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32화
“하지만 우리 비교가 좀 잘못된 것 같기는 해.”
“…!”
“하긴. 모든 제작 스킬들이 기계공학과 비교하면 하찮기는 하지.”
“…….”
프이드는 연금술 병으로 대가리를 후려갈기려다가 참았다.
“…잘 들어봐라. 연금술은 절대 하찮은 스킬이 아니니까. 게다가 내가 하는 것은 무려 <악마의 연금술>….”
“에이, 그냥 연금술이 별로인데 거기에 ‘악마의’ 붙인다고 뭐가 달라져? 그런 기만은 좋아하지 않아.”
“맞아. 우리는 포장에 속지 않고 그 안에 담긴 걸 본다고.”
“닥치고 들어!!”
“지금 우리한테 소리 지른 거냐?”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조용히 하고 좀 들어보라는 거지.”
프이드는 차근차근 말하기 위해 애썼다.
반드시 이놈들을 연금술의 세계로 끌어들여서 사루온에게 엿을 먹여주고 말리라!
“자… 연금술은 어렵지 않다….”
“으하암.”
“벌써 지루하네.”
“…….”
* * *
“이 자식들 엘프 맞아!? 드워프나 고블린도 이러지는 않는다!”
기계공학 함정으로 유명한 드워프나 고블린의 요새도 이렇게 집요하게 함정만 깔아놓지는 않았다.
무슨 시간이 남아도는 인간이 함정만 만든 것 같은 집요함!
기껏 파티원들을 데리고 잠입한 랭커들은 발만 디디면 쏟아지는 함정에 학을 뗐다.
하나둘씩 도망치는 랭커들!
“일단 퇴각!”
“공성 병기 하나만 부수고 가자!”
“그래! 부수고 간다!”
입은 부수고 간다고 하면서 벌써 몸은 요새 벽을 건너고 있는 랭커들!
한발 늦은 랭커들은 다른 랭커의 속셈을 눈치챘다.
자기들을 미끼 삼아서 무사히 도망칠 속셈이구나!
“이런 치사한 자식들이!?”
원래 도망칠 때는 한 가지만 지키면 됐다.
같이 온 동료보다만 빠르게 도망치는 것!
-느려지는 발걸음!
-그물 포박!
-방향 혼돈의 저주!
“어? 누가 마법 걸었냐?”
스킬에 당해 발걸음이 멈춘 플레이어들을 보고 태현은 의아해했다.
어떤 기특한 플레이어가 저런 센스를 보여줬지?
“…자기들끼리 거는데?”
“!”
서로 견제하는 파티들! 그걸 본 케인이 주저하며 말했다.
“야… 쟤네… 그냥 사이 안 좋은 거 아닐까?”
“…….”
태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사이가 안 좋은 놈들이었군!
잠입한 파티들은 하나둘씩 발각되고 박살 나거나 후퇴했다.
용케 잠입한 파티들도 태현이 촘촘하게 깔아둔 함정에 걸려 뭘 하지를 못했다.
그 와중에도 랭커들은 용케 하나도 안 잡히고 도망치고 있었다. 파티원들이 다 뒤져나가는 상황에도 고개 한 번 돌리지 않는 철저함!
그 모습에 케인은 감탄했다.
“와. 저런 쓰레기들.”
“저게 랭커지.”
파티고 뭐고 일단 자기 캐릭, 자기 스탯부터 신경 쓰는 철저함!
파티원 열 명보다는 자기 스탯 1을 더 챙기는 게 바로 랭커였다.
“남은 놈들 있나 확인하고 전리품 챙기자.”
태현은 케인과 함께 주변을 돌면서 함정 사이에 떨어진 전리품들을 챙겼다.
케인은 몸서리를 쳤다. 아무것도 없는 구덩이에 전리품들만 떨어져 있는 걸 보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이 갔다.
‘무섭잖아!’
* * *
‘내 승리군.’
잠입한 파티들이 박살 나서 도망치고 있는 사이, 한 랭커가 유유히 하늘 위를 걷고 있었다.
마법사 제이넨!
아까 하나둘씩 발각되고 있을 때 제이넨은 가장 먼저 파티를 버리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다들 우왕좌왕하는 동안 비교적 여유롭게 하늘을 날아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으니까.
-으하암. 정말 날아오는 바보가 있을까? 없을 것 같은데.
-난 주인의 말을 믿는다.
용용이와 흑흑이는 요새 벽 위 하늘을 빙글빙글 돌며 하품을 했다.
-아, 아니. 내가 안 믿는다는 게 아니라….
흑흑이는 급히 변명을 했다. 설마 이 자식 이르는 건 아니겠지?
-그, 정상적인 모험가라면 하늘로 날아오지는 않지 않을까~ 하는 거지. 피할 수도 없고 말이야.
그 순간 둘의 감각에 날아오는 플레이어 하나가 걸렸다.
-…!
-…!
흑흑이는 그걸 보고 깜짝 놀랐다. 정말 멍청한 모험가가 있긴 있구나!
-간다!
-잠, 잠깐. 주인이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그냥 침입자 있으면 보고부터 하라고….
용용이가 말렸지만 흑흑이는 신이 나서 달려들었다. 방금까지 태현의 뒷담 비슷한 걸 해서 더욱더 필사적이었다.
-마법 해제의 포효!
“으아아아아아?!”
갑자기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블랙 드래곤의 모습에 제이넨은 기겁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눈빛만 번쩍였다.
[높은 곳에서 낙하합니다! 부딪히면 크게 다칠 수 있습니다.]
‘안 돼!’
공중 부양 마법부터 각종 걸린 마법들이 날아가자, 제이넨은 본능적으로 수습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게 끝나기도 전에 흑흑이는 제이넨 앞에 서서 덤벼들었다.
-공중 부… 억!
와드득!
-잘 가라! 멍청한 모험가 놈아!
“항… 항복! 항복! 잘못했다고! 항복!”
-응?
흑흑이는 당황했다. 항복이면 뭘 어떻게 해야 했더라?
그건 딱히 지시를 내린 것 같지 않았는데….
‘그냥 죽이면 되겠지?’
흑흑이는 제이넨을 물은 어금니에 힘을 주려고 했다.
“잠깐. 너 김태현이 데리고 다니던 펫 아냐?”
용용이와 흑흑이. 겉모습도 그렇고 여러모로 강렬해서 한 번 보면 잊기 힘들었다.
태현을 상징하는 두 펫!
-…아, 아닌데?
“맞잖아? 너 같은 펫이 또 어디 있어.”
-나 펫 아니거든? 죽어라.
“안 돼! 죽이지 마! 죽이지 말라고!”
* * *
“그래서 정체를 들키고 데려오셨다?”
-죄송합니다….
흑흑이는 머리를 땅에 박고 있었다. 태현은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내가 침입자 보면 와서 알리랬지 가서 잡으랬냐? 그냥 밑에서 화살만 쏴도 쉽게 잡았겠는데.”
오싹!
제이넨은 몸을 떨었다. 생각해 보니 그렇게 되면 항복할 틈도 없이 로그아웃됐을 것 아닌가.
“김, 김태현! 난 너 팬이야.”
“그래. 고마워. 잘 가. 들킨 게 아쉽지만 뭐 어쩔 수 없지.”
태현이 있다는 걸 몰라야 길드 동맹들이 신경을 덜 쓰고, 더 무모하게 행동할 것 같아서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
이제 그거까지는 안 되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뭐 뜯어낼 만큼 다 뜯어냈지.’
“안 돼! 안 돼!”
제이넨은 필사적으로 외쳤다.
“진짜 팬이라니까! 네 굿즈도 샀어!”
태현도 놀랐다.
“그런 게 있어?”
“비공식적으로 파는 게 있을 걸요… 그보다 저 사람 죽이죠.”
“죽여요.”
“죽입시다!”
이다비, 유지수, 정수혁까지 죽이자고 입을 모아 외쳤다.
웬 처음 보는 여자 랭커가 태현 팬이라고 하는 모습이 눈꼴사나웠던 것이다.
“길드 동맹 소속인데 팬은 무슨 팬! 저건 가짜입니다!”
정수혁은 열렬하게 외쳤다. 제이넨은 흠칫했다. 어떻게 알았지?
“진짜 팬이라니까? 팬을 이렇게 대해도 돼?!”
“내 팬들은 폭탄이 되는 걸 즐기던데?”
태현은 그렇게 말하고 제이넨에게 다가갔다. 제이넨은 기겁해서 고개를 흔들었다.
“살려줘! 나 지금 진행하고 있는 퀘스트가 있어서 죽으면 안 된단 말이야! 살려주면 다신 안 올게!”
그 필사적인 모습에 케인은 살짝 마음이 약해졌다.
“좀 불쌍한….”
“하나도 안 불쌍합니다.”
“별로 안 불쌍한데요.”
“안 불쌍해요.”
“…그, 그래?”
순식간에 케인을 향해 쏟아지는 공격!
태현도 거기에 동의했다.
“맞는 말이야. 원래 랭커들은 불쌍한 척을 되게 잘해. 판온 1 때 많이 겪어봤었지.”
-네가 김태현이냐? 아주 잘 걸렸다. 내가 널 어떻게 할지 말해주지. 일단 널 한 번 죽인 다음에, 이 리스폰 추적 주문으로 네가 어디서 부활할지 찾고서 또 죽일 거야. 기분이 풀릴 때까지 한 다음 네가 바칠 장비를 보고 화를 풀지 생각해 주지.
그리고 30분 후.
-잘못했습니다 엉엉! 살려주십시오!
“생각해 보면 케인도 확실히 랭커의 재능이 있었어.”
“어? 왜 갑자기?”
케인은 쑥스러워했다. 태현이 그를 칭찬해 줄 줄이야.
“아니. 나한테 그렇게 털리고 나서 나한테 도와달라고 했었잖아. 그 정도는 뻔뻔해야 하거든.”
“…….”
30분 전까지 말했던 걸 잊고 머리를 박을 수 있어야 랭커가 가능!
태현과 케인의 대화를 들으면서 제이넨은 식은땀을 흘렸다.
사실 제이넨은 판온 1 때 태현한테 당한 플레이어 중 하나였던 것이다.
그것도 지금 태현이 말하는 것과 비슷하게!
-호호. 누가 난리를 친다고 해서 왔는데 대장장이야? 무릎부터 꿇을래? 무릎을 꿇다니. 잘했어. 이제 머리를 땅에 박… 콰콰콰콰쾅!
30분 후.
-으흑흑!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설마 기억하고 있진 않겠지?’
물론 태현은 기억하지 못했다. 제이넨은 그 기색을 보고 안심했다. 그리고 동시에 화도 좀 났다.
‘생각해 보니 이 새끼… 그걸 까먹는 게 말이 돼?’
태현 입장에서는 제이넨 같은 플레이어가 너무 많아서 대충 다 넘긴 것이었지만, 맞은 입장에서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제이넨이라고 했나? 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내, 내가 길드 동맹에서 유명해서 그래.”
“그래? 이상하다. 어쨌든 네가 내 팬이든 말든 그건 중요한 게 없고… 자. 우리 같이 사진이나 찍자.”
“?”
태현은 친근하게 제이넨 옆에 서서 팔짱을 꼈다. 그리고 사진을 찍었다.
“??”
“아. 뭘 한 거냐고? 나중에 길드 동맹 쪽에 뿌리려고.”
“…야 이 개ㅆ!”
“역시 연기가 맞았군.”
제이넨은 아차 싶었다. 옆을 보니 살벌한 눈빛들이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죽일 거야!’
‘죽일까요.’
‘끼고 있는 마법사 장비가 좋아 보입니다.’
살기로 공기가 팽팽해지자 제이넨은 당황해서 상황을 수습하려고 했다.
“흥분해서 욕이 나온 거야!”
“저도 흥분해서 화살 나갈 것 같은데 괜찮죠? 괜찮죠?”
“잠시만 참아. 에이넨. 길드 동맹 쪽에 김태현 절친으로 알려지기 싫으면 여기 온 이유부터 시작해서 지금 쟤네들이 뭐하고 있는지 탈탈 털어놔라.”
“난 제이넨인데….”
“뭐?”
“아, 아니야. 에이넨 할게. 근데 쟤네들 좀 치워주면 안 돼?”
제이넨은 뒤에서 노려보는 태현 일행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까까지는 불쌍하게 여기던 케인도 ‘속았다’는 눈길로 노려보고 있었다.
“김태현인 거 알았으면 여기 오지도 않았을 거라고! 그렇게 좀 그만 노려봐!”
제이넨은 유지수나 이다비가 왜 노려보는지 착각하고 있었다.
친근하게 사진을 찍어서였지만, 제이네은 그냥 경쟁 길드의 랭커여서로 착각한 것이다.
* * *
“…그걸 믿으라고? 지수야. 장전해라.”
“네!!”
“진짜야!! 진짜라고!!!”
제이넨은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좀 믿어줘라 좀!
“아키서스 관련된 장비가 나타나서 그걸 얻으려고 싸웠고, 그 와중에 쑤닝이 하나는 먹튀했고, 여기 오긴 왔는데 단합이 안 되어서 각자 놀았다… 너무 개소리 같은데… 그렇게 멍청할 수가 있나?”
“…….”
제이넨은 속으로 불평했다. 정말로 그렇게 된 걸 그녀보고 어쩌라는 거야?
태현은 생각했다.
확실히 보여준 추태를 떠올리면 제이넨의 말이 타당하기는 했다. 너무 추해서 그렇지.
“저기. 아키서스 관련 장비도 포기하고 여기서 물러날 테니까 나 좀 풀어주면….”
“뭐 그럴까?”
“!”
“!!!”
“!!!!!”
말한 제이넨도 놀랄 정도의 친절!
“선배님! 죽입시다! 장비도 좋아 보이는데!”
무심코 뒤에 나온 정수혁의 본심! 태현은 그걸 보며 생각했다.
‘저 녀석도 참 많이 변했어.’
예전에는 훨씬 더 순했던 것 같았는데….
사실 옆에는 더 격해진 인물이 하나 있었지만 태현은 눈치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