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27화
“저, 저는 이미 충분히 재밌어서 만족했는데요.”
이건 진심이었다.
이제 재밌는 건 충분해! 그냥 로그아웃하게 해줘!
태현이 재밌다고 말하는 게 기대되기보다는 슬슬 무섭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영원히 못 나가는 거 아닐까?
그러나 아직 정신 못 차린 한 사람이 솔깃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뭔데요?”
“야!”
“그걸 물어보면 어떡해!”
“아, 아니. 궁금하잖아! 이게 아무 때나 올 수 있는 기회도 아니고.”
아직 정신이 덜 든 한 사람!
다른 둘은 매섭게 그를 노려 보았다.
“이번에는 무려 랭커와 싸우는 기회를 제공해드립니다.”
“랭….”
“…커??”
셋은 당황해서 서로 쳐다보았다.
우리들이 랭커와 싸울 수준이 되나?
“무리죠? 우리가 어떻게….”
“랭커도 별거 아닙니다. 두들겨 맞다 보면 로그아웃이에요. 랭커 하나 잡으면 몇 주일은 계속 자랑할 수 있지 않겠어요?”
순간 셋 앞에 미래가 보였다.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거기서 딱 치니까 랭커가 쓰러지더라고. 랭커 별거 아니라니까?
-와! 부장님 대단해요!
-흠흠. 내가 좀 대단하지.
친구, 가족, 부하 직원들한테 계속 자랑할 만한 건수!
또 이런 기회가 언제 오겠는가?
“할게요!”
“하고 싶습니다!”
방금까지 태현한테 붙잡혀서 로그아웃하지도 못했던 건 잊어버리고 새로이 의욕을 불태우는 사람들!
태현은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케인 같은 사람들 같으니라고!
* * *
쾅!
날아오는 공성 병기는 피하고, 화살들은 스킬들로 막아내고, 맥필과 고렙 플레이어들은 바로 요새 벽에 붙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그들은 반쯤 만들어진 벽을 때려 부수고 뛰어넘었다.
파파파파팍!
“크하하하! 어딜!”
맥필은 호쾌하게 웃으며 튕겨냈다. 이럴 때마다 야만전사 직업을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잘한 원거리 공격 따위는 그냥 무시하고 쭉쭉 들어갈 수 있는 강력함!
“…!”
그 순간 눈과 갑옷 사이의 빈틈들을 노리고 화살들이 날아왔다. 이제까지보다 몇 배는 빠르고 날카로웠다.
-함성 방패!
맥필은 고함을 질러 화살들을 막아냈다. 저건 몸으로 맞으면 위험할 것 같았다.
유지수와 타이럼 사냥꾼들이 쏜 화살들!
유지수는 혀를 찼다. 멋있는 모습을 보여줄 기회였는데 맥필이 막아낸 것이다.
“감히 날 쏴! 죽여 버린다!”
“내가 할 소리거든?! 그냥 맞기나 해!”
“맞아, 맞아!”
타이럼 사냥꾼들도 유지수의 말에 호응했다. 원시적인 말로 남 도발하는 데에는 이골이 난 그들!
“아주 야만적인 놈이구나! 가죽 냄새가 여기까지 난다!”
“네가 사는 곳에는 변변찮은 목욕탕 하나 없는 모양이구나!”
“네 마을 주변에는 토끼밖에 없나 보다!”
‘…?’
유지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타이럼 사냥꾼들이 욕하면서 말하는 게 어디서 많이 들어본 곳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맥필한테는 꽤 효과적이었다.
“이 궁수 새끼들이!”
그 순간 케인이 나타나서 맥필에게 덤벼들었다.
카카캉!
맥필은 케인과 공격을 몇 번 교환하자마자 깨달았다. 상대는 결코 만만한 저렙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넌 누구냐!? 너 같은 플레이어가 이름이 없을 리가 없을 텐데.”
“…….”
“누구냐니까!”
“아, 시끄러워!”
케인은 짜증 내며 무기를 휘둘렀다. 안 그래도 어려운데 태현이 까다로운 명령을 내린 것이다.
-가능하면 정체는 숨기자.
‘아오, 그걸 말이라고.’
평범한 스킬들만 써서 버티라는 것 아닌가.
캉, 캉, 캉-
탱커 계열 직업들의 싸움은 화려하기보다는 묵직했다. 그렇다고 보는 맛이 없는 건 아니었다.
사람에 따라서는 오히려 더 박진감 넘치는 싸움인 것!
맥필도 흥이 올라서 무기를 연신 휘둘렀다.
“어디 한번 계속 싸워보자!”
그러나 맥필이 원하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태현이 한 명씩 사람을 보낸 것이다.
“맥필! 덤벼라!”
“넌 뭔… 어디서 별….”
맥필은 어이가 없었다. 랭커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데 뭘 믿고 덤비는 거야?
그러는 사이 케인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맥필은 눈치채지 못했다.
“한 방에 쪼개주마!”
콰아아아아앙!
“커허어어억!”
맥필은 괴성을 질렀다. 갑자기 상대 중심으로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맥필은 처음에 마법에 당한 줄 알았다.
‘마법사가 어디 있나?!’
“맥필, 다음은 나다!”
“?!”
한 번 당하니 정신이 없었다. 맥필은 본능적으로 막으러 들었다. 그러나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냥 앞에 와서 폭발하는데 막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콰콰콰쾅!
“크아아악…!”
“맥필은 내가 잡는다!”
세 번째!
‘잡았나? 아니, 저 자식 안 죽었네?’
태현은 감탄했다. 폭탄 세 방을 직격했는데 아무리 랭커라도 버티다니.
‘특별한 스킬이 있는 모양이군.’
태현에게 부활 스킬이 있듯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있을 수 있었다.
보아하니 맥필은 거의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간신히 버티고 서 있었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게 스킬 페널티 같았다.
“도, 도와줘!”
맥필의 비명에 다른 길드원들이 기겁해서 달려왔다. <야만족의 근성>이라는 스킬이 없었다면 즉사였다. 이 스킬 덕분에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이다.
태현은 목청을 가다듬었다. 최고급 화술 스킬과 최고급 전술 스킬의 화려한 조합을 보여줄 시간이었다.
“아, 아, 아! 저기 맥필이 도망친다! 저기 맥필을 잡아라! 잡으면 대박이다!”
넓고 넓은 전장 전체에 쏙쏙 들어오는 목소리!
거기에 최고급 전술 스킬로 인해 수비 플레이어 전원에게 버프가 들어갔다.
[<폭군의 지휘> 버프를 받습니다!]
[이동 속도가…]
[……]
그러자 뒤에서 숨어 있던 플레이어들도 상황을 깨닫고 재빨리 튀어나왔다.
“잡아라!!”
“저놈 잡아라!”
맥필은 간신히 요새 밖으로 도망쳤다. 같이 온 길드원들이 필사적으로 막아서였다.
“맥필 님. 어쩌다가?!”
“시끄러워… 스킬 페널티 끝나려면 좀 걸린다. 버티고 있어봐.”
“적 엘프들이 나옵니다!”
“…!”
맥필의 공세가 실패로 돌아가자, 안쪽에서 하얀 말들을 탄 엘프 기사들이 나타났다.
* * *
맥필과 다른 플레이어들이 당황한 것처럼, 태현도 당황했다.
“아니, 공작님?!”
“왜 그러나?”
“왜 나오신 겁니까? 적들이 알아서 공격하다가 무너지고 있는데….”
“방금 공격하다가 도망치지 않았나? 이제 오크를 사냥해도 되겠지! 자! 오크 머리통을 부수러 가자!”
“…….”
미친놈은 가끔 태현의 예상마저 벗어나기 때문에 미친놈이었다.
태현은 갈등했다. 지금 겔렌델이 산을 올라 오크들을 치면 맥필과 길드원들이 뒤를 칠 텐데….
‘버틸 수 있나?’
그러나 태현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엘프 기사들이 등장하자 길드 동맹이 먼저 다시 돌격한 것이다.
“?!”
“기사들 돌격하면 버프 붙어서 큰일 난다! 붙어서 돌격 못 하게 해!”
어떻게든 붙어서 난전으로 끌고 가려는 길드 동맹 원정대!
공성 병기도 피하고, 기사들 돌격도 막으려는 속셈이었다. 요새에 붙어서 싸우면 그런 건 피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겔렌델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을 뿐이다.
“이런 벌레 같은 놈들이! 비켜라! 오크 머리통 따러 가야 한다!”
“오크 머리통? 헉. 우리 길드원 중에 누가 오크더라?”
“위안 님이 오크였지.”
“도망쳤는데도 쫓아가서 머리통을 따겠다고? 저 엘프 공작은 대체 우리한테 왜 원한을 가진 거야?!”
알아서 오해해 주는 길드 동맹!
겔렌델은 닥치는 대로 무기를 휘둘러 길드원들을 쳐냈다. 본인의 레벨도 높으니 길드원들은 쩔쩔거리며 물러서는 게 고작이었다.
길드원들은 차라리 나았다. 길드원들이 데리고 온 왕국 병사들의 상태가 더 안 좋았다.
[왕국 병사들의 사기들이 내려갑니다.]
[왕국 병사들의 사기가…]
난전을 벌일수록 내려가는 사기! NPC들은 플레이어들과 달리 사기가 일정 수치 이하로 내려가면 탈주를 시작했다.
[왕국 병사 4 백인대가 무너집니다!]
그리고 위에서 김태산은 그걸 아주 흥미진진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태현이 가르쳐 준 방식으로 오스턴 왕국을 돌아다니며 강도짓을 했던 그들!
“지금이다! 뒤를 치자!”
“와아아아아아아!”
오크들은 고함을 지르며 산에서 뛰쳐 내려오기 시작했다. 늑대들을 탄 오크 전사들이 가장 먼저 있었고, 그 뒤에는 사디크의 마수를 탄 오크들도 몇몇 있었다.
길드원들은 ‘너희가 왜 그걸 타고 나와?’라고 물을 정신도 없었다. 그 뒤에서 더 충격적인 놈들이 나왔던 것이다.
거인족들이 집채만 한 바윗덩이들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
“비켜! 비키란 말이야!”
겔렌델은 눈을 붉히며 날뛰었다. 물론 그런다고 길드 동맹이 비킬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뒤에 오크들이 날뛰는데 어디로 비킨단 말인가!
신나게 뒤를 두들겨 패던 오크들은 때가 되자 재빨리 철수하기 시작했다.
간신히 길드원들을 치우고 길을 만든 겔렌델은 분노했다.
“이 비겁한 오크 놈들아! 이리 와서 내 칼을 받지 못할까!”
“싸우자는데요? 싸울까요?”
“참자. 아직 싸우지 말아 달란다.”
“형님은 맨날 그렇게 말해도 태현이 말에는 꼭….”
“너 죽을래?”
“아무것도 아닙니다.”
* * *
길드 동맹이 후퇴하자, 그사이 엘프 측 플레이어들은 일차로 요새를 완성시켰다.
예전에 오스턴 왕국에 수많은 클랜이 각자 요새나 마을 하나씩 잡고 영지전을 펼칠 때가 있었다.
결국 최종 승자는 압도적인 숫자의 길드 동맹이었지만….
이렇게 다시 새롭게 경쟁자가 나타난 것이다.
“계속 싸울 수 있으려나?”
“겔렌델이 지원을 해주면 될 거 같기도 한데….”
“뭐, 하다 막히면 돌아가면 되겠지?”
예전과 이번은 사정이 달랐다.
엘프 측 플레이어들은 하나의 길드 소속도 아니었고, 겔렌델이 내주는 퀘스트 때문에 참가한 게 대부분이었다.
영지를 꼭 목숨 지켜서 붙어 있을 이유도 없는 데다가, 퀘스트 보상이 적거나 하기 어려웠지만 떠나면 그만!
게다가 겔렌델은 길드 동맹이 아닌 바로 우르크로 쳐들어가고 싶어 했다.
이런 이들을 조율해서 어떻게든 길드 동맹과 싸우게 만들어야 한다!
태현은 필사적으로 계획을 짜냈다.
[카르바노그가 역시 행운의 신이 아니라 음모와 모략의 신이라고…]
카르바노그는 무시하고, 태현은 일단 일차적으로 플레이어들을 움직이게 만들기로 했다.
“여러분. 주변에 산적질하러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응?”
“여기만 있지 말고, 나가서 산적질로 아이템도 좀 챙기고 하자구요.”
“어… 그러면 악명 높아지지 않나?”
이게 바로 정상적인 플레이어들의 반응!
보통 악명 수치가 높아지는 걸 꺼리는 게 당연했다. 악명이 높아지면 여러모로 플레이가 불편해졌으니까.
“그 정도는 괜찮아요. 그 정도 높아진 거 가지고는 아무 지장도 없다니까요.”
“현상금도 걸릴 테고….”
“어차피 오스턴 왕국 현상금이잖아요. 올 일 없지 않습니까?”
“…….”
될 때까지 설득하는 악마의 목소리!
플레이어들은 하나둘씩 솔깃해하기 시작했다.
“들어보니 여기 마을은 벽도 없어서 들어가기 쉽습니다. 그냥 가서 챙기고 오면 됩니다.”
“여기는 들어보니 길드 동맹이 옮기는 수레가 지나가는 곳인데 파티 두셋이 힘을 합치면 그냥 털어먹을 수 있대요.”
“근데 그쪽은 뭐 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잘 알… 사라졌네?!”
할 말만 하고 사라지는 태현!
태현은 그렇게 고렙 파티들을 찾아가서 산적의 씨앗을 뿌렸다.
너도 산적질해라! 엄청 재밌다!
김태산과 아저씨들한테만 전파한 게 아닌 선량한 일반 플레이어들도 산적질에 끌어들이는 태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