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33화
“수혁아.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하니. 남의 장비잖아.”
“흑흑. 죄송합니다.”
정수혁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케인은 태현을 ‘이 자식 또 무슨 꿍꿍이길래 이렇게 착한 척이지’라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태현이 보통 안 하던 짓을 하면 꿍꿍이가 있는 것!
이다비나 유지수는 살짝 경계하는 마음으로 제이넨을 쳐다보았다.
안 그래도 태현의 팬이라고 하면서 온 게 신경 쓰였는데, 저렇게 친절을 베풀어줬다가 정말로 반해버리면 어떡하나!
물론 연기라고는 했지만 사람 마음은 모르는 법 아닌가.
물론 제이넨은 태현한테 반할 리 없었다.
‘이 새끼가 대체 나한테 뭘 원하는 거지!?’
태현이 친절하게 나올수록 증폭되는 공포!
반하기에는 판온 1 때부터 직접 경험한 게 너무 많았다.
거기에 다른 사람들한테 듣고 본 것까지.
‘아… 안 돼. 다른 사람들한테 도와달라고 해야….’
제이넨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물론 도와줄 것 같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착해 보이는 유지수나 이다비도 노려보고 있는 상황!
‘내가 그렇게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김태현이 있는 것도 모르고 온 건데! 너희들이 있다고 했으면 오지도 않았어!’
속으로 외쳤지만 둘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유지수가 제이넨을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되게 두근거리는 것 같은 얼굴인데….”
두근거리긴 했다. 공포로!
제이넨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아, 아니. 사람인 이상 김태현을 앞에 두고 안 두근거릴 수가 있어?”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용서할 수 없어!”
‘뭔가 엇갈리는 것 같은데?’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제이넨은 공포에 질린 얼굴이었다.
둘의 대화를 끊은 것은 태현이었다.
“그냥 보내줄게. 대신 부탁 한 가지만 하자.”
“흑흑. 아프지 않게 죽여줘….”
“…….”
“…….”
순간 어색해진 분위기!
“…그냥 돌아가서 애들 진행상황하고 그런 것 정도만 말해주면 되는데.”
“아… 그렇구나. 잠깐. 그거 스파이잖아?”
“스파이라고 하면 좀 안 좋게 들리니까 내가 베푼 친절에 네가 보답한다고 하자고.”
태현은 제이넨을 달래려고 했다. 스파이를 포섭할 때 중요한 건 달래는 것!
-이 정도는 괜찮지!
그러나 달랠 필요가 없었다. 제이넨은 즉시 대답했다.
“스파이든 뭐든 어때. 나만 살면 그만이지.”
“아주 훌륭해.”
“잠깐. 너 이런 식으로 우리 길드에 스파이 더 심어놓은 거 아냐? 많이 해본 솜씨인데?”
제이넨은 갑자기 생각이 들어 물었다. 태현은 당황했지만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많지. 너희 간부 중에 절반이 내 스파이야.”
“호호호호! 농담도 잘 하네. 그런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
* * *
앨콧은 놀러 온 마법사 랭커, 크로포드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했다.
“봐라! 여기가 영주실이다!”
“오오… 괜찮은데?”
크로포드는 감탄했다. 영주에게만 주어지는 권한 중 하나. 전용 공간이었다.
이게 바로 권력인가!
아주 커다란 영지의 영주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앨콧의 영지는 탄탄하고 견실했다.
“너 근데 길드 동맹에서는 뭐라고 안 하냐? 오스턴 왕국 말고 에랑스 왕국에서 영주 한다고.”
“야. 에랑스 왕국에 첫 영주인데 그게 대수냐? 오히려 길드 동맹에서는 날 더 밀어준다고. 계속해서 에랑스 왕국에서 영향력을 키워보라고.”
“그래? 신기한데?”
크로포드는 신기해했다. 그 모습에 앨콧은 기분이 나빠졌다.
“왜? 뭐가 신기한데?”
“아니. 너 거기서 친한 놈들 별로 없지 않았냐? 외국인에, 너하고 친한 길드 간부는 저번에 내부 분쟁 때 다 갈려 나갔고….”
하나씩 짚어주는 크로포드!
“너 랭커만 아니었으면 진작 쫓겨났을 텐데?”
“…….”
비겁하게 사실로 때리다니. 앨콧은 속으로 생각했다.
“게다가 너 김태현하고 친하잖아.”
“누… 누가 김태현하고 친해?”
“아. 네가 일방적으로 쫄….”
“안 쫄았다!”
“…뭐든 간에 어쨌든, 겉으로 보기에는 친해 보이잖아.”
퀘스트 몇 개 같이 했으면 대충 친한 것 아니겠는가.
크로포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건 걱정 마라. 잘 설득했으니까.”
“오. 진짜?”
“그리고 난 깨달았다.”
“…?”
“김태현하고의 관계를 무조건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거라고.”
‘쫀 거 맞잖아….’
크로포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지금 앨콧은 영주였으니까.
영주 권한으로 쫓겨날라!
“그, 독도 잘 쓰면 약이 된다잖아. 어둠도 잘 받아들이면 내 힘이 되는 거지.”
“…뭐 어떻게 쓰려고?”
“길드 내 경쟁자 놈들을 제거한다거나?”
“그건… 스파이 아니냐?!”
* * *
“돌아왔구나! 제이넨!”
“돌아왔냐! 제이넨!”
“안 돌아오지 그랬어!”
‘잘 돌아왔어, 제이넨!’
“야. 속마음을 내뱉으면 어떡해.”
“헉.”
가식적인 환대를 해주는 랭커들!
그 모습에 제이넨은 화사하게 웃었다. 죄책감은 원래 없었지만, 있었을 죄책감도 덜어주는 친구들!
“용케 살아 돌아왔다?”
“내 비장의 스킬이 있었지. 그보다 하시다. 네가 지금 입고 있는 갑옷이 뭐였지?”
“<얇게 가공한 이자크 붉은 와이번 가죽 갑옷>인데.”
“그거 약점이 물리 방어였나 마법 방어였나? 속성 약점은 뭐가 있었지?”
“그걸 왜 물어?”
“다음에 공격할 때 맞는 스킬로 버프 걸어주려고 한다. 왜?”
“아. 그런 거라면야….”
제이넨이 날카롭게 묻자 다들 꼬리를 내렸다. 일단 제이넨을 두고 도망친 걸로 따지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이었다.
-네가 쓰던 <섬광의 연속 검격> 약점이 뭐더라?
-네가 쓰던 방어 스킬들이 뭐였지? 그거 쿨타임이 각자 몇 초?
-…이런 것까지 알아야 해?
그렇게 제이넨은 알차게 각자 약점들을 조사해 나갔다.
“소식은 들었다.”
“맥필!”
요양을 끝내고 나온 맥필이 돌아온 랭커들을 비웃었다.
“뭐? 나는 빠지라고? 크하하하! 크하하하하하!”
아주 통쾌하게 웃어대는 맥필!
랭커들은 그를 곱지 않은 눈길로 쳐다보았다. 누구든 간에 자기 실패 비웃는데 좋아할 사람은 없었다.
“그만 웃어라.”
“싫은데? 크하하하! <이번 주의 가장 웃긴 판온 순간들>은 잘 봤다.”
“!?!”
거기까지 나왔어!?
“나, 나도 나왔냐?”
“넌 당연히 나왔지.”
“난??”
“네가 가장 인기가 좋다!”
“…….”
오만상을 찌푸리는 랭커들!
그런 랭커들을 비웃으며 맥필은 힘차게 말했다.
“잘 있어라! 난 간다!”
“뭐?!”
“맥필, 가지 마라! 네가 남아서 총알받… 아니, 탱커 역할을 해줘야지!”
“개소리는 저기 가서 해라. 내가 뭐가 아쉬워서 여기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네. 너희들 왔으니 잘 됐다. 난 빠진다.”
랭커들의 추한 모습을 게시판 1위 영상으로 보면서, 맥필은 많은 생각을 했다.
이놈들과 같이 이 요새를 같이 깰 수 있을까?
정답은 ‘아니다’였다.
‘내가 미쳤지.’
처음에는 오합지졸들만 모인, 급조한 요새가 만만해 보였다.
엘프 백작과 기사단들도 잘 안 보이니 손쉽게 박살 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만 보면 볼수록 요새는 튼튼해 보였다. 백작과 기사단은 상대도 못 했는데 벌써 이 정도라면….
‘아주 계륵이야.’
랭커들이 이렇게 모여 있으면 깰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이놈들은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였다.
같이 모아놓으면 서로 견제하느라 더 도움이 안 되는 것들!
괜히 미련 때문에 망설이는 것보다 빨리 빠지는 게 나았다. 다른 랭커들이 왔으니 길드에 핑계 대기도 좋았고.
맥필이 사라지자 분위기는 이상해졌다.
랭커들도 사실 알고 있었다. 지금 저 요새가 만만해 보여도 쉽게 깨기는 어렵다는 것을.
그렇지만….
‘아키서스 장비는 탐난다!’
‘내가 빠지면 저놈이 가질 텐데….’
‘빠져야 하나, 말아야 하나….’
* * *
“점점 빠지는군.”
랭커들이 하나둘씩 눈치를 보다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듣고, 태현은 만족스러워했다.
이 정도면 벡텔 시는 완전히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길드 동맹도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여기부터 털려고 할 것이고, 그때는 또 그때 생각해 봐야 하겠지만 일단은 지켜낸 것!
“다 빠졌대?”
“아니. 둘 정도 남았다는데. 가서 잡지 뭐.”
이제 랭커 두 명 정도는 별로 어려워 보이지도 않았다. 케인은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내 기준이 어쩌다 이렇게 됐냐?!’
“야. 근데 우리 정체 숨기자고 했잖아?”
“그렇지. 저기 도시 광장 가서 ‘헉! 엄청 대박 장소 발견! 수익률 500% 보장! 파티장이 미쳤어요!’라고 하고 와.”
“…….”
케인은 떨떠름한 얼굴로 광장을 향해 움직였다. 그리고 30분 후에 돌아왔다.
구름 같이 몰린 산적 파티들을 데리고!
그들은 모두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태현을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대박 맞아?”
“만약 아니면 널 털어버린다.”
악명 스탯을 보니 아직 산적질을 한 지 얼마 안 되는 애송이였다. 그런데도 이런 훌륭한 태도라니.
태현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도시의 분위기가 이런 놈들을 키워내고 있는 거겠지.
“하하. 이리 와라.”
“…?”
푹푹푹푹푹!
상대를 붙잡고 다짜고짜 공격을 시작한 태현!
“으아아아아악!”
정신 차리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공격을 날려서 HP를 5% 정도만 남긴 태현!
태현은 상대 얼굴 앞에 무기를 멈추고서 말했다.
“다시 지껄여봐.”
“아… 아닙니다.”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분위기!
태현에게서는 거장 산적의 위엄이 흘러넘쳤다.
플레이어 중 한 명이 무심코 악명 스탯을 확인해 주는 <악명 확인의 외안경>을 꼈다.
악명이 높을수록 빨갛게 보이는 안경!
그리고 그는 기겁했다.
“야. 저 사람 악명 스탯이 대체…!”
“왜 그래? 허어억!”
“아, 아니. 저 악명 스탯 갖고 일상생활이 되나?”
“그보다 뭘 했길래 저런 악명 스탯이 되는 거야?”
보면 볼수록 신기한 태현의 악명 스탯!
평생 밥 먹고 산적질만 했어도 저 정도는 힘들 것 같았다.
“잘 들어라. 나는 큰 거만 턴다. 자잘한 건 털지도 않아! 만약 너희들이 내 일에 방해되면 내가 날려 버릴 거다.”
“…….”
꿀꺽-
플레이어 중 한 명이 긴장해서 침을 삼켰다.
“대박을 원하나?”
“원… 원합니다!”
“대박을 원하냐고!”
“원합니다!!”
“좋아. 날 따라와라! 내 명령에만 따르면 대박을 가질 수 있을 거다!”
* * *
“어. 잠깐. 여기는….”
“공격!”
“아니 잠깐만…?!”
이 인간이 간덩이가 배밖에 나왔나!?
아무리 이 근처 모두가 다 산적질을 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가는 수레를 터는 것과 길드 동맹 랭커들이 있는 곳을 직접 터는 건 차원이 달랐다.
후자는 그냥 죽여 달라는 거잖아!
그러나 이미 태현과 태현 일행은 공격을 날리며 들어간 상태였다. 따라온 플레이어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저놈이군.’
태현은 랭커를 보자마자 선공부터 날렸다. 언제나 중요한 건 기선 제압이었다.
정신을 차리기 전에 쳐야 한다!
카르바노그의 창으로 찔리자, 랭커는 움직이려다가 그대로 넘어졌다.
“!!!”
자기 자신도 못 믿겠다는 얼굴!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다니??
“저놈 쓰러졌다! 모두 다 공격해라! <가짜 스킬 이름 외치기>!”
태현은 공격하면서 동시에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른 스킬의 효과가 보였다.
-고대 제국의 영원불멸한 힘!
“??!?!?”
<고대 제국의 영원불멸한 힘>. 일정 시간 동안 받는 데미지를 1%로 줄이는, 판온에서 유명한 사기 스킬 중 하나!
그리고 이 스킬은, <고대 제국의 백기사>로 알려진 최상위권 랭커 스미스의 직업 스킬이었다.
“뭐… 뭐… 뭐??”
그걸 직접 마주한 랭커의 충격은 말할 것도 없었다.
“찔러!”
“이것들이 진짜 봐주니까 미쳤나!”
랭커는 분노해서 바로 대응하려고 했다. 보아하니 산적 놈들의 수준은 기껏해야 고렙 플레이어 정도.
평상시라면 눈도 못 마주칠 놈들이?!
‘무시하고 쓸어버린다!’
이런 놈들이 주는 데미지는 그냥 스킬로 무시하고, 공격을….
“컥!”
[치명타가 터졌습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HP가 줄어서 출혈 상태에 빠집니다.]
공격 사이에 섞여 있는 상상을 초월하는 데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