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16화
태현은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었다.
“너 혹시 쟤 아니?”
유제건이 그렇게 잘사는 집 아들이면, 유지수의 얼굴도 알지 않을까?
게다가 성도 같았다.
“네? 쟤가 누굽니까? 제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입니까?”
‘이놈 정말 듣보잡이었네….’
태현은 유제건을 안쓰럽게 쳐다보았다. 유지수도 모르는 거 보니 그냥 별거 아닌 놈 같아 보였다.
“너 혹시 유성그룹은 아니? 유성전자나….”
“하하.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저희 아버지가 유성전자 사장님….”
“어?”
“…과 동문입니다.”
“…그거 그냥 남 아니냐?”
태현도 동문인 사람이 많았지만 딱히 친근감을 느끼진 않았다.
“요즘 시대에 동문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요, 선배!”
“아. 그래. 뭐 네가 그렇다면야….”
태현은 유제건이 슬슬 안쓰러워지고 있었다.
“앗! 선배!”
유지수가 태현을 알아보고 반색하며 달려왔다. 태현 앞에 달려온 유지수는 유제건을 쳐다보더니 ‘얘는 누구지?’란 표정을 지었다.
그사이 김예리는 태현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오빠는 잘 지내죠?”
“응. 너희 오빠는 한결같지.”
“하하….”
“하하하!”
서로 눈빛만 봐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안다!
케인에 관해서 둘은 말없이 눈빛만으로도 이야기가 통했다.
유지수는 유제건을 잠깐 쳐다보더니 태현을 보고 말했다.
“선배. 혹시 그 이야기 들었어요?”
“?”
“선배가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있어요. 계속 집에만 있어도 돼요!”
“어. 뭔가 어감이 이상한데?”
김예리가 옆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들으면 태현을 공격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유제건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입을 열었다.
“선배. 제 생각에 쟤는 좀 이상한 사람 같습니다.”
“내 생각에 너는 좀 몸조심을 해야 할 거 같은데.”
“?”
유제건은 태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했다.
유지수가 노려보았지만, 유제건은 기본적으로 눈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수야. 학교에 나오지 않아도 되는 방법이 뭔데? 교수님을 매수하는 건가? 아니면 교수님을 납치하는 거?”
‘평소에 많이 생각하신 모양인데?’
김예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바로 튀어나오는 게 평소에 많이 생각해 본 솜씨였다.
“그, 그런 방법이 아니라… 이거에요.”
유지수가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창업 동아리 대체 학점 인정 제도>
…라고 크게 쓰여 있는 서류였다.
온갖 복잡한 글들을 따서 읽어보니, 창업 관련 동아리를 세워 활동을 하면 그에 준한 학점을 준다는 뜻!
“오… 좋긴 한데, 창업 관련 동아리를 세우면 본말전도 아닌가? 그거 활동하나 학교 나가나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
오히려 동아리가 더 귀찮을 수 있었다. 만들고 관리하고 이것저것 실적을 내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에요. 충분히 가능해요!”
“?”
“이미 게임단을 운영하시고 있잖아요. 그걸로 꾸미는 거예요!”
“그게… 되나?”
“맡겨만 주세요. 제가 다 알아봤어요!”
유지수는 단호하게 외쳤다. 이미 사전 조사를 끝낸 그녀였다.
태현의 게임단도 충분히 수익을 올리는, 서류에서 제시한 조건에 들어맞는 사업체였다.
거기에 부족한 게 있으면 유지수가 얼마든 손을 쓸 수 있었다.
‘선배와 같은 동아리!’
유지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태현한테 도움이 되면서 그녀도 원하는 걸 얻는 책략!
“재밌네요! 저도 들어가죠.”
“?”
“??”
유지수와 김예리가 유제건을 빤히 쳐다보았다. 특히 유지수의 눈빛은 살벌했다.
‘내가 입찰한 선배에 상위입찰하지 마라’라고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물론 유제건은 눈치 못 채고 신나서 말했다.
“선배. 제가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알다시피 저는 제왕학을 배웠으니 이런 동아리 정도야 손쉽게 이끌 수 있지요. 선배의 제갈공명이 되어드리겠습니다.”
“어, 그래. 그래.”
태현은 무시하면서 대충 대답했다.
유지수가 태현한테 와서 작게 물었다.
“저 사람 이름이 뭐죠?”
“유제건이라는데.”
“판온도 하나요?”
“판온도 할 걸?”
“그렇군요….”
-넌 뒤졌어!
확실한 의지가 단호하게 느껴졌다. 태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왕학이고 뭐고, 넌 진짜 한동안 몸조심하는 게 좋겠다.”
“?”
* * *
그나마 일주일에 한 번 나가는 걸 또 줄일 수 있다는 말에 태현은 싱글벙글이었다.
그 기쁨을 깬 건 케인이었다.
“김태현. 그 있잖아, 저번에 같이 하자고 한 연예인들… 대회도 축하할 겸 시간 잡혔는데. 그, 수도 모라 시 앞으로 오겠다고… 괜찮지? 응? 괜찮지? 야. 이 정도는 괜찮은 거 아닐까?”
케인의 애처로운 대화를 듣던 정수혁과 최상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도망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케인. 도망쳐라.”
홱!
한창 기분 좋던 태현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 눈빛은 아까 유지수의 눈빛과 닮아 있었다.
-넌 뒤졌어!
“아니! 진짜! 어쩔 수 없었어!”
“넌 거절을 못하냐? 응? 응?”
태현한테 머리통을 잡힌 케인은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그게 다들 연예인이다 보니까 내가 거절할 수가… 나는 그런 사람들만 보면 말을 더듬게 된다구.”
“…….”
듣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변명!
“그리고… 하연이도 부탁했단 말이야! 내가 이걸 어떻게 거절해!”
“…네가 이겼다. 케인.”
“?!”
“그래. 이걸 어떻게 거절해.”
“맞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사귈 수 있을지 모르는데.”
정수혁과 최상윤까지 와서 케인을 격려해 줬다.
케인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지는 걸 느꼈다.
“아니. 이번 기회를 놓친다고 내가 언제 사귈 수 있을지 모르는 건 좀 아니지 않냐?”
“쟤는 진짜 평생 독신으로 살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이해해 주자.”
“저는 이해가 갑니다. 선배님.”
“야!”
* * *
케인이 연예인 일동을 불러오는 사이, 태현은 <악마의 기계공학 비전> 스킬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제작법, <악마의 영혼이 갇혀 있는 사슬갑옷>!
이걸 어떻게 써먹어야 하나?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대충 포기하고 넘어갔을지 몰랐지만, 태현은 아니었다.
태현의 게임 인생은 괴상하고 이상한 스킬들을 어떻게 써먹느냐로 점철된 인생!
“이다비. 혹시 주변에… 레벨 1에, 더 이상 레벨 업 할 생각은 없고, 믿을 수는 있는 사람 좀 알고 있어?”
태현은 말하면서도 좀 심했다 싶었다. 이런 희박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사람들이 있을 리가….
“앗. 그 변태들 이야긴가요?”
“…?!”
있어?!
태현은 당황했다. 그보다 이다비가 변태라고 하다니. 파워 워리어 길마가 변태라고 한다면 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이다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저희 길드에 있는 사람들 말하는 거 아니었어요? 그, 레벨 1 유지하는 사람들.”
파워 워리어 길드에는 여러 가지 소모임들이 있었다. 워낙 숫자가 많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파워 워리어 최고 전통을 가진 광고단! 짭짤한 수입 보장!
-가장 불쌍하게 보일 자신이 있는 당신, 어서 오라! 구걸단!
-김태현에게 선택 받은 용감한 사람만이 올 수 있다! 단검단!
-쉿. 너한테만 알려주는 거니까 남한테 말하지 말고 조용히 와라. 우리는 폭탄… 앗. 당신들 누구야?!
각자 관심사에 따라 모인 소모임!
그중 ‘레벨 1 모임’이 있었다.
-고통을 받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건 레벨이 있어서다. 소유는 곧 집착을 부르니, 레벨을 버리면 고통도 없어진다!
레벨 1은 이론상 아무 사망 페널티를 받지 않는 레벨.
그 레벨 1을 유지하면서 판온 온갖 곳을 당당하게 구경하는 길드원들이 있었다.
-여긴 못 들어옵니다. 아니, 못 들어온다니까? 죽고 싶어?
-동네 사람들! 여기 길드원이 깡패에요! 사람 치네 사람 쳐! 야! 쳐봐! 네 악명만 오른다!
‘잃을 거 없이 즐겁게 산다’가 그들의 모토였다.
“이다비. 혹시 걔네들한테, 이런 아이템을 주면 좋아하려나?”
“엄청 좋아할걸요? 아니, 그보다 이런 쓰레기 아이템이 대체…?”
상인인 이다비도 놀랄 정도로 독특한 쓰레기 장비!
“걔네들을 전부 다 모아줘. 그리고 단검단 애들 중에서도 더 지원자를 받아주고!”
레벨 1 단검단!
훗날 랭커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사악한 죽창 부대의 탄생이었다.
* * *
“빨리 가서 만들어야….”
태현은 수도에 잠깐 들러 상황만 확인하고, 절망과 슬픔의 골짜기로 다시 갈 생각이었다.
연예인들과 같이 사냥? 그건 케인이 알아서 잘 하겠지!
그런데 수도에 오자 멀리서 울며 달려오는 놈이 있었다.
“으헝헝헝! 으헝헝헝!”
“???”
“폐하, 폐하! 저는… 잘못이 없는데! 크흐헝!”
눈물범벅이 된 요하스였다. 요하스는 태현을 붙잡고 질질 짜기 시작했다.
“얘 왜 이래?”
“파이토스 같은 잡신을 모셨으니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갈락파드가 옆에서 호통을 쳤다. 원래라면 ‘파이토스를 모욕하다니!’라고 화를 냈을 요하스였는데 저러는 걸 보니 많이 약해진 모양이었다.
“폐하! 파이토스 님께 다시 말해주십시오!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응? 내가 어떻게… 아.”
태현은 그제야 자기가 했던 거짓말을 떠올렸다.
-내가 어! 파이토스에게 인정 받은 사람이야!
[카르바노그가 너무하다고 질책합니다.]
‘자기도 그때 같이 좋아해놓고 뭘….’
물론 태현한테는 파이토스한테 다시 잘 말해줄 능력 같은 건 없었다.
애초에 파이토스한테 말을 걸면 저주부터 내려오지 않을까? 남의 교단 스킬을 훔쳐서 쓰고 있었으니….
“요하스!”
“예?”
“파이토스 님은 분명 언젠가 화를 푸실 거야. 그때까지 아키서스 교단에 있는 게 어때?”
[……]
카르바노그가 ‘와 사람이 어떻게 그러냐’ 하는 시선을 보냈지만 태현은 무시했다.
“아키서스 교단에… 말입니까?”
“그래. 그래. 파이토스 님이 화가 풀리면 받아주시겠지.”
물론 아키서스를 믿게 됐다는 걸 알면 풀리려던 화도 다시 치솟겠지만!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가 어딨어. 요하스. 잘 생각해 봐!”
[최고급 화술을…]
악마의 혓바닥으로 이간질을 시작하는 태현!
파이토스를 은근히 욕하고, 아키서스 교단을 은근히 칭찬하고, ‘너 같은 인재를 버리다니 정말 파이토스가 눈이 없다니까~’ 하면서 은근슬쩍 끌어들이는 태현!
[카르바노그가 요하스를 정말 불쌍하게 여깁니다.]
[자기 천사였다면 저렇게 안 뒀을 텐데! 라고 생각합니다.]
한 시간 후.
“…그러면 한 번….”
“좋아! 도장 찍어!”
“?!”
[추락한 파이토스의 천사, 요하스가 아키서스 교단에 들어옵니다!]
[위대한 천사 종족을 교단에 넣는데 성공합니다. 아키서스 교단의 명성이 크게 퍼집니다!]
[파이토스 교단이 이 명백한 도발에 경악합니다!]
‘하하. 지들이 쫓아내놓고 뭐라는 거야?’
태현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자기들이 버린 거 주워서 쓰겠다는데 왜 시비?
[아키서스 교단의 신앙이 점점 더 퍼져나갑니다.]
[희박한 확률로 새로운 천사가 아키서스를 믿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요하스. 너한테도 직위를 주지.”
“파이토스 교단에서 쫓겨난 제게 직위를 주시는 건… 조금 그렇지 않겠습니까?”
요하스는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아키서스 교단은 그런 견제와 질투랑은 거리가 먼 교단이었으니까!
“하하. 걱정 마라. 일단 네가 해줄 일은… 네 스킬이 뭐가 있었지? 음. 일단 천사의 대장간 관리, 마굿간 관리, 재봉사 길드 관리….”
“제가 가능한 걸 이 중에서 고르면 됩니까?”
“응? 아니. 네가 맡을 일들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