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30화
잘되는 집은 하나로 뭉치고, 안 되는 집은 더 나뉘어서 싸웠다.
길드 동맹은 요즘 왕국도 먹었겠다, 즉위식도 했겠다, 에랑스 왕국에 첫 영주도 가졌겠다, 전형적인 잘되는 집!
그래서인지 길드 동맹 랭커들이 저렇게 뭉친 것 같았다.
태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여길 그냥 떠날 수는 없겠는데. 한 번 막아주고 가야겠어.”
어떻게 만든 무법자들의 도시인데 그냥 떠날 수는 없었다.
여기에는 산적, 해적, 기타 등등 수많은 무법자 플레이어들의 꿈과 희망과 생존이 걸려 있는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물러날 수 없다!
“너 방금 되게 이상한 소리 한 것 같은데.”
“그래?”
* * *
“아이고. 맥필! 그 건강하던 네가 이렇게 골골대다니. 내 마음이 다 아프다. 그러니까 이제 좀 쉬어라.”
“맥필 님! 평소 존경했었는데 이렇게 되시다니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제가 왔으니까요. 그러니 이제 좀 쉬십시오.”
“맥필. 난 저놈들처럼 가식적으로 말하지 않겠다. 그냥 쉬어라.”
“…….”
임시로 만든 요새 안에 누워 있던 맥필은 벌떡 일어섰다.
길드 동맹의 랭커들은 걸어 다니는 아드레날린이었다.
보는 순간 혈압이 올라가고 기운이 펄펄 치솟게 만드는 놈들!
“이 새끼들이 부를 때는 가만히 있다가 늦게 와서 한다는 말이 뭐? 빠지라고?”
“아니. 빠지라는 게 아니라~ 그냥 쉬라는 거지. 힘들어 보여서. 어이구. 눈에 다크서클 생긴 거 봐.”
“맞습니다. 그냥 쉬시죠.”
“니들 속셈을 모를 줄 알아!? 있었던 일 다 들었다!”
맥필은 고함을 질렀다.
대박 장비를 혼자 독점하려고 저렇게 나오는 놈들이라니.
랭커는 뻔뻔하고 오만하고 독선적이고 이기적인 놈들만 될 수 있다지만 정말 새삼스럽게 쓰레기 같은 놈들이었다.
“절대 양보할 생각은 없다.”
“너 지금 페널티 때문에 골골대는 것 같은데?”
“내일이면 페널티 끝나!”
<야만족의 근성>이라는 희귀한 레어 스킬 덕분에 목숨은 건졌지만, 페널티로 전체 능력치가 엄청나게 하락한 상태로 골골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랭커들은 서로 쳐다보며 귓속말을 보냈다.
-지금 죽이면 안 되냐?
-아무리 그래도 뒷감당이….
“이 새끼들이 지금 누구를 그런 눈빛으로 보는 거야?!”
“무, 무슨 소리야? 우리가 뭘 어떻게 봤다고?”
“맞습니다. 맥필 님. 사람을 그렇게 모는 건 그만둬 주십시오.”
* * *
“들어보니 안에서 연신 떠든다고 하네요.”
“으음. 정말 손발이 잘 맞나 보군. 진짜로 방심하지 말아야겠다.”
“넌 원래 방심 안 하잖아….”
밖에서 들릴 정도로 연신 이어지는 회의. 단합의 증거였다.
태현은 고전을 예감했다.
단결된 랭커들의 전력을 상대하는 싸움.
태현은 언제나 이길 수 있는 싸움을 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상대를 분열시키고, 함정에 빠뜨리고, 유리한 전장으로 끌어들이고….
그렇기에 압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유리한 싸움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가끔은 승패를 알 수 없는 싸움에 뛰어들어 최선을 다해야 할 때도 있는 법!
‘뭐 내 몸 하나 건져서 도망칠 수는 있으니까… 최선을 다해봐야겠군.’
길드 동맹 랭커들이 듣는다면 기겁을 할 소리였다.
애초에 여기 태현이 있다는 걸 모르는 그들!
태현을 상대해야 했다는 걸 알았다면 장비든 뭐든 몇 번은 다시 고민했을 것이다.
“어떻게 상대할 생각이세요?”
“일단 겔렌델을 설득해서 엘프 군대를 준비시키고….”
겔렌델이 이끌고 온 엘프 기사단은 지금 벡텔 시에서 가장 큰 전력 중 하나였다.
하나하나가 레벨 300을 넘기는 강력한 NPC들!
이런 고위 NPC들은 각 왕국을 지탱하는 힘이었고, 플레이어들이 왕국 내에서 까불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이 엘프 기사단은 겔렌델을 따라 벡텔 시 근처 산맥을 헤집고 있었다.
-오크를 찾아와라! 오크 머리통을 갖고 오란 말이다!
겔렌델의 명령 때문!
덕분에 엘프 기사들은 플레이어들한테까지 일일 퀘스트를 내렸다.
<오크를 찾아라-겔렌델 엘프 기사단…>
물론 험난한 산맥을 넘고 넘어 쭉 나아가야 나오는 오크들이 근처 산 뒤진다고 나올 리는 없었다.
퀘스트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은 쓴맛만 잔뜩 보고 포기해야 했다.
-이상하다. 저번에 싸울 때 오크들 나타나지 않았었냐?
-그치? 너도 봤었지? 나도 봤었는데… 왜 안 보이지?
플레이어들은 포기해도 NPC는 포기할 수 없는 법. 지금도 엘프 기사들은 삼삼오오 산을 타며 오크를 찾고 있었다.
“얘네들부터 데리고 와야겠지. 그건 걱정 마. 겔렌델은 설득하기 쉬워.”
미친놈이지만 어떻게 미쳤는지만 알면 설득하기 쉬웠다.
계속 오크를 잡지 못하면 언젠가는 태현의 거짓말도 들키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태현은 친밀도와 공적치가 엄청나게 높은 상태였던 것이다.
“그리고 주변 플레이어들도 다 모으고 싶은데.”
“어렵지 않나요?”
“어려울 것 같은데요….”
이다비와 유지수가 동시에 난색을 표했다.
이 주변 플레이어들은….
대부분이 다 산적질에 몰두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원흉은 태현이었다.
“음. 나도 사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단 말이지. 길드 동맹도 바쁘고 신경 쓸 곳 많으니, 이런 외진 곳의 항구는 더 이상 밀고 들어오지 않으면 내버려 둘 줄 알았고.”
태현의 예상은 거의 맞아떨어졌다. 그 예상을 바꾼 게 태현이어서 그렇지!
“그래서 플레이어들이 좀 흩어져서 따로 놀아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사람이 타락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었다.
여기 처음 발을 디딜 때만 해도 악명 스탯이 거의 없던, 순진무구한 덩글랜드 왕국의 플레이어들이 지금은 탐욕으로 눈이 붉어진 약탈자 플레이어들이 되어 있었다.
예전이면 ‘원정대 집합!’이라고 하면 모였겠지만 지금은 ‘뭐? 그것보다 산적질이 더 중요해!’라고 할 가능성이 컸다.
“감성에 호소해야지 뭐.”
“어떻게요?”
“여기가 함락되면 여러분들은 더 이상 산적질을 하기 힘들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
“…….”
감동적이긴 했지만 뭔가 미묘하게 틀린 것 같은 연설!
그 순간 밖에서 엘프 보초병이 고함을 질렀다.
“공격이다! 공격이다!!”
“뭐? 벌써?”
태현은 깜짝 놀라서 일어섰다.
길드 동맹의 랭커들이 왔다지만 이렇게 빨리 공격에 들어올 줄이야.
길드의 플레이어들을 모으고, 공격에 필요한 아이템들을 지급하고, 미리 합을 맞추는데 꽤 시간이 걸릴 텐데?
공성전은 급하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공격하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준비가 필요했다.
길드 동맹은 그만큼 준비가 되어 있었단 말인가!?
‘아니. 이 자식들 벡텔 시에 뭐 황금이라도 묻어놨나? 왜 이렇게 철두철미하지?’
태현은 재빨리 밖으로 나가 망루 위로 올라갔다. 저 멀리서 플레이어들이 우르르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왜 여러 갈래로 나뉘어서 오냐? 그것도 시간 차로?’
공격할 때는 보통 동시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서 한 번에 들이쳐야 했다.
그래야 수비하는 쪽이 상대하기 어려우니까.
그런데 지금 상대는 소규모 파티로 나뉘어서 오고 있었다. 그것도 동시가 아니라 무질서하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내가 먼저 간다!
-비겁하게 새치기를! 내가 먼저 갈 거다!
-저놈 말에 슬로우 걸어!
-예? 정말 걸어도 됩니까!?
마치 자기들끼리 다투는 것 같은 모습!
태현은 그 기괴한 모습에 당황했다.
‘뭐지? 함정인가? 새로운 전략인가?’
그가 모르는 사이 새 공성전 방법 같은 게 나왔나?
일단 태현은 정석적인 대응에 나섰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나 볼 생각이었다.
“공성 병기 앞으로!”
다른 짓을 엄청나게 많이 하긴 했지만, 그사이 공성 병기도 차근차근 만든 태현이었다.
공성용 창 발사기, 공성용 투석기들이 요새 벽 앞에 드르륵거리는 소리를 내며 장전됐다.
아키서스의 화신 직업을 가진, 압도적인 행운 스탯을 갖고 있는 태현이 만든 공성 병기.
거기에 숙련된 엘프 사수들과 타이럼 사냥꾼들이 직접 조준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확도!
[아키서스의 화신…]
[엄청나게 높은 행운 스탯…]
[폭군의 지휘…]
[최고급 전술…]
[……]
각종 보너스가 미친 듯이 겹쳐지고 겹쳐졌다.
“발사!”
파파파팍!
먼저 거대한 투창들이 발사됐다. 태현 팀이 던전에서도 종종 쓰는 투창!
물론 갖고 다닐 필요가 없는 요새에서는 더 크고 무겁게 만들었다. 끝에는 독까지 발랐다.
슈우욱-
“창 날아옵니다!”
“공성전 한두 번 해보냐! 빠르게 달려! 안 맞는다!”
랭커들은 자신만만했다. 그들이 데리고 온 각 파티는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파티였다.
공성전 참가 경험도 있었고, 덕분에 저런 공성 병기 따위는 전혀 겁나지 않았다.
공성 병기는 데미지는 무지막지하지만, 명중률은 엄청나게 낮은 무기!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을 때 거기다 쏘아서 느리고 운 없는 놈을 맞추거나, 아니면 움직이지 못하는 건축물들을 때려 부술 때 쓰는 무기였다.
여기는 허허벌판. 그냥 빠르게 달리면 저런 공격 따위는 쾅!
“으아아아악!”
“?!”
옆에 말 타고 달려가던 플레이어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날아가자, 파티장을 맡은 랭커는 깜짝 놀랐다.
“야, 괜찮냐?!”
[지금 귓속말을 건 상대는 로그아웃 상태로…]
일격에 로그아웃!
그 위력에 랭커는 자기가 맞지 않았는데도 등골이 서늘해졌다.
“움직여! 재수가 없었던 거야!”
“맞, 맞아! 재수가 없었던 거겠지!”
슈우욱 콰직!
그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두 번째 희생자가 나왔다.
어마어마한 명중률!
마치 활로 저격하는 수준의 명중률이었다.
“…….”
“…….”
“맥필 이 개자식! 이런 말은 없었잖아!”
랭커는 맥필을 욕했다.
맥필은 자기가 다 회복하고 나서 같이 공격하자고 했다. 맥필의 지휘하에.
물론 랭커들이 그걸 받아들일 리 없었다.
-정신 나갔니?
-정신 나갔냐?
-정신 나가셨습니까?
-이런 개XX들이…! 그래, 어디 한번 알아서 해봐라!
당연히 맥필은 정보를 공유해 주지 않았다.
게다가 태현은 그사이 엘프 원정대 창고를 탈탈 털어가며 공성 병기 숫자를 엄청나게 올린 상태.
“후퇴! 후퇴!”
“앗. 하시다가 돌아섰다! 지금이 기회다! 달려라!”
“잠깐, 지금 창 맞고 죽은 거 아닙니까?”
“그건 저놈이 멍청하고 재수가 없어서 그런 거지! 설마 또 맞겠냐! 벼락도 한 번 친 곳에는 다시 안 친다!”
먼저 간 랭커 파티가 돌아오는데도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달려가려는 다른 랭커 파티!
태현 입장에서는 날로 먹는 셈이었다.
“앗. 심지어 저놈들 오크잖아?”
태현은 눈을 빛냈다. 두 번째로 오는 랭커 파티는 대다수가 오크였다.
저놈들 잡으면 겔렌델이 아주 좋아하겠다!
“재장전! 발사!”
* * *
“그냥 쟤네가 멍청한 거 아냐??”
케인은 드디어 진실에 근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 공격은 그것밖에 답이 없었다.
그러나 태현은 완고했다.
“아니야. 저게 함정일 수도 있어.”
“저게 함정이라고?”
“저렇게 허접한 모습을 보여줘서 우리를 방심하게 한 다음 몰래 잠입하는 거지.”
“…그런 방법이!”
케인은 감탄했다.
확실히 그건 말이 됐다. 그렇지 않으면 저런 추한 모습이 말이 되나?
길드 동맹에서 나온 랭커들인데!
“잠입에 대비해서 주변에 불을 최대로 밝히고, 엘프 정찰병들과 플레이어들에게 말을 해뒀다. 아. 그리고 공성 병기 근처로는 가지 마라.”
“…?”
“거기에 내가 함정 설치해놨으니까. 연계로 해놔서 진짜 재수 없으면 뭐 하기도 전에 죽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