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될놈이다-725화 (725/1,826)

§ 나는 될놈이다 725화

-아니, 진짠데요.

-너 이놈. 우리 회사 광고도 그렇게 광고하진 않아. 허위광고도 정도가 있지!

그렇게 말은 해도 유 회장의 마음은 벌써 반쯤 기울어진 상태였다.

특수 제작 낚싯대라니!

과연 그 효과가 어떨까?

-그래서 정말 뭐하려고 빌리는 건데?

-아. 엘프들하고 플레이어들을 옮겨야 하거든요.

-흠….

별로 어려워 보이지는 않는데?

왕국 플레이어들이 기본적으로 다 낚시꾼이다 보니, 갖고 있는 크고 작은 배들을 합치면 수천 척이 넘어갔다.

-좋아. 퀘스트를 내려서 도와주마!

-감사합니다!

-근데 어디서 어디로 가는 배냐?

* * *

<새로운 땅을 찾아서-엘프 공작 겔렌델 퀘스트>

공정하고 명예로운 공작, 겔렌델은 부하들과 모험가들을 이끌고 새로운 땅을 찾아 점령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싸움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희생일 뿐. 겔렌델은 가슴 아프지만 그걸 감수하려고 한다.

이 원정에 참가해라! 겔렌델은 충분한 보상을 해줄 것이다.

보상: ?, ???

“어? 왜 또 새 퀘스트야? 여기서 더 싸우는 게 아닌가?”

“기껏 요새 짓고 다 했는데 왜…?”

엘프 플레이어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이 요새를 거점으로 쭉쭉 점령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다른 곳으로 간다니?

“뭐 이유가 있겠지. 엘프 공작 정도 되는데….”

“그거야 그렇지만.”

귀족과 왕족들을 밥 먹듯이 만나고 다니는 태현이 이상한 거였지, 원래 귀족 NPC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겔렌델도 그중 하나!

만약 겔렌델이 어떤 엘프인지 알았다면 플레이어들의 절반은 참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촤아악-

“…!”

“저, 저게 다 배야?”

수평선을 까마득하게 메울 정도로 많은 배가 몰려오고 있었다.

에스파 왕국뿐만이 아니라 덩글랜드 왕국의 항구로도!

“<새로운 땅을 찾아서> 퀘스트에 참가할 파티 모집합니다! 같이 가서 모험해 봐요!”

“무려 엘프 공작 겔렌델이 지원해 주는 퀘스트에요! 보상도 받고, 공적치 포인트도 쌓고! 기대되지 않으시나요!”

미리 참가한 플레이어들은 파티를 만들기 위해 또 인원을 모으고, 모으고….

에스파 왕국으로 간 원정대뿐만 아니라 추가로 더욱더 플레이어들이 모였다.

겔렌델은 감동받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자네에게 첫 오크 머리통을 양보하지.”

“…….”

“너무 과했나? 그렇지만 자네한테 이 정도는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아, 예. 감사합니다.”

태현은 일을 다 해치우고서 일행들을 데리고 겔렌델의 기함에 올라탄 상태였다.

오크 부족들과의 이별은 힘들었다.

-봐라. 엘프들이 우리의 계략에 겁을 먹고 도망치고 있다. 후, 내 일도 대충 다 끝났다고 봐야겠군. 난 이만 가보겠다.

-취익. 가지 마라! 모험가! 너만 한 인재가 없다!

-췩, 내 오른팔을 맡아다오!

황야 무쇠 부족을 포함해 온갖 오크들의 제안이 쏟아져 들어왔다.

태현은 그들을 간신히 뿌리치고 나올 수 있었다.

-췩! 널 잊지 않겠다. 인간 모험가!

-취익!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널 찾아가겠다!

마지막에 뭔가 섬뜩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았지만 태현은 애써 넘어갔다.

고르수크가 수척해진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우리 교단은 안 세우나?”

“하하. 이 일 먼저 하고 가자.”

“아니… 대체….”

고르수크는 복잡한 얼굴이었다. 이방인인 태현이 자기 부족 사이에서 부족장이 된 것도 기분이 복잡했는데, 갑자기 엘프 배까지 타야 한다니.

“아 참. 이거 좀 덮고 있어.”

“!?”

태현은 몸을 덮는 로브를 고르수크 위에 씌웠다. 겔렌델 눈에 보여서 좋을 게 없었으니까.

“왜 이런 걸?”

“그거 벗고 다니면 엘프들이 너 죽일걸.”

“나… 나는 부족에서 나왔는데….”

“엘프들이 그걸 신경 쓸 거 같냐?”

“…안 쓸 거 같군.”

고르수크는 포기하고 로브를 덮어썼다.

태현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바다를 쳐다보았다. 수많은 배가 기함을 따라 우르르 따라오고 있었다.

이 병력이 다 길드 동맹 영토로 간다!

‘생각만 해도 뿌듯하군….’

따라오는 배들 중 유난히 덩치가 크고 화려한 함선들이 몇 개 있었다.

깃발을 보니 플레이어가 세운 길드가 분명했다. 덩글랜드 왕국 쪽 대형 길드가 분명했다.

‘쟤네들이 잘 싸워줬으면 좋겠는데.’

* * *

“이 배 어디로 가는 거지?”

“글쎄. 프로즈란드 아니냐는 소문이 있던데.”

덩글랜드 왕국의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유럽권 플레이어들이었다.

오스턴 왕국에 중국 쪽 플레이어들이 모이고, 태현 덕분에 아탈리 왕국에 한국 쪽 플레이어들이 많이 모이는 편이라면….

에랑스 왕국이나 에스파 왕국은 나름 균형 잡힌 편이었다.

잘츠 왕국도 균형 잡힌 편에 들어가긴 했다. 워낙 플레이어 숫자가 적어서 그렇지.

그래서 그런지 덩글랜드 왕국 플레이어들은 대부분 대륙의 영지전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영주니 뭐니 니들끼리 싸우고 싶으면 싸워라! 우리는 우리 알아서 논다!

영주 자리는 얻는 순간 어마어마한 권한이 들어오지만, 꼭 영주 자리가 있어야만 판온에서 잘나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자기 레벨을 꾸준히 올리고, 스킬을 키우고, 장비를 맞춰 입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실제로 지금 판온에서 영주가 아닌 랭커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오스턴 왕국이나 그 근처에서 플레이하는 거면 길드 동맹의 정책에 따라 행동해야 하니 영향을 받았지만, 덩글랜드 왕국이면 그런 걸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것!

그렇게 계속 레벨 업과 퀘스트만 하던 덩글랜드의 길드들과 랭커들이었다.

“프로즈란드? 거기 한 번 가봤는데 너무 까다롭던데.”

“눈과 얼음밖에 없잖아.”

갈락파드가 아키서스의 권능을 찾기 위해 한 번 찾아갔던 곳!

중앙 대륙에서 덩글랜드 왕국보다 훨씬 더 북쪽으로 가야 나오는 추운 땅이었다.

“어… 저거 잘츠 왕국 항구 아닌가?”

“잘츠 왕국으로 가나? 내릴 곳도 없고, 잘츠 왕국 같은 곳은 좀… 아. 지나가네.”

“…저기 오스턴 왕국 아냐?”

멀리 보이는 항구.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가 돼서야 겔렌델이 명령을 내렸다.

“원정대여! 우리는 저 항구를 점령하고 원정을 위한 요새로 만들 것이다.”

“어… 저거 건드려도 되나?”

“길드 동맹 쪽 도시 아냐?”

오스턴 왕국의 상황을 아는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건드려도 되는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길드 동맹과 부딪힐 일은 없었지만, 괜히 문제를 만드는 건 사양이었다.

그때 태현이 재빨리 나섰다.

“와! 신난다! 심지어 오스턴 왕국 원정이라니! 길드 동맹 놈들의 콧대를 꺾어놓을 수 있겠어!”

다른 배에 타고 있던 케인은 그 말을 받아 크게 외쳤다.

“길드 동맹 놈들이 맨날 자기들이 최고라고 하는데 어디 한번 최고인가 보자고! 그놈들이 오스턴 왕국 다 점령하고 나면 덩글랜드도 점령할 수 있다고 떠드는 게 재수 없었는데!”

곳곳에서 태현에게 미리 명령을 받은 플레이어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미묘하게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들!

그렇게 되자 여기서 물러서는 플레이어들은 길드 동맹이 무서워서 물러서는 것처럼 분위기가 흘러갔다.

일반 플레이어들은 몰라도 대형 길드나 랭커들은 그럴 수 없었다.

“제닝스 님! 왜 돌격 안 하세요?! 같이 돌격해요!”

은근히 랭커들까지 끌어들이면서 돌격하자고 하는 일행들!

물귀신 작전이었다.

그러는 사이 겔렌델은 다시 한번 명령했다.

“배를 붙여라!”

* * *

뜬금없는 엘프 원정대의 항구도시 습격.

항구도시 벡텔의 영주를 맡고 있던 위안은 이 느닷없는 기습에 기겁했다.

‘엘프 공작이 미쳤나?!’

게시판에 엘프 공작이 대함대 끌고 원정 간다는 글을 보고 ‘흠 대형 퀘스트네’ 했었는데, 그 대함대가 여기로 오다니.

“지원 요청하고 플레이어들 불러서 수비를….”

“숫, 숫자가 너무 많이 차이 나는데….”

바다를 가득 메운 배들은 그것만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지금 오스턴 왕국의 병력들은 대부분 우르크 지역 쪽이나 에랑스 왕국, 아탈리 왕국 방향으로 배치된 상태.

이런 별 위험 없는 항구도시에 병력이 배치되진 않았다.

“엘프 공작한테 항의 보내! 이게 무슨 짓이냐고!”

위안은 일단 사신 NPC를 보내봤다. 상대는 폭주한 오크 무리가 아닌, 나름 왕국의 공작 아닌가.

오해가 있다면 대화나 교섭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오크들을 치기 위해 길을 빌리러 왔다. 순순히 비키면 다칠 일은 없을 거다.

“…끝?”

“끝, 끝인데요.”

“이 귀쟁이 새끼들이 미쳤나?!”

무슨 길 빌려달라고 공격하다니 이런 놈들이 있어?!

-당장 안 물러서면 오스턴 왕국의 이름으로 전쟁이다!

-정당한 오스턴 왕가가 아닌 반역자들의 항의는 받지 않는다. 너희는 오스턴 왕국이 아니다.

-뭐 시X놈들아??!

대화하면 대화할수록 어이가 가출하게 되는 엘프들!

‘엘프 공작이 이런 놈이었나?’

말이 안 통하면 싸워야 했… 지만, 위안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튀자!”

지금 맞서 싸워봤자 남는 건 사망 페널티뿐! 일단은 도망쳐야 했다.

우르르-

벡텔에 있던 플레이어들은 배가 닿기도 전에 도망치기 시작했고, 덕분에 겔렌델은 손쉽게 도시를 점령할 수 있었다.

“자네 말대로 쉽군.”

“크헬헬. 다 공작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태현은 사악한 웃음으로 공작을 치켜세워줬다.

“그러면 바로 오크들의 머리통을 부수러 가볼까?”

“잠, 잠깐만요. 일단 이 주변은 너무 방어가 부실한데 좀 요새를 만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곧 오크들이 산더미처럼 몰려올 겁니다.”

“음. 그래? 바로 오크 머리통을 부수러 가고 싶은데.”

겔렌델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표정이었다. 태현은 단호하게 말했다.

“저를 믿으십시오. 오크들은 바로 몰려들 겁니다. 아주 흉악한 놈들이거든요.”

“그래. 알겠네. 자네 말을 한 번 믿어보도록 하지.”

태현의 목표는 겔렌델과 엘프 원정대가 여기 아주 오래오래 머무르게 만드는 것이었다.

‘길드 동맹이 가만히 있을 리 없겠지. 어떻게든 싸우러 온다.’

물론 이들이 더 치고 올라올 리는 없었다. 애초에 우르크 지역의 오크들을 미끼로 데리고 온 것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길드 동맹은 그 사실을 몰랐다. 이들이 더 올라올까 봐 걱정을 할 것이고, 무엇보다 그냥 도시 하나가 날아갔는데 내버려 두면 체면이 깎였다.

겔렌델을 여기 묶어두려면 일단 여기로 오크들이 아주 많이 쳐들어온다는 걸 보여줘야 했다.

‘오크들을 끌고 와야겠군.’

* * *

“아니! 이게 누구신가! 우리가 오스턴 왕국에서 열심히 일하는 동안 카라그를 먹튀한 아드님 아니신가!”

김태산은 잔뜩 감정 섞인 말투로 태현을 맞이해 줬다.

태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버지. 저번 주에 집에서 밥먹을 때는 아무 말씀 없으시다가 왜 갑자기?”

“인마. 그때는 윤희가 보고 있었잖아!”

당당하게 외치는 김태산! 태현은 김태산의 처세술에 감탄했다.

어쩌면 저렇게 소심하게 당당할 수가!

“카라그 먹튀한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뭐? 어쩔 수 없어?? 어쩔 수 없다는 게 언제부터 그럴 때 쓰는 단어가 된 거야?!”

김태산이 펄펄 뛰는 사이 오크 아저씨들이 다가와서 말했다.

“야, 태현아. 괴식 요리를 더 해보려고 하는데….”

“태현아. 저번에 놓고 간 마수들 있잖냐. 걔네한테 뭘 잘 먹여야 좋을까?”

“태현아. 저번에 준 언데드 놈들 있잖아. 계속 패고 패니까 이제 좀 말을 듣기 시작하는데 얘네들은 뭘 해야 성장하냐?”

김태산은 무시하고 자기들 원하는 걸 챙기려고 하는 아저씨들!

“모두 안 다물어?”

“길마님 화나셨다. 쉿쉿!”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