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37화
그의 머릿속에는 순간 빠르게 불길한 미래가 스쳐 지나갔다.
-이게 서민들이 먹는 라면이라고? 회장님이 직접 먹어본다!
-1억 구독 감사 이벤트! 10명에게 추첨으로 비행기를….
-우리 회사 핸드폰보다 좋다!? 타 회사 핸드폰….
-유성전자 유 사장의 어렸을 적 일화! 몇 살까지 오줌을….
그리고 동시에 떠오르는 언론 타이틀!
<회장님이 미쳤어요! 유 회장의 파격 행보….>
<유성 그룹 주가 대폭락! 주주들 패닉!>
<일각에서는 알츠하이머 의심도….>
‘안 돼!’
유 사장이 달려와서 ‘넌 이 XX야 월급을 줬더니 뭘 하고 있는 거야! 아버지가 저러시면 말려야지!’라고 멱살을 잡을 것이 분명했다.
“회장님! 노이즈 마케팅은 안 됩니다!”
“음? 그게 무슨 소리지?”
“아무리 자극적인 게 잘 먹혀도 가족사를 이야기하거나 회사 내부 사정을 외부에 이야기하거나, 비싼 걸 경품으로 거는 건…!”
그 말을 들은 유 회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놈이 날 뭐로 보고?
“…내가 말한 건 내가 나와서 젊은이들에게 삶의 교훈 같은 걸 말하려는 생각이었네만. 빌 게X츠나 워X 버핏 보면 나와서 이런저런 교훈을 주는 강연들을 하잖나.”
“아….”
“…자네 방금 뭐라고 했지?”
“아무것도 아닙니다. 회장님.”
정 비서실장은 유 회장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애썼다. 눈이 마주치면 죽는다!
유 회장은 쯧쯧 거리며 넘어갔다.
“됐네. 어쨌든 내 말을 이해했으면 준비나 해주게나.”
“예!”
정 비서실장은 즉답했다. 그러고서 걱정했다.
‘근데… 별로 인기가 없을 것 같은데….’
말실수한 것 때문에 거절할 분위기가 아니어서 넘어갔지만, 생각해보니 별로 인기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온갖 자극적인 방송을 하는데, 유 회장 같이 나이 지긋한 어른이 나와서 ‘인생이란~ 무엇이냐 하면은~ 그래서 낚시가 좋은 것인데~’같은 지루한 훈계를 하면 누가 보겠는가.
‘특단의 방법을 써야겠군.’
다음 날 사원들에게 메시지가 날아왔다.
-다음 주소의 영상을 보고 근무를 시작할 것.
“?”
* * *
“사람들 더럽게 많군.”
“지금 다 아스비안 제국 가려고 배를 구하는 거 맞지?”
아탈리 왕국의 항구에는 플레이어들이 꽉꽉 흘러넘쳤다.
그걸 본 태현 일행은 태현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이, 이건 반짝 인기입니다. 곧 사그라질 겁니다.”
“맞아. 대륙은 역시 중앙 대륙이 짱이지. 덥고 건조하고 모래밖에 없는 아스비안 제국이 뭐가 좋겠어?”
“비록 던전 숫자도 어마어마하고 묻혀 있는 템들도 많고 자원도 어마어마하지만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그냥 조용히 하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이다비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둘을 쳐다보았다. 뭔 놈의 설득을 저렇게 못해?
“태현 님, 괜찮죠?”
“난 괜찮아. 물론 이세연을 보면 공격하고 싶겠지만 괜찮아. 흠. 근데 이다비. 제국을 멸망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역병을 풀면 되려나? 해골이라서 안 통하나?”
“…….”
“…….”
아무리 봐도 이세연의 일에 초를 치려는 의도가 가득!
이다비는 당황해서 말렸다.
“태현 님, 저희 지금 안 그래도 길드 동맹하고 싸울 일 많아요. 그래서 다른 적들은 최대한 안 늘리기로 했었잖아요.”
분명 며칠 전만 해도 태현과 이다비는 매우 이성적인 태도로 미래 계획을 세웠었다.
-이다비, 우리 슬슬 진지하게 미래 계획을 이야기해보자.
-네? 네??? 네?????? 방, 방금 뭐라고….
-응? 길드 동맹 상대할 전략을 짜야 하잖아. 케인이나 수혁이는 멍청해서 도움이 안 돼.
-아… 네….
그 결과 내린 결론은 ‘길드 동맹을 중심으로, 최대한 연합을 늘려서 둘러싸자’는 것이었다.
에랑스 왕국, 덩글랜드 왕국, 잘츠 왕국의 길드들과 우르크 지역의 플레이어.
그리고 지금 프리카 대륙에서 활동하고 있는 플레이어들까지.
길드 동맹은 강하고 거대한 만큼 적이 많았다. 그 약점을 노리는 계획이었다.
-판온 1의 태현 님처럼요.
-굳이 날 기준으로 할 필요는….
-판온 1의 태현 님처럼요!
-혹시 화났니?
-화 안 났어요.
어쨌든 이세연은 길드 동맹과 손을 잡지 않은 최상위 랭커였고, 당연히 연합해야 할 대상 1위였다.
게다가 직업도 네크로맨서 아닌가!
대규모 전투에 최적화 된 직업!
물론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태현의 감정은 논리를 거부하고 있었다.
“후… 그래. 참아야지.”
“그거 폭탄 아니죠?”
“이건 잠시 넣어둬야겠다. 그보다 배 좀 구하자.”
“줄 좀 서야겠습니다. 배가 너무 많아서… 지금 구하기도 힘들 수 있습니다.”
정수혁은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 항구에는 배를 구하려는 플레이어들로 인산인해였다. 어찌나 인기가 좋았는지 조각배를 타고 따라가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응? 뭔 소리야?”
“네?”
태현은 바로 사람들을 지나쳐 군 항구로 향했다.
국왕 특권!
왕국군의 함선이 있는 항구로 향한 것이다.
“아…!”
[군 항구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 정박되어 있는 함선은….]
“폐하!”
“?”
태현이 군 항구에 오자 갑자기 NPC 하나가 달려 나왔다.
아탈리 왕국의 3 함대 제독인 브랑송!
지금도 변경의 귀족들은 태현을 닭 소 보듯 하고 있는 상황에서 태현을 영웅으로 여기며 충성을 바치는 브랑송은 참 좋은 사람이었다.
“폐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신 브랑송, 전력을 다해 달려왔습니다. 폐하는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어… 어?”
태현은 당황했다.
왜냐하면….
‘해적들 배 타고 가려고 했었는데….’
태현의 영지로 들어온 <붉은 바다 무법자> 세력!
해적 출신인 만큼, 빠르고 날렵한 배를 타고 다니며 바다 위를 누비는 데에는 도가 튼 이들이었다.
게다가 이들의 장점은, 깃발 내리고 해적기를 건 다음 깽판을 쳐도 별 문제가 없다는 점이었다.
왕국 해군을 데리고 그런 짓을 한다면?
[국왕이 약탈을 저질러 왕국 해군의 사기가….]
[왕국 해군의 명성이….]
[브랑송이 경악합니다!]
…이렇게 될 게 분명!
“브랑송. 왕국의 바다를 지키느라 바쁜 그대에게 어떻게 이런 잡일을 시키겠나? 다른 함선을 타고 가도록 하지.”
“안 됩니다, 폐하! 저희 말고 어떤 자들이 폐하를 모시겠습니까! 말씀해주십시오. 누구입니까?!”
“어… 어, 음….”
태현은 말문이 막혀 머뭇거렸다.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활활 타오르는 브랑송 제독의 눈빛!
만약 해적 배 타고 간다고 하면 자살이라도 할 것 같은 기세였다.
* * *
[왕국 3 함대의 함선에 탑승했습니다.]
[<왕국 해군의 명예> 버프를….]
[<왕국 해군의 깃발> 버프를….]
“…….”
“그, 그래도 왕국 해군은 전투력은 좋잖아!”
“그렇기야 하지….”
태현은 입맛을 다셨다. 이미 탄 이상 어쩌겠는가.
사실 그리고 불평하는 게 웃길 정도로 왕국 함대 함선은 좋은 함선이었다. 일반 플레이어들은 이런 함선을 구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우와… 저거 왕국 함선이야?”
“크기 봐. 대단하다.”
“앗! 태현 님! 저희도 태워주세요!”
태현을 발견한 플레이어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기대감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눈빛들!
단순히 함선이 좋을 뿐만 아니라, 태현과 같이 퀘스트를 하고 싶다는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김태현이라면 아스비안 제국에서도 대형 퀘스트만 골라하겠지?”
“뭘 할까? 제국 영토 회복? 반란 진압? 황제의 유물 회수?”
“야, 김태현이 그렇게 알려진 것에서 하겠냐? 언제나 예상을 깨는 게 김태현인데! 우리가 아는 것보다 김태현이 아는 게 더 많을 걸?”
“하긴. 제국 부활시킨 건 이세연이고, 김태현은 이세연하고 사귄다니까 모를 리 없겠네.”
태현이 알면 멱살 잡히고 이세연이 알면 거꾸로 묻힐 소리를 하는 플레이어!
다행히 여기에는 둘 다 듣고 있지 않았다.
“어? 둘이 사귄다는 거 루머 아니었어?”
“에이, 원래 연예인들이 들키면 만날 부정하잖아. 기사 보니까 사귀는 거 같던데.”
“맞아. 나도 보니까 보통 다정한 게 아니더라. 판온 1에서 이세연이 김태현 영입하려고 했던 제안을 거절한 게 사실 사랑싸움 때문이었다며?”
“뭐? 정말?!”
그러는 사이 태현은 갑판 위에서 몰려든 플레이어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쟤네가 날 쳐다보는 눈빛이 뭔가 기분 나쁜데?”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 좋다고 몰려온 팬들한테 그러면 안 되지!”
케인은 태현한테 따끔하게 훈계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야!
“아니… 진짜 기분 나쁜 눈빛인데. 뭔가 잘못된 정보를 갖고서 날 욕하는 것 같은 눈빛이야.”
“네가 지금 이세연 때문에 기분 나빠져서 그런 걸 거야.”
“지금 내가 이세연한테 흔들린다는 소리냐?”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흠흠. 어쨌든 배에 자리 많으니까 플레이어들 태울 거지?”
“안 됩니다. 폐하! 폐하의 안전을 위해서 이 배에는 폐하만 타셔야 합니다. 저들 중에 불충한 놈들이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브랑송은 단호하게 말했다.
태현은 슬픈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그렇지만 브랑송. 왕인 내가 백성들을 안 챙기면 누가 챙긴단 말인가?”
“폐, 폐하. 아무리 그래도….”
“저기 조각배를 타고 가려는 저들을 보니 내 마음이 너무 아프군. 크흑!”
“폐하! 폐하의 그 선량하시고 관대하신 마음을 나쁜 자들이 이용할까봐 두렵습니다! 영웅이란 조금 더 냉철할 필요가 있는 법인데…!”
“…….”
“…….”
다른 일행들은 브랑송을 식은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저놈은 대체 언제 환상에서 깨어나는 걸까?
“난 그대를 믿네! 무슨 일이 있으면 그대가 지켜주겠지.”
“저 브랑송. 폐하를 끝까지 따르겠습니다!”
설득 끝.
태현은 바로 앞으로 가서 말했다.
“여기서 아탈리 왕국 소속 플레이어인 분?”
절반 정도가 손을 들었다.
나머지 절반은 다른 왕국 소속인데 여기 온 걸 보니, 정말 아스비안 제국이 인기가 좋긴 한 모양이었다.
“좋아. 이중 아키서스 교단 소속 플레이어인 분?”
손을 든 플레이어 중 절반 정도가 손을 내렸다.
태현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원 탑승!”
“저, 저희도 왕국 변경할게요!”
“아키서스 교단 가입도 하겠습니다!”
“평소에 해뒀어야지.”
“어차피 자리 남지 않습니까?”
정수혁은 의아해했다. 왕국 함대는 커다란 함선을 여럿 거느리고 있었다.
지금 항구에 몰린 플레이어들을 더 태우고 가도 별 문제없었다.
“쟤네들은 돈 받고 가야지.”
“…….”
“아. 맞다. 파워 워리어 애들 풀어서, 길드 동맹이나 오스턴 왕국 소속 애들은 비싸게 받아라.”
길드 동맹 길드원들의 특징은 자기가 길드 동맹인 걸 자랑하고 다닌다는 점!
길드 마크부터 시작해서 알아보기 참 쉽게 하고 다녔다.
“항의하지 않을까?”
“항의하면 어쩔 건데? 오스턴 왕국으로 가라 그래.”
태현은 쿨하게 무시했다. 어차피 뭘 해도 태현을 싫어할 놈들인데!
남이 아무 이유 없이 자기를 싫어하면 그 이유를 만들어주는 게 태현이었다.
“파워 워리어 애들한테, 길드 동맹 찾아서 탑승료 비싸게 받으면 절반은 찾은 놈한테 준다고 해줘.”
“정말 기뻐하겠네요.”
이다비는 웃으며 말했다.
태현의 예측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지령이 떨어지자, 항구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눈을 번쩍 떴다.
“저기 길드 동맹 놈이다!”
“쉿. 티내면 안 돼. 조용히 찾아야 한다고.”
가장 쉬운, 길드 마크를 차고 다니는 놈부터 시작해서….
“쟤네들 중국인 같지?”
“일본인 같은데.”
“…쟤네는 한국인이잖아. 너 한국인 맞냐? 어떻게 그걸 구분 못 해?”
“크윽!”
“자. 날 따라 해라. 자연스럽게 말 거는 거야. 앗. 혹시 중국 플레이어세요? 저희도 중국 플레이어인데!”
유도심문까지!
숙련된 파워 워리어 길드원들은 초보 길드원들을 이끌었다.
초보 길드원들은 숙련된 길드원들을 보며 감탄했다.
유난히 그들의 등이 커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