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22화
“뭐야? 어떻게 들어왔어?”
“엘프도 아닌데?”
여기 공성전에 참가하려면 엘프 종족이나 오크 종족 중 하나여야 했다.
물론 다른 종족도 참가할 수는 있었지만, 두 종족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종족끼리 벌이는 싸움이다 보니 다른 종족들은 잘 안 받아주는 것!
“경비병을 설득해서 들어왔는데요?”
“와. 진짜?”
“엘프 상인도 아닌데 설득했다고? 화술 스킬이 대체 얼마나 높길래? 화술만 찍고 다녔나?”
“상인 직업이 화술 스킬이 높다던데….”
플레이어들은 수군거리면서 놀라워했다. 상인 직업은 저런 것도 되나 봐!
“근데 상인이 여기 와봤자 할 것도 없을 텐데?”
“맞아. 여기 이미 엘프 상인 NPC 있다고.”
요새 안에는 엘프 대장장이, 엘프 재봉사, 엘프 상인 등등 NPC들이 있었다.
품질로는 어디 가서 밀릴 일 없는 NPC들!
“아. 잡템 사가려고 온 모양이다.”
“그렇군. 오크 잡템을….”
“아닙니다. 전 공성 병기를 팔러 왔습니다.”
“공성 병기를?!”
“어떻게? 아니. 그보다 믿을 만한 아이템이긴 해?”
플레이어들은 일단 의심부터 하고 봤다. 왜냐하면 공성 병기는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막말로 그들도 지금 공성 병기는 만들 수 있었다.
<급조한 투석기>나 <이걸 누가 만들었는지는 안 밝히는 게 좋을 창 발사기> 같은 것들!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있다면 이런 걸 만들 수는 있었지만….
문제는 그 뒤였다.
-저, 저거 왜 앞으로 발사했는데 뒤로 날아오냐!?
-창 발사대가 폭발했어!
기계공학 스킬이 부족한 상태로 만들 만큼 공성 병기는 만만한 게 아닌 것!
잘못 건드렸다가는 오히려 팀킬만 하고 욕을 먹을 수 있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팔 공성 병기는 무려….”
“무려?”
“김태현 님이 만드신 겁니다.”
“!”
“!!!”
대장장이 랭커들은 검이면 검, 창이면 창, 갑옷이면 갑옷. 이렇게 자기 전문 분야에서는 이름만으로 장인 취급을 받았다.
태현은 기계공학에서 장인 취급!
“진, 진짜로? 우리 제작자 확인 가능하다? 만약에 김태현이랑 같은 이름 가진 놈이 만든 거로 사기 치면….”
“하하. 성능이 다른데 그게 먹히겠습니까?”
“하, 하긴 그렇지.”
“잠깐만! 내가 엘프 사령관한테 말하고 올게!”
엘프 플레이어들은 호다닥 움직였다. 공성 병기를 갖고 와서 바치면 그 자체로 엄청난 공적치 포인트!
그사이 케인과 골골이는 낑낑대며 공성 병기를 안으로 끌고 왔다.
“으윽… 왜 내가….”
“너하고 골골이가 그나마 힘이 제일 높거든. 이다비도 높긴 한데 걔는 지금 아직 안 와서.”
“크흑! 이다비! 빨리 와줘!”
“하연이도 널 응원하고 있을 거야.”
“그… 그래. 열심히 해야지.”
‘이 자식 더 써먹기 편해진 기분인데….’
태현은 케인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어떻게 거기서 더 써먹기 편해질 수 있지?
* * *
“췩! 저 엘프 놈들이 대체?!”
“취익. 취익. 이건 말도 안 된다.”
오크들은 혼란에 빠진 얼굴로 웅성거렸다.
엘프 축성술로 만든 요새 벽을 때려 부술 때만 해도 좋았다. 그런데 갑자기 엘프 쪽에서 공성 병기가 등장한 것이다.
사거리가 똑같으니, 요새 안에서 쏘아대는 엘프 쪽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엘프 쪽은 궁수 숫자가 압도적! 위치 확인부터 발사까지 오크들이 밀렸다.
덕분에 오크들이 갖고 있던 공성 병기들은 공격을 받고 반쯤 부서져 버렸다.
“취익! 인간 모험가! 네 도움이 필요하다!”
“췩! 네가 없으면 안 된다!”
어느새 태현에게 의지하고 있는 오크들!
다른 부족의 오크들도 찾아와서 ‘췩 너희 공성 병기 더 없냐’, ‘더 내놔라’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오크들이 매우 간절히 공성 병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추가 공적치 포인트를 얻습니다!]
‘녀석들….’
태현은 흐뭇하게 웃었다.
“물론 고치고 새로 만들어주지!”
어느새 존댓말에서 반말로!
그러나 아무 오크도 따지지 않았다. 그만큼 태현의 위치가 올라간 것이다.
[오크 부족 내 평판이 매우 상승합니다.]
[원할 경우 오크 부족 내 자리를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받을 수 있는 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오크 명예 투사 지휘관: 오크 전사들 중 특출난 투사들을 이끄는 자리입니다.]
[오크 공성전 전문가: 공성전이 있을 때 가장 최전선에 서서…]
[……]
‘이런 건 필요 없는데.’
태현은 그냥 여기서 지팡이만 받은 다음 고르수크만 데리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이상하게 점점 높아지는 평판!
“췩. 네가 있으니 든든하다. 모험가.”
“취익. 너만큼 일 잘하는 인간은 없다.”
지나갈 때마다 친근하게 말을 걸어대는 오크들까지!
‘지팡이나 챙겨야지.’
태현은 부족장에게 찾아갔다. 사이에 끼어서 문제를 일으킨 덕분에 공적치 포인트는 팍팍 늘어난 상태였다.
“부족장. 보상을 받고 싶은데.”
“췩. 뛰어난 인간 모험가! 무엇이든 말해라!”
부족장은 친절했다. 태현이 이제까지 보여준 능력 때문!
“그 지팡이를 갖고 싶습니다.”
“췩, 이걸 말이냐?”
부족장은 의아해했다. 태현은 살짝 긴장했다.
‘안 되나?’
공적치 포인트가 높다고 무엇이든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설마 저게 뭐라도….
“취익. 이런 걸 왜 원하는지 모르겠군. 원한다면 주겠다. 가져가라!”
“…….”
태현은 저 태도를 보자 살짝 불길해졌다.
저 지팡이 정말 쓸 만한 거 맞아?
[<시이바의 파편이 박혀 있는 낡은 지팡이>를 얻었습니다.]
시이바의 파편이 박혀 있는 낡은 지팡이:
내구력 30/30, 마법 공격력 5
<반짝반짝> 사용 가능.
시이바의 파편이 박혀 있는 낡은 지팡이다. 시이바는 마법과 관련 있지 않기에 딱히 마법적인 능력을 올려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지팡이 끝이 위엄차게 빛나니, 이걸 좋아하는 사람도 조금은 있을 것이다.
“…….”
뭔 이런 쓰레기 같은….
순간 태현은 고르수크를 욕하는 오크 부족들을 이해했다.
멀쩡한 지네 신 냅두고 슬라임 신을 믿으니 미친놈 취급을 받지!
‘앗. 이건 약간 아키서스 같기도….’
[<권능 포식> 스킬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사용하시겠습니까?]
‘그래… 사용해야지. 뭐하겠냐.’
태현은 한숨을 쉬며 사용했다. 이 지팡이를 그냥 둬서 어디에 쓰겠는가.
어두울 때 조명으로?
[<권능 포식> 스킬을 사용했습니다.]
[시이바의 권능, <슬라임 분신 소환> 스킬을 얻었습니다!]
[시이바의 권능을 얻었습니다. 슬라임들에게 엄청난 호감을 얻습니다.]
[시이바는 슬라임을 공격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슬라임을 공격할 경우 시이바의 저주가 내릴 수 있습니다.]
‘?’
태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생각해 보니 슬라임의 신이 슬라임을 챙기는 건 맞긴 한데, 그의 옆에는….
[카르바노그가 왜 그러냐며 천진난만하게 묻습니다.]
‘…아냐. 됐다.’
깊게 파고들면 자기만 이상해질 것 같았다. 태현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근데 슬라임 분신 소환은 꽤 괜찮아 보이는데?’
분신 관련 스킬은 언제나 고급 스킬이었다. 마법사들이 분신 관련 스킬 하나 얻으려고 얼마나 고생을….
<슬라임 분신 소환>
슬라임으로 이루어진 분신을 소환합니다. 분신은 느리게 움직이며, 공격을 받을 경우 분신이 풀립니다.
*분신의 레벨은 시전자의 레벨과 같습니다.
*분신은 다른 스킬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음. 안 괜찮군.’
태현은 이 스킬의 문제점을 바로 알아차렸다.
일단 이동 속도 느리고, 스킬도 다 금지고…
그러면 평타로만 승부해야 하는데, 하필이면 태현의 약점은 비교적 낮은 레벨이었다.
이제 고렙 플레이어들 중에서 레벨 150을 넘기는 놈들이 수두룩하고, 예전에는 까마득한 레벨 200을 넘긴 랭커들이 속속히 나오고 있는 지금.
태현의 레벨은 아직도 124였다.
‘전투용으로는 못 쓰겠군….’
-슬라임 분신 소환!
파앗!
‘엄청 똑같긴 하네. 리얼하고.’
분신 만드는 스킬들 중에서 이렇게 똑같이 만드는 스킬은 드물었다.
보통 자세히 보면 티가 나서, 태현처럼 눈치 빠르고 감이 좋은 사람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슬라임 분신은 정말 감쪽같았다.
‘나중에 페이크 칠 용도로 써야겠다.’
태현은 입맛을 다시며 분신을 해제시켰다. 그래도 못 쓸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때 고르수크가 다가왔다.
“지팡이를 얻었나?”
“그래. 지팡이가 날 선택하고 시이바의 권능을 빌려주던데.”
[카르바노그가 정확히 말하자면 권능을 뺏은 것에 가깝다고 합니다.]
“뭐… 뭐라고?! 그게 정말인가? 역시… 시이바 님이 교단을 세우라고 말하는 게 분명해!”
“…그건 아닌 것 같지만.”
“잘 됐군, 잘 됐어! 이제 이 부족을 떠나면 되겠군.”
“하하. 잠깐 좀 기다려봐.”
“…?”
고르수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기 더 있을 이유가 있나?
“췩! 인간 모험가! 여기 와라! 내가 갑옷을 닦아주겠다!”
“취익. 인간 모험가! 여기 엘프들한테서 뺏은 엘프 활이 있다. 이거 너 가져라!”
“…….”
어떻게 된 게 부족 출신인 고르수크보다 더 친해 보이는 태현!
고르수크는 안달을 내며 말했다.
“빨리 가서 교단을 짓자!”
“아니. 난 가려고 하는데 얘네들이 자꾸 뭘 챙겨주네.”
가만히만 있어도 아이템이 굴러 들어오는 상황.
어마어마하게 높은 평판과 친밀도 덕분이었다.
* * *
이다비는 아직 에스파 왕국으로 출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못 끝낸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걸 어떻게 팔 수 있을까?”
“이걸 누가 사죠?”
“그러게 말입니다.”
이다비와 파워 워리어 길드 간부들의 고민!
다니엘의 기계공학 잡템들을 어떻게 팔아치워야 하는가!
“그냥 알아서 살라고 하면 안 됩니까?”
“안 돼. 폭탄 말고 다른 거 만드는 기계공학 대장장이가 얼마나 귀중한데! 키워야 해!”
이다비는 단호하게 외쳤다.
영지 대장장이들이 폭탄만 만드는 지금, 다니엘 같은 인재는 어떻게든 키워야 하는 인재였다.
제작 직업 같은 경우는 자기가 만든 아이템이 팔려서 사용되면 추가 경험치가 들어왔다.
어떻게든 팔아야 한다!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뭐지?”
“상자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넣어서 파는 겁니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말 안 하고요.”
“?”
“그걸 누가 사?”
“맞아. 어떤 미친놈이 그걸….”
“몇 명은 사더라도 잘 안 팔릴걸.”
길드 간부들은 대번에 부정했다.
그러나 의견을 꺼낸 간부는 자신만만했다.
“미끼가 필요하죠.”
“미끼?”
“상자 하나에는 태현 님이 만든 아주 쌈박한 기계공학 아이템을 넣는 겁니다. 그리고 홍보하는 거죠! 아주 희박한 확률로 그게 나올 수 있다고!”
“이… 이… 이런 똑똑한 놈!”
“그런 좋은 아이디어가! 넌 천재냐!”
간부들은 대번에 무릎을 쳤다.
이건 먹힌다! 먹힐 수밖에 없다!
“당장 상자 만들자! 하나씩 담으러 가자!”
“그런데 태현 님이 만든 건 어디서 구해?”
“길마님… 혹시 오토바이를….”
이다비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게 어떤 건데 감히!
“싫어!”
“역시 그렇죠. 그러면 새로 만들어달라고 하는 수밖에 없겠는데요.”
“지금 퀘스트에 대회에 바쁘신데 그건 좀….”
“길마님! 길마님밖에 없어요!”
“이건 태현 님한테도 좋은 일이잖아요!”
“맞아요!”
길드 간부들은 납죽 엎드려서 매달렸다. 여기서 그나마 태현한테 말이라도 붙일 수 있는 사람은 이다비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쓰라린 경험을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태현 님. 좋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뭔 아이디어?
-태현 님의 캐릭터 장비를 만들어서 파는 겁니다. 캐릭터 상품인 거죠.
-너 미쳤냐?
‘그건 아이디어가 문제였던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