난 아스비안 제국 오면 안 되냐?”

상대방이 질색하자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태현도 별로 오고 싶지는 않았는데!

“앗. 잠깐.”

순간 태현의 머릿속이 번뜩였다.

이세연의 길드원들이 태현을 오는 것을 보고 질색한다?

이건 이세연이 뭔가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태현한테 들키면 안 되는 무언가!

“이세연이 뭔가 하고 있군!”

“?”

“???”

“내가 오면 안 되는 무언가가 분명해.”

“아, 아니요. 그런 거 아니거든요?”

“말을 더듬는데?”

“어이가 없어서 더듬은 거예요. 그쪽이 와서 놀라고 당황하긴 했는데 딱히 숨기는 건 없거든요?”

“그러면 왜 그런 반응을?”

“그야 그쪽만 상대하면 언니가 이상해지니까 그렇죠.”

“맞음! 미스터 김만 상대하면 길마 이상해짐!”

김현아와 나디아가 입을 모아 말했다. 태현은 시큰둥하게 말했다.

“걔는 원래 이상했어.”

“아님! 아님!”

“아니거든요!? 말 조심해요!”

“싫은데? 너희 이세연은 원래 이랬거든?”

대화를 듣고 있던 빈센트는 당황했다.

이 유치한 대화가 정말 랭커들이 나누고 있는 대화인가?

들어보니 상대는 ‘그’ 이세연의 길드원 같았다. 그런데 태현과 저런 유치한 말싸움이라니.

심지어 태현마저 같이 놀고 있었다.

빈센트의 체감으로 꽤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들의 말싸움은 끝이 났다.

“후. 그래. 우리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도록 하자. 물론 내가 맞고 네가 틀렸지만.”

“내가 할 소리거든요?”

서로 제 갈 길 가자!

태현은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런데 이세연은 뭐 하고 있냐?”

“역… 역시! 언니한테 관심이 있는 게 맞았어!”

“원래 여기 오기 전에는 관심도 없었거든? 너희들이 자꾸 그러니까 없던 호기심도 생기잖아.”

“길마님 퀘스트 중. 황제 옆에서.”

“그렇군… 근데 쟤는 말투가 왜 저래?”

“…그냥 그렇다 치세요. 일부러 번역기 끄고 하는 사람이니까.”

나디아는 길드원 중에서 일부러 자동 번역을 끄고 하는 플레이어였다.

들어보니 언어를 배우려고 저런다는데….

‘실력은 확실한데 사람은 좀 이상해!’

그러나 태현은 그 말을 듣고 감탄했다.

“재밌는 생각인데? 판온에서 언어를 배운다니.”

“…그냥 언어는 밖에서 배우는 게 낫지 않나요?”

“아니지. 게임도 하고 언어도 배우면 일석이조잖아.”

“맞음. 미스터 김이 의외로 똑똑함.”

둘이 멍청한 사람 보듯이 쳐다보자 김현아는 대번에 짜증이 났다.

‘이 인간들이….’

“어쨌든 언니 뭐하는지 말했으니까 괜히 언니 근처로 와서 언니 뒤흔들지 마요.”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 하고 있네. 내가 할 소리다.”

김현아가 나디아를 데리고 떠나자, 빈센트가 조용히 와서 물었다.

“역시 이세연 씨와 사귀시는 게 맞군요?”

“…뭐?”

태현의 ‘뭐’는 한층 내려간 톤이었다.

‘뭐 이 XX야?’에서 ‘이 XX야?’가 생략된 것 같은 말투!

빈센트는 깜짝 놀라서 말했다.

“아, 아니. 그… 사귀시는 게 아니었습니까?”

“방금 그 모습을 보고서 그런 소리가 나와? 뭔….”

“죄, 죄송합니다. 만약 사귀시는 거면 에이전트로서 도와드리려고 했…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방금 한 말은 잊어주시죠.”

케인은 빈센트의 말에 감탄했다.

말실수는 저렇게 수습하는 거구나!

태현은 혀를 찼다.

‘해외 에이전트도 저렇게 생각하고 있을 정도면 다들 오해하고 있는 거 아니야? 설마….’

가끔은 설마가 맞았다.

* * *

“그런데 어떻게 수색을 시작하지?”

“일단 교단이 먼저겠지. 여기도 교단 신전들은 있을 테니까, 거기를 돌면서 일퀘를 깨고 공적치 포인트를 쌓자고.”

새로운 지역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건 퀘스트.

퀘스트를 깨면 지역에서 이름이 알려지고 공적치 포인트가 쌓였다.

태현이 찾는 것은 권능이었으니 교단 퀘스트를 깨는 게 좋았다.

게다가 태현의 직업과 스킬은 적은 공적치 포인트로도 몇 배의 효과를 냈다.

화술의 신… 아니, 아직 신은 아니었고 반신 정도!

[카르바노그도 동의합니다.]

툭-

“…?”

[아이템, <드라켄 비밀결사의 편지>를 얻었습니다.]

근처에 로브를 쓴 사람이 지나가며 태현에게 아이템을 주고 지나갔다.

“뭐야?”

태현은 그 NPC를 쫓아가려고 했지만, NPC는 골목을 돌더니 사라져버렸다.

<드래곤 만세!-드라켄 비밀결사 퀘스트>

포악한 용들에게 멸망당한 아스비안 제국에서 용의 이름은 금기나 마찬가지다.

황제 우이포아틀부터 그 밑의 귀족들까지, 아스비안 제국의 모든 귀족들은 용을 증오한다.

그러나 아스비안 제국에 모든 이들이 용을 증오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제국이 멸망한 동안 용을 숭배하는 비밀결사가 생겨났다.

드라켄 비밀결사는 제국에 용을 갖고 온 당신을 용이 보낸 화신이라고 생각하며 만나보려고 한다.

조심하라!

만약 들킬 경우 절대로 무사할 수 없을 테니….

보상: ?, ???, ?????

“…….”

태현은 이 퀘스트가 왜 나온 건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제국에 용용이와 흑흑이를 데리고 온 탓에 나온 것이다.

‘젠장. 두고 왔어야 했는데!’

드라켄 비밀결사가 뭐 하는 곳인지는 몰라도, 용 냄새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게 맡는 게 분명했다.

태현이 오자마자 이렇게 접촉을 했으니.

“…일이 이렇게 됐는데.”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일단 만나봐야지. 음… 뭐, 그래도 나쁜 건 아니야.”

히든 퀘스트는 일단 받아서 나쁠 게 없었다.

생각은 받고 나서 해도 됐으니까!

물론 악 성향 교단의 히든 퀘스트나, 산적이나 도적 NPC가 주는 히든 퀘스트는 받으면 인생 꼬일 가능성이 크긴 컸지만….

‘생각해 보니 드라켄 비밀결사도 제국 내에서는 그런 취급 같은데.’

태현은 갑자기 불길해졌다.

“정말 나쁜 거 아닙니까?”

“아까 오는 사이에 벽에 ‘드래곤을 죽입시다 드래곤은 나의 원수’라고 쓰여 있는 거 봤냐?”

“얘네 좀… 이상한 애들 같은데요….”

일행은 모두 부정적!

“그래도 정보는 얻을 수 있겠지. 걱정 마. 내가 이런 놈들 하나 통제 못하겠어?”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태현 님이라면….”

“너라면 충분히 통제할 수 있지.”

“너한테는 못 당하겠지!”

인정은 인정인데 뭔가 기분 나쁜 인정!

* * *

편지에는 지도도 나와 있었다. 태현은 항구를 빠져나와 도시 외곽의 모래지대로 걸어갔다.

“여기 어딘가에 입구가 있다는데… 아. 여기군.”

“그런데 태현 님.”

“왜?”

“아까 그 사람들하고 이세연 씨 방해 안 하겠다는 약속하지 않았나요?”

“엄밀히 말하자면 방해를 안 하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서로 제 갈 길 가자는 약속이었지.”

“…그런데 이세연 씨는 지금 제국 황제 곁에서 퀘스트 깨고 있지 않나요?”

제국을 부활시킨 이세연은 황제 옆에서 직속 퀘스트를 깨고 있었다.

여기서 쌓은 공적치 포인트나 명성을 생각해 봤을 때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

“근데 그 비밀결사 들어가면 이세연 씨 방해하는 거 아니에요?”

“…그렇지?”

“…….”

“이다비. 넌 날 믿지? 내가 일부러 방해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아, 네. 물론이죠.”

[<모래의 사원>에 입장하셨습니다.]

[용을 데리고 있습니다. 모든 능력치에 버프를 받습니다.]

[몬스터들이 공격하지 않습니다.]

[……]

[……]

이 던전은 용을 위한 던전이었다. 용과 친하면 버프를 받고, 친하지 않으면 디버프를 받았다.

그렇다면 용용이와 흑흑이를 굳이 숨길 이유가 없었다.

“용용아. 흑흑아. 나와라.”

태현의 말에 두 드래곤들이 호다닥 나와 양 어깨 위에 자리를 잡았다.

-흑흑. 주인님. 안이 좁아서 힘들었습니다.

-주인이여. 굳이 이 제국에 있어야 할….

“쉿. 애들아. 아마 저 안에는 너희들을 좋아하는 놈들이 있을 거야.”

-사디크의 신수인 절 말입니까? 별로 멀쩡한 놈들은 아닐 것 같은데….

용용이는 흑흑이를 측은하게 쳐다보았다.

보통 신과 계약한 신수들은 미우나 고우나 자기가 계약한 신을 아끼고, 자기가 계약한 신의 교단을 좋게 봐주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흑흑이는 사디크 교단을 이상한 놈들 취급하고 있었다.

흑흑이의 사정을 알고 있는 용용이는 괜히 짠해졌다.

아키서스의 신수마저도 동정하게 만드는 불쌍함!

“아니. 사디크 교단은 아니고… 그보다 괜찮은 애들일 거야. …아마.”

-방금 아마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탁-

“오오오오오오!”

“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드라켄 비밀결사의 이제른이 용용이와 흑흑이를 보고 경탄합니다!]

[친밀도가 최대로…]

[세력 내 평판이 최대로…]

[드라켄 비밀결사의 에플롯이…]

[……]

[……]

“오오옷! 용이다! 진짜 용이야!”

“끼요옷! 끼요오오오옷!”

“드래곤님이 날 보셨어! 날 쳐다보셨어!”

“아니야! 날 보신 거야!”

“고개를 돌려서 내 눈을 똑바로 보셨어!”

“네 뒤에 있는 놈을 보신 거야!”

“…….”

-힉.

-히이익.

두 용들은 날개를 파르르 떨었다. 태현과 함께 온갖 적들과 싸워온 둘이었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무리들은 진심으로 무서웠다.

미친놈들인가 봐!

“조각사 어디 있나!”

“여기 있습니다.”

“화가 어디 있나!”

“여기 있습니다.”

“저 두 분의 신성한 모습을 놓치지 말고 새기도록!”

“예! 알겠습니다!”

“…….”

태현은 떨떠름한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뭐 좋아하니 굳이 방해할 필요는….

‘미친, 아다만티움이잖아!?’

태현의 입이 떡 벌어졌다.

지금 조각사가 갖고 오고 있는 재료는 무려… 아다만티움이었다!

오리하르콘과 맞먹는 판온의 최강 희귀금속 중 하나!

그걸 그냥 조각에 쓴다고??

물론 양이 조그만 조각상을 만들 정도긴 했지만, 저것만 갑옷에 섞어 넣어도….

태현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저 조각상을 다 만들면 어떻게 할 건가?”

“용에게 바쳐야지요.”

“오오! 정말 신실하군!”

태현은 감탄했다. 이 비밀결사 놈들 의외로 좋은 녀석들이잖아?

용용이나 흑흑이한테 바치면 태현한테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언제나 미친놈들은 태현의 예상을 벗어났다.

“용의 화염 속에 넣고 불태우면, 모든 용에게 바치는 의미가 될 겁니다.”

“…….”

태현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아니 그게 무슨 미친 짓이야?

“잠깐만. 용한테 바친다며?”

“예, 바칩니다만?”

“그게… 바치는 거야?”

“예!”

흑흑이가 옆에서 말했다.

-사디크 교단도 비슷한 방법을 씁니다, 주인님. 사디크의 화염에 제물을 넣는 거죠.

“그러니까 교단이 망한 거지. 이런 낭비벽 심한 놈들.”

-…….

흑흑이는 시무룩해졌다. 그걸 본 비밀결사원이 기겁했다.

“아니! 용에게 어떻게 그런 무례한 말을! 당장 사죄하십시오.”

“뭐?”

-……?

흑흑이는 고개를 돌려 비밀결사원을 쳐다보았다. 이게 미쳤나?

“용은 가장 위대하며 신성한 생물. 우리 같은 미천한 종족은 그저 앞에서 조아려야 합니다.”

-주인님. 저 사람들은 꽤 좋은 사람들 같….

-뒤지게 맞고 싶니? 밖에 나가서 맞을 때 쟤네가 네 곁에 있을 거 같니?

-…아닙니다.

상냥하게 협박하는 태현이 가장 무서웠다. 흑흑이는 날개를 내렸다.

“크… 흠흠. 이자는… 내 주인….”

“뭐?! 용을 부리고 있다고?!”

“이단자다! 이단자! 죽여야 한다!”

용을 숭배하는 비밀결사에게 용을 부리는 태현은 역린 그 자체!

-힉.

“…이 아니라 내 친구 비슷한 거다!”

흑흑이는 급히 말을 바꿨다. 그러자 비밀결사원들의 표정이 부드럽게 변했다.

“용의 친구라니. 아주 대단한 영웅이군.”

“부럽군, 부러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