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24화
“공을 세운 인간 모험가라고 들었는데, 이런 감동적인 마음 씀씀이라니… 자네에게는 엘프의 마음이 조금 있을지도 모르겠어.”
오크한테는 오크 같은 인간이라고 듣고, 엘프한테는 엘프 같은 인간이라고 듣고, 고블린한테는 고블린 같은 인간이라고 듣고….
가는 종족마다 ‘넌 우리 종족 같은 놈이야!’라고 듣는 태현이었다.
어쨌든 선물은 제대로 고른 셈이었다. 덕분에 일이 몇 배로 쉬워지게 되었다.
“공작님. 오크들을 용감무쌍하게 쓸어버리시던 공작님을 평소에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오크들과 평생 싸워온 사람으로 공작님을 한번 뵙고 싶었던….”
[칭호: <오크 대군세를 막아낸 영웅>…]
[칭호: <오크 사냥꾼>…]
[……]
확실히 태현은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태현만큼 오크 네임드 보스를 많이 쓰러뜨린 플레이어도 드물었던 것!
[엘프 공작 겔렌델의 친밀도가…]
[친밀도가 더 오릅…]
[친밀도가 최대치에 도달합니다. 더 이상 친밀도가 오르지 않습니다.]
“!?”
태현도 놀랄 정도의 효과!
무슨 첫눈에 반한 것처럼 겔렌델은 태현을 마음에 들어 했다.
“자네 아주 마음에 들어! 우리 같이 오크의 머리통을 부수러 나가지 않겠나?”
호리호리한 엘프 공작이 도끼를 빙빙 휘두르며 저런 소리를 하니 그것만큼 언밸런스한 것도 없었다.
태현은 일단 이야기를 돌렸다. 환심을 샀으니 중요한 건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
“공작님. 여기 에스파 왕국에 온 것은 여기 땅을 점령하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에스파 왕국의 땅은 척박해서….”
“아닌데?”
“?”
공작은 자기 말을 부정했다. 태현은 당황했다. 아니야?
‘그러면 엘프 기사들 데리고서 플레이어들까지 부를 이유가 없지 않나?’
“그냥 오크들 머리통을 쪼개고 싶어서 온 건데?”
“…….”
이게 오크야 엘프야?
오크도 이렇게 욕망에 충실하게 사는 오크는 드물었다.
[카르바노그도 감탄합니다. 보기 드문 엘프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공작은 자기 할 말을 이었다.
“잘 보라고. 여기 요새를 설치하면 여기부터 여기까지 다 공격이 가능하지.”
“공격해서 점령을…?”
“응? 아니. 그냥 오크 놈들 머리통을 쪼갤 거라니까.”
‘…….’
태현은 이제야 확신이 섰다. 반반한 얼굴 때문에 처음에는 오해를 했지만….
‘이 공작은 미친 공작이었군!’
엘프 공작 겔렌델은 그냥 맛이 간 것! 그렇게 보면 이해가 쉬워졌다.
‘그래. 그러면….’
미친 사람에게는 미친 대화를 해줘야 격이 맞았다. 태현은 맞장구를 쳤다.
“아주 좋은 생각입니다. 오크들의 머리통을 더 많이 부술 수 있겠군요!”
“그렇지? 내 자네가 좋아할 줄 알았어. 자네를 보는 순간 딱 감이 왔지.”
“…?”
“자네도 나만큼 오크 머리통을 부수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말이야. 흠흠. 이렇게 말하니 좀 부끄럽군.”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히는 겔렌델! 태현은 미친놈 보듯이 보려다가 재빨리 표정 관리를 했다.
‘참자. 참아.’
저런 놈한테 같은 사람 취급을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카르바노그가 아무리 엘프 공작이라도 당신을 따라오지는 못할 거라고 말합니다.]
‘고맙… 잠깐. 말이 이상한데?’
그러거나 말거나 겔렌델은 계속해서 태현을 좋게 말했다.
누가 보면 고백하는 줄 알겠다!
“오해하지 말고 듣게. 내가 이런 소리를 자주 하는 엘프는 아니야. 그렇지만… 자네를 보니 이 말을 꼭 하고 싶어. 나와 같이 오크들의 머리통을 부수러 가지 않겠나?”
<오크 머리통을 모아라-엘프 공작 겔렌델 퀘스트>
오크를 향해 몇 대에 이어지는 원한을 갖고 있는 엘프 공작 겔렌델은 자다가도 오크 소리만 들으면 벌떡 일어서는 엘프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처음 만나서 눈빛만 마주쳐도 뜻이 통하는 법.
엘프 공작 겔렌델은 당신을 보고 둘도 없는 친구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마십시오… 엘프 공작이 당신을 오크라고 생각하면 서로 좋지 않을 테니까요.
보상: ?, ???
‘뭐 이리 불길한 퀘스트가 다 있어?’
설명부터 ‘거절하면 엘프 공작이 오크 머리통 대신 네 머리통을 깨부술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태현은 머리를 최대로 회전시켰다. 지금 이 상황. 이 요소들을 어떻게 써먹어야 하는가?
“공작님!”
“?”
“저도 오크 머리통을 부수러 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여기 오크 놈들은 영 기개가 없습니다. 제가 알아보니 벌써 도망치려고 하고 있더군요.”
[공작이 당신의 말을 철저히 믿습니다.]
“뭐? 안 돼!”
공작은 태현의 말에 펄쩍 뛰었다. 어딜 도망가!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도망을 치다니. 끝까지 싸워야 해!”
“정말입니다. 여기 오크 놈들은 겁쟁이라 공작님의 명성만 듣고 벌써 도망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부족장까지 하나 죽지 않았습니까.”
“아. 그놈.”
“공작님. 오크들의 머리통을 부수고 싶으시다면 다른 곳도 있습니다.”
“어딘데?”
“바로 여기입니다.”
덩글랜드 왕국은 중앙 대륙의 북서쪽에 위치한 섬나라.
즉 에랑스 왕국을 지나 남쪽으로 쭉 내려오면 에스파 왕국이지만, 동쪽으로 가면….
잘츠 왕국, 오스턴 왕국, 우르크 지역!
태현은 오스턴 왕국의 항구 도시를 가리켰다.
북쪽 바다와 맞닿아 있고, 동쪽으로 산맥 하나 넘으면 바로 우르크 지역이 나왔다.
“여기? 여기 오크가 있나?”
“있습니다! 게다가 여기 옆이 어디입니까? 우르크 지역입니다. 오크들이 득시글거리죠! 여기 오크 놈들이 아주 기가 강합니다. 절대 도망을 안 쳐요!”
태현의 목적은 하나였다.
길드 동맹이 점령한 오스턴 왕국에 폭탄 드랍!
“공작님. 잘츠 왕국이나 오스턴 왕국은 바로 북쪽 항구 도시들에 내리면 되지만, 우르크 지역은 툭 튀어나온 땅덩어리와 섬들로 막혀 있어 바로 가기 힘듭니다. 일단 가장 가까운 도시를 하나 점령하고 근처의 오크들을 싹 쓸어버리는 게 어떻습니까?”
“으음… 우르크 지역의 오크들이 탐나긴 하는군. 그리고 또 오크들이 많다니… 그렇지만 여긴 오스턴 왕국의 영역 아닌가?”
에스파 왕국은 말이 왕국이었지, 오크 부족들의 연합국가였다.
오크 싫어하는 공작이 그런 걸 신경 쓸 리 없었다.
그에 비해 잘츠 왕국이나 오스턴 왕국은 나름 멀쩡한 왕국. 그런 왕국을 멋대로 건드릴 수는 없었다.
“오스턴 왕가는 반역자들 때문에 쫓겨났잖습니까? 반역자들이 뭐 그리 두렵습니까? 명예롭지 않은 인간 놈들입니다!”
“으음. 그건 확실히… 근데 자네도 인간이잖….”
“공작님. 혹시 두려우십니까?”
“뭐라?!”
공작이 분노했다. 이런 사람에게 가장 효과적인 건 이런 도발이었다.
“내가 두려움을 느낀다고? 절대 그럴 일은 없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공작님께서 오스턴 왕국의 반역자들을 두려워하실 리 없지요.”
“하지만 여러 문제가 많은데… 일단 내 병사들과 여기 온 모험가들을 다시 실어서 저기까지 날라야 해. 먼 거리가 되니 배가 많이 필요할 거다.”
“제가 마련해드리겠습니다.”
“?!”
“오크 머리통을 부술 수 있다면 제가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자네… 내가 왜 자네를 이제까지 만나지 못했을까!”
겔렌델은 태현을 그윽한 눈길로 보며 외쳤다.
“그렇지만 잠깐 기다려보지.”
“예?”
“저기 오크들이 도망 안 칠 수도 있잖나. 먼 오크들 때문에 눈앞의 오크들을 소홀히 하는 그런 엘프는 되고 싶지 않네.”
‘뭔 개소리야….’
태현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오크들은 후퇴시킬 생각이었다.
* * *
“내게 비책이 있다!”
“취익! 인간 모험가! 대단하다! 어떤 비책이냐!”
“후퇴하는 거다!”
싸아악-
[황야 독뱀 부족 부족장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황야 불꽃 부족 부족장이…]
[……]
후퇴의 ‘후’ 자만 들어도 싫어하는 오크들!
태현은 끈기 있게 설득에 나섰다.
“자. 잘 생각해 봐라. 지금….”
“췩. 인간 모험가 말을 들어보니 그럴듯한 거 같기도 하다.”
“…난 아직 설명 시작도 안 했는데?”
“취익. 미안하다. 인간 모험가를 보니 믿음직스러워서 먼저 말했다.”
“췩. 나도 그렇다.”
부족장 회의에서도 발산되는 매력!
태현은 일단 설명을 계속했다.
“지금 물러서면 엘프 놈들은 기세등등해져서 따라올 거다. 지금 엘프 놈들이 잘나가고 있는 이유는 비겁하게 요새 벽을 의지하고 있어서잖아?”
“췩! 맞다!”
“요새 벽만 없으면?”
“취익! 엘프는 우리 먹이다!”
“바로 그거야!”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태현은 부족장들을 설득 끝내고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사이 케인은 진이 잔뜩 빠진 얼굴이었다.
“이… 이 자식들 좀 관리해 줘! 내 말은 하나도 안 들어!”
평판도, 친밀도도 부족한 상황에서 오크 부족을 다스리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뭐만 말하면 화내고 툴툴거리고 반대하는 오크들!
“걱정 마라. 케인. 일이 잘 끝났으니까.”
“가서 폭탄 설치하고 온 거야? 역시….”
케인은 ‘역시 김태현이야’ 하는 표정으로 태현을 쳐다보았다. 태현이라면 그 정도는 기본이지!
“아니. 원래 그러려다가 생각을 바꿨어. 쟤네들 데리고 오스턴 왕국 갈 거야.”
“????”
케인은 달라진 상황을 바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잘못 들은 거냐?”
“아니요. 저도 제대로 들었습니다.”
“제대로 들은 거 맞는데요.”
“지금 배를 구해야 하는데, 일단 영지에 있는 함선부터 시작해서 다 동원하자고.”
다행히 태현에게는 쓸 수 있는 배들이 많았다.
아탈리 왕국의 함대를 이끄는 브랑송 제독은 태현에게 충성하는 NPC였고.
맥크레니 상단의 배나 <붉은 바다 무법자> 해적들을 받아들이고 생긴 해적선들도 있었다.
오히려 육지에 있는 병사들보다 훨씬 더 풍족한 전력!
“맞다. 어르신한테도 부탁드려야겠어.”
요즘 뭐하시려나?
그렇게 생각하며 태현은 유 회장에게 연락했다.
* * *
유 회장은 요즘 신나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고 있었다. 물론 낚시였다.
상대가 엄청나게 위험하고 거대한 몬스터일 뿐!
‘역시 권력이 답이다!’
왕국 국왕의 자리는 대단했다.
유명한 랭커 낚시꾼들이 찾아와서 유 회장과 같이 플레이하자고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돈을 쓰지 않아도 먼저 찾아오다니!
밖으로는 유성 게임단이 잘나가고 있었고, 안으로는 낚시꾼들의 왕국이 잘나가고 있었으니….
그 평온을 깨뜨린 건 태현의 귓속말이었다.
-뭐냐?
-어르신. 배 좀 빌려주십시오!
-…잘못 연락한 것 같은….
-어르신. 그거 제가 잘 써먹는 방법인데 제가 속겠습니까?
-내가 왜 빌려줘야 하냐? 나한테 좋을 게 뭐가 있다고. 그리고 난 지금 행복하다.
-사람이 위를 보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 좋은 낚시터, 더 좋은 낚시감, 더 좋은 낚싯대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배 빌려주면 뭐 해줄 건데? 그보다 뭘 하려고 그러는 거냐?
유 회장도 이제 판온에서 나름 잔뼈가 굵어진 상태였다. 예전처럼 그냥 홀랑 넘어가진 않았다.
-도와주시면 제가 사제들과 같이 특수 제작 낚싯대를 만들어서 드리겠습니다. 어르신 건 특별히 더 신경 써서 만들어드립니다.
두근!
유 회장은 나잇값도 못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특제 낚싯대라니. 이 무슨 가슴 설레는 단어!
-허… 허… 허튼소리 하지 마라.
‘좋으신가 보군.’
태현은 유 회장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걸 듣고 바로 알아차렸다.
-어르신. 제 능력 아시잖습니까. 아키서스가 무슨 신입니까?
-폭탄의 신?
-행운의 신이죠. 무슨 농담도. 그런 힘이 담겨 있는 낚싯대입니다. 물고기 한 마리 낚으면 세 마리가 나올지도 몰라요.
-에라이. 그걸 말이라고 하냐? 좀 심했다.
유회장은 태현의 전적을 몰랐기에 핀잔을 주었다. 아무리 광고를 해도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