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17화
요하스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하, 하하. 폐하. 농담이시죠?”
“농담이라니. 요하스. 난 널 믿고 이렇게 직위를 다 맡기려고 하는데….”
태현은 슬픈 표정을 지었다.
파이토스 교단에서 넘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수도의 관리 직위를 열 몇 개 이상 넘기려고 하는 태현!
정말 당황스러울 정도의 믿음이었다.
“네게는 내 믿음이 별 가치가 없었나보군.”
“아, 아닙니다! 하겠습니다! 하겠습니다!”
[한 NPC한테 너무 많은 직위를 맡기고 있습니다!]
[계속 진행될 경우 NPC의 불만도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계속 진행될 경우 NPC의 전체 능력이 하락할 수 있습니다.]
[……]
과로 경고 메시지!
태현은 못 본 척했다.
‘요하스가 정말 힘들면 말하겠지.’
[요하스가 맡은 <천사의 대장간>의 효율이 크게 오릅니다.]
[앞으로 플레이어들은 <천사의 대장간>에서 새로운 스킬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요하스가 맡은 마구간 건물을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요하스. 마구간도 좀 업그레이드해 줄래?”
“네? 네???”
“응? 좋다고? 그래. 고마워.”
옆에서 보고 있던 갈락파드는 감탄했다.
“파이토스를 믿던 놈이라고 해서 못 미더웠는데, 지금 보니 소처럼 일을 잘 하는 놈입니다. 폐하.”
“하하. 내가 요하스를 예전부터 잘 봐뒀었지.”
흐뭇하게 미소 짓는 둘!
“폐하. 전승에 따르면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아키서스 님이 길을 가다가 일하는 두 천사를 봤는데, 한 천사는 검은 머리의 천사였고 다른 천사는 노란 머리의 천사였다고 합니다.”
“?”
어라?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카르바노그가 이 이야기 좋아한다고 깔깔댑니다.]
“아키서스 님은 두 천사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었답니다. 너희 둘 중 누가 더 일을 잘하냐? 그러자 두 천사는 자기가 더 일을 잘한다며 다투기 시작했고, 아키서스 님은 그 틈을 타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져갔다고 하죠.”
“…….”
사기잖아?!
“이 이야기의 교훈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폐하?”
“뭔가 훔치려면 안 들키게 훔치자?”
“아닙니다. 폐하. 무릇 천사들은 여럿 붙여놓으면 일하는 게 보기 좋다는 게 이 이야기의 교훈입니다.”
“…천사가 무슨 펫도 아니고, 그렇게 쉽게 구해올 수는 없다고.”
“폐하라면 가능합니다. 기왕이면 같은 파이토스 교단의 천사면 더 설득하기 좋을 것입니다. 무지한 천사한테 진정한 신앙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다 좋은데… 일단 천사를 어디서 찾는데?”
“그건 저 밑에 갇힌 놈들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겠습니까?”
“응?”
* * *
[현재 파이토스 교단의 고위 성기사들과 고위 사제들이 잡혀 있는 상태입니다.]
[지속적으로 파이토스 교단과의 친밀도가 떨어집니다.]
[더 이상 떨어질 친밀도가 없습니다.]
‘이런 건 참 편하단 말이지.’
더 이상 나빠질 관계가 없다!
“폐하!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아니~ 너희들이 요하스를 죽이려 했잖아.”
“저희 교단의 문제입니다.”
“아니야. 요하스는 이제 아키서스 교단으로 들어왔어.”
“?!?!?!?!”
[파이토스 교단 고위 사제가 커다란 충격을…]
[파이토스가 이 사실을 듣고 극노합니다!]
[아키서스 개자식!]
“응?”
마지막 메시지창은 뭐지?
[…라고 할 거라고 카르바노그가 생각합니다.]
‘야….’
태현은 카르바노그와 떠드는 걸 멈추고 시선을 돌렸다.
“어쨌든 너희들을 풀어주려고 하는데….”
“!”
파이토스 일행은 안도했다. 그래도 김태현이 그렇게까지 무도한 폭군은 아니구나!
“갈락파드가 너희 개종 안 하면 풀어주지 말래서….”
“폐하!! 어떻게 그런 말씀을!”
“아니, 난 사실 권한이 없어. 다 갈락파드가 하는 일이라구.”
은근슬쩍 책임을 회피하는 태현!
파이토스 사제들은 환장할 판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개종하기 싫으면 다른 걸로도 성의를 받을 수 있어.”
“…뭡니까?”
다들 태현을 안 믿는 눈치였다.
“음. 뭐가 있냐면….”
태현은 목록을 하나씩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여기 영지 성벽에 파이토스의 이름으로 축복을….”
“안 됩니다!”
교단이 통째로 쫓겨났는데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다.
“뭐야. 그러면 다음 거, 파이토스의 힘이 담긴 무구 장비들을….”
“절대 안 됩니다!”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뭐야? 난 너희들을 도와주려고 이러는데. 흥. 기분 상했어.”
태현은 홱 돌아섰다. 그러자 사제들이 당황해서 태현을 불렀다.
“아, 아닙니다! 저희가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다들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이라….”
“쯧. 알겠어. 내가 넘어가준다. 그러면 음… 파이토스를 믿는 천사의 위치를 아는 거 있나?”
“…천사의 위치는 왜 물으십니까?”
“요하스가 쓸쓸해해서 친구라도 좀 찾아주려고 하는데.”
엄밀히 따지면 거짓말은 아니었다.
태현의 말에 파이토스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수군거리며 떠들기 시작했다.
-다른 것보단 낫지 않나?
-그러게….
-천사 위치를 알려준다고 뭘 하겠어?
“폐하. 그러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훌륭한 결정이야.”
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도를 얻었습니다.]
<천사를 찾아서-아키서스 교단 퀘스트>
대륙에서 신의 믿음을 간직하고 있는 고귀한 종족, 천사는 교단의 강력한 동맹자다.
아키서스 교단은 오랜 시간 단절로 인해 천사가 모두 사라진 상황. 그렇다고 포기할 필요는 없다.
없으면 뺏으면 되니까!
보상: ?, ???
이제는 본색을 숨기지도 않는 퀘스트창이었다.
* * *
‘이제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로 가서 갑옷을… 아니다. 일단 아키서스 권능 퀘스트부터 먼저 깨야겠다.’
모스락을 처치하고 에슬라를 풀어주느라 정작 아키서스 권능 퀘스트는 아직 깨지 못하고 있었다.
갑옷은 퀘스트 깨면서 만들어도 되니까!
태현이 갖고 있는 각종 스킬들은 꼭 대장간 건물에 의존하지 않아도 갑옷을 만들 수 있게 만들었다.
그때 태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가 있었다.
“야! 김태현!”
케인은 해맑게 태현을 불렀다. 뒤에는 어디서 본 듯한 얼굴들이 우르르 있었다.
태현은 한숨을 푹 쉬었다.
‘1분만 더 빨리 튀었으면 귓속말을 차단했을 텐데….’
“김태현 선수!!”
“와!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한 번씩 만나보거나 이야기를 나눴던 연예인들과 PD들이 각자 장비를 맞춰 입고 서 있었다.
-과연 김태현과 같이하는 퀘스트는 어떤 퀘스트일까!?
-분명 방송에 나왔던 것처럼 박진감 넘치고 멋있는 퀘스트일 게 분명해!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들이 부담이 될 정도였다.
태현은 한숨을 쉬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정리는 해야 했으니까.
‘케인 저놈 저거 입이 귀에 걸렸네.’
태현은 연예인들하고 떠들어야 하는데, 케인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하연과 놀고 있었다.
‘에이. 냅두자.’
태현은 뭐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케인 인생에 저렇게 행복한 순간이 또 언제 오겠는가!
태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케인이 차일 거라는 걸 전제로 두고 있었다.
“근데 제가 지금 가는 퀘스트가 난이도가 좀 있을 텐데, 괜찮습니까?”
“네!!!”
“더 환영이죠!”
일행들은 환호했다. 난이도가 높은 퀘스트라니! 너무 좋아!
“흠… 그러면 가볼까요?”
* * *
[천사의 마구간이 완성됩니다.]
[그리핀의 알을 맡기겠습니까?]
-예.
이번 퀘스트에는 이다비가 참가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일을 맡았던 것이다.
훔쳐 온 그리핀의 알들을 부화시키는 일!
‘무럭무럭 자라렴….’
잘 자라면, 하나하나가 실제 자가용만 한 가격으로 팔릴 것이다.
그걸 생각하니 행복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리핀은 부화시키고 기르기 매우 어려운 영웅 탈것입니다.]
[현재 실패할 확률이 높습니다.]
[천사, 요하스가 마구간을 관리합니다. 그리핀의 부화에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천사, 요하스가 그리핀의 알들을 와서 직접 축복을 걸어줍니다. 그리핀의 부화에 추가 보너스를…]
[요하스가 힘들어합니다.]
“저기. 이것도 마구간에 놔도 됩니까?”
“공간 많으니까 마음대로 놓으… 잠깐, 그건 살아 있는 탈것이 아닌 것 같은데요?”
이다비는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저건 살아 있는 게 아니라, 기계공학 탈것이잖아?!
조잡하게 만들어진 자전거:
내구력 25/25.
스킬….
“폭탄이 아니네요?!”
“네….”
“아니, 무슨 일 있어요? 폭탄을 안 만들다니!”
기계공학 대장장이들이 폭탄을 안 만드는 건, 해가 서쪽에서 뜨고 태현이 속임수를 쓰지 않는 것과 동급이었다.
“그, 저는 기계공학으로 폭탄 말고 다른 걸 만들어보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알다시피 폭탄이 아니면 잘 안 팔려서….”
다니엘은 시무룩해져서 말했다.
사실 그랬다. 매번 ‘폭탄만 만드냐 미친놈들아!’ 하고 욕을 먹어도, 기계공학에서 제일 잘 팔리는 건 폭탄이었다.
다른 기계공학 아이템들은 크게 매력이 없는 것!
이다비는 그 말을 듣고 고민했다.
평범한 상인은 잘 팔리는 물건만 팔 수 있지만, 뛰어난 상인은 안 팔리는 물건도 팔 수 있어야 한다!
“이거 말고는 뭐 없어요?”
“앗.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다비가 관심을 가져주자 다니엘은 기뻐서 짐을 통째로 가져왔다.
<주먹으로 때리는 태엽 알람시계>, <타고 다니는 콩콩이>, <돌멩이 발사 장치> 같은 초보적 수준의 기계공학 아이템들!
실로 미묘한 효과들이었다.
“으음… 한 번 이걸 팔아볼까요?”
“정, 정말입니까?”
“네. 폭탄만 만드는 것보다는 이런 것도 지원을 좀 해줘야죠.”
안 그러면 매번 영지 지하를 파고 비밀 폭탄 창고를 만드니까!
이다비는 뒷말을 삼켰다.
* * *
“여기가 블랙 드래곤 학카리아스의 레어가 맞나?”
“예!”
꿀꺽-
길드 동맹 길드원들은 침을 삼켰다. 랭커가 있는데도 긴장됐다.
그 이유는 하나.
여기 레어의 주인 때문이었다.
블랙 드래곤 학카리아스!
추정 레벨이 600~700은 그냥 넘어가는, 아직 플레이어 수준으로는 잡을 수 없다는 강력한 보스 몬스터였다.
게다가 드래곤은 단순히 레벨만 높은 보스 몬스터가 아니었다. 온갖 강력한 마법과 각종 함정을 사용하는 상위 종족인 것이다.
이제까지 드래곤을 만나 말 몇 번 붙여본 플레이어는 있어도, 드래곤을 잡은 플레이어는 없었다.
길드 동맹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지금 드래곤을 잡으러 가는 게 아니었다.
“위대한 드래곤, 학카리아스여… 저희가 당신을 뵈러 왔습니다.”
[중급 화술 스킬을 갖고 있습니다. 학카리아스를 상대하는데 페널티를 받습니다.]
[악명이 높습니다. 학카리아스를 상대하는데 보너스를 받습니다.]
[……]
사자로 선택된 플레이어는, 학카리아스의 취향을 면밀하게 조사해서 딱 맞춘 플레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페널티를 먹고 들어가야 했다.
-무어냐…?
[학카리아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극심한 공포에 빠집니다!]
“저… 희는 이번에 새로이 오스턴 왕국을 통일한 국왕의 사자입니다.”
-오스턴 왕국의 주인이 바뀌었나? 저런, 저런….
“예. 여기 학카리아스 님에게 드릴 선물을 갖고 왔습니다.”
드워프 대장장이들이 재빨리 묵직한 보물상자를 들고 옮겼다.
안에는 각종 보석 목걸이가 잔뜩 담겨 있었다. 추정 가격만 해도 십억은 그냥 넘길 액수였다.
[학카리아스가 보물을 보고 만족스러워합니다.]
‘휴….’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무엇을 원하지?
“저… 저희는 오스턴 왕국의 지배자인 학카리아스 님께 저희를 소개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원하는 게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