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될놈이다 715화
“그때 너 스카우트하러 왔다가 까인 곳 아니야?”
“아뇨. 거긴 뉴욕 라이온즈입니다.”
같은 라이온즈지만 하나는 국내, 하나는 해외 팀이었다.
두 팀 팬들은 ‘내가 진짜다’, ‘아니다, 너는 가짜다’ 같은 식으로 투닥거렸지만 태현과 케인은 관심이 없어서 모르고 있었다.
태현은 그냥 관심이 없었고, 케인은 보통 자기 이름만 검색했던 것!
-케인 씨. 검색어 기록에 ‘케인 명대사’, ‘케인 명경기’, ‘이상형이 케인인데’이라고 쓰여 있는데 지워도 됩니까?
-야, 야! 그걸 크게 말하면 어떡해!
케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뉴욕 라이온즈 아니면 왜 우리를 물고 늘어져? 딱히 원수진 거 없잖아?”
“언론 플레이죠.”
“아, 깜짝이야!”
갑자기 이다비가 나타나자 케인은 기겁했다.
“너 요즘 너무 자주 오는 거 아니야?”
“오면 안 되나요?”
“왜 오면 안 돼? 케인. 너 너무한 거 아니냐?”
“맞습니다. 케인 씨.”
“아, 아니. 그냥 놀라서 물은 건데….”
케인이 쭈그러든 사이 이다비가 설명을 시작했다.
“LK 라이온즈는 나름 대형 게임단 중 하나잖아요? 미국이나 중국 쪽 게임단에 비하면 규모는 좀 작지만.”
대형 게임단.
어마어마한 자본과 대기업의 후원을 받으며 운영되는 게임단을 의미했다.
LK 라이온즈는 대표적인 국내의 대형 게임단 중 하나였다.
ST 파이브나 KG 위자드와 같이, 한국의 손꼽히는 유명 게임단!
그리고 이 게임단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현 KL 선수들에게 전화를 걸었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무시당한 적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LK 라이온즈가 생각보다 주목을 못 받았잖아요.”
다른 쟁쟁한 팀들도 적응에 실패해서 예선에 탈락하거나 본선 1경기에서 탈락하는데, 4강에 진출한 LK 라이온즈 정도면 대단한 편이었다.
물론 LK 라이온즈 입장에서는 전혀 만족할 수 없는 결과였다.
-왜 4강에 진출한 팀 중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을 못 받는 거냐!
현재 4강에 진출한 게임단은 유성 게임단, 팀 KL, LK 라이온즈, 베이징 파이터즈였다.
이 중 압도적인 성적으로 압승을 거두는 건 유성 게임단과 팀 KL.
그리고 베이징 파이터즈는 워낙 팬이 많았다.
그에 비해 LK 라이온즈는… 많이 밀렸다.
한국 팀이라는 부분에서는 유성 게임단과 팀 KL에 밀리고.
대형 게임단인 부분에서는 유성 게임단에 밀리고 베이징 파이터즈에 밀리고….
대형 게임단은 탄탄한 지원을 받는 대신 그만큼의 결과를 내놓아야 했다.
과거 유성 게임단이 왜 해체되었겠는가?
그런데 아무 지원도 안 받고 선수들끼리 굴러가는 팀 KL은 주목을 엄청나게 받지, 갑자기 튀어나온 유성 게임단은 과거의 망령을 떨쳐내고 맹활약을 하고 있지….
-유성 그룹은 원래 E스포츠 투자에 인색한 곳 아니었나? 거기 대체 무슨 일이야?
거기에 해외 대형 게임단들한테까지 치이니 LK 라이온즈 입장에서는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위로는 스폰서들과 투자자들이 쪼아대고 아래로는 팬들이 닦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목받으려고 언플하는 거 아닐까요? LK 라이온즈 감독이 원래 그런 거로 유명했잖아요.”
LK 라이온즈 감독, 주 감독의 별명은 능구렁이였다.
판온 이전부터 E스포츠 계에서 각종 언플과 치사한 수작으로 악명이 높은 인물!
“아니, 너무한 거 아니야!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케인은 분해서 씩씩거렸다. 그에 비해 태현은 무덤덤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관심 좀 받고 싶으시다는데. 그보다 LK 라이온즈는 어떤 전략을 쓰고 있지?”
“클래식해요. 기본적으로 폭탄 베이스에, 균형 잡힌 조합으로 가고 있어요.”
태현 팀이나 유성 게임단처럼 그들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전략이 아닌, 일반적인 전략.
거기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뽑아내는 게 LK 라이온즈의 전략이었다.
“인기 없는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앗. 이거 좋다.”
“네?”
“우리도 언플하자.”
“…….”
“…….”
“…….”
“왜? 상대도 하는데 난 하면 안 돼?”
“아니… 선배님. 남이 진흙탕에서 논다고 같이 놀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정수혁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렇지만 최상윤과 케인은 달랐다.
‘음. 잘 어울릴지도.’
‘생각해 보니 저놈 판온 1 때는 정말 엄청 주목 끌었었지…?’
“근데 우리 어디에 언플해요?”
“흠. 파워 워리어 길드 방송 있지? 거기서 할까?”
이다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 * *
“아니, 그러니까 전 LK 라이온즈란 이름을 처음 들어봤습니다.”
“정말입니까?!”
“그렇죠. 애초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제가 판온 1 할 때만 해도 LK 라이온즈는 별 상관이 없는 팀이었거든요.”
파워 워리어 길드의 진행자, 최민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진정해라, 나. 진정해라, 나. 표정 관리 해야 한다…!’
지금 태현이 그의 방송에 나와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파워 워리어 길드 방송이었지만….
-뭐임??? 왜 김태현이 나옴?
-그것도 게임 내가 아니라 진짜잖아?
<김태현 특별 출연-각 게임단을 평하다>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방송을 하자,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왔다.
파워 워리어 길드도 온갖 활약과 홍보로 꽤 충성 시청자층이 늘어난 것이다.
예전을 생각하면 눈물 나는 변화!
“LK 라이온즈가 팀 KL을 혹평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라고 했었죠?”
“모래알 같다, 상대할 비책 있다, 오래 못 간다….”
“에이. 모래알 같은 건 그쪽 팀이죠. 저희 팀이 만들어지고 선수 이탈이 있었나요? 없었죠. 그렇지만 LK 라이온즈는… 제가 거기 선수를 잘 몰라서. 누구 있었었죠? 사실 제가 까려고 나왔는데 아는 게 없어서 까기가 힘드네요.”
‘타고났어, 타고났어.’
태현 일행은 구경하면서 감탄했다.
아주 남 공격하는 데에는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것 같은 태현!
프로게이머가 되지 않았다면 악플을 다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그래서 제가 찾아봤습니다. 여기 선수 명단….”
“여기 선수들은 왜 지워져 있어요?”
“아, 원래 발표 났었는데 다른 팀으로 간 선수들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죠?”
“이게 아직 입단 확정 나기 전에 다른 팀 제안을 받고 간 선수들이라….”
냉정한 E스포츠의 세계!
대회 시작을 앞두고 뛰어난 선수들을 확보하기 위해, 전 세계 게임단들이 돈다발을 휘두르고 다녔었다.
LK 라이온즈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해외 게임단 자본이 워낙 막강했고, 거기에 당해 몇몇 선수를 뺏긴 것이다.
“이야~ 모래알은 따로 있었네요. 그렇지 않나요?”
“하하하. 그러네요.”
최민수는 리플을 힐끗 쳐다보았다. LK 라이온즈 팬들이 난리 치는 건 아니겠지?
다행히 대부분이 태현과 파워 워리어의 팬이어서 반응은 환호밖에 없었다.
자신감이 생긴 최민수는 좀 더 당당하게 나가기 시작했다.
“LK 라이온즈는 사실 팀 KL에 비하면 별거 아니죠!”
“음?”
“LK 라이온즈 감독은 완전 퇴물이죠!”
“흠. 전 그렇게까지는 생각 안 했는데 재밌는 의견이네요.”
“김태현 선수 만세! LK 라이온즈는 죽어라!”
“이거 생방송 아닌가? 이래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
최민수는 반응에 취해 호기를 부렸다. 태현마저 살짝 걱정할 정도였다.
‘이 인간 이래도 되나?’
태현이야 겁 없이 산다지만….
“그래서 김태현 선수. LK 라이온즈의 비책이 뭐인 것 같습니까?”
“흠. 보니까 엄청 참신한 무언가를 들고 오기보다는 기존 전략에 뭐 하나 추가시키지 않을까 싶은데요.”
태현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하나씩 나열하기 시작했다.
“지금 던전 대회 방식이 대충 얼마나 빠르고 효율적으로 몬스터를 몰아서 폭탄으로 잡느냐…의 승부잖습니까?”
일명 기계공학 메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폭탄 붐이 대회에서 온 것이다.
“거기에 또 얼마나 폭탄을 안전하게 다루느냐도 들어가고.”
상인 직업의 무게 제한을 활용해서 아이템을 최대로 들고 들어가고, 거기에 본인 대장장이 기술 스킬과 기계공학 스킬로 극한의 효율을 노린 태현.
본인의 유니크한 네크로맨서 스킬로 안전하게 폭발을 일으킨 이세연.
그에 비해 LK 라이온즈는 눈에 띄는 스킬들이 없었다. 그렇다고 구성 선수들의 직업이 엄청나게 유니크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개개인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 정도?
“비책, 비책 하는데 사실 판온에서 아무도 모르는 비밀 스킬들은 의외로 적어요. 그게 또 효과가 있느냐는 다른 이야기고… 그래서 뭐가 비책일지 좀 궁금하긴 한데, 설마 뭐 괴식 요리나 이상한 연금술 포션 레시피 찾은 다음 비책이라고 하진 않겠죠.”
태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마무리 지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고, LK 라이온즈가 저도 모르는 비책을 찾아냈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해요. 뭐든 간에 질 생각은 없습니다.”
* * *
‘정보가 샜나?!’
‘뭐 어떻게 된 거야?’
그리고 LK 라이온즈 선수들도 그 방송을 보고 있었다.
그들 입장에서는 충격과 공포!
어찌나 놀랐는지 그들이 까이고 있다는 것도 눈치 못 챌 정도였다.
“감… 감독님. 어떻게 된 거죠 이게?”
“…당황하지 마라. 넘겨짚은 거다.”
“아니, 넘겨짚은 거 치고는 너무 정확하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이대로라면….”
“내가 뭐라고 했냐? 지레 겁먹고 지는 놈들에게는 프로 자격이 없다고 했지?”
주 감독은 냉철하게 말했다.
지금 전력은 그들이 팀 KL보다 한 수 아래!
여러 대책을 준비했지만, 그들한테 가장 유리한 상황이 와도 팀 KL을 이기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주 감독은 흔들기를 시도했다.
팀 KL의 약점은 코치진이 없다는 것. 이런 식으로 흔들어서 자기 페이스를 잃게 만들면 이길 가능성이 생긴다!
그런데 오히려 역으로 자기 팀 선수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태현이 저렇게 말한 건 충격적이었다.
완전 핀포인트로 그들의 전략을 직격하다니!
‘대체 어떻게 알아낸 거지? 설마 다른 게임단 놈들이 말해줬나?’
팀 KL 같은 게임단이 무슨 스파이를 운영하지는 않을 테고, 업계의 다른 감독들이 의심됐다.
그를 질투하는 감독들!
* * *
“선배, 아주 훌륭한 경기였습니다.”
짝, 짝, 짝-
“그, 그래. 고맙다.”
태현은 ‘뭐지 이 미친놈은’ 하는 눈빛으로 유제건을 쳐다보았다.
“제건아. 내가 할 소리는 아니긴 한데… 너 친구 없냐? 왜 자꾸 날 쫓아다녀?”
‘생각해 보니 이놈 친구 없을 거 같은데.’
태현은 미묘한 눈빛으로 후배를 쳐다보았다.
보자마자 ‘제가 집에 돈이 좀 많습니다’이러는 놈이 친구가 많을 것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태현과 다른 타입의 아싸!
“친구요?”
유제건이 의아하다는 듯이 묻자 태현은 자기가 잘못 생각했나 싶었다.
‘어라? 내가 잘못 짚었나?’
“친구는 필요 없습니다!”
“…그, 그래.”
“저처럼 제왕의 길을 걸을 사람에게 필요한 건 부하 아니면… 선배, 어디 가십니까? 선배!”
태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걸어갔다. 학교에 한 번 나오는데도 저런 미친놈을 만난다니.
‘대학교는 무서운 곳이야.’
태현은 끼리끼리 논다는 속담이 떠오르는 걸 느꼈지만 애써 무시했다.
“선배, 선배라면 절 이해해 주실 줄 알았는데요!”
“내가 왜 널 이해해야 하냐?”
태현은 순간 움찔했다. 설마 이 자식 같이 부잣집 아들이라고 친근함을 느끼는 거라면….
그건 굴욕 그 자체일 것 같았다.
“선배도 게임계에서 제왕의 길을 걷고 계시잖습니까?”
“…네가 말하는 제왕의 길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뭔가 좀 많이 틀린 것 같다.”
그렇게 말하는 태현 앞에 유지수가 보였다. 케인의 여동생 김예리와 같이 걸어가고 있었다.
‘제왕의 길은 쟤가 걸어가는 거 아닌가?’